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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비련의 시나리오 온라인:Slow fan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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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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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1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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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소란의 끝

DUMMY

그 이후로는 ‘대륙급’이 되는데, 여기에서의 ‘대륙’은 콘란드 대륙 내의 여러 지방 대륙들을 뜻했다. 중부 대륙 필리아의 전역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넘어, 타 지역에까지 퀘스트의 여파가 미친다면 그건 ‘대륙급’ 퀘스트였다.


대륙급보다 높은 퀘스트 단위는 곧, ‘메인 스토리’ 급 뿐이었고 말이다. 그건 콘란드의 역사와 운명을 결정짓는 스토리를 뜻한다. 가장 거대한 역사적 영향력이, 곧 ‘메인 스토리’와 동의어였다.


복면 따위로 얼굴을 감추고 있는 여러 인물들. 개중에선 이미 죽어 널브러진 작자들도 있었고. 쟈섹처럼 복면이 망가진 이들도 있었다.


호아킨과 제냐, 릿샤와 라이엔. 그리고 최태현까지는 아무도 다친 자가 없었다.


“블래스트Blast-!"


쟈섹이 나지막하게 외쳤다.


그리 멀리까지 닿지 않을 외침이었고. 그가 펼치고 있는 배리어 안에서 가장 많이 울렸을 것이다. 그러나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고, 시동어語는 곧 스킬의 스위치가 되어 현상을 창조해냈다.

어둔 밤. 빛무리가 그의 앞에 생겨났고, 곧 여러 개가 뭉쳐 있는 빛의 입자 덩어리가 허공을 난다.


라이엔을 향해서였다. 타겟을 정확하게 설정하지는 않았으나. ‘근처에 날아다니는 적대적’ 물체를 쫓도록 입력된 투사체였다.

‘적대적’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기준은 간단했다. 지금 암살조에 포함되어 있는 이들 중 근처에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의 MP는 쟈섹이 모두 수집한 바가 있었기에. 그들의 MP를 제외하고 초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무수히 작고 또 크기가 다른 광구들로 이루어진 투사체. 쟈섹이 블래스트라 부른 빛의 폭탄은, 빛살처럼 나는 매를 쫓는다.


투사체보다도 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같은 새와 그 위의 사람이었다. 쟈섹은 이만한 거리에서 스킬을 맞추지 못한다는 게 참 어이가 없었지만. 납득해야지 어쩌겠는가. 그는 최강의 인물과는 거리가 먼 자였다. 알사드 대공가에서 전술사단에 속해 있다는 건 분명 상위권의 초인이라는 뜻이기는 했지만. 그는 실력이 나름대로 있는만큼, 자신보다 위에 있는 이들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늘.


휘이이이.


쟈섹은 계속해서 허공을 날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바람결을 가르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왜인지,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 같았다. 고개를 문득 돌렸다.


밤하늘에, 날아오고 있는 화살 한 자루가 보였다. 그것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타는 듯한 불꽃에 감싸여 있던 탓이다.


밤하늘에 선명한 궤적을 흘리며 날아오고 있는, 미사일missile이나 다름없는 무엇이었다. 자체적인 추진력을 가진, 유도형의 로켓 미사일 말이다.


개멋진나 최가 쏘아보낸 백룡시였고, 스킬 페이지까지 찢어서 위력을 더한 특제였다.


쟈섹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불꽃이 그가 펼치고 있는 배리어를 강하게,


때린다.


콰아앙-!


아닌 밤중에 폭음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이제는 주민들이, 단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적인’ 두려움 때문에 내다보지 못할 정도의 소란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대공가에서도 바라는 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고요한 ‘암살’이 되었어야지.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마할 수 있는 정도의 소요에서 그쳤어야지.

이 이상 한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암살조를 이끄는 히베 류트 역시 그렇게 슬슬 생각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


캉!


지겨운 금속성이었다. 제냐는 생각한다.


"후우···."


히베, 가 마주 서 숨을 흘린다. 물론 제냐는 그의 이름을 모른다. 눈빛이 남다른 남자라고 느낄 뿐이다.


