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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님의 서재입니다.

몽골 초원에 뜬 쌍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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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모
그림/삽화
가재모
작품등록일 :
2021.07.02 18:50
최근연재일 :
2022.10.3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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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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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황제의 귀비, 황후에 올랐던 고려 여인(바얀코토크 후비, 다마시리황후, 기황후)

제1편은 몽골과의 각별한 인연과 의료봉사로 맺어진 뜨거운 사랑이야기와 본격적인 다문화, 다민족 사회에서 몽골판 룻의 효도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또한 불세출의 영웅, 글로벌 마인드와 포용적 리더십을 실천한 칭기스칸과 후대 까지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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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회차/원 황제의 귀비, 황후에 올랐던 고려 여인(바얀코토크 후비, 다마시리황후, 기황후)


가재모


송재모의 휴대폰에 에티오피아에서 국제전화가 걸려와서 이야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국제통화가 끝나자 이야기는 최항으로 다시 이어졌다.


"아, 최항은 최우 사망 이틀 만에 상복을 벗어버리고 자기 아버지의 첩을 간통할 정도로 포악했다고 합니다. 최항의 강화도 천도는 몽골군의 1차 고려 침략시 입었던 막대한 피해와 막강한 제국 군대의 재침에 대한 두려움과 계속되는 민란을 피할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항은 1253-1254년에 일어난 몽고군의 침략시 강화도에서 자기 사병들을 자택 경비에 전념토록 하면서 호화스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무신정권 수장이 몽골 군데에 맞설 창, 칼, 화살과 방패와 강병을 육성책을 강구하고 전시에 선봉에 서야할 사람이 섬에서 죽 치고 있으면 되겠어요."




"그래서 본토 백성들은 고난과 빈곤에 시달리다보니 민심이 흉흉해지고 민심이반이 일어났겠지요. 또 최씨 정권은 항몽을 위한 군비 확장이 아니라 8만 대장경 판각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몽골 장군들은 국왕의 개경 환도를 주청할 지경이었다는 기록을 봤습니다."




“최항 다음에 최의였을 텐데요?”




”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집권자였지요. 최항이 승려로 있을 때 송서(宋壻)의 여종과 정을 통해 최의가 태어났답니다. 최항은 적자가 없어 최의를 후사로 삼고 시와 서예, 정치와 예절을 가르치게 하였지요. 최항이 죽자 최의는 교정별감이 되어 정방 정치를 인수했습니다. 초기에는 개인 자산을 왕부(王府)에 바쳤고 흉년에 창고를 풀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점차 약탈을 자행케 하였고 현량한 선비를 잘 대우하지 않고 측근들의 참소를 듣고 살육을 자행했답니다.“


“그래서 최의는 단명으로 끝났겠네요.”



“ 그렇습니다. 1258년 마침내 대사성 유경, 낭장 김인준 등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국정은 고종에게 돌려져서 최씨의 60년 정권이 막을 내렸지요.”




"그후에 원종은 원에 대한 외교를 어찌했습니까?"




“예, 1259년 고려 고종은 세자 왕식에게 화친 문서를 휴대시켜 몽골에 보냈지요. 지난번에도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 마침 몽골 제국의 뭉케칸이 급서해서 쿠빌라이칸과 아리크부카가 황제 자리를 놓고 암투중이었거든요. 왕식은 심사숙고 끝에 남송의 양양에 머물고 있는 쿠빌라이를 찾아가 패물을 들고 배알했답니다. 쿠빌라이는 이를 천우신조라고 판단하여 민심을 돌이켜 동생인 아리크부카 군을 제압해서 국호를 원으로 하고 세조로 황제에 올랐지요.”


“그러면 쿠빌라이칸은 당연히 고려에 대하여 유화책을 썼겠지요?”


“그렇지요. 쿠빌라이칸은 고려에 대하여 유화정책을 펴면서 몽골군 철수를 명했지요. 세자에서 왕위에 오른 원종은 1270년 쿠빌라이칸을 찾아가 사돈을 맞을 것을 간청했습니다. 피일차일하던 쿠빌리칸이 결국 총애하던 딸, 코톨록 카이비시 베키를 원종의 세자와 결혼을 승낙해서 부마국이 되었습니다.”


