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스팅스 대표와의 식사를 마치고 저녁까지 느긋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야 콜럼버스 레코드사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야 너 일찍일찍 좀 다녀"
박준택이 초조한 얼굴로 다그쳤지만 코웃음만 흘리고선 해리슨에게로 다가갔다.
"얘기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런식으로 무례하게 제 비지니스를 망친다면 콜럼버스 레코드와는 인연 끊겠습니다."
할아버지뻘 되는 해리슨 대표에게 강경하게 경고했다.
"자네말이 맞네, 우리가 너무 성급했어 진심으로 사과 하고싶군"
올해로 60세가 넘은 노인에게 사과를 받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미국에서 이런 부당한 대우를 용인한다면 호구가 될 것이다.
"그럼 작업실로 가서 얘기 해볼까요?"
박준택이 따라 오려고 하자,
"형은 안돼 초대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아리아나 그란데의 대사를 그대로 되 돌려주자 풀 죽은 강아지처럼 어깨가 내려앉은 채로 터벅터벅 차로 가는 박준택,
'에휴.. 진짜 한번만 봐준다.'
"농담이야 빨리와"
어깨를 툭 치고 손짓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이 난 얼굴로 같이 작업실로 같이 이동했다.
"제 스타일로 해도 문제 없죠?"
작업실에 앉은 해리슨에게 동의를 구하자 고개를 끄덕였고 녹음실에 들어가 있는 머라이어 캐리를 향해 말했다.
"시작 전에 미리 말하도록 하죠 저는 마음에 들때까지 이 방안에서 작업을 할 생각입니다. 어리광은 받지 않겠습니다. 프로잖아요? 일합시다."
해리슨에게 단단히 혼이 난 그녀가 헛웃음 지으며 처음 들었던 'Drinkin'의 녹음을 시작했다.
-When you’re drinkin' the days away~~♪
네가 하루가 지나도록 술을 마셨을 때
"스탑 멋 부리지 마세요. 애드리브는 녹음 끝나고 추가로 오더 하겠습니다. 다시!"
-Remind me what it's like, oh↘
예전의 내가 어땠는지 다시 깨닫게 해줘
"스탑 제가 멋 부리지 말랬지 음치가 되라고 했습니까? 음정 똑바로 챙기세요 다시!"
그녀도 이 바닥에서 이미 S급 팝스타 이기에 석진의 디렉팅이 그저 트집잡기가 아니라는 것쯤은 스스로가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불만 없이 꿋꿋하게 녹음을 이어갔다.
-I'm always on your side
난 항상 너의 편이야
even if for a moment
한 순간 일지라도
'흠.. 확실히 이정도면 더 깐깐하게 굴 필요 없이도 완벽하겠어'
"오케이 좋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진행 된 녹음에 단 한번의 불만없이 환하게 웃으며 녹음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모습에 모두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안돼.. 저 기지배가 이럴리가 없는데...'
그녀를 오래 봐왔던 제이미조차 처음 보는 모습, 고작 곡 하나 때문만은 아니라는건 분명했다.
"무슨 꿍꿍이야?"
"신경 꺼! 내 비지니스니까,"
'재수없는 년'
그래도 자신보다 먼저 총대를 매주는 캐리에게 은근 고마움을 느끼는 제이미,
"자~ 그럼 잘 봤다. 다들 피곤할텐데 그만..."
"어이 거기 스톱!"
캐리처럼 녹음할 자신이 없었던 제이미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전력질주로 도망쳤다.
"저년 잡아!!!"
결국 붙잡힌 제이미는 캐리와 해리슨에게 둘러쌓여 녹음실로 끌려가 석진에게 엉망진창으로 털려버리고 말았다.
***
"오늘 리퍼블릭 레코드사에 파티가 있다고 하는데 같이 갈래? 간 김에 소개 시켜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어"
미국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항상 과로는 석진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았다.
"아..잠 좀 잡시다.. 미국에는 노동법도 없답니까?"
제이미 녹음까지 완료했던 석진이 호텔에 쓰러진지 고작 3시간만에 다시 연락하는 캐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안 오면 후회할텐데~ 오늘은 고생 안 시킬테니까 그냥 와서 파티나 즐겨~"
"혹시 마약 하거나 문란한 파티 그런거는 아니죠? 저 아직 청소년입니다."
해외 파티 그것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모인 파티라고 하니 영화로만 접해왔던 그렇고 그런(?) 파티로 착각한 석진,
"어머! 그런 취향이였어?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냥 사교 파티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알았어요 그럼, 대충 씻고 나갈게요."