어두운 밤. 새벽.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도심. 액션의 시간이었다. 직접 서서 움직이고 있는 주연으로서 말하기 부끄러운 묘사였으나. 액션 무비처럼, 움직여서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순간이다.


제냐는 히베가 들숨을 마실 때, 짓쳐 들어간다.


가볍게 쥐고 있는 비스트 슬레이어를 흘리듯 내려벤다.


히베는 눈을 크게 뜨면서 두 자루 검으로 타당, 그 검신을 때렸다. 기형적으로 생긴 단검이었다. 상처가 난다면 곱게 죽기는 힘들 것 같은 말이다.


평범하지 않은 형상은 결국 무게 중심이나, 공기 저항을 없애는 일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한 번 휘두를 때 세밀한 차이가 난다고 한다면. 수 십, 수 백 번 이상을 후려치면서 전투을 이어갈 때 전체적으로 큰 차이가 만들어지고.


검의 무게 중심, 모양, 그런 것들은 전투에 있어서 얼마든지 생사를 가를 정도로 중요한 요소였다.

히베는 검극(검신의 끄트머리)부분에 무게가 많이 실리고, 바람의 저항 역시 썩 가볍게 갈라내지 못할 것 같은 단검을 가지고서.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이 그의 솜씨였고, 대단함이다.


조금 느슨하게 그립을 쥐고, 팔의 전체 궤적을 이용해서 흘리듯 떨어낸 비스트 슬레이어를 아주 토막을 낼 기세로 후려친다.


타다당, 하고 때리자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러나 오른손의 일격은 히베의 정신을 빼앗기 위함이었고. 결국 몸의 힘은 왼편에 들어가 있었다. 비스트 슬레이어는 그냥 방패 대용으로 계속 앞으로 밀어넣고, 1자로 세워서 전진한다.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가며.


그 사이에 왼발을 즈려밟으며 왼손을 깊이 찔러 들어갔다. 발톱 대거. 그야말로 발톱처럼 쓰이고 있는 물건이었다. 검붉은 기세가 검날에 어려있다.


휘이이이.


뒤에서,


암기 하나가 날아들었다. 제냐는 순간 생각했다. 멈춰야 하나.


암기에서 느껴지는 예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뒤통수에 눈이 달린 건 아니었지만. 전투 중에 기력술사들은 감지술을 기본적으로 운용한다. '전장'으로 분류되는 범위 내에서 초감각을 가지며, 사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굴게 되어 있다. 히베도 마찬가지이고.


그런 자들의 틈을 노리려면. 시야의 사각을 노리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공격을 해서. 호흡을 빼앗고 경직된 상태일 때 피할 수 없는 공격을 던지는 수 뿐이었다.

공교롭게 지금 제냐 역시 그러하다.


체.


제냐는 작게 속으로 혀를 차면서. 찔러 들어가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기력술이 쓰였다. 제냐의 MP가 허공에 흘렀고, 제냐의 몸 바깥에서 움직이던 그를 잡아챈다. 내부적으로도 운용이 되었다. 근육들은 급격하게 속도를 냈다가, 다시 급격하게 멈춘다.

급가속과 정거 사이에, 제냐의 몸이 상할 수도 있었다.


어떤 기계의 부품도 그렇게 마구잡이로 다루면 쉽게 상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있어서도 MP가 효력을 발휘한다. 자체적으로 내구성을 더해주면서, 뼈를 감싸는 살처럼. 보호구처럼 단단하게 감싸안고 강성을 부여하며 쉽게 상하지 않게끔 했다.


충격을 경감시키는 일이다.


어쨌든 제냐의 몸은 비현실적으로 멈췄고, 옆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했다. 이런 식으로 기력을 쓰는 건 사실 부자연스런 일이다. 최선의 방법은, '물질'인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서. 그 방향성에 맞추어 기력술로 보조를 더하는 방식이다.

기력의 흐름과 몸의 움직임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으면 에너지의 손실이 일어나니까. 그러나 급할 때라면. 고수급들은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갑자기 허공에서 제냐를 잡아채어, 그 옆으로 끌어 당기듯이. 제냐는 관성도 무시하고 순간 멈추었고. 오른쪽으로 측면 이동을 하며 빠졌다.