“아하 그러면 그 뒤에 원제국의 황실과 통혼해서 훈신, 세도가의 군주로 대우받은 고려 왕실은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공민왕 등 모두 5명이었네요.”


“예 그렀습니다. 원에서 고려왕실로 시집을 온 황족은 황녀 1명, 공주(왕의 딸이나 황제의 손녀) 7명, 평민 1명 등 총 9명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고려 상황은 지난번에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고려공녀 말고 몽골로 시집간 고려 여인의 부류는 첫째, 고려의 왕족과 고관대작의 문벌, 부호의 집안에서 특별히 첩지를 받들고 온 여인, 둘째 중매를 통해서 온 여인, 셋째 자원해서 온 여인의 세 부류가 있었다고 했지요.”


“ 그런데요, 몽골로 시집간 고려 여인들은 열악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몽골 세도가의 처첩이 되어 금의환향 했다고 합니다. 항몽 40년은 사실 몽골군의 장기 진주가 결국 고려 사회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던 겁니다. 쌍성총관부와 동녕부와 같이 지방 전체가 몽골에 자발적으로 투항했다는 거죠. 또 성적 개방사회였기 때문에 고려 여자들이 돈 많고 건장한 몽골 장병들과 눈이 맞아서 국제결혼이 성행했고 부모, 형제와 일가들을 몽골로 불러들었다고 합니다.”



“고려의 몽골 공녀 제도는 쿠빌라이칸이 고려 여인을 후궁으로 삼기 위한 것으로 고려와 겹사돈을 맺는 제도였다고 하던데 고려 공녀는 44회에 걸쳐 총176명 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네요.”


“ 그렇지요. 원에 끌려간 공녀들은 대부분 황제, 황족들의 시녀로 들어갔습니다. 원에서는 주로 13세-16까지의 고려 처녀들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지배계층의 눈에 띄어 처첩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남 그보다는 왜 기황후같이 공녀로 간 고려 여인중 원나라 공주들보다 더 높은 황후 자리에 오른 분들이 있잖아요.”


“ 예 대표적으로 3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종(Ayur Baribat)의 여인 바얀-코토크(Bayan Khutug)로 충선왕의 순비, 허씨의 딸이었는데 원으로 건너가 인종의 후비가 되었습니다. 바얀 코토크는 이후 충선왕이 자기 생모인 순비와 라이벌 관계였던 숙비를 동등하게 대하는 데 불만을 품고 충선왕을 티베트로 귀양을 보낼 정도로 막후 실세였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누구입니까?”


“두 번째는 문종(Tug Temur)의 황후 다마시리(Damashiri Khatun)였습니다. 문종은 고려 화평군 김심의 딸인 다마시리를 황후로 봉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바시리는 원의 3대 황제인 카이산의 후궁이었답니다. 이어서 4대 인종(Ayur Baribat) 때에는 바얀코 토크와 같이 총애를 받지 못했지만 높은 후궁으로 있다가 6대 문종( Tug Temur) 때 황후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문종은 천력지전과 명문지쟁으로 일컬어지는 황위 계승전에서 승리한 인물였습니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나 왕위 쟁탈전이 치열했는데 하물며 제국의 황위 자리는 불문가지였겠지요,”


“ 그렇지요. 문종은 배다른 형 코살라(Khusala)를 먼저 명종으로 황위에 올린 다음 8개월 만에 제거한 후 황위에 올랐습니다. 그때 다마시리가 일조했고 황후였던 바부샤까지 비밀리에 제거해서 후한의 싹을 잘라 버렸다고 합니다. 또한 후일 기황후의 남편인 순제(Togun Temur)의 즉위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네요.”


“ 그다음에는 기황후입니까?”


“예 맞습니다. 순제의 황후 얼제이투 코톡토 (Oljeitu Khutugtu Khatun)입니다. 문종의 황후였던 다마시리에 전혀 뒤지지 않은 고려 출신, 순제의 정후인 기황후, 엘제이투 코톡토 카톤이지요. 절세민인에 정치적 야심과 출세욕이 남달랐고 영리하고 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제는 관례에 따라 실세인 옌 테무르의 딸인 타나시리를 황후로 삼았답니다. 그러나 순제는 뛰어난 미모에 영리한 고려 여인 기황후를 편애했습니다."




