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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님의 서재입니다.

버려진 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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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작품등록일 :
2021.09.22 12:58
최근연재일 :
2022.08.2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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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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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수 :
198,583

작성
21.09.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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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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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산 속의 사람들 1

말고리아




DUMMY

고요한 밤.

보통이라면 나무로 가득 찬 빽빽한 숲 아래서는 고개를 들어도 밤하늘의 경치를 감상할 수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어두운 발밑이 두려워 힘차게 발을 내딛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일 년 중에서도 달이 가장 크게 떠오른 대보름날. 숲의 사이사이에 스며든 차가우면서도 은은한 달빛이 숲길을 헤쳐가고 있는 사냥꾼들의 앞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이들은 숲의 정적을 유지하려는 듯 최대한 숨을 죽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경쾌하게 이어지는 풀벌레 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묻혀 이들의 진군은 더욱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숲길을 거의 빠져나올 무렵, 모처럼 시야가 탁 트인 경치 넘어 커다란 바위 언덕이 드러났다.

“슥”

앞서가던 부족장 하토르가 손을 들어 올려 진군을 멈춰 세웠다. 숲길을 나서기 전 주변을 살펴 안전을 확보한 후 움직이려는 의도였다. 잠시 집중하며 사방을 살펴보는데, 다행히 별다른 위험은 없어보였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정면에 제법 높게 위치한 바위언덕을 쳐다보니, 언덕 위쪽으로 커다란 달의 꼬리가 살짝 걸쳐 있었다. 이들은 주변을 경계하느라 숲길을 헤쳐 오는 내내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솟아 있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휘황찬란한 달빛 풍경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길고 고단한 하루를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 영롱한 황금빛 달이 도드라진 매력을 뽐내고 있었고 그 주위를 큼지막한 구름 몇 점이 둘러싸고 있었다. 달빛을 흡수한 커다란 구름은 그걸 다시 어두워진 하늘에 노란 빛으로 흩뿌렸다.

이 순간도 잠시, 이내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몇몇 사람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를 내지를 뻔해서 급하게 손을 틀어막아 삐져나오는 소리를 겨우 잠재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덕 위에는 며칠 전에 자신들을 습격했던 그 거대한 짐승이 조용히 엎드려 있었는데 마치 달구경이라도 하는 듯 느긋하게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말고리아인들은 마을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신중하게 주변을 살폈지만,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야 제대로 보이는 바위언덕에 괴물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쉽게 짐승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짐승은 흉악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밤이 깊어져야만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와 서늘하고 맑은 밤공기를 들이키며 산책이라도 하는 것일까.


말고리아 부족은 일주일 전 야간 사냥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건 부족장인 하토르의 어린 딸이 테스라 부족에게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테스라는 말고리아 부족에게는 가장 가까운 부족이었는데 그것은 위치와 관계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테스라 부족에는 바키올라라는 자가 있었다. 큰 키에 거무튀튀한 피부, 얼굴의 대부분을 뒤 덮고 있는 뻣뻣한 수염, 옆으로 쭉 찢어진 눈을 가졌는데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는 매우 호전적인데다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거나 지시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랫사람에게 욕지거리를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말고리아 산맥 같은 험하고 혹독한 산악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거칠고 강한 기질의 인물이 필요하기도 하였다. 욕심이 많다는 것은 때로는 생존능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의 편에 선다면 배고파 굶어죽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었다.

반면 테스라 마을의 부족장인 메르겔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가졌으며 항상 부족의 평화를 위해 애썼다. 그는 어깨까지 오는 부드러운 은발을 늘 단정하게 반으로 묶어 내리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다녔다. 밭고랑처럼 깊게 파인 주름 옆에 세월과 경험이 깊어진 진회색 눈동자로 그의 부족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이처럼 반대되는 성격의 두 사람의 의견대립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메르겔이 훨씬 더 연장자였고 대부분의 마을사람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으므로 감히 바키올라가 메르겔을 거역하는 일은 없었다.

