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JTP의 실세라고 불리는 최씨 남매,
박준택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데뷔한 소속 가수들 중에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정도로 사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지고있는 둘이 모였다.
"나참.. 어이가 없어가지고.."
"왜그래? 누가 또 우리 누나 심기를 건드렸대?"
JTP사옥에서도 가장 큰 연습실, 사방이 방금 청소한 듯 깨끗한 거울 사이에 땀범벅이 되어 쓰러져있는 최한결 안무팀장 옆으로 심술 가득한 얼굴의 최아현이 다가왔다.
"나보고 이번에 합격한 연습생 뒤치닥거리나 하라신다. 대표님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거 아니냐?"
"무슨 대표님 욕을 사내에서 당당하게 하고그래? 나까지 짤릴라.."
익살스럽게 웃어넘기려는 최한결 팀장이 못마땅했지만 사실 최아현 프로듀서가 자신의 동생을 찾아온 목적은 따로 있었다.
"뭐래, 그보다 너 얼마전에 안무 점수 A준 지석진인가 김석진인가 걔 어떠냐?"
"어떠냐니..? 잘 춰"
"그게 다야?"
"응,"
자신의 동생이지만 징그러울정도로 자신과 닮은 성격에 오히려 진절머리가 날것같은 최아현은 그대로 돌아섰다.
"가게?"
"가야지 그럼 레슨도 남았어"
"크큭 우리 누나 선생님 다됐네~"
"장난칠 기분 아니다."
평소처럼 적당히 찡찡대다가 갈 줄로 알았던 최한결은 간만에 진심으로 짜증이 나보이는 최아현이 의아했다. 그것도 본인이 집에서 오디션때 극찬을 했던 석진에 대해 불만을 가지니 더욱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뭐 때문인데?"
웃음기를 거두고 묻는 최한결,
"작곡레슨 그 녀석도 이제 같이 해주랜다."
"고작 그거 때문에 그래?"
"하아.. 그거 때문이면 내가 이렇게까지 빡치겠냐? 지하 작업실 그거 걔 준대잖아!"
지금은 지하 작업실을 창고로 사용 하고있지만, 최아현에게는 특별한 장소나 다름없기에 최한결이 물었다.
"왜 엄한 곳에 짜증을 내려고해? 좀 쓰면 어때? 이미 지난 일인데"
"뭐가 다 지난 일이야? 아직 내 기억속에선 선명하게 그날이 기억나는데!"
최아현과 최한결이 듀오로 데뷔하기 위해 사용했던 연습실임과 동시에 둘의 꿈이 좌절되었던 아픈 장소이기도 했던 곳,
그렇기에 JTP에서 새로운 진로를 결정했을때 둘은 의식적으로 지하에 가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
"누나 공과사는 분명하게 하자, 석진이는 누나의 트라우마랑은 전혀 상관없는 애야,"
"알게뭐야? 아직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개인 작업실을 달라고 하는 것부터 나사 빠진거 아냐? 흥!"
데뷔에 꿈이 좌절되는 일은 기획사에서는 너무도 흔한 일이다. 주변에 그렇게 사라지는 동기들을 많이 봐왔었고, 그 중 하나가 되어버린 남매도 있다.
그 아픔은 세월이 지났다고 해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
'에휴.. 조만간 대표님한테 또 혼나겠구만 쯧쯧..'
최한결은 안타까운 눈으로 누이를 지켜봤지만, 석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질 않았다.
'근데 그거 보통 아닐텐데..'
***
최아현 프로듀서가 나간 뒤 석진은 테이블 위에 올려둔 A4용지를 읽고있었다.
길게 써있었지만, 요약하면 작곡에 대한 어드바이스 그 외 R&B,발라드,락 총 3가지 장르로 만들라는 뜻 이였다.
"발라드 제외하고는 JTP와 색깔이 안 맞는데..,"
뭐가됐건, 대표의 말대로 실력행사는 필수불가결로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소이를 비롯해 최아현 PD에게 받는 대접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이 될것이다. 내키진 않았지만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음.. 우선 KOD형들 노래부터 시작해 볼까?'
"'푸른밤으로'가 좋겠군"
원래는 '청춘만화'의 인기 작품에 박준택 대표이사가 직접 프로듀싱 한 KOD의 노래였다.
키보드를 먼저 깔아주고 그 뒤에 따라오는 잔잔한 멜로디를 그려내며 작곡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창밖에서 몰래 지켜보는 두명의 있었다.
한 명은 창문에 붙어서 눈썹 위로 두손을 올리고 자세히 관찰하는 박준택대표,
또 한 명은 벽과 귀가 한 몸이 되어 버린 더걸스의 소이이였다.
'작곡 속도가...역시! 이럴줄 알았어! 이럴줄 알았다고! 잰 대박이야! 저 녀석이라면.. 내 미국 진출은 꿈이 아닐지도 몰라!'
