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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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입은 브라운 양복의 노신사,
그에 어울리는 깔끔한 백발 헤어 이대로 당장 밀라노 패션쇼에 나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큼 멋진 해리슨이 씨익 웃는다.
"잘 지냈는가?"
"어떻게 알고 오신거에요?"
당황하는 성소경 대신 악수를 건네는 석진,
"미스 한이 알려주더군, 그나저나 저 친구 진짜 가수해볼 생각없는지 좀 물어봐주지 않겠나?"
"그럴필요없습니다. 전 이미 한국의 Show time 소속 가수거든요~"
망설이던것도 잠시, 유창한 언어로 치고 들어오는 성소경,
석진은 곧장 해리슨을 소개했다.
"이쪽은 콜롬비아 레코드 대표 해리슨입니다. 미국 Show time 진출에 혁혁한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할 수 있죠"
콜롬비아 레코드라는 말을 듣는 순간,
김수애PD가 입을 틀어막았다.
'이건 기회야..!'
솔직히 버스킹만으로는 예능적 요소를 모두 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사람들의 감탄과 찬사를 쓰는 것도 한 두번이지, 원래 콘티대로라면 버스킹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겸사겸사 뉴욕 맛집 탐방 정도로 떼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건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드는 기성 요리가 될뿐,
자신만의 색깔을 넣는 메인디쉬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게 그녀의 딜레마였다.
"촬영하시는데 방해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아..아닙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미스터 해리슨"
-짝짝!
"자자 저희 버스킹 마무리 곡 하나만 더 하고 이야기들 나누시죠,"
잠깐의 사담 중에도 관객들은 하나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자,
애써 모은 관중들을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해리슨이 두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자 마이크를 잡은 석진,
"잠깐! 석진씨"
"예?"
"혹시 한국 노래로 가능하실까요??"
'뉴욕에서..?'
잠깐 어리둥절하는 석진, 하지만 이미 청중들은 우리 셋의 보컬을 어느정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만난 남자 얘기 오늘만 해도 벌써 몇번째니
그에게 전화가 또 왔었다며 조금은 얼굴을 붉히는 너
집에 돌아오는 길은 포근한 달빛마저 슬퍼 보여
마음이 아파 나를 위로해줄 니가 있다면
석진하면 떠오르는 음악적 장르는 누가 뭐라해도 락이다. 그런 그가 낯선 나라에서 부르는 첫 곡이 발라드, 그것도 성소경 앞에서 '좋을텐데요'를 부른다.
나름대로 발칙한 선곡이었다. 그리고 개구장이같은 얼굴을 미리 읽었던 조우리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좋을텐데 너의 손 꼭 잡고 그냥 이 길을 걸었으면
내게 너뿐인걸 니가 알았으면 좋을텐데
'역시 소경이형 음악은... 크으..!'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청중들은 어느새 달콤한 두 커플의 멜로디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역시 음악은 전세계 공용어라는 걸 증명해내다!』
ㄴ김석진 발라드도 나쁘지 않은데..?
ㄴ뭔 소리야 원래 발라드로 데뷔한 애한테 ㅋㅋㅋㅋㅋ
ㄴ아~ 저게 얼마짜리 공연이야..ㅠㅠ
ㄴ성소경 표정봐 ㅋㅋㅋㅋㅋ
ㄴ노래까지 뺏겼어 ㅠㅠ 니들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냐!!
성소경의 허망한 표정을 끝으로 '버스킹 in the 뉴욕' 첫 화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버스킹 무대가 끝난 타임스퀘어에 차기 디바로 손꼽히는 아리아나 그란데가 절규했다.
"아니 공연 중이라면서!!!"
***
첫째날 버스킹 공연이 끝나고 제작진이 인터넷으로 찾아본 식당앞에 도착했다.
[CLOSE]
"아.. 문 닫았는데요..?"
"자..잠깐만요. 제가 바로 검색을..."
"크흠..! 이러지들 마시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제가 자주가는 괜찮은 바가 있는 데
어떠십니까?"
-좋아요~!!
술 이야기에 눈을 빛내는 사람들,
여전히 석진은 시큰둥 했다.
'아..배고픈데..'
그래도 뉴옥 중심지라 그런지,
바로 밑에 층에 식사도 가능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하루종일 빈 속이었던지라 바에 가기 전 먼저 배부터 채워야했기에 셋은 바에 가기전 먼저 레스토랑에 방문했다.
"이 콘브레드..너무 맛있다..!!"
버터를 적당하게 바른 콘 브레드의 식감만으로도 충분히 이 식당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좋아.. 오늘은 여기다!'
"이 식당 느낌이 좋아요. 전 프라이드 치킨 먼저!"
"그럼 전 안심 스테이크로요~"
"난 치즈 버거에 맥주할게"
각자 취향에 따라 간단한 저녁을 마친 뒤 해리슨이 말한 바에 올라갔다.
"여기 분위기 정말 좋네요."
"그러게 난 이렇게 조용한 바가 좋더라"
조우리와 성소경도 만족할만큼 사방이 시끄러웠던 뉴욕 소음들이 전부 차단된 차분한 바였다.
"석진이는 잠깐 저 할아버지랑 이야기 하고 온다니까 우리끼리 마시자고"
"예 그래용~"
제작진과 떨어진 프라이빗한 룸에 들어간 석진과 해리슨,
"술은 이제 좀 하는가?"
"예 지난 번 못했던 한잔을 이제서야 할 수 있게 됐네요."
고개를 끄덕이는 해리슨이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한비서에게 듣기로는 군대도 다녀왔다며?"
"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니까요."
"그렇지 않다던데..?"
"예? 그게 무슨...."
"자네는 안가도 되는데 왜 가냐고 전에 한비서가 난리를 쳤거든~"
'쓸데없는 소리를..'
