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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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꺼내 깊게 들이마신 진현모 이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나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거든, 그렇다고 내가 수애씨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말이야.
지금도 현실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혼인관이라고 생각해,
내게 있어 결혼도 인생을 건 하나의 비지니스니까,'
담배를 끄고 의자에서 일어난 진현모 이사가 혼란스러워 하는 강민창 옆에 앉아 마지막 말을 남겼다.
'결혼 그거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마,
어떤 대단한 각오로 임해야 하는 각서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질서라고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거야'
진현모 이사의 조언을 받았을 때 고독한 줄 모르고 지냈던 지난 날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삶이 겹쳐지면서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행복들에 감사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만 준비되면 할수 있는 일이었는데,
세상에 이런 배부른 고민이 어딨다고..평생을 살아도 이런 행운 오지 않을꺼야'
일찍 찾아온 인연,
때로는 너무 큰 행복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할때가 있다. 그래서 더욱 그 소중함이 무뎌지는 사람도 많다.
'나도 이 관계가 소중해'
다행히도 민창은 옳을 길을 선택할 줄 아는 놈이었다.
***
지하에서 작업하던 석진이 올라오자 상수커플이 호들갑을 떨며 쇼파에서 뛰쳐나왔다.
"뭐야 집에 있었어? 빨리 이리와봐 빅 뉴스 떴다!"
"또 뭔데 나 오늘 피곤해"
"민창이 프로포즈 성공했대!! 대박 쩔지않냐?"
휴대폰을 꺼내 강민창이 선물한 반지를 보여주며 난리를 쳐댄다.
"결국 성공했나 보네? 잘됐네 그래서 민창이는?"
"지금 상견례 하고 있대"
"뭐?? 프로포즈 당일에 상견례를 한다고??"
"그 미친놈이 희연씨 집에서 했댄다 어머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야"
"어우... 그게.. 돼??"
'어우.. 난 절대 못해..'
조우리의 아버지인 조우진을 생각하니 몸서리를 치는 석진,
분명 또 대포집으로 끌고갈 것이 뻔히 보였다.
"이럴게 아니라... 그래!"
서둘러 휴대폰을 꺼낸 석진이 통화를 걸자, 의아하다는 듯 상수가 물었다.
"진 이사님한테는 왜?"
"그래도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결혼하는데 선물 하나는 챙겨야지"
"우리? 아니면 그 우리?"
조우리랑 사귀고 난 뒤로부터 이상하게 자꾸 밀어부치는 저 개드립,
썩은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발로 걷어차버렸다.
"아이 또 지랄이네 꺼져!!"
"(예? 대표님 저 말씀이십니까?)"
"아..아닙니다. 이사님 벌레가 들어와서.. 크흠.. 뭐 좀 부탁드리려구요."
"예 말씀하세요."
***
얼마지나지 않아 진현모 이사가 손에서 작은 애메랄드 빛 반지 두쌍을 가지고왔다.
"이건 무슨 보석인가요?"
"그란디디어라이트라는 보석입니다. 1캐럿 당 약 2291만원 하고 반지 하나에 4캐럿씩 들어있습니다. "
그란디디어라이트는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탐험가 알프레드 그란디디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기본적으로 청록색을 띠는 보석이지만, 원석의 경우 파란색, 녹색, 흰색 등 다양한 색을 가진다.
"좋네요. 수고하셨어요. 민창이와 희연씨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둘이 결혼 한다고 확신 하신 모양이군요."
"예 물론이죠 이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신 거 아니었어요?"
"하하..예 뭐 제게도 결혼에 대해서 묻더군요."
강민창이 프로포즈 했던 당일 연락해 반지제작을 부탁했는데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저.. 대표님 그리고 이거.."
다시 표정을 굳히는 그가 서류 하나를 내민다.
"EMI 뮤직 인수를 마치고 리퍼블릭 콜럼비아를 주축으로 6개 레이블이 각각 합류해 벌써 12곳이나 추가로 더 늘었습니다. 소닉 뮤직은 이미 앞질렀고 ,워너 뮤직 그룹과는 똑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니버설 그룹과 5곳 차이로 많이 좁혔습니다."
"예? 5곳 밖에 차이가 안나요? 최소 산하에 30곳 이상 있지 않았어요?"
보여준 서류 밑에 적혀진 현 유니버설 그룹란을 보니 35곳 중 19곳만 표시 되어있었고 그 중 5곳은 우리 쪽으로 합류했다.
