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들어온 첫날부터 미스터 김을 둘러싼 트러블이 많군요. 다른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공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주세요."
사회자까지도 첫 녹화 시작부터 면박을 준다.
하지만 아랑곳 하지않고, 그들식의 유머로 어깨를 들썩이는 석진,
"크흠! 여러 난관들을 뚫고 이 자리에 계신 TOP10 여러분들에게 우선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일 여러분들이 해야 할 미션 장소는 바로 여깁니다!"
갑자기 휴대폰을 가리키는 사회자를 보며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뭐야 저게? 어쩌라는 거야?"
나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도 어리둥절해 하는 와중,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사이먼 코웰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여러분들은 이미 작곡 실력에 대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TOP10이 된 기념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열어볼까 합니다."
그가 손가락을 높이 들고 튕기자,
- '판타스틱 작곡가' Top10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찾을 때도 듣고 싶은 노래를 찾을 때도 보고 싶은 영상을 찾을 때도 이용하는 곳이 있죠?
바로 정보의 바다 '뉴튜브' 이곳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 더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얼빵한 얼굴로 참가자들이 사이먼을 바라보자,
"아직도 감을 못 잡은 눈치군요. 이번 미션은 '판타스틱 작곡가'에서 만든 곡 중 하나를 선택해 뮤직 비디오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다들 뮤직 비디오 컨셉을 생각하여 신중하게 초이스 하시길 바랍니다. "
'판타스틱 작곡가에서 만든 곡 중 하나라고?'
바로 의도를 파악한 석진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자 프레디 로드리게스가 한 차례 비웃으며 사회자에게 보란듯이 질문했다.
"반드시 '판타스틱 작곡가'에서 만든 곡이여야만 하는 거 맞지?"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코웰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저기 계신 미스터 김은 당장 작업실부터 뛰어가야 하겠군요."
-푸흡!
그러자 유일하게 석진의 작곡 속도를 알고있는 닉 미라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그래?"
"신경 꺼"
어린 아이의 이유없는 반항 정도로 생각해 다들 무시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사회자가 석진을 향해 한마디 더 추가했다.
"시간이 얼마 없어요~"
'미친놈인가?'
그런 사회자에게 시선도 주지않고 가운데 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아무튼 이번 평가 방식은 뮤직비디오를 뉴튜브에 업로드 하여 라이크를 많이 받는 사람으로 순위가 정해집니다."
설명이 끝나자 여전히 석진을 노려보고있던 로넨 루빈스타인이 손을 들고 물었다.
"이 중에 저 사람은 구독자가 500만명이나 된다는데 이게 형평성에 맞겠습니까?"
나름대로 석진이 신경쓰이기는 했던 모양인지 유일하게 구독자수를 정확하게 맞췄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그러자 원망이 그득그득한 눈으로 삿대질 하는 로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오백명이 아니라..오백만 이라고? 농담이지?"
"이런 건 공평한 승부가 될 수 없잖아!"
"뭐라고 설명을 좀 해봐!"
"개인 뉴튜브에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판타스틱 작곡가'에서 제작진이 주는 채널을 사용해 익명으로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백만의 구독자가 있던 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야..."
"자 그럼 움직이십시오!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박수를 치는 사이먼의 말대로 모두가 서둘러 무대를 내려오는 사이 닉 미라가 다가와 물었다.
"곡 어떤 거 만들꺼야?"
"글쎄..? 작업실 보고 맞춰서 생각하려고"
별 생각없어 보이는 석진,
그런 석진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더니 자신의 노트북을 건네며,
"우리 작업실 안 쓴지 2주가 넘었어 출입도 금지 시켰고 안 봐도 뻔해 분명히 그들이 비열한 작전을 꾸몄을꺼야 문제가 생기면 이걸로 작업해"
"고..고맙다 하하"
'설마 그렇게까지 치졸하게 굴리가...'
그래도 방송인데 그런 주작이 있을리 없다는 생각은 5분 뒤 무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
'설마 점쟁인가?'
닉 미라의 예상대로 작업실은 카메라를 제외한 그 어떤 전자 장비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이크와 작업용 키보드 하나 뿐..
'이 새끼들이 진짜 적당히 좀 하지?'
"이 새끼들이 진짜 적당히 좀 하지!?"
남자친구와 싱크로 된 조우리가 석진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지..진정해 우리야"
"아이씨! 이런 꼴 보자고 여기 온 거야?"
누가 봐도 의도한 것이 분명한 제작진 횡포에 참았던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온 조우리,
"일단 작업은 혼자 해야 한다니까 끝나고 연락할게 잠깐 쉬고있어"
"알았어.."
여자친구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지금은 카메라가 찍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장단에 놀아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와우!! 대단해 여기 출연자들은 키보드 하나로 작업을 진행했나 보군? 남들은 뮤직비디오 고민할 때, 같은 시간에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라니 하하! 제작진들 참 대단해 그런데 노래는 대체 누가 불러주시나?"
- 똑똑똑
카메라를 두드리며 시청자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혼자서 모노드라마를 찍는다.
"아.. 제가 알아서 하라구요? 그럼요! 그럼요! 키보드 하나에 마이크 하나 이걸로 만들라면 해야죠~"
작업을 하는 중간 중간마다 편집 할 수 없게 비아냥대는 말투로 상황을 설명하는 석진이 어느새 MR을 뚝딱 만들어냈다.
"됐다. 참 쉽죠?"
작업실에 틀어박혀 아무리 빨라도 반나절은 못 나올 것 이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들어간지 1시간만에 밖으로 나왔다.
썩은 미소를 짓던 루빈스타인이 손을 흔들며 물었다.