"그러면 타나시리 황후가 그꼴을 보고만 있지를 않았을 것 아녀요?"


"그렇지요. 그런 연유로 타나시리는 질투심이 폭발해서 기황후를 매질했지요. 기황후는 머리를 써서 옌 테무르와 대척점에 있는 숭상 바얀을 사주해서 타나시리를 황제 역모 사건에 연루시켜 제거해 버렸습니다. 타니시리 제거 후에 바얀은 몽골의 전통에 따라서 옹기라트 출신인 바얀 코톡토를 황후로 맞아 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얀 코톡토는 온유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순제의 마음을 사로 잡을 만치 미모나 지적인 면에서 부족했다고 합니다. 또한 타니시리를 제거한 후 전권이 제2황후인 기황후에게 집중되었지요. 따라서 바얀 코톡토는 42세의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진짜로 허수아비 황후 노릇만 하다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황후는 숭상 바얀에게 권력이 과다하게 집중되자 적대관계에 있는 샤라반을 내세워 바얀을 철저히 몰락시켰지요."


"기황후는 아들을 낳았지요?"


"물론입니다. 기황후는 자기가 낳은 아들 아요르 시리다라를 14세때 황태자로 책봉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기황후는 제1황후가 되어 권력을 휘둘렀지만 자정원을 통해 대도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죽을 쑤워서 나눠 주도록 했고 금, 은, 포백, 곡식들을 내줘서 수십만 아사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 선정도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뒤에 기황후는 원제국의 경제파탄과 함께 명나라에 망해서 순제와 함께 몽골 고원으로 쫒겨났던 거 아녀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기황후가 칭기스칸의 적계 대통을이은 황제 아요르 시리다리를 낳은 위대한 어머니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아이고 오늘 아저씨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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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회차/보은차원, 6.25 참전 용사들에게 코로나19 마스크 1백만장 배송




전 세계를 엄습한 코로나 19는 무소불위의 저승 사자처럼 지구촌을 공포로 휘몰아가면서 확진자수가 470만 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도 31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한국은 코오로나19와의 총성없는 전쟁에서 방역당국의 주도면밀한 대응 조치, 현장 의료진들의 눈물겨운 헌신, 선진적 국민의식으로 인하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이제 세계 보건 최강국으로 그리고 세계 모범 방역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리하여 방역 당국은 5월 첫 주, 황금연휴 기간이 끝나자마자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일단 완화조치가 이뤄졌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다.


11일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이 확산되어 확진자 35명을 기록했고 이후 'n차 감염'이 이어졌다.


또한 인천 학원 강사와 관계된 학생들의 잇단 감염으로 말미암아 방역당국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이구 아버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 응 잘 잤지. 아범 내가 보관해 놓은 5월7일자 신문과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좀 보시게.”


“예 뭐가 났어요?”


“응 우선 5월7일자 신문에는 ‘6·25전쟁 유엔 참전국 용사들에 마스크 지원’이라는 기사인데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김은기 공동위원장)가 22개 유엔참전국의 참전용사에게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감사의 마스크 100만개를 지원한다고 발표했구먼. ”


“ 아 그거 마땅히 할 일을 한 거죠. 두 달전 재모 아저씨께서 6.25 참전국가에게 결초보은해야 할 기회가 왔고 마스크뿐만 아니라 재외 공관에 상임 의무관을 파견해야한다. 그리고 한국 CIT 전사와 녹슬고 있는 농기계와 제조 중고기계를 보내서 참전용사와 후손들의 중소기업을 육성해야한다고 말씀 나눴잖아요.”


“나도 그때 같이 들었잖아. 그런데 이렇게 현실화되니 괜히 내가마음이 뿌듯해지네.”


“아 여기 올해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쟁 당시 참전용사가 보여준 희생과 공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사업을 추진했다고 위원회가 잘 설명했네요. 그리고 6·25전쟁 당시 미국 등 전투지원 16개국 및 의료지원 6개국에서 총 195만7천733명(연인원)의 용사가 참전해 이 중 3만7천902명이 전사하고 10만3천46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피해 상황까지 요약 설명했네요.”