"좋네요. 올해 나올 앨범들을 전부 유니버설을 제외한 레이블에 뿌리면 알아서 무너질 겁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 이후 여러 레이블이 파산 또는 이적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몸채가 컸던 만큼 그 충격도 상당했던 유니버설 뮤직 그룹도 이번만큼은 긴축을 하지 않을 수 없던 모양,
"그래도 얼마전에 만났던 해리슨이 루이스 걸겜 대표를 조심하라 그랬으니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죠"
"예 대표님"
***
[미국진출 반년 만에 이뤄낸 Show Time뮤직 그룹의 쾌거!EMI인수 후 1년도 안되는 사이 NO.2로 등극!]
[Show Time 소속 레이블들의 본격적인 뉴튜브 활동! 과연 한국의 커리큘럼 통할 것인가!?]
[세계 최고의 음반사의 추락! 유니버설 루이스 대표 왈 김석진 작곡가의 비열한 견제]
[대형 음반사의 사정과는 다르게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김석진 쟁탈전!]
[저작료만 계산해도 20대 최고 부자!?]
ㄴ 얘는 도대체 왜 한국에서 사는 거야? 미국 가서 왕 대접이나 받을 것이지
ㄴ 와.. 처음에 Show Time 레이블 만든다고 했을 때는 한국 언론 다 개 무시하더니 역시 결과만 알아주는 세상이구나..
ㄴ 근데 EMI 인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작곡빨로 성장하는 거 아니냐?
ㄴ 김석진이 미국에 판 곡이 벌써 100곡이 넘었음 잘하면 Show Time 쇼핑몰보다 저작권 더 받을 껄?
ㄴ 이제는 뉴튜브에서 세계적인 팝스타들 볼 수 있겠구나 개꿀이다 ㅎㅎ 저건 아주 칭찬해
ㄴ ㅋㅋㅋㅋㅋ 천하의 유니버설 대표가 왕따 시키니까 삐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근데 우리나라 20대 최고의 부자면 돈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ㄴ Show Time 쇼핑몰만 해도 연간 몇 천억은 거뜬할 껄?ㅋㅋㅋ
ㄴ 다 필요없고 곡 저작료만 받고 살아도 평생 먹고 살아 걱정하지마
ㄴ 빌보드 1위 한번만 찍어도 100억은 거뜬히 버는데 지금 반년 째 점령 중 아니신가? 빌보드 한 달간 1등 한 어느 작곡가가 150억 정도 벌었다고 하니 6개월이면 미국에서만 2천억 정도 될 껄?
TAN 방송국 회의실에서 오늘 올라온 기사들을 보여주는 김미영 팀장이 팀원들을 향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이시죠? 게다가 얼마전 '버스킹 in the 뉴욕'을 만든 김수애PD도 입봉작임에도 저렇게 대박을 터트렸잖아요.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아는 인맥 총 동원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김석진 대표좀 섭외 땡겨봅시다."
침울한 표정으로 빔 프로젝트를 올리는 김미영 팀장을 향해 김소연 인턴이 물었다.
"팀장님 혹시 섭외가 된다면 어떤 프로그램으로 넣으실 건가요??"
해맑게 묻는 인턴의 질문에 시선도 주지 않은채 서류를 정리하는 팀장이 대충 대답한다.
"글쎄.. 된다면 화성인 백신에 출연 시키면 재밌을 것 같은데?"
"화성인 백신이요...? "
'그 미친놈들의 집합소인 거기를??'
-우우웅~~
"여보세요?"
"어 일하고 있어? 점심시간 언제야?"
태연한 목소리로 묻는 이번 회의 주인공에게 반가운 미소로 대답한다.
"지금부터 먹으러 가려고 왜?"
"잘됐다 나와 지금 로비야."
"오빠 지금 상암동이야??"
"어"
"알았어 나갈게"
뜻밖에 손님에 서둘러 로비로 뛰쳐나가자,
"어! 쏘연~ 여기여기! 오.. 사원증 멋진데? 잘 어울린다?"
순간 김미영 팀장을 비롯한 지나가던 팀원들의 시선을 한번에 받게 되었다.
"점심시간 끝나기전에 얼른 다녀오자"
"어? 어어.. 잠시만 팀장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막내 인턴이 떠나가려고하자 당황한 김팀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무..무슨 사이야?"
"아.. 제 사촌 오빠요."