"포기했나 브로? 그게 현명하지 차라리 못했습니다. 하고 깔끔하게 물러서라고! 하하하"
"다 했는데? 그리고 너 자꾸 친한 척 말 좀 걸지마 브로는 지랄"
곡 작업을 완료했다는 말에 놀랐지만 뒤에 들리는 한국 말 어감이 욕처럼 들려 순간 얼빵한 표정으로 루빈스타인이 물었다.
"지..왓? 저 새끼 뭐라는거야?"
무시한 채 지나가자 이번엔 사이먼 코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곡 작업을 완료 했으면 뮤직비디오 컨셉이나 좀 들어 볼까?"
"방금 끝냈는데 무슨 컨셉?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신경꺼요."
사이먼 코웰이 팔짱을 낀채 특유의 인상을 썼다.
그리고 프레디 로드리게스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알고 있나? 여기 프레디는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일했던 유능한 직원이지 뮤직비디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이 친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을 거야 하하"
'아 그러셔? 난 뮤직비디오 회사가 있는데'
그의 말대로 이번 미션은 세계적인 영화 제작사이자 뮤직비디오 제작사인 유니버설 픽처스 직원인 그에게 많은 참가자들이 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아무래도 작곡가가 직접 영상을 편집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심사 위원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의견 또한 대부분 이번 미션에서 그가 우승 할 것이라 장담하는 상황이었다.
"됐습니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시끄러운 이들을 멀리하고 진지하게 이번 뮤직비디오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뭘로 할까나...'
답답한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한국 Show Time 미디어에 연락을 넣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대표님! 잘하고 계십니까!"
"응원합니다. 대표님!"
미국에 넘어오고 나서 방금까지도 참가자와 심사 위원에게 무시 받았던 석진을 반기는 우렁찬 남자 둘의 응원이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큰 힘이 되었다.
"예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김진홍 감독님 홍운기 감독님 새벽부터 죄송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사실은.."
Show Time 미디어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쟈니브로맨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홍운기 감독이 자신있게 말했다.
"대표님이 컨셉만 정해주신다면 좋은 그림 뽑아보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다행이네.. 안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
통화를 마친 뒤 쟈니브로맨스 두 감독의 지시대로 개인 촬영을 하는 사이 한국에서도 새벽부터 분주하게 편집 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
"오늘! 진행되는 무대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실 무대는 바로 저 스크린에 있습니다!"
사회자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판타스틱 작곡가' 뉴튜브 전용 채널이 나오자 관객들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환호했다.
"여러분들은 어떤 뮤직비디오에 라이크를 누르셨나요? 당장 결과를 확인해 보고 싶지만 그들의 노력을 잠시 감상하도록 하시죠!"
스크린에는 닉 미라가 능숙하게 컴퓨터로 콘티를 만드는 장면을 시작으로 심사위원 중 한 명인 폴라 압둘이 다가가 친근하게 다가가 물었다.
"닉 어떤 노래로 만들지 결정했니?"
"아니요. 뮤직비디오에 맞춰서 노래를 편곡 할 생각입니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귀찮다는 듯 대답하는 닉 미라,
무례하다 느낀 모양인지 바로 표정을 굳히며,
"그건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야 편곡 할 시간이 어딨어?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옆에서 폴라 압둘에 핀잔이 짜증난 닉 미라는 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쉿! 알아서 할 테니까 다른 팀에게 가보시죠?"
혀를 끌끌 차는 심사위원을 보며 공감한다는 듯 관객들도 인상을 찌푸린다. 그저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아주는 사람은 석진 뿐이었다.
"좋지 않은데.."
그의 열정과는 다르게 뮤직비디오 분야에 지식이 전혀 없었던 닉 미라는 결국 예상대로 뉴튜브 좋아요 2만개를 끝이 났다.
"닉 고생 많았어요. 제 어드바이스를 들었더라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있었을텐데 그 부분은 고쳐야 할 점으로 보이는군요. "
답답한 마음으로 이어지는 참가자들의 뮤직비디오가 흘러 나왔지만 대부분 의미없는 돈 다발들과 쭉쭉빵빵한 여자들을 내세운 허세대회가 이어진다.
노래 가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전개 방식 지나치게 선정적인 컨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과도한 영상들 뿐이라 한숨만 나오는데,
'그래도 유니버셜 픽쳐스에서 일했다는 건 사실인가보네'
그나마 시선을 잡아 끄는 뮤직비디오가 있었으니 모두가 우승 후보라고 예상했던 프레디 로드리게스의 뮤직비디오였다. 어린 아이가 성장해 지금의 40대 프레디를 만들었다는 본인의 자서전을 컨셉으로 영상미 있게 아주 잘 작업 되어있었다.
"와우! 프레디! 자네가 해낼 줄 알았어! 다른 작곡가들도 당신의 감각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굉장히 좋은 뮤직비디오였어.!"
사이먼 코웰이 기립 박수를 치며 그를 칭찬하자 옆에 심사위원들도 동의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스크린에 나온 그의 점수표는 최하 점인 2만의 10배 20만의 라이크가 눌러져 있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네며 프레디에게 소감을 묻자
"고맙습니다. 이제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컨텐츠가 아닙니다. 곡 완성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과 저의 차이는 그런 점에서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참가자들을 가리키며 신이 난 프레디 로드리게스의 한번 시작된 자기 자랑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10분이 넘게 소감을 이어나가자 급기야 사회자가 마이크를 꺼버리는 사태까지 이르렀고 이어서 마지막 석진의 뮤직비디오 영상이 재생 되자 관객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저 동양 여자는? 아주 동양 뮤직비디오라고 티를 내는군 촌스러워!"
"어이 거기 시끄러워! 좀 닥치지?"
앞에서 대놓고 동양인 비하를 서슴지 않는 관객 뒤에서 근육질에 백인 남성이 한 소리하자 앞에 있던 두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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