지친 몸을 일으켜 로비로 나가니 꽃단장을 하고 나온 박준택과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리무진이 기다리고있었다.
"워우~ 이게 다 뭡니까?"
"뭐긴 전투 준비한거지~ 근데 넌 옷 꼬라지가 그게 뭐니!?"
권진용을 만나기 전 스타일이었던 흰티에 청바지를 입고나온 석진에게 핀잔을 준다.
"정장은 드라이 맡겨서 못 입는데 입을 옷이 어딨다고.."
"에휴.. 그럼 가는 길에 옷좀 사가자"
"꼭 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찌릿!
"알았어요. 할게할게"
박준택이 이렇게까지 신경쓰는 걸 보니 정말 단순한 사교파티는 아닌듯 보였다.
***
"헤이 잘 지냈어? 이번 앨범 잘 안 풀린다며?"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능글능글한 표정으로 캐리와 악수를 하며 물었지만 특유의 썩소로 되받아쳤다.
"아니 방금 녹음 마치고 왔어 지금까지 낸 앨범 중 단연 최고야!"
"오 작곡가 좋은 사람으로 골랐나 보군? 온김에 한 곡 어때?"
"얼마든지"
평소였다면 절대 수락하지 않았을 도발, 그러나 오늘의 캐리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한편 정장을 입고 도착한 파티장 분위기는 박준택의 예상과는 다르게 다들 격식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자유로운 패션들만 모여있었다.
"내가 뭐랬어! 에씨"
"아..아니 요즘 파티는 좀 바뀐거같은데.."
오히려 각 잡고 정장을 입고온 두 동양인만 촌스러워진 상황, 석진은 서둘러 차로 돌아가 흰티에 청바지로 갈아입고 있었다.
'하여튼 저 형을 믿은 내가 바보지'
-똑똑똑!
"뭐야? 으아악!! 뭐..냐고오!!"
차안에서 바지를 갈아입던 석진을 지켜보던 사람은 바로,
"초대 받은 사람만 올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어떻게 들어온 거야?"
어제 입구 컷 시켰던 아리아나 그란데였다.
"초...초대 받았으니까 왔겠지! 저리가! 너랑 말 싸움 하기 싫어"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녀를 보자 예전 JTP에서 처음 서로 으르렁 댔던 더걸스의 소이와 살짝 겹쳐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됐고, 누구한테 초대 받았냐고!"
"거참 집요하네 저기 저 아줌마.."
가리킨 방향에는 머라이어 캐리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사라져버렸다.
'어!? 어디간거여?'
"아줌마? 거짓말! 너 경비원한테 얘기 할테니까 딱 기다려!"
경고를 마친 그녀가 사설 경비원에게 손짓하자 금새 달려온 레슬링 선수급 가드 2명이 양팔을 붙잡았다.
"에이씨팔 그냥 호텔에서 잠이나 더 잘껄!!"
한국말로 쌍욕을 내뱉으며 쫓겨나는 석진 그때,
-When you’re drinkin' the days away
네가 하루가 지나도록 술을 마셨을 때
석진이 디렉봐주었던 'Drinkin'의 도입부가 흘러나왔다.
-피식!
그녀가 오늘 하루 동안 이 구간을 수 차례나 지적 받았던 일이 생각이 난 모양인지 가볍게 미소지었다.
'진짜 건방진 꼬맹이라니까'
그녀는 세계적인 팝스타이고 주변 작곡가들도 이미 그녀의 눈치를 보기 바빠 항상 만족스러운 녹음은 자신의 기량에 따라 달랐는데 이번 만큼은 온전히 신인의 자세로 돌아간 기분으로 노래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Remind me what it's like, oh
예전의 내가 어땠는지 다시 깨닫게 해줘
캐리의 음색이 파티장 전체를 감싸자, 가드들도 파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세상이 멈춘것처럼 고요해졌다.
-I'm always on your side
난 항상 너의 편이야
"와우 뭐야 이 노래는 지금까지 그녀가 불렀던 음색과 결이 달라!"
"너도 느꼈어? 이번에 아주 칼을 제대로 갈았어"
"앨범 작업에 트러블이 많다고 들었는데 다 헛소문이네"
주변의 웅성거리는 소리는 곧이어 그녀의 환상적인 목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 even if for a moment
한 순간 일지라도
"맙소사 천상의 목소리야"
"그 짧은 시간에 한 스탭 더 성장했군"
노래를 마치고 석진을 찾던 그녀가 경비원 2명에게 붙잡힌 상황을 보자 놀라 소리쳤다.