만족하는 박준택과
'뭐야? 재는? 작곡이 처음아니였어?'
초조해하는 소이, 둘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석진은 앉은 자리에서 30분만에 한 곡이 뚝딱 만들어내었다.
'가이드 보컬도 미리 해버릴까?'
생각과 동시에 녹음실로 향했고, 갑자기 시야에서 석진이 사라지자 박준택대표가 소이처럼 벽에 귀를 대고 경청모드로 변신했다.
-눈물을 닦아요 울지는 말아요
부드러운 톤으로 시작해 KOD멤버 각자의 파트를 떠올리며 차분하게 모창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돌아서는 거예요
평소의 스타일과는 다르게 차분한 쮸니형의 랩을 지나
-고마웠어요 내 곁을 지켜줘서..
잔잔한 멜로디가 부르는 사람 역시 힐링 시켜준다.
-예쁘게 새겨둔 채 영원히간직한채살게요. 고마웠어요
녹음이 끝나자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노래가 가진 감정과 여운들로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던 소이가 작업실문을 박차고 물었다.
"너 뭐하는 애야? 어떻게 이게 가능해?"
'성격 참 한결같네 근데 언제 봤다고 계속 반말질이야?'
"너 몇살이야?"
원하는 대답이 들리지 않자 다시 성질을 낸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 너 뭐냐고!"
이 버릇없는 기지배가 얼굴 좀 반반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보다.
"싫어"
"뭐?"
"싫다고 너 나 알아?"
"내가 너 같은 애를 어떻게 알아!?"
"너 인성 문제 있어?"
소이과 설전이 점점 격해지자 박준택 대표도 작업실로 들어왔다.
"소이 너 자꾸 이런식으로 막돼먹게 굴면 더걸스에서 제명 시킨다고 분명히 저번에도 경고 했을텐데!!"
박준택의 말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소이은 눈물을 글썽이며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러던지 말던지 작곡에 방해를 주는 두 사람을 무시 한 채로 다시 앉아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석진이 너도...."
마찬가지로 훈계를 할 생각이 였지만, 박준택은 키보드 멜로디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도 작곡이 된다고? 근데 이 멜로디는'
JTP 최고의 솔로 가수 뷔의 빛을 피하는 방법이였고, 멜로디를 들은 박준택은 그 자리에서 턱을 괸 채로 멜로디에 맞춰 혼잣말로 나지막히 노래 불렀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바보 같은 나의 모습 환하게 비추는..
작업을 하다가 멈칫 놀란 석진은 자신도 모르게 건반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미..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멜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과를 하는 박준택보다 멜로디만 듣고 바로 가사를 만들어 내는 이 사람의 미친재능에 석진은 다시한번 더 놀랐다.
소이도 마찬가지였는지 셋다 빙구같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정막을 먼저 깨버린 건 석진이었다.
"그.. 작업 해야 하는데 뒤에 앉아 계시겠어요? 집중해야 해서요"
그 말에 방금 전 과열되었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둘은 조용히 쇼파에 앉아 석진의 작곡을 듣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30분 정도 지나자 뷔의 명곡 빛을 피하는 방법MR이 뚝딱 만들어졌다. 그리고 작곡을 마친 뒤 조심스럽게 박준택을 향해 물었다.
"대표님 아까 불러 주신 가사 이 곡에 넣어도 될까요?"
'정말 이냐'는 눈으로 놀란 박준택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근데 내가 부른 가사에 맞춰서 녹음 하게?"
"네 만들면서 대략적인 가이드 라인은 생각 해뒀어요."
'그게 돼?'
다시한번 놀란 박준택은 자신이 디렉팅을 보고싶다고 부탁했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바보 같은 나의 모습 환하게 비추는..
첫 시작을 자신이 불렀던 가사대로 원했던 느낌대로 부르자 박준택 얼굴에선 함박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그 관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소이는 경악했다.
'세상에 대표님이 디렉 할 때 웃는다고? 말도안돼!'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이거야!! 그래 이거라고!! 내가 원했던 이 멜로디에 가사는 딱 저랬단 말이야!!"
디렉팅 보는 것을 잊은 모양인지 소이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OH! 너무 깊이 박혀 뺄 수 없는 가시같이
뷔 특유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랩을 따라하며 노래의 클라이막스를 찍자 거의 실신 상태로 늘어진 박준택을 볼 수 있었다.
'저 양반은 아까부터 왜 저러는 거야?'
녹음실에서 보이는 박준택의 모습은 길거리 감자탕 집에 흐느적 거리고 있는 풍선인형 그 자체였다.
-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살고 싶어
노래를 마무리 하고 녹음실로 나오는 석진을 향해 손을 들었다.
-짝!
어지간히 녹음이 마음에 든 모양인지 하이파이브를 하고 난 뒤에도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질문폭포를 쏟아냈다.
