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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風 님의 서재입니다.

검계(劍契)이야기 두 번째 -파천(조선, 1596)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일반소설

南風
그림/삽화
渡海
작품등록일 :
2020.12.29 16:07
최근연재일 :
2022.07.06 20:09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38,600
추천수 :
340
글자수 :
758,510

작성
22.05.11 05:46
조회
88
추천
1
글자
6쪽

제 4 부 개화(開花) (96)

DUMMY

작별의 인사를 끝낸 흑호가

양손에 힘을 꽉 주고 잡아당겼다.


그때,

이를 악물며 버티던 한용덕이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뒤통수로 흑호의 코를 들이받았다.




윽,


짧은 비명과 함께

흑호의 두건이

터져 나온 코피로 금세 흥건해졌다.


그래도 흑호는

한용덕의 목을 조른 비차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잠시의 틈이

한용덕이

몸을 뒤집을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앞으로 최대한 웅크렸던 한용덕이

옆으로 몸을 휙 돌리면서

흑호를 등에 태운 모양새가 되자,


양 무릎에 혼신의 힘을 보내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두 손으론

자신의 목을 조르는 비차의 끈을

잡은 채로,


오직 허리와 무릎의 힘만으로

상대를 등에 업고

다시 일어나는 한용덕을 보면서,


흑호는 실로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 사람은 정녕 괴물인가?


얼마나 단전과 하체의 기운이 좋으면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흑호가 한용덕의 등 뒤에서

계속 목을 졸라보았지만,


이미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그에게

더 이상은 통하지 않았다.


한용덕이

자신의 등에 매달려있는

흑호의 몸을 떼어내려고


순간적으로 허리를 띄워 튕겨낸 후

땅을 향해 메쳐버렸다.


흑호의 몸이

허공에서 거꾸로 한 바퀴 돌아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흑호도 만만치 않았다.


여전히 두 손은

비차의 끈을 잡은 채로

한용덕의 목을 구속시킨 상태에서,


지면에 닿은 발끝에 힘을 주어

몸을 한 바퀴 휙 돌리더니

마주본 자세로 전환했다.


두 사내는

한 치의 간격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부릅뜬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목을 졸리고 있는

한용덕의 두 눈엔

시뻘겋게 핏발이 가득 서있었고,


한용덕의 목을 조르고 있는

흑호의 두 눈은

피에 젖은 두건 안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아주 잠깐 동안

숨 막히는 대치상황이 지나고,


코에서 흘러나오는 피 때문에

호흡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흑호의 악력이 차츰 약해져 갔다.


상대의 힘이

아까보다 많이 떨어진 것을 느낀

한용덕이


줄을 잡고 있던 두 손을 재빨리 빼내

흑호의 양 어깨를 움켜잡았다.


예상외의 행동에 흠칫 놀란

흑호의 눈이 살짝 흔들릴 때,


이미 한용덕의 무릎은

그의 급소인 낭심을 향해

세차게 날아가고 있었다.




으윽...


한용덕의 오른쪽 무릎에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당한

흑호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드디어,

한용덕의 숨통을 조이던

비차의 끈도 풀어졌다.


호흡을 가로막혀

정신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갔던

한용덕이,


겨우 다시 돌아온

공기의 맛을 느끼며

자신의 폐 속 깊숙이

기운을 채워 넣을 때,


호흡조차 되지 않는

아랫배의 처절한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낸 흑호가

비차를 오른손에 쥐었다.




한 번의 공격을 내지를 만한

호흡의 힘을 회복한 한용덕이,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흑호의 관자놀이를 향해

오른쪽 정권을 세차게 내질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흑호의 오른손이 뻗어나가며

비차의 칼끝이

한용덕의 명치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갔다.


두 사내의 혼신을 다한 마지막 일격이

서로의 급소를 향해 교차되었다.




큭.


한용덕의 입에서

아주 깊고 무거운,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굳건했던 그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무너져갔다.


잠시 후,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선팔도의 북쪽을 호령하던

금강산의 두령이


결국 쓰러졌다.




흑호가

한용덕의 명치에 박힌 비차를

천천히 뽑았다.