"당장 그를 놔주세요. 제게 은인 같은 사람입니다."
그녀가 경비원을 노려보자 모두의 시선이 석진에게로 집중되었다.
"뭐..뭐야 너 몰래 들어 온 거 아니였어?? 누구 초대 받고 왔냐고!!"
"거참 집요하네 저기 저 아줌마"
머라이어 캐리를 아줌마라 칭하는 석진을 잠시 보던 그녀가 머리를 감싸 안으며 절규했다.
"안돼에!!"
'우리 회사 이주은이랑 동갑이였지? 나중에 보자고 친구'
무대 위로 올라가자 머라이어 캐리는 석진을 극찬 하며 작곡한 노래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I’m trapped in a sleepless night
난 잠 못 드는 밤에 갇혀있어
Them other boys don't know how to act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모르죠.
파티에 어울리는 'Maybe'를 틀자 콜럼버스 레코드사에서 들었을때의 흥분이 파티장에도 전해졌는데 그 중 유독 관심을 보이는 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저스틴 팀버레이크였다.
본능적으로 본인의 곡이라는 듯 그의 시선은 석진을 뜨겁게 쳐다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이 나자 무대 위로 올라온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웃으며 주먹을 건넸다.
"아주 멋진 곡이야 혹시 여기서 당장 계약도 가능한가?"
"마음에 들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미국식 인사에 익숙치 않아 쑥스럽게 주먹을 마주치며 가볍게 웃음 지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는 다재다능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이돌 엔싱크출신의 만능 엔터테이너이며 2000년대에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가수로서 배우로서 모두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손짓 하자 뒤에서 대기 하고있던 매니저가 달려와 얘기했다.
"계약 조건만 제시해 주시면 1시간 이내로 가능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가 석진에게 술을 제안했으나,
"미안하지만 아직 학생이라서 술은 못 먹습니다."
순간 저스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동양인이 어리게 생겼다는 건 알았지만 진짜 어릴 줄이야.... 너는 어떻게 그런 나이에 이런 명곡들을 작곡 할 수 있는 거야!?"
다소 목소리 톤이 올라간 그가 어깨를 붙잡고 물었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씨익 웃어넘겼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보다못한 박준택이 뛰어와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이며 가수입니다. 그의 나이가 어릴지라도 번듯한 기획사의 대표이기에 작곡 경험과 실력에 대해서는 의심에 여지가 없습니다."
박준택의 말을 들은 그가 흥미롭게 고개를 끄덕인다.
"가수도 했었다는 말이지? 실례가 안된다면 한 곡 불러 줄 수 있겠나?"
갑작스러운 노래 요청에 난감해 하는데 박준택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모양으로 '저스트 뚜잇'을 외치고 있어기에 하는 수 없이 마이크를 잡았다.
"좋습니다. 대신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죠 하하.."
피아노 건반을 향해 다가가 자리에 앉고 깊은 심호흡 한번 내뱉으며 차분하게 시작했다.
-하얗게 피어난 어른 꽃 하나가..
잔잔한 피아노 소리에 한국어 가사로 시작을 하니 모두가 그저 곡의 멜로디만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잔잔한 멜로디가 고조되어감을 느끼던 찰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한국이라는 변방의 나라 출신으로 만만한 가수라 여겨지는 것은 사양이기에 그 어느때보다 최선을 다해 불렀다.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아!!워우워어어어!!
"대단해.. 한국 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단 말인가?"
"한국어를 배워서 가사의 의미도 알고싶어"
"그러게 저렇게 애절하게 부르는데 뜻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거같아"
노래가 끝이 나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허탈한듯 웃으며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Fucking Genius(빌어먹을 천재 같으니라고)"
***
간만에 아이를 잊고 함께 떠난 정동진 해돋이를 보며 진현모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수아씨"
"네 현모씨"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제게 수아씨는 제 등 뒤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요. 항상 절 따듯하게 감싸주고 하루를 시작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부족한 제가 감히 수아씨를 욕심 내보려고 합니다. 제 마음 받아 주시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용기낸 그를보며 볼에서 기쁨의 눈물이 떨어졌다.
"좋아요! 저도 현모씨에게 부족한 여자겠지만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프로포즈를 받자 주변에 해돋이를 구경 온 연인들 그 중 여자들이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자신의 남자친구의 허리를 찌렀다.
"나도 화려한거 바라지 않아 저렇게 진심을 담아서 해 달란 말이야"
난감해 하는 주변 남자친구들이 원망의 눈빛으로 진현모를 바라봤지만 지금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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