“맞아. 위원회 설명처럼 지금 22개 참전국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고 특히 바이러스에 취약한 고령의 유엔참전용사(평균 88세)를 위한 마스크 지원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라고 위원회가 밝혔드만.”


“아하 총 지원 수량은 100만 장이고 전체 참전용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에 50만 장이 먼저 지원되고 그 외 21개국에 50만 장이 참전 인원 및 코로나19 확진자 현황 등을 고려해 배분된다고 했네요.”


“이건 오늘 신문인데 제목이 ‘미국 나바호족 참전용사에게 마스크 등 지원’ 그리고 ‘6·25전쟁의 숨은 영웅, 나바호 인디언 참전용사를 기억합니다’라고 되어 있네.”


“예!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가 6·25전쟁의 숨은 영웅으로 활약했던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Navajo) 참전용사’에게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마스크 1만장 등 방역물품을 지원한다고 밝혔네요. 미국 원주민인 나바호족은 6·25전쟁 당시 약 800명이 암호병으로 참전했고, 이중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용사는 약 130명으로 추산된다고 했네요.”


“나바호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사막이기 때문에 생활 여건이 열악한가봐 그래서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에서 나바호족 참전용사를 위해 방역마스크(KF94) 1만장과 손소독제 등 방역물품을 긴급지원하기로 결정한 것 참 잘 한일이지.”



“아이구 ‘대한민국 정부는 70년 전 낯선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분들이 후손들에게 젊은 시절 자신의 선택을 명예롭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김은기 공동위원장 말씀도 감명 깊게 드리네요.”




" 장모님과 아버님 오늘 교회에 가시는거죠?"




"응 아침 식사하고 빨리 가셔야."




송은정 권사와 홍순기 장로가 시무하는 교회도 그간 주일 현장 예배 대신에 영상 예배로 대체해 왔다.


다행히 5월 둘째 주일 오후 찬양 예배 당분간 드리지 않고 오전 1부-3부 예배와 4부인 청년 예배만 진행되었다.


교회 남녀 구역장이 자기 구역원 개개인의 희망 예배 시간을 수합해서 교회에 사전 통보했고 2미터씩 이격된 지정 좌석에 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앉아서 예배를 드렸다.


예배도 방역 당국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서 입장시 열체크, 손소독, 출석부에 각자 서명을 한 후에 본당 예배실 장의자 양 끝단에 1명씩 성도가 배정되고 뒷줄은 건너뛰는 좌석 배치였다.



오케스트라 합주는 순서에서 제외시켰고 찬양대는 종전의 4분의 1 수준, 진짜로 친 방역 위주의 다운 싸징, 스림화된 낯선 예배로 드려졌다.


모처럼 만난 성도들은 반가워하면서도 예전처럼 악수 교환도 없이 주먹 인사나 팔뚝 인사로 대신했다.


구내식당과 카페도 계속적으로 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에 성도들은 예배가 끝나면 곧장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셋째 주일에 송 권사와 홍 장로는 좀 일찍 교회에 나가 예배 준비를 돕다가 9시 2부 예배 후 점심에 친정집으로 정희연 부부가 식자재를 마트에서 사와서 오찬을 직접 준비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명목은 지난번 다바술렝이 차렸던 어버니 날 오찬을 베풀었던 날에 공교롭게도 그간 공석이었던 대사 자리에 대리대사로 있던 분이 정식 대사로 특별 승진 임명을 받은 날이었다.


그래서 바트바야르가 대사관으로 출근을 했기 때문에 그날 합석을 못했던 연유로 이날이 별도의 오찬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날 메뉴는 태안 안면도 낙지 연포탕이었다.


희연이 내외가 사온 식자재는 가락시장에서 사온 낙지 10마리, 바지락, 멸치, 다시마 육수, 무, 배추, 양파, 다진 마늘, 새송이 버섯, 대파, 청양고추를 준비해왔다.


재모 할아버지도 몽골 분들이 낙지 등 해산물에 익숙치 않은 관계로 뉴질란드 산 양고기를 사가고 온다고 알려왔다.


