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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천마님 : 잽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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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2.19 20:30
최근연재일 :
2021.04.16 06:2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60,623
추천수 :
5,673
글자수 :
325,396

작성
21.03.05 22:20
조회
8,717
추천
126
글자
13쪽

팀 그리즐리

DUMMY

“이봐요.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우석을 향해 웬 사내가 말을 걸었다.

말투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도 그리 호의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우석은 핸드폰을 챙긴 후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마치 곰처럼 덩치가 큰 중년 사내가 있었다.


“보아하니 격투기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야하는 겁니다. 이 산에 자주 다니시는 분들이 불편하다고 그러세요.”


큰 몸집에서 나오는 위압감.

상당히 험상궂은 얼굴.

그런데 의외로 말하는 태도는 굉장히 정중했다.


-지난번에 찾아왔던 노인네들이 이 동네의 운동하는 놈한테 일러바친 모양이군. 염병, 그래서 그 이후로 외공 수련은 사람 없을 때만 시켰구만....


천마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덩치 큰 중년인은 살집도 있지만 그 안에 근육이 가득 차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우석 선수 아닙니까?”


사내가 우석을 가만히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 예.... 하하.”


-그래도 네놈을 아는 사람도 있긴 하구나! 별로 인기 없는 선수였다고 하지 않았느냐?


천마가 중년인의 반응을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요. 그래도 제가 다섯 경기를 뛰었으니까 격투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한두 번은 봤을 수 있죠.’


우석은 신기한 마음 반, 민망함 반의 심정이었다.

그냥 길거리에서 알아봤으면 모를까.

겨울에 산에서 반바지만 입은 채 바위를 들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마 제 팬이거나 하진 않을 테니 안심이....’


“강우석 선수 내가 아주 팬이에요.”


중년 사내가 우석의 예상을 깨며 말했다.

두툼한 손을 불쑥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중년인.

우석은 당황하여 두 손으로 악수했다.

사내는 정말 반가웠는지 손을 꽉 잡았는데 악력이 상당했다.


-네놈을 제법 잘 아는 것 같은데? 크흐흐!


천마가 지금의 꼴이 우스운지 낄낄 웃었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겠죠.’


“강우석 선수 시합할 때 보면 아, 분명 언젠가 포텐이 터지겠구나 생각했어요. 이전에 인파이팅을 할 때도 눈빛이 살아있는 걸 봤거든요. 그런데 전사의 길에서는 드디어 스스로의 강점을 찾은 거 같던데요?”


하지만 사내는 정말 우석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예전의 스타일부터 최근 일까지.

심지어 팀 블러드에서도 알아보지 못한 우석의 강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근데 팀에서 운동하지 않고 왜...?”


중년인이 의아한 듯 우석을 봤다.


“제가 사정이 좀 있어서 팀 블러드에서 나왔거든요. 아시다시피 팀이나 매니저가 없으면 경기를 잡기도 힘들고... 자금 문제도 있어서 여기서 훈련을 좀 하고 있었어요.”


우석은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했다.

팀에서도 봐주지 않은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처음과 다르게 왠지 중년인이 우호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어쩐지 그의 얼굴이 익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 그렇군요. 강우석 선수 이대로 묻히기엔 참 아까운데....”


사내의 얼굴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신중한 태도로 입을 뗐다.


“내가 이 동네에서 작은 레슬링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따로 이용료를 받지는 않을 테니까 새로운 팀에 들어갈 때까진 거기서 운동하는 게 어때요?”


“예...? 아... 아!”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은 우석은 잠시 중년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던 익숙함.

여기에 레슬링 체육관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박정열 감독님 아니세요?”


우석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박정열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혹은 이름 뒤에 붙은 감독이란 수식어가 이제는 낯선 것일지도 몰랐다.


“이제 감독...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죠. 아무튼, 맞습니다.”


-뭐냐? 아는 사람이야?


천마는 우석과 박정열이 서로가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 하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박정열 감독님이라고, 예전에 팀 그리즐리라는 종합격투기 팀을 운영하셨던 분이에요. 본인도 원래 운동을 했었는데 지도자로 전향하면서 더 잘 됐었고요.’


-됐었다?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천마가 우석의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했다.


‘팀 그리즐리를 운영하면서 많은 선수들을 배출하는 명문팀이 됐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한국 MMA계에서 묘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묘한 분위기라니?


‘여러 팀들에서 팀 그리즐리 선수들과의 시합을 피하거나 격투기 단체에서도 불합리한 조건의 시합을 성사시키고 하는 거죠. 따돌리는 것처럼....’


