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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박이연입니다.

내공빨로 무림 갑질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별박이연
작품등록일 :
2022.06.11 16:44
최근연재일 :
2022.11.2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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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6.1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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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2. 무공 따윈 필요 없다.

DUMMY

# 02. 무공 따윈 필요 없다.


행낭 속 수백 개의 영약.

하지만 기적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목록을 확인한 직후, 갑작스럽게 기억이 쏟아졌다.

주홍경(周弘經). 자(字)는 백상(伯常).

5대 독자로 귀하게 자라온 어린 시절부터 술 취해 집으로 돌아오던 밤,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다 벼락을 맞던 순간까지.

마치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듯, 주홍경이란 인물에 대한 요약된 인생사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멍한 얼굴로 떠오른 기억을 되씹어 보던 청년이 문득 옆에 선 노인을 쳐다보았다.

“···황노?”

“아이고, 도련님! 이제 기억이 돌아오셨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자신을 알아보자, 노인은 반색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얼른 주인어른과 마님께 알려드려야겠습니다. 밤새 잠도 못 주무시고, 얼마나 수척해지셨는지···. 아, 배는 안 고프십니까?”

“아니, 황노. 나중에, 나중에···. 아직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한숨 더 자야겠어.”

얼른 노인을 보내고, 다시 행낭을 살펴보고 싶었던 청년은 어지러운 척 머리를 잡고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예예, 그러십시오. 푹 자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실 겁니다. 마님께는 깨어났다가 다시 주무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황 노인은 침상 밖으로 넘어간 이불을 정리해주고는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총총히 밖으로 나갔다.

노인이 나가자, 이제 주홍경이 된 청년은 천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정말 게임 속 세상에 들어온 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곳은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였다.

하지만 나라는 실제 역사에는 등장한 적 없는 경(景)이라는 국가였다.

게임 속 세계관에 등장하는 국명이었다.

양산형 게임의 허접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구성된 세계라면 세세한 설정까진 구현되지 않았을 테니, 어쩌면 이곳은 게임 속 가상세계라기보다는 페러렐월드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볼 뿐이다.

뭐, 아님 말고.

이 세계엔 이야기 속 무림인이 있었고, 소림사나 무당 같은 유명 문파도 있었다.

재수 없게 죽었지만, 이런 세계로 넘어온 게 싫지 않았다.

치트 아이템까지 잔뜩 받아왔으니, 벌써 지난 생이 희미해질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허리에서 주머니를 풀어 꼼꼼히 살폈다.

인벤토리.

아니, 무협 세계니 요술행낭이라 부르자.

요술행낭에 든 물건들은 모두 게임에서 쓰이는 아이템이었다.

대환단은 체력을, 천년설삼은 내공을, 공청석유는 체력과 내공을 동시에 채워주는 약물이었고, 동자삼은 한 번에 레벨을 왕창 올릴 수 있는 점핑 캐릭터용 이벤트 아이템이다.

전부 캐릭터 생성과 동시에 우편으로 받은 물건들이었다.

1주년 기념, 신규 유저를 위한 선물이 고스란히 같이 넘어온 것이다.

홍경은 대환단과 천년설삼을 꺼내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쓰읍-

단지 향만 맡았을 뿐인데, 청량한 기운이 감돌아 머리가 맑아지고, 온몸에 힘이 돌았다.

“이건 찐이다.”

게임 안에서는 포션 역할이지만, 여기선 진짜배기 영약이었다.

대환단(大丸丹). 무림인이 먹으면 일갑자(一甲子)의 내공을 얻을 수 있고, 무림인이 아니어도 무병장수하게 해준다는 소림의 성약.

천년설삼(千年雪蔘)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방울만 먹어도 엄청난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공청석유(空淸石乳)가 무려 999병.

이 많은 영약을 혼자 다 먹어 치운다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세상을 오시하는 위대한 무인이 된 나.

연을 맺고 싶어 안달 난 무림명숙들이 앞다퉈 딸을 떠밀며, 제발 첩이라도 좋으니 받아달라 사정하고, 천하에서 순위를 다투는 미인들이 서로 옆자리를 차지하려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광경.

그런 상상을 하며 히죽거리던 홍경은 영약을 요술행낭에 도로 집어넣고, 이번엔 초급 내공심법서를 꺼내 들었다.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받았다면 읽기만 해도 절로 무공을 익힐 수 있으리라.

화끈하게 책장을 펼쳤다.

촤락, 촤락!

팔락, 팔락, 팔락···.

끝까지 책장을 넘겼지만,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일 뿐. 상상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게임 능력은 행낭에만 적용된 모양이다.

실망감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생으로 익히는 건 에반데···.’

치트 능력이 없다면 무공을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

무협지 좀 읽은 짬밥으로 보자면 배울 것도 많다.

가장 기본인 심법, 보법, 신법에 각법, 퇴법, 고법, 장법, 권법···.

무기술도 빠뜨릴 순 없다.

열여덟 가지 무기를 다루는 18반은 무림인의 교양이다.

그중에 전공을 정해 하나를 깊이 파야 할 테고.

평생을 배워도 끝이 안 날 것 같다.