여름의 텁텁한 공기가 물러가고 산 속에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바키올라는 젊고 체격이 좋은 사냥꾼들 여럿을 대동하여 말고리아 부족까지 찾아왔다. 그 자리에 메르겔은 없었다. 그는 거만하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마을사람들에게 부족장인 하토르를 불러달라고 했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하토르가 마을 어귀의 그를 반겼다.

“바키올라, 못 본지 제법 되었군. 최근에 테스라 마을에 갔을 때도 자네가 사냥을 나갔었던 건지 볼 수가 없었는데.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직접 우리 마을까지 찾아오다니..”

“오랜만이군, 하토르. 이제부터 테스라의 부족장은 바로 이 몸이 되었다네. 메르겔의 건강이 나빠져서 갑작스럽게 내게 부족장의 자리를 맡겼어.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자리가 되었을 테지만 말이야. 오늘은 이 얘기를 전하러 온 것이야.”

“뭐? 메르겔이? 그게 무슨 말인가?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자네는 내가 부족장이 됐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돼. 남의 부족 일을 그리 깊게 알려고 하지 말게. 자네는 항상 그렇게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게 문제야. 아무튼 앞으로도 예전처럼 잘 지내보자고, 하토르.”

“이봐.. 기다려, 바키올라!..”

하토르는 메르겔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병에 걸리기라도 한 것인지 더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바키올라는 자신의 말만 쏟아내고는 휙 돌아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메르겔이 사냥을 나갔다가 부상이라도 당한건가, 요즘 멧돼지들이 자주 날뛰긴 했지. 하지만 그 노련한 메르겔이 쉽게 부상을 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바키올라 녀석이 부족장이 되었다니...’

하토르는 무엇인가 수상쩍음을 느꼈지만 바키올라의 말처럼 다른 부족의 일이기에 어찌해 볼 도리도 없었다.

바키올라가 부족장이 되었다는 소문으로 마을이 떠들썩했던 그날, 마을이 한 번 더 발칵 뒤집어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막 여덟 살이 된 하토르의 막내 딸 라빈이 사라진 것이다. 라빈은 발랄하고 호기심이 많아 종종 혼자서 숲 속을 이리저리 거닐며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모친인 벨리타는 라빈의 이런 성향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딸에게 혼자 멀리 나가지 말라고 자주 얘기를 하곤 했다.

“엄마, 엄마! 이것 좀 봐요!!”

종아리까지 진흙이 잔뜩 묻어 뛰어오는 라빈의 작은 손에는 주황색 야생화가 들려있었다.

“엄마 주려고 따온 꽃이에요. 근데 이게 무슨 꽃일까요?”

벨리타는 마을 근처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꽃을 건네는 라빈을 보자 다시 한 번 따끔하게 혼내고 싶었지만, 천진난만한 어린 딸이 활짝 웃는 모습에 가벼운 한숨과 함께 꽃을 받았다.

“고맙구나, 라빈. 엄마도 꽃의 이름은 모르겠는 걸? 하지만 너무나 예쁜 꽃이구나.”

“정말? 그러면 다음에 또 따다 줄게요!”

벨리타는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라빈을 걱정하며 왜 며칠 전 그녀가 꽃을 가져왔을 때 좀 더 주의를 주지 못했었는지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반나절이 넘게 라빈을 찾아 헤매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여 뉘엿 저물던 늦은 오후, 말고리아 부족에 오늘만 벌써 두 번째로 테스라 부족의 손님이 찾아왔다. 아침에 다녀갔던 바키올라 일행 중 한 명이 말을 탄 채로 마을 어귀에서 크게 외쳤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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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 k1******..
    작성일
    21.11.29 13:33
    No. 1

    순식간에 한편을 다 읽었네요~~다음편이 궁금해서 빨리 읽어야겠어요~재밌어요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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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마음의 준비 2 22.01.04 20 0 10쪽
26 마음의 준비 1 22.01.02 17 0 9쪽
25 소녀 7 21.12.29 18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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