우석의 설명에 천마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 됐다.


-그래봤자 진짜 명문이라면 실력으로 다 눌러주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좀 복잡해요. 종합격투기도 결국 스포츠다보니까 서로 쓰러트리지 못하면 판정으로 가기도 하고 체중이나 컨디션 조절도 중요한 요소거든요. 근데 편파 판정, 일방적인 일정 조정 같은 걸로 방해하면 실력과 별개로도 질 수 있죠.’


-음.... 하긴, 비무라고 해놓고 몰래 중독 시킨다던지 하는 경우랑 비슷하겠구나. 그런데 네놈의 옛 스승은 따돌림에 가담하지 않은 모양이다? 저 놈이 너에게 악감정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천마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아뇨. 제가 알기론 피영욱 관장님이 제일 적극적이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고 들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호의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시니... 엄청 대인배시네요.’


우석은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천마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그냥 MMA 팀 감독이었으니까 여러 선수들에게 관심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의 제자를 선입견 없이 대해주고 있는 것이다.


-네놈을 이용하려는 건 아니겠느냐? 적의 제자를 꾀어내는 건 암투의 기본인데....


천마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마교의 수장으로 지내보니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당해봤고, 회의 중에 그런 작전을 짜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순수한 호의는 독이 든 술잔과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천마가 살아온 삶이 그랬다.

과거 하오문에서 잡배로 살다가 순수한 호의에 속아 마교로 납치당했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면서도 온갖 술수에 당하며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됐다.


‘사람이 그렇게 벽만 치고 살아도 안 되죠. 박정열 감독님이 되게 운동에 대한 열정도 크고 팀원을 아끼셨었다고 들었거든요. 저한테도 업계의 후배라는 생각에 배려해주시는 거 아닐까요?’


23살의 우석은 아직 사람의 본성을 믿었다.

아니, 어쩌면 오기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믿었던 팀 블러드의 배신.

이어 피영욱에 의한 전사의 길 제작진의 배신.

우석은 연이은 사람의 배신에 정말로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인가 의심하는 단계에 섰다.

이런 시기에 호의를 베풀어 오는 박정열을 만난 것이다.


‘저는... 믿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배신 안 할 천마님이 계시니까 괜찮겠죠.’


-염병.... 내가 스물 넘었을 때는 암살도 하고 첩자짓도 하고 다 했는데. 이렇게 순해서야.... 그래! 혹여 이용당하더라도 다 깨부수면 되지.


천마는 옛날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우석을 보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게 밉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강우석 선수...? 부담스럽다면 굳이 안 와도 돼요. 그냥 어르신들께서 위협적으로 느끼시지 않게끔만 조심해줘요.”


박정열이 우석을 불렀다.

우석이 천마와 대화를 나누느라 잠시 침묵했던 것이다.


“아, 아닙니다. 도움을 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재빨리 고개를 숙여 인사한 우석.

박정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이었다.


“하하, 좋아요. 체육관에 다른 회원이 없을 땐 내가 그라운드 훈련도 도와줄 수 있어요. 강우석 선수 보니까 거의 타격 위주로 경기를 풀어가던데,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박정열의 말에 우석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훈련 환경이 더 좋아지는 것이니 우석으로서는 매우 긍정적인 일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산에서 하던 수련을 그만두겠다는 건 아니었다.

산과 체육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훈련 환경을 취사선택하고자 했다.


-흥, 산에서만 수련하는 것보다 크게 나은 게 없으면 바로 나와라!


천마는 여전히 박정열을 의심했기에 못마땅하다는 듯 소릴 질렀다.

하지만 그의 불만은 얼마 가지 못했다.


* * *


-쿵!


“허억...!”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신음이 체육관을 채웠다.

우석은 매트가 깔린 허름한 체육관 바닥에 뒹굴며 누워있었다.

방금 나온 신음의 주인은 바로 우석이었다.


-이런 게 무술이라고...?


그리고 끙끙 앓고 있는 우석을 보며 놀란 천마.


-나려타곤을 기술로 쓴다니, 해괴망측하구나. 확실히 이건... 내가 알려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어.


천마가 놀란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박정열의 체육관에 온 우석이 박정열에게 그라운드 훈련받는 걸 본 것이다.

천마가 처음 우석을 봤을 때 수준 미달의 개싸움이라고 불렀던 광경.

테이크다운을 하고 바닥을 구르면서 주짓수 싸움을 하는 게 무림인에겐 생소할 따름이었다.


‘종합격투기에서 그라운드, 서브미션 기술은 필수예요. 타격이 주력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방어 능력은 갖춰야죠.’