미국 출장 왔을때 해리슨과 많이 친해진 한예슬 비서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큰 아버지 면제 사건이 떠올랐다.
"예.. 뭐.."
떨떠름한 얼굴을 짓는 석진을 보자,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해리슨,
"자네 혹시 미국에 살 생각은 없나?"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그게 참....."
난감하다는 듯 스카치 위스키를 입에 털어넣는다.
"루이스 걸겜 그 친구가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야."
유니버셜 뮤직 그룹의 대표이자 EMI인수 건을 놓고 가장 치열하게 Show time과 맞붙었던 '루이스 걸겜' 대표,
"쓸데없는 짓이요?"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EMI인수를 빼앗기고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인물이 아니란 말이지, 듣기로는 Show time을 포함한 다른 소속 레이블 아티스트들과도 자주 접촉한다더군"
"스포츠 선수도 아니고 템퍼링(Tempering)을 하겠다는 거에요?"
눈을 질끈 감는 해리슨,
"글쎄,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도 꾸밀수도 있겠지."
이제야 해리슨이 왜 직접 버스킹하는 장소까지 바로 달려왔는지 알수있었다.
"알겠어요. 조심할테니 해리슨도 너무 깊게 관여하지는 말아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깊어져 갈때즈음,
조용하던 바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캐리..?"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있는 세계적인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의 등장이었다.
"이...이게 뉴옥인건가?"
얼이 나가있는 김수애 PD,
'대박....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어!'
예능이 히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화재성〕만큼은 확실하게 잡았다.
"반가워요~ 미스터 김의 동료들인가요?"
"네~ 반갑습니다! Show time 소속 아티스트들입니다."
성소경이 젠틀하게 인사하는 와중에도 조우리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오늘 콘서트로 알고있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신거에요?"
"하이~ 당연히 우리 해리슨에게 들었지~"
설마 콘서트 공연을 끝나고 바로 올줄 몰랐던 해리슨이 머리를 긁적인다.
"일단 오셨으니 다같이 한잔 하시죠!"
"아~ 내일 공연만 아니면 같이 마셔주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 담겨있지만 같은 가수로써 이해하는 부분이었기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나중에 오셔도 되는데 굳이..."
"사실은...."
잠시 뜸들이던 그녀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
"흐아아암~~"
상쾌하게 기지개를 피는 석진이 트레이닝복을 주섬주섬 꺼내 입자,
어제 과음으로 정신이 혼탁한 성소경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디가게?"
"그냥 가볍게 주변 좀 뛰고올게요."
"아우..... 올때 해장할꺼 하나만 사와줘.."
어제 해리슨과의 길었던 술대결에서 패배한 성소경,
패잔병의 마지막 부탁처럼 거절하기 어려웠다.
"알겠어요 크큭 쉬고계셔요."
호텔방 문을 조용히 닫은 채 로비로 나오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조우리,
"소경오빠는?"
"주무셔, 어제 밤새 마셨는데 살아있는 것도 용하지"
"그 오빠는 마지막 날에 술마시겠다더니..."
"괜찮아 저 형은 저렇게 마셔도 라이브 지장 하나도 없는 사람이니까"
"하긴~"
피식 웃으며 팔짱을 낀 두 커플이 가볍게 몸을 풀고선 런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경보로 시작해서 조금씩 템포를 올리던 두 사람,
숨이 턱까지 차오를때즈음 조우리가 멈춰서고선 물었다.
"어제 그 제안 어떻게 생각해?"
"뭐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근데 프로그램 취지랑 맞을지...."
"나도 그게 조금 걸리네.... 촬영 스케줄상으로는 오늘은 원래 브로드웨이 일정이기는 한데.. 김PD님이 과연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
조깅을 마친 뒤 한인타운에서 북엇국을 포장해온 두 사람 덕분에 해장이라도 할 수 있게 된 제작진과 성소경,
"으..... 살겠다."
"고마워요.. 뉴욕 한 가운데서 북엇국을 먹게 될 줄이야.."
"역시 해장에는 북엇국이 최고네요~"
다음 날 촬영해야함에도 해장이 잘되네마네로 철없이 웃고 떠드는 저 양반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석진이 본론을 꺼냈다.
"오늘 촬영 어떻게 하실꺼에요?"
"아...촬영..."
'역시..'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김수애PD의 대책없는 모습에 울컥해버렸다.
"PD님 이런 말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여기 놀러오신 거 아니잖아요. 어제 머라이어 캐리 공연에 초대 받았으면 촬영 동선이라던지 촬영지 답사라던지 뭐든 하나는 하셔야죠!"
"아...네... 그렇네요. 근데 저희 브로드웨이 섭외했는데.."
"그럼 오늘 일정대로 브로드웨이 갈겁니까?"
본인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변명이라는 걸 아는 모양인지 고개를 들지 못한다.
"조식중에 체할것 같은 소리드려서 죄송하지만 다음 촬영부터 또 이런 모습 보이시면 저도 이 프로그램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것 같네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도 할말을 꼭 하는 석진,
김수애PD도 자신의 헤이했던 모습을 반성하려는 모양인지 이틀차 출연자에게 혼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방영해버렸다.
ㄴ아...진짜 PD암 걸린다.
ㄴ오죽 답답했으면 저런 소리까지하게 만드냐..
ㄴ첫날 식당 실수할때부터 알아봤다..ㅉㅉ
ㄴ성소경은 입꾹닫고 국만 먹네ㅋㅋㅋㅋ
ㄴ본인도 민망하다 이거지 ㅋㅋㅋㅋ
ㄴ그래도 편집할 수 있었을텐데 가장 민망한건 PD본인일듯,
ㄴ그럼 다음 버스킹 장소는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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