하지만 곧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무공서!’

가장 중요한 무공비급의 수급 문제였다.

어떻게 구할 것인가!

돈으로 산다?

현실적으로 구할 수 있는 건 삼류 무공서가 다일 듯하고···.

무협물의 클리셰인 기연을 찾아본다?

아마 찾다가 세월 다 보내고 빈털터리가 될 테지.

그나마 고수에게 배움을 청하거나 문파에 들어가는 게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이겠지만, 사실 이것만은 절대 피해야 할 일이었다.

영약을 먹게 되면 표가 안 날 수가 없다.

비급이나 약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놈들이 제자라고 내버려 둘까.

들키면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씨 몰살 확정이다.

‘답이 없네. 노답이네.’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해볼 만한 게 없다.

아무리 고민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꿈은 순식간에 짜게 식어버렸다.

에라이!

벌렁, 침대에 드러누워 양손으로 머리를 괬다.

잠이나 한숨 자려고 눈을 감았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해 계속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한 생각.

‘굳이 무술 같은 거 배울 필요 있나?’

생각해보니 힘들게 무술을 익힐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내공만 익혀도 충분하지 않을까.

무술을 땅파기에 비유하자면, 무림의 고수는 삽질의 달인들이다.

온갖 재질의 삽과 땅을 파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한다.

서로 자기 삽질이 더 대단하다며 승부를 겨루기도 하고, 고유한 기술을 전수하는 문파도 있을 것이다.

삽질에 인생을 거는 게 당연시되고, 삽질만 잘해도 존경받는 세상.

하지만 내게 포크레인이 있다면?

삽질 따윈 관심조차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막강한 내공은 포크레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구하기도 힘든 무공서와 달리, 당장 익힐 수 있는 심법이 있고, 또 심법을 받쳐줄 영약이 잔뜩 있다.

아무리 심법이 저질이라도 저 많은 영약을 다 먹어 치운다면 내공만으론 우주 최강급이 될 수 있을 터.

무림인들이 최강의 심법에 목메는 이유는 효율 때문이다.

평균 60년이라는 수명 안에 한정된 자원으로 경지에 오르려면 최고의 효율을 낼 최상급 심법에 매달리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홍경은 효율 따윈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압도적인 물량이 있으니까.

삼류 무인도 거들떠보지 않을 초급 심법으로도 충분했다. 압도적인 물량이 있으니까.

그럼 내공만 가지고 뭘 할 수 있느냐.

가장 먼저 호신강기(護身罡氣)를 들 수 있겠다.

호신강기는 상대의 공격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보호막 같은 건데, 이 좋은 걸 고수들이 잘 안 쓰는 이유는 내공을 막대하게 소모하기 때문이다.

행낭 속 영약을 다 먹어 치우면 24시간 계속 호신강기를 써도 내공이 모자랄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유용한 기술이 있다.

반탄강기(反彈罡氣).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 주는 기술이다.

가만히 서서 맞기만 하면 공격이 되니, 참으로 효율적인 기술이랄 수 있겠다.

다만 상대보다 내공이 커야 효용이 있다는 게 문제.

비슷한 상대에겐 쓸모없고, 상대의 내공이 더 크다면 그냥 자살기가 된다.

하지만 곧 역대 최고의 내공을 가질 예정이니 그런 문제는 일어날 리가 없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포악한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무림 고수들.

폭풍 같은 주먹과 시퍼런 검기가 쏟아지는 데도 무심히 뒷짐만 지고 서 있을 뿐.

공격이 적중 하는 순간 오히려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적들.

쓰러진 고수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툭툭, 먼지를 턴 후 돌아서는 나.

멋짐이 폭발한다!

‘그래. 이거지!’

희망이 보인다.

······는 것도 잠시.

생각해보니 상황이 그리 좋게만 흘러갈 것 같진 않았다.

내공 말곤 아무것도 없다는 게 들통나면, 오히려 살아있는 영약 취급해 잡아먹으려 들지도 모른다.

‘굳이 무림인이 될 필요는 없겠어.’

내공을 익혔다고, 꼭 무림인이 되어 활약할 필요는 없다.

무슨 퀘스트라도 떴다면 모를까.

게다가 홍경의 집안은 성도(成都)에서 포목점을 하는 상인 가문이라 무인으로 대성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포목점을 물려받고 상인이 돼야 할까.

‘상인도 좀 아닌 것 같고···.’

설삼 몇 뿌리만 팔면 삼대가 떵떵거리고 살 텐데 굳이 남 앞에 굽신거리며 장사를 해야 할까.

‘그럼 뭐하지? 아니, 꼭 뭘 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급할 게 없었다.

내공을 완성하고 든든한 자금도 마련한 후라면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고, 되고 싶은 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리라.

행낭에 보물이 가득 들었으니, 기반을 갖추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방향을 정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즉, 어떻게 살 것인가!

그거라면 이미 마음속에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무릎 꿇지 않는 삶!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무협 세계에 어울리는 삶이 아닌가.

힘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숙여야 하고 포기해야 했던 것들.

이번 생엔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누리리라.

그럴 기회가 손에 들어왔으니까!


방향을 정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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