제냐의 뒤통수, 정확히는 뒷목 위쪽을 노리던 날카로운 비수가 허공을 갈랐다. 제냐가 빠졌고, 히베는 한 걸음 뒤에 몸을 빼고 있었다 원래. 아무도 맞추지 못한 검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챙-.


멀리서 흩어지는 듯한 금속성이 들렸다. 옆 건물의 어딘가 단단한 곳에 비검이 맞은 모양이다.


결국 모든 싸움이 그러하듯. 기력술사의 싸움 역시 손실 계산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체력, 물리력, 그리고 MP로 보여지는 기력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

순간순간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며, 상대의 호흡을 빼앗고 자신의 자원을 최대한 지키면서. '차이'를 극대화시켜 나가는 것이 전략이다.


장기적인 전략이 아니라, 초반에 차이를 확 벌려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좋겠지만. 적어도 눈 앞의 사내, 히베는 제냐가 한 번에 죽일 만한 자는 아니었다.


히베는 이를 악물었다.


단검, 비수는 멀리 동료로부터 날아든 것이다.


"크허헝."


망나니처럼, 늑대 괴물 하나가 울부짖고 있었다. 도심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깨어도 모자랄 흉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운 소리일수록, 사람들은 건물 바깥으로 목을 내밀지 않으리라. 자신들의 목숨이 무엇보다 소중하니까.

거기다가 대공령에는 예로부터 은연중에, 밤 길을 조심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가 퍼져 있는 상태였고.


대공이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서, 여러가지 흉계를 꾸미기 쉽도록 흘린 소문이었다. '게으른 대공'이라는 작자의 카리스마란 오묘한 것이어서. 그와 관계 없는 이들은 프린스 알사드를 우습게 보기도 하지만. 그 근처에 있는 자들한테는 가끔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제한된 권력과 그 외 갖가지 힘들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탓이었다. 자신의 범위라고 인식하고 있는 테두리 내의 인간들을 통제하는 쪽으로 말이다. 그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는 철저한 무관심 따위가 대공의 태도였고. 자신이 해야 하는 일마저도 하지 않는 게으른 대공에 대한 평가는. 대개 우스운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대공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대계에 관련이 없는 작자들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사회성이 전무한 것이리라. 대공은 어떤 숭고한 태도로 인해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상관도 의미도 없기에' 타인을 무시하는 인물이었다.


어차피 다 불질러버릴 땅이고, 그 위의 머저리들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히베는 그런 대공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슬 결정을 해야만 했다.


늑대 괴물, 늑대 원숭이라고 불리는 이족보행의 괴수는 달빛을 받으며 거대한 워 엑스를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에 정제된 기력의 칼날이 어려 있었고. 우습게도 괴물의 형상이었으나 엑스-마스터인 모양이었다.


고도로 단련된 무도 수행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였는데. 저런 괴물이-.


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날아온 저 괴물이, 원래는 인간의 형상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짧은 틈새 호아킨 본연의 모습이 보였고. 히베 역시 그 순간을 목격했다. 변신술사인 모양이었다.


놀라운 건, 마기아의 일종인 변신술사이면서 기력술사로서 고도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쪽에서 일가를 이루기도 어려운 법이었는데.


저 변신술사의 기술이 초상술사로서도 마스터 마기아의 위치에 달했다면. 더블 마스터인가. 히베는 속으로 짜증을 느꼈다.

문제 없으리라 생각하고 받았던 일이 사실 문제 투성이였다.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서도 암살 임무를 받는 머저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암살 대상과, 그 근처 네 명이 모두 마스터 급을 뛰어넘는 솜씨라고 한다면.


적어도 기사단 하나가 전부 와야 말이 되리라. 그도 아니면 단장 급부터 실력자 다섯이 모두 나서고, 그들이 상대를 잡아두고 있을 때 뒤를 노릴 솜씨 좋은 워 메이지 몇 명 정도.