송 권사가 나서서 먼저 멸치, 다시다 육수와 무을 넣고 5분여 끓이다가 바지락, 배추 양파를 넣어서 다시 3분여를 끓였다.


이어서 새송이 버섯, 청양고추, 홍고추, 다진 마늘, 국간장을 넣고 익을 때까지 더 끓였다가 깨끗하게 씻은 낙지를 넣고 끓이되 오래 끓이지 말고 낙지가 분홍색을 띄게 익으면 연포탕 요리가 끝나는 것이었다.


다바술렝이 밥과 뉴질란드 산 양고기를 구워서 내왔고 낙지가 익자 낙지를 꺼내 가위로 잘라서 각자 식성에 맞게 오찬을 맛나게 먹기 시작했다.


이때 바트바야르가 일어서서 인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 사실 한국은 어버이날이 5월8일이고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세계 84개국은 매년 5월 둘째주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정해서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몽골은 3월8일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을 몽골 4대 국경일로 지정하여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와 아내 등 몽골 여성들의 은혜와 수고에 보답하고 여성들이 행복한 날이 되도록 남자들이 특별히 배려합니다. 오늘 이렇게 할머니, 두분 할아버지, 장인 어른과 제 아내의 엄마이시며 저의 고모인 다바술렝의 은혜와 수고에 감사를 드리면서 차린 음식 맛있게 드시고 100세까지 사시길 기원합니다.”


“ 아이구 우리 손자사위 연습 많이 했구먼! 오늘 한국에서는 한 여름 더위에 쓰러진 소도 먹으면 벌떡 일어선다는 낙지 연포탕 너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자 박수!”



“ 짝짝짝... 다들 드시지요.”81회차/까마귀 새끼 크면 어미를 먹여 살린다는 반포지효 이야기




태안 안면도 갯뻘에서 잡아서 가락시장을 통해 사온 낚지는 토실토실하면서도 싱싱하고 맛이 있었다.




이때 재모가 다바술렝에게 고마운 말씀을 하기 위해 말문을 열었다.




“ 다바술렝 조카!”


“ 예 아저씨 말씀하세요.”


“ 우리 조카 사위가 새 장가를 가는데 몽골 미모의 여자 의사와 몽골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누님이 같이 가자고 말씀하셨지. 그때 먼저 가버린 조카딸 생각에 내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서 나는 몽골로 안가고 친구와 같이 터키에서 열렸던 국제기후변화 세미나에 다녀왔거든.”

“ 맞아요. 그때 못 뵙고 몽골 결혼식 끝나고 한국에 와서 뵈웠지요.”


“ 그 때는 다바술렝이 우리 누님을 친엄마 이상으로 우리 희연이를 친딸처럼 그리고 우리 누님을 홍 장로님과 짝지워 친아버지같이 모실 줄을 이 세상 그 누구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참으로 다바술렝 너무 너무 고마워.”


“ 아이구 그런 말씀을 너무 자주 하시니까 제가 마음으로 부담이 갑니다. 아무튼 말씀 감사합니다,”


“ 내가 고대 몽골의 장례습관을 찾아봤더니 흉노이래로 16세기 라마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조장(鳥葬), 칭기스칸의 밀장(평장), 혈장(穴葬), 수장(樹葬) 등 몇가지 형태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몽골인의 장례는 3일장이랍니다. 라마교가 들어오기전 민간인들 사이에 흔했던 '조장' 시에는 시신을 들판에 버려 독수리나 맹수가 시신을 뜯어먹는 것을 확인한 후 집에 돌아갔다가 3일, 5일, 7일, 49일 그리고 3년 후를 마지막으로 장지를 찾아 상례를 치렸다고 합니다.”


“ 처남 조장은 티벳과 인도 지방에서 독수리에게 시신을 잘라서 뜯어먹게 하는 장례형태지요.”


“ 그런데 몽골에는 풍장이 있어요. 고인을 늑대의 먹이로 주는 것으로 3일 후에 다시 찾아가 늑대가 시신을 먹었는지 확인했다고 합니다. 풍장은 라마불교가 전파되며 들어왔으나 지금은 불법이 되어 사라진 장례 문화라고 합니다.“


“ 아 그래요.”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조장의 경우 몽골이나 티벳에는 독수리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독수리가 없어서 까마귀가 대신해서 매장하지 못한 시체나 동물의 사체을 까마귀가 먹기 때문에 까치는 길조, 까마귀는 흉조로 불려왔다고 합니다.”