임무를 끝낸 비차가

주인의 손으로 다시 돌아가자,

칼이 박혔던 자리에서

검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한용덕의 내뱉는 숨결이

점점 약해지면서,

맹호처럼 사나웠던 그의 기세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방금 전까지

두 사내가 거칠게 내뿜던,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든

진한 살기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마지막 일격을 동시에 내지른,

아주 짧은 생사의 기로에서

최후의 승자는 흑호였다.


그의 칼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한용덕의 주먹이

그의 머리를 부쉈을 것이다.


날아오는 주먹을 보고

본능적으로 왼팔을 들어

막아내긴 했지만,


자신의 칼에

급소를 먼저 당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멈출 주먹이 아니었다.


무릎까지 꿇은 상태에서

아랫배의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칼을 쥔 손을 뻗어

상대의 명치를 노린

흑호의 찌르기는,

결국 성공했던 것이다.




‘실력이 좋아서

내가 이긴 것이 아니다.


그저 내 운이

형님보다 조금 더 좋았을 뿐...’


그런 생각을 하며

무릎을 꿇은 채

가쁜 숨을 내쉬던 흑호가,


회한에 젖은 눈빛으로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간

용맹한 사내의 마지막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두건 밖으로 드러난 그의 두 눈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이젠 그때가 언제였는지

날짜조차 떠오르지 않는,

아주 오래되어 희미해진 기억이

흑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느 아름다웠던 봄날의 풍경이었다.


벚꽃이 지며

하얀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던

그 봄날의 한가운데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과 함께

서서히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해의 꽃을 떠나보내던

벚나무 아래에서

그들 셋은 같이 있었다.




아마도 족히 백년은 넘은

벚나무일거라고,


이 나무 덕에

올해도 이런 멋진 풍경을

벗들과 같이 볼 수 있어

무척이나 행복하다는

한용덕의 말에,


새하얀 꽃비를 맞으며

기분좋은 미소를

얼굴에 가득 띠운 채

구대성이 말없이 술잔을 비웠다.




그때, 흑호는

구대성의 빈잔에 술을 채워주고

한용덕에게 감사를 전했다.


데려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형님.


그러자 한용덕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년에도 또 같이 보세, 아우님.




짧은 회상과 함께

한용덕의 죽어가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던 흑호가,


어느 순간 고개를 숙이고

두 손 모아 합장하며

조용히 기도를 시작했다.


자신의 저승길이 평안하도록

명복을 빌어주는,

‘옛 아우’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용덕의 눈에서

서서히 총기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어느덧 악연으로 변한,


그들의 좋았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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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제 4 부 개화(開花) (115) 22.07.06 84 1 13쪽
220 제 4 부 개화(開花) (114) +1 22.07.04 62 1 10쪽
219 제 4 부 개화(開花) (113) 22.07.01 62 1 11쪽
218 제 4 부 개화(開花) (112) 22.06.29 58 1 15쪽
217 제 4 부 개화(開花) (111) 22.06.27 67 1 13쪽
216 제 4 부 개화(開花) (110) 22.06.14 70 1 14쪽
215 제 4 부 개화(開花) (109) 22.06.10 70 1 9쪽
214 제 4 부 개화(開花) (108) 22.06.08 68 1 10쪽
213 제 4 부 개화(開花) (107) 22.06.06 81 1 11쪽
212 제 4 부 개화(開花) (106) 22.06.03 85 1 9쪽
211 제 4 부 개화(開花) (105) 22.06.01 74 1 7쪽
210 제 4 부 개화(開花) (104) 22.05.30 67 1 8쪽
209 제 4 부 개화(開花) (103) +1 22.05.27 89 1 7쪽
208 제 4 부 개화(開花) (102) 22.05.25 69 1 7쪽
207 제 4 부 개화(開花) (101) 22.05.23 75 1 7쪽
206 제 4 부 개화(開花) (100) 22.05.20 76 1 13쪽
205 제 4 부 개화(開花) (99) 22.05.18 69 1 7쪽
204 제 4 부 개화(開花) (98) 22.05.16 68 0 7쪽
203 제 4 부 개화(開花) (97) 22.05.13 70 1 8쪽
» 제 4 부 개화(開花) (96) 22.05.11 89 1 6쪽
201 제 4 부 개화(開花) (95) 22.05.09 91 1 6쪽
200 제 4 부 개화(開花) (94) 22.05.06 92 1 9쪽
199 제 4 부 개화(開花) (93) 22.05.04 96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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