지금의 암살조 구성으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당장 저들을 상대할 실력자가, 자신 외에는 게오르그 정도이다. 히베는 이게 불가능한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부짖는 늑대 원숭이 괴물은, 자신의 부하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놈의 도끼가 가진 검기에 속절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페이트가 가장 거대한 체격과 힘으로 맞서고 있는데. 그리 시간이 많아보이지 않았다.


개중에서 틈이 남는 놈이 금방, 제냐의 뒷목을 향해 암기 하나를 날려보았지만. 여유가 크게 남아서 한 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간신히 해 낸 일로 여겨졌지.


여기서 모두 죽일 것인가. 자신마저 죽을 것인가.


히베는 그런 결론을 원하지는 않았다.


대공이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살아서 다음을 보는 게 낫다.


···.


히베가 결단한 뒤에 뒤로 물러섰다.


휙,


하고.


제냐는 갑자기 거리를 벌리는 히베의 모습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뒤로 물러서서는 자신을 잡아둘 수가 없을 텐데. 포기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히베는 자신의 검은 천 옷 안쪽에 있는 아티팩트를 콱 움켜쥐었다. 가슴팍 즈음에 있는, 팬던트처럼 걸린 무언가였다. 옷 너머로도 쥐어진다. 손바닥에 딱 앙증맞게 들어오는 크기였고.


그는 상당한 MP를 쏟아내었다.


아티팩트에 내장되어 있는 여러 신호들 중에 한 개를 울리는 행위였다.


삐이이이-.


플레이어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희미한 소리가 그 근방에 길게 울렸다.


아티팩트가 특이한 파장의 MP를 주변으로 보냈다.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암살조 조장, 히베의 MP다.


아직 정신이 남아 있는. 죽지 않은 자들은 모두 그 제스쳐를 이해했다.


퇴각의 신호였다.


여러 명 중에서 가장 이해와 행동, 반응이 빨랐던 건. 계속해서 퇴각을 고대하고 있던 쟈섹이었다.


*


시간을 아주 약간,


앞으로 돌려서.


‘쟈섹 피르’는 눈을 찢어질듯 크게 떴다.


인지한 순간 불꽃이 그의 코 앞이었고,


순식간에 그의 배리어 위를 불꽃이 때렸다.


개멋진나 최가 쏘아낸 화살촉이 녹색의 배리어를 꿰뚫었고,


쟈섹은 비장의 아이템을 써야하는 때라고 생각을 했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목을 부여잡으며 MP를 주입했고, 간신히 자기의 배리어가 다 터진 뒤 화살이 심장을 꿰뚫기 전에.

미리 만들어두었던 아티팩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의 오른손목에 채워져 있던 거대한 금빛 팔찌가 산산조각이 났다. 1회용의 아티팩트였고. 쟈섹이 자신의 심혈을 기울이고 혼을 갈아넣어 만든 물건이었다.


수 개월에 걸쳐서 조금씩 집어넣었던 MP는 유실되지 않고 아티팩트 내부에 남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거대한 MP의 파동이 일었고, 그건 고스란히 쟈섹의 몸을 감싸안으며 배리어Barrier의 역할을 했다.


게오르그의 명령 때문에 써먹었던 펜던트에 뒤지지 않는 놈이었다. 펜던트까지는 동료들에게 알린 물건이었고. 팔찌는 자신만을 위해 쓰려고, 굳이 말하지 않은 비장의 무엇이다.


쟈섹이 만들어서 바깥으로 방출했던 외벽은 백룡시에 의해 박살이 났으나.

그 안에서 새롭게 생겨난 구형의 배리어는 백룡시의 폭발력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 즈음에, 라이엔은 자신을 따라다니던 블래스트에 암기를 날려, 공중에서 폭파시키고 있었고.


퍼엉, 하는 폭음이 들렸으나 쟈섹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백룡시가 만들어내는 폭발성이 그의 몸을 뒤흔들며 귓전을 울리고 있었으니까.


달밤의 지나친 요란함이었다.


속이 완벽하게 채워진 흰 빛의 구체였고. 마치 유동하는 물이나, 어떤 액체 따위에 들어 있는 것같던 상태의 쟈섹은 충격에 흔들리면서도, 기어코 살아남았다.


*


‘후퇴다.’