“ 그건 한국 사람들은 혹독한 왜정시대를 겪으면서 일본 사람들이 까마귀를 길조라 부르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한국 사람들은 까마귀를 싫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도 생각되네요. 오늘 제가 드릴 말씀의 요지는 명나라 본초강목에 있는 까마귀의 효도인 반포지효(反哺之孝)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릴려고 합니다.”


“ 동생 자네가 언제 내게 이야기를 했잖아. 반포(反哺)는 먹이를 물어다 어미 입에 넣어준다 뜻이고 반포지효(反哺之孝)란 어미를 먹여 주는 효도를 함으로서 공을 갚는다는 뜻이라고 말야. 맞지?”


“네 누님 말씀이 맞습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 어미가 새끼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해서 옛날부터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라 불렀답니다.”


옛날에 외딴 시골마을에 덕망 있는 촌장이 동산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까마귀 둥지 속에는 늙은 까마귀 두 마리가 몸이 허약해서

죽어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까마귀 자식들이 어미까마귀를 살리기 위해서 다섯 마리의 자식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우선 물부터 먹이잖아요?”


“그렇지요. 첫째 까마귀는 개울에서 입에 물을 잔뜩 물고 와서

어미까마귀에게 계속해서 입에 넣어 주고 있었대요.“


“그 다음에는 먹을 것을 날랐겠지요?”


“무론입니다. 둘째 까마귀는 들과 산에 있는 메뚜기 등 온갖 먹을 것을 잡아다가 계속해서 먹이고 있었고 셋째 까마귀는 가장 소화가 잘 돼고 맛있는 개구리를 잡아다 먹여 줬다는 겁니다..”


“넷째, 다섯째는 어찌했습니까?”


“예 넷째 까마귀는 물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다 먹였고 다섯째 까마귀는 동네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물어다 먹이는 것을 촌장이 확인했다는 겁니다. 이후 촌장이 동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널리 알리자 천대를 받든 까마귀가 늙은 어미에게 극진히 효도하는 조류로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 참 아저씨 아버님과는 아침에 말씀을 나눴는 데다요. 두달전에 에 아저씨께서 진나라 때 결초보은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코로나 19 국면에 6.25 첨전국에 한국 마스크와 중고기계 보내서 은혜를 갚아야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씀하셨지 않아요?”


“응 내가 그때 춘추시대 진나라의 위무자라는 사람이 큰 병으로 죽기 전에 아들에게 유언으로 첫 번째 유언은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젊은 첩을 개가시키라고 했지. 그리고 두 번째 유언은 위무자가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자 아들에게 첩을 자기와 같이 순장해 달라고 하고 죽었다는 거야. ”


“아니 동생 그러면 아비가 죽은 다음 그 아들은 서모를 어찌 했어 ? 설마 순장을 한 건 아니지? ”


“누님 그릴 리가 있겠어요.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직진에한 유언은 정신이 혼미할 때 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처음 유언을 따라서 아버지의 젊은 첩을 개가시켰지요.”


“당연히 산사람은 살려야지. 아들이 잘 판단했구먼”


“ 그후 진나라가 위무자의 아들 위과가 장수로 있던 진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위과는 진나라의 장수 두회와 맞붙어 싸우게 되었는데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막판에 위과가 열세에 몰리게 되었지요.”


“저런 큰 낭패를 만났구만.”


“그때 불현듯 한 늙은이가 두회의 발 앞에 풀을 엮어 놓아 걸려 넘어지게 해서 위과는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동생 그러면 도와준 그 노인이 누구야? "




“ 예 노인이 그날 밤 위과의 꿈에 나타나서 자신은 위과의 서모의 친정 아버지인데 자신의 딸이 위과의 바른 판단으로 목숨을 건져 개가하여 다복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은혜에 보은하기 위해서 어제 전장에서 풀을 묶어서 위과를 도왔다고 말했답니다. 그게 결초보은의 고사성어지요.”


