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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님의 서재입니다.

버려진 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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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작품등록일 :
2021.09.22 12:58
최근연재일 :
2022.08.2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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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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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8,583

작성
22.03.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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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희생 2

말고리아




DUMMY

“저, 저것은.. 금기된 주문이 아닌가요?”

괴물의 한 번의 타격으로 갈비뼈가 열서너 대는 부러져 서 있기도 힘든 바론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테오를 향해 물었다. 이안이 급한 대로 마법치료를 해주었기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더 이상 전투를 하기는커녕 혼자 걷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 그렇소. 피델리오 경이 가르쳐 준 적이 있지.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경지에 오르지 않는 한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파멸의 주문’. 피델루신의 힘을 검뿐만 아니라 몸으로까지 흡수 받는, 성전기사가 시전할 수 있는 최후의 주문. 설령 행한다 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바로 죽음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는 바로 그 기술인 것 같소.”

“그, 그렇다면 왕자님은..”

제임스는 목숨을 걸었다. 샬롯과 데미안, 그리고 크론빌 최고의 기사들을 더 이상 사지로 밀어 넣을 수 없었다. 파멸의 주문으로 피델루신의 힘을 검뿐만 아니라 몸으로까지 최대한 흡수하여 본인 자체를 무기로 만들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크론빌 기사단의 최고의 책임자가 완수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힘을 부여받고 그가 버틸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그는 온 몸을 둘러싼 푸른 기와 함께 야수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 그리고 내뿜는 검의 위력은 그 어떤 상대에게도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십여 미터를 넘는 검기가 괴물의 목숨을 노렸다. 상대에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연속적인 공격이 이어졌기에 괴물은 쉽사리 반격할 기회를 노리지 못했다. 몸을 제물로 바친 공격으로 제임스의 목숨은 보장받을 수 없다 해도 크론빌 원정대에게 있어서는 오늘 괴물과의 일전이 벌어진 이후 가장 통쾌하면서도 기대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긴박하고 엄청난 싸움에 살아남은 크론빌 기사들은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칫 기운에 빨려 들어간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괴물이 제임스의 공격에 밀려 낭떠러지 앞까지 후퇴했다. 괴물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긴장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드디어 괴물을 궁지까지 밀어 넣은 것이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제임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온 몸의 힘을 끌어 우측 상단에서부터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검을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현란한 연속공격을 펼쳤다. 눈으로 쫒기도 힘든 가공할 공격이 격렬하게 이어지며 푸른 검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모두가 숨죽이며 이 순간을 지켜보았다. 제임스가 내지른 검의 궤적에 따라 공기가 무참하게 갈렸고, 검이 이동하는 공간에는 그 무엇도 남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괴물은 남았다.

제임스의 연속된 회심의 일격에 형체가 허물어진 것처럼 시야에서 잠시 사라진 괴물이, 갑자기 공중에서 불그스름한 기운이 담겨 있는 앞발과 함께 제임스의 정면에 등장했다. 이내 그 발은 제임스의 가슴팍을 눌렀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제임스는 땅에 쳐 박혔다. 이 공격으로 제임스의 검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그대로 절벽 밑으로 떨어졌고 갈비뼈와 내장이 으스러졌다. 입을 통해 다량의 붉은 피가 넘쳐흘렀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곧바로 괴물이 입을 벌려 제임스의 왼팔을 물어뜯었다. 괴물의 크기에 비해 제임스는 너무나 작았기 때문에 제임스의 팔만 노려서 공격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상대방에게 정교하고도 잔인하게 극도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괴물이 제임스를 곱게 죽이지 않을 생각으로 보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너무나 처참하고 충격적인 광경에 나머지 크론빌 기사들은 넋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악마 같은 살인괴수를 몰아붙여 드디어 승기를 잡아 해치울 수 있겠다는 희망도 산산조각 나버렸다. 또한 흩어지며 사라진 괴물이 별안간 형체를 조합해 공간에서 등장해 제임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일 자체가 쉽게 이해가지 않는 광경이었다.

제임스는 온 몸이 부서지는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웠지만 워낙 타격이 심해 큰 소리를 낼 기운도 별로 남지 않았다. 이 때 이미 제임스의 몸을 뒤덮고 있던 푸른 기운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괴물이 잠시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제임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경고를 무시한 어리석은 인간에게 죽기 전에 최대한의 공포를 심어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온 몸이 피로 물든 제임스가 힘겹게 괴물을 향해 말했다.

“고, 고맙다. 팔 하나를 남겨 주어서..”

제임스가 갑자기 초인적인 힘으로 자신을 누르고 있던 괴물의 앞발의 무게를 이겨내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오른손 끝으로 괴물의 목 밑을 깊숙이 찔렀다. 괴물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었지만 제임스는 자신의 오른손에 피델루신의 힘을 함축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는 남아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며 뜯겨져 나간 왼팔 대신 자신의 몸통으로 괴물을 낭떠러지 방향으로 밀고, 오른손으로 괴물의 몸을 계속해서 찔러댔다. 괴물은 이 공격이 계속될 때마다 괴로움의 비명과 함께 뒤로 밀려났고 이들은 점점 낭떠러지에 가까워져 갔다.

“크아아아악”

제임스는 괴물과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게 성전기사가 목숨을 걸지 않으면 펼칠 수 없는 최후의 비기, 파멸의 주문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힘의 크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기다 괴물의 몸짓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경고의 한마디도, 관대한 자비도 바랄 수 없는 철저한 말살과 처단을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도망친다한들 이 괴물은 끝까지 자신들을 쫒아와 생명을 앗아갈 것이었다. 즉, 무슨 수를 쓰든 이 괴물을 쓰러뜨리지 않으면 크론빌 원정대의 그 누구도 이 곳 말고리아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생각해 낸 것이 괴물의 방심을 노린 기습적인 공격이었고 이 짐승과 함께 그의 화려한 생을 마감할 각오까지 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괴물에게 치명상을 입힐지는 몰랐지만, 최대한 접근한 상태여야 했다. 이 과정을 위해 제임스는 목숨을 걸고 파멸의 주문까지 펼쳐가며 괴물과 접전을 펼쳤고 자신의 몸은 이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결국은 괴물을 공격할 수 있는 빈틈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리고 몸에 남은 마지막 힘까지 모두 쏟아 부은 혼신의 공격은 짐승에게 처음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차기 크론빌의 유일한 왕이 될 남자,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이 될 인물이 자신을 희생하고 부하들을 지키려 행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제임스는 과연 일국의 왕자였고, 영웅의 기질을 지닌 자였다.

“왕자님, 안돼요!”

“제임스! 멈춰!”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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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이시스 1 22.08.15 12 0 9쪽
51 희생 9 22.05.07 14 0 9쪽
50 희생 8 22.04.30 15 0 8쪽
49 희생 7 22.04.23 13 0 8쪽
48 희생 6 22.04.16 14 0 7쪽
47 희생 5 22.04.09 14 0 7쪽
46 희생 4 22.04.02 14 0 8쪽
45 희생 3 22.03.26 16 0 7쪽
» 희생 2 22.03.19 16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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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마음의 준비 5 22.01.25 19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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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마음의 준비 3 22.01.14 20 0 11쪽
27 마음의 준비 2 22.01.04 20 0 10쪽
26 마음의 준비 1 22.01.02 17 0 9쪽
25 소녀 7 21.12.29 1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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