쟈섹은 얼얼한 정신머리에도, 완전히 의식을 놓지 않고 있다가. 암살조장 ‘히베’의 퇴각 명령을 바로 캐치했다.


그것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백룡시의 충격 때문에 비장의 아티팩트 하나를 다 썼고.


폭발의 잔향, 연기, 남아 있는 불길 따위가 그의 몸 근처에 여전히 있는 상태였다. 쟈섹을 감싸고 있는 흰 빛의 구체는 아직 다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구형의 형상에서, 여기저기가 터져나가 엉망이 된 꼴이었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내부의 사람은 멀쩡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쟈섹은 반고리관이 망가진 것같이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움직였다.


감지술을 펼쳐서, 오감이 아니라 MP로 인한 기감을 써 위치를 알았다.


자신이 있는 곳과, 주변의 방향을 좌표로서 인지하고. 대공가 쪽을 향해서, 박쥐의 날개를 운용했다.


라이엔은 적들이 퇴각하고 있다는 걸 썬더스의 위에서 알았지만, 굳이 쫓지는 않았다.


도망가고 있는 상대들은 힘이 남았고, 이대로 더 시간을 끌면서 천천히 잡아 죽이려고 했던 전략은 이미 그르쳤으니 말이다. 라이엔의 실력은, 지금처럼 여러 명의 고수급들을 완벽하게 압도하면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길드원들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녀는 살아남기 위한 이동기와, 공방일체의 전투 스타일을 완성했을 뿐이다. 간신히.


독기가 잔뜩 오른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압살하는 건 그녀가 가능한 영역은 아니었다.


초상술사들이 비틀거리면서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여기는 대공령, 알사드 가문의 영지이다. 거대한 땅이었고, 높은 성벽 내의 도시이다. 이 도시의 중심에 대공가의 저택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패전한 초상술사들의 무리는, 대공 저邸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건물에 발 딛고 있던, 히베를 비롯한 기력술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페이트는 살아남았다.


숀과 알렌은 죽었지만.


히베와 페이트, 그리고 두 명이 더 살아 퇴각을 했다.


제냐 역시 더 쫓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이를 더욱 몰아붙이다가, 되려 칼을 맞는 건 뻔한 클리셰다. 급할 건 없었다. 이미 충분히 전력적으로 손실을 줬고. 헌터즈 길드는 다음 날이나, 혹은 더 뒤의 다른 날을 대비하는 게 나으리라.


대공가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반면 헌터즈 길드는 어디로든 갈 수 있었고. 소수 정예의 장점이었다. 오늘의 싸움은 완벽히 길드가 승리했다.


‘적’이 대공이라는 게 확정적인 건 아니었으나. 오늘의 사태로 거진 확신을 하긴 했다. 제냐로서는.

그렇다면 대공, 프린스 알사드가 자신들의 전력을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또 알 수 없었다. 알사드 대공이 모든 암살 계획을 다 짜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 그 부하들 중에 누군가의 솜씨일 수도 있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적敵은 제냐 일행을 얕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였다.


적의 앞마당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상대를 격퇴했으니까.


오늘의 전투 상황에 대한 보고가 대공의 귀에 들어간다면. 이제까지완 다른 수준의 공격이 올 수 있었다.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 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 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마 분명 평범하거나 선한 일은 아닐 테였다.

거기에 스케일도 아마 아주 클 것이었고. 여태껏 본인의 ‘계략’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적이.


퀘스트 플레이어인 제냐 킴과, 그의 동료들에게 곧이 고정될 지도 몰랐다.

지금처럼 곁눈질로 보거나, 그저 자기의 일을 하다가 이따금씩 공격을 해왔던 것과 달리. 전력을 다해서 대응을 해올 지도.


퀘스트의 다음 국면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좋았다.


제냐는 왠지 그럴 것같은 예감이 들었고.


피곤할 정도로 소란스런 밤을 지내고 나서.


다시금 퀘스트 창window을 열어 로그를 확인해봤을 때 그 예감이 맞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julian-wallner-KHgSurk57V4-unsplas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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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261. 사절단의 여정 24.04.10 19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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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257. 납치 24.04.08 1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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