“아저씨 그런데요. 5월7일 신문에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김은기 공동위원장)가 22개 유엔참전국의 참전용사에게 100만장 규모를 지원하는데 8일 미국에 공군수송기로 먼저 운송했다네요 그리고 오늘 신문에는 사업추진위원회에서 미국 나바호족 참전용사를 위해 방역마스크(KF94) 1만장과 손소독제 등 방역물품을 긴급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응 그 기사 나도 벌써 봐서 알고 있어.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마스크 18박스 전달식 사진을 보내왔고 벨기에 국왕께서 문대통령에게 참전 용사에게 보내준 마스크 감사 표시했다고 신문에 났어. 진짜로 잘한 일이야. ”




"처남 말이 백번 맞아요. 미국 건국 이후 원조나 받던 대한민국이 미국을 원조한 건 처음이 잖아요.'


" 그건 그렇고 우리 희연이 힘들겠지만 쌍둥이 잘 크고 있지?"


" 예 어제 산부인과 갔다 왔는데요. 담당 의사께서 아기 사진 보시고 잘 크고 있으나 항상 조심하라고 말했어요."


" 맞아 날씨가 더워 오는데 조심하셔. 그리구 오늘 낚지 연포탕 너무 잘 먹었어. 감사 박수 한번 더 치지요."


"짝짝짝"




150회 한몽 다문화가정들의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를 종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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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 뜬 쌍무지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세계 10대 자원부국 몽골, 천신만고의 역경을 이긴 테무진 이야기 21.09.13 19 0 27쪽
42 몽골의 Post-COVID19전략과 "별중의 별" 수부타이의 전략전술 21.09.11 22 0 27쪽
41 유럽연합군을 괴멸시킨 몽골 수부타이가 이끈 "케식텐"과 몽골 궁기병 "만구다이" 21.09.11 24 0 17쪽
40 세계 최고의 보양식 몽골 양고기, 최고 품질의 캐시밀, 몽골 염소 목털 21.09.11 21 0 21쪽
39 몽골 최적화 한국신상품, "탄소섬유발열체"와 "스마트팜" 21.09.08 19 0 23쪽
38 젊은 왕자와 몽골의 여전사, 쿠툴룬 공주와의 전차 경기 21.09.06 22 0 23쪽
37 21세기 페스트, 코로나 19가 뉴 르네상스 시대의 기폭제 21.09.03 21 0 21쪽
36 무한 질주 본능의 몽골 말과 몽골 초원의 벤허형 국제철마경주 21.09.01 23 0 22쪽
35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불굴의 리더십'과 세계적인 한서대 태안항공캠퍼스 21.09.01 24 0 24쪽
34 스쿠바트와 한영애 약혼 2주만에 전격적인 결혼 21.09.01 22 0 25쪽
33 뜨거운 스쿠바와 한영애의 약혼과 합궁이 허락된 첫날밤 21.08.21 26 0 22쪽
32 전격적인 스쿠바트와 한영애의 약혼과 동거 21.08.21 22 0 20쪽
31 송재모와 다바둘람의 황혼 결혼 21.08.18 26 0 33쪽
30 낭만서린 태안 마금포 해변, 새로운 국제 커풀의 열애 21.08.14 26 0 25쪽
29 네덜란드 뤼터 총리 요양원 봉쇄로 모친 임종 못지켜, 몽골 나담의 세계화 21.08.08 26 0 26쪽
» 원 황제의 귀비, 황후에 올랐던 고려 여인(바얀코토크 후비, 다마시리황후, 기황후) 21.08.04 29 0 24쪽
27 사나이 테무진의 가슴을 녹인 타타르 예수이, 예수킨 자매 이야기 21.08.01 39 0 21쪽
26 최고의 제왕교육자 뭉케, 쿠빌라이의 모후 소르칵타니베키 이야기 21.08.01 36 0 14쪽
25 국군대구병원이 격은 코로나19와의 전쟁, 6.25참전국에 마스크, 검사킷트 보은 21.07.31 34 0 23쪽
24 원 무종, 충선왕을 개부의동삼사, 태자태부, 심양왕으로 진봉 21.07.31 30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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