살짝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들어보이는 눈치,
타이밍 좋게 석진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소연이 팀장님이셨구나 안녕하세요. 소연이 오빠입니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아..네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고개만 끄덕이던 김팀장을 뒤로하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이동했다.
상암동 한적한 규카츠집으로 이동해 작은 화로 앞에 앉은 김소연이 물었다.
"회사까지는 무슨 일로 왔어?"
"너 보러 왔는데?"
"왜?"
"그냥 너 입사했다고 들어서~ 회사 생활은 할만해?"
18년 전 큰 아버지의 양녀가 된 김소연,
어릴적부터 석진을 친 오빠처럼 따라다니며 한때는 연예인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큰 아버지의 췌장암 판정 이후 병 간호에 집중하던 그녀가 기특하게도 취업에 성공했다.
"뭘 새삼스럽게, 회사 생활이 그냥 다 거기서 거기지~"
"어쭈! 다 컸는데?"
"크흠.. 오빠 그럼 온 김에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왼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으로 보아 오랜만에 발칙한 장난을 치려는 것을 직감한 석진,
"들어보고~"
"아 진짜 어차피 앨범활동도 끝났잖아 좀 도와주라!"
"크큭 알았다. 알았어~ 뭔데?"
"일단은.... 먹자!"
희희덕거리며 식사를 마치고 나니 소연이 먼저 뛰쳐나가 계산대 앞에 섰다.
"18,000원입니다. 두분 다 결제 해드릴까요?"
"예!"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이러시나?'
"뭐야 내가 산다니까?"
"흐흐~ 이제 빼도박도 못해~ 알겠지?"
"에휴~"
음식점을 나오고 다시 TAN사옥으로 걸어가던 중 아까 봤던 김미영 팀장과 마주쳤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소연씨도 잘 먹었고?"
"옙! 팀장님"
부담스럽게 친절한 목소리로 다가와 인턴을 향해 무언의 압박을 하는 김 팀장,
"그래서 아까 말한 부탁이 먼데?"
"그게....."
아무리 친한 오빠라지만 막상 부탁하려니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는 여동생,
그 사이 잽싸게 김미영 팀장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혹시 스케줄 언제가 편하세요? 대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어느 날짜건 스케줄 조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프로그램 중에서 선택해 주시면 되십니다."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가 목표를 포착해 달려 들듯, 한번의 막힘없이 줄줄이 계획서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 모습이 썩 달갑지는 않았지만 여동생의 상사이니 최대한 표정관리에 힘썼다.
"이거야?"
"(끄덕끄덕)"
'에휴.... 고생이 많다.'
"그러면 내일까지 결정해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그리고 저.. 소연이 좀 잠시 빌려가도 될까요?"
"예예~ 소연씨 오늘 그냥 퇴근해도 되니까 대표님과 얘기 잘 나누고 내일 보자고!"
"예? 예에.."
입사 하고 이렇게 쿨한 팀장은 처음 봤던터라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는 동생의 손을 잡고 뒤 돌아 걸어갔다.
"그렇게 쉽게 출연 결정 해도 되는 거야?"
"뭐 고정 하라는 것도 아니고 1회분량 출연정도는 문제없어~"
"오~ 역시 능력자~ 근데 지금 어디가는 거야?"
"좋은 데 데려가니까 걱정말고 이 오빠만 믿고 따라와라~"
"오올~~ 나 정말 기대한다?"
해맑은 미소로 웃어대는 여동생,
"근데 너 운전면허는 있냐?"
뜬금없는 면허 타령 의아한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는데..?"
"오케이~ 알았으~"
깨름칙하게 웃으며 차에 태운 석진이 향한 곳은 바로,
강서운전면허학원 앞이었다.
"그..그런데 나 차 없는데 면허를 왜...?"
"이번에 오빠가 한대 사주려고, 면허만 따라."
"에이 됐어, 차는 무슨 내가 알아서 할게"
"잉? 나 출연 안한다?"
그 동안 미국에서 큰 아버지 간병하느라 친 여동생이나 다름없는 소연이를 너무 늦게 챙겼다. 한국에 들어온 지도 이미 반년이 넘었다는 큰 아버지에 말을 듣고 그 동안 여동생에게 너무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알았오... 대신에 비싼거 절대금지야! 알겠지?"
"비싼 건 모르겠고, 안전한 걸로 사줄테니까 면허 시험이나 잘 봐~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허! 이거 왜이래? 나 오빠 동생이거든?"
털털하게 웃으며 학원등록을 마친 소연이 본격적인 필기 공부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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