"마음에 쏙 드는 노래가 나온 것 같다. 석진이는 정말 곡을 빨리 만드는구나? 거기다 내가 던진 주제에 가사도 바로 응용하고 두뇌회전이 정말 좋은거같아 IQ몇이니?"
신이 난 것은 알겠지만 저기 뒤에서 우물쭈물하는 소이가 보여서 대화에 영~ 집중이 안됐다.
"예 뭐.. 생각나는 대로 바로 내뱉다 보니..하하..."
시선이 자꾸 뒤에 있는 소이에게로 향하자 깜짝 놀란 그녀는 서둘러 작업실에서 도망 쳤다.
"니가 이해해 어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해서 아직 철이 덜 들었어 하나씩 가르치는 중이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줘"
"아...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JTP소속 가수들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만드는데 3시간정도 지났을 때즈음 사옥에 있는 가수들 하나 둘씩 작업실 앞으로 몰려와 중간중간 복도가 시끄러웠지만 그때마다 박준택 대표가 교통정리를 해주었다.
결국 오늘 하루 만든 곡은 6곡,
녹음까지 걸린시간을 합치면 6시간만에 만들었다.
사실 박준택이 옆에만 없었어도 작곡 작업 할 필요없이 녹음만 해서 금방 끝났겠지만, 어쨌든 1시간당 1곡을 만들어 버리니 결과만 놓고 봐도 대단했다.
거기다 각 곡들의 퀄리티 또한 최고라 인정 받았기에 최아현PD의 의견 따위 필요 없이 바로 지하 작업실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뜻밖에 박준택의 제안
"정말 제가 이방을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다른분들은요?"
방금 전 최아현의 행동을 보아 한 동안 엄청 갈굴것으로 예상했지만 다행히 박준택은 그녀와의 작업시간을 피해서 조정해주었다.
"아현이가 지금은 저래도 곧 인정하게 될거야, 그때까지 네가 조금만 더 참아줘"
"그..그래도.."
"걱정마 오늘 여기 와본 모두가 납득 할 꺼야 너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이 바닥은 실력이 깡패거든!"
가슴을 툭 치며 웃는 대표를 보니 더 이상 회사에서 눈치 볼 일은 없어 보여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미안하다 내가 집중 할 때는 시간감각이 둔해져서 잊고 있었어 차도 끊겼을텐데 오늘은 내 차 타고 같이 가자 집에 바래다 줄게"
시계바늘은 어느새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중학생인 석진을 너무 혹사 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직접 앞까지 운전해 주었다.
*
어제의 길었던 작업시간에도 JTP 식당을 향하는 석진의 걸음은 가벼울수 밖에 없었다.
[오늘 작곡한 곡들 우리 회사 소속 가수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러는데 이번 앨범 제작에 넣을까 생각중이거든?] - 박준택
[그래요? 어떤 곡을요?] - 김석진
[전부!] - 박준택
문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석진,
벌써부터 통잔잔고 두둑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학생! 잠깐 이리와봐~"
일전에 불고기 소스를 부어주시던 이모님께서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안녕하세요 이모님! 와!! 오늘은 묵사발이네요!?"
기뻐하는 석진에게 조용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반찬통에서 몰래 갈비를 꺼낸 이모님,
"쉿! 얼른 밥으로 덮어!"
"네엡!"
이모님이 어디서 마약 묻은 갈비를 가져오셨는지 어제보다 식욕이 폭발해서 식판을 한번 더 비우고서야 식욕을 통제할 수 있었다.
'조절 좀 해야겠다. 건강관리 해야지!'
더부룩한 배를 붙잡고 작업실 앞에 서니 팔짱을 낀 채로 서있는 반갑지 않은 얼굴과 마주해야 했다.
"야.. 잠깐 얘기좀..해"
작업실 앞에서 석진을 향해 쭈뼛쭈뼛 다가온 소이,
평소와 다르게 수줍게 말을 걸자 당황했다.
"무..뭔데"
손가락을 꼼지락 대면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뒤에 숨겨 둔 과자봉지를 주었다.
"이거 먹어"
석진의 시선을 피한채로 봉지를 건네는 이 꼬맹이가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말투로 보아하니 어제 대표에게 혼나 사과하러 온 것 같았다.
"그래, 고맙다. 그럼"
봉지를 받고 바로 작업실로 들어 가려는데,
-탁! 아악!!!
문이 닫히기 전 타이밍을 잘못 맞춰 뻗은 소이의 손이 문에 끼었다.
"야! 위험하잖아 괜찮아!? 뭐 왜 할 말있어?"
꽤 아픈 모양인지 한참을 낑낑대던 소이가 한숨 한번을 내쉬고는 석진에게 처음으로 정중히 물었다.
"작곡가님 우리 노래도 만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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