우석은 놀란 토끼눈이 된 천마에게 말했다.


‘밤에 천마님이랑 대련할 때 보면 천마님은 무조건 스탠딩 상황에서 타격으로 승부를 보시더라고요. 확실히 타격적인 부분에선 큰 도움이 되지만... 아쉬움이 있었어요.’


무림과 현대의 MMA는 싸움의 성격이 달랐다.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 앞에서 그라운드 싸움은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누구나 총을 한 자루씩 들고 다니는 셈이었으니까.

내공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날붙이를 소지한다.

웬만해선 그라운드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하여 그 대단한 무공이라고 해도 레슬링이나 주짓수 같은 형태는 발전하지 못했다.

해봐야 금나수나 점혈, 지법 정도.


-근데 여기서 그 아쉬움을 채울 수 있다 이거냐?


‘맞아요. 왜냐면....’


우석의 눈길이 체육관의 벽면으로 향했다.

그곳엔 올림픽에서 레슬링을 하고 있는 젊은 박정열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박정열 관장님은 우리나라에서 레슬링을 제일 잘하던 사람 중 하나였거든요. 게다가 MMA에서 적용하는 방법까지 아는 엘리트 레슬러는 많지 않죠.’


-음, 확실히 움직임이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 있더군. 내공이 없는데도 근육만으로 그런 속도를 낸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야.


천마의 입에서 박정열의 칭찬이 나왔다.

이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박정열은 마흔이 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력으로 우석과 몸으로 부딪치며 지도해줬다.

이렇게 열의를 가지고 직접 운동하는 모습은 팀 블러드의 코치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관장님.”


“예, 얘기해요.”


박정열은 우석이 그의 체육관에서 잠시 운동을 하기로 했음에도 여전히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혹시 팀은 아직 운영 하십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제는 선수도 한 명밖에 안 남았네요. 그 친구가 은퇴하고 나면 끝이라고 봐야겠죠.”


박정열이 운영하던 팀 그리즐리는 점점 내리막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한때 명문팀이라고 불렸지만 국내에서 활동하기 힘든 팀에 굳이 붙어있으려는 팀원은 많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인원이 줄어들고 이제는 선수 한 명만 남은 팀이 된 것이다.

박정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석은 그 모습이 전사의 길 탈락 전화를 받았을 때의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저 팀 그리즐리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석의 물음에 박정열의 동공이 커졌다.

근 몇 년간 팀 그리즐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상황은 우석도 마찬가지였다.

피영욱의 입김이 닿는 팀이라면 들어갈 수 없었다.

서로가 비슷한 처지인 것이다.


“소문, 들어서 알잖아요? 우리 팀에서 국내 격투기 단체 경기 뛰기 힘든 거. 그리고 강우석 선수 전적...이면 외국 단체에 들어가기도 조금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박정열은 우석에게 가급적 상처가 되지 않게 답을 했다.

우석을 걱정하는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는 말이었다.


-지금 저 말이 네놈이 너무 좁밥이라는 거지? 그래서 여기 소속으로는 경기가 안 잡힐 거라고. 푸흐흐! 아주 정직한 자였구나!


하지만 아주 친절한 해석자가 우석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해줘서 박정열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끄응...!’


우석은 천마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 박정열에게 답했다.


“그건 제가 생각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석의 시선은 체육관 한쪽에 던져둔 핸드폰으로 향했다.


작가의말

언젠가 우석이도 내공을 키워 지건을 쏘는 날이 오기를....


* * *


달아주시는 모든 댓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다만 후에 나올 이야기의 스포가 될까봐 따로 답댓글은 지양하고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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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오늘보다 더 +6 21.03.14 8,159 122 12쪽
19 특별 강사 +4 21.03.13 8,408 125 13쪽
18 탈락 +6 21.03.12 8,372 126 13쪽
17 진흙탕 싸움 +3 21.03.11 8,377 120 12쪽
16 싸움귀신이라면 +4 21.03.10 8,505 117 12쪽
15 ㅅㅋㅊㅇ +4 21.03.09 8,546 129 14쪽
14 봐주고 있는 건가? +2 21.03.08 8,607 127 14쪽
13 새로운 +6 21.03.07 8,637 140 12쪽
12 타이밍이 좋았다 +2 21.03.06 8,621 132 14쪽
» 팀 그리즐리 +4 21.03.05 8,718 126 13쪽
10 +3 21.03.04 8,699 132 12쪽
9 반사이익 +3 21.03.03 8,707 134 14쪽
8 마지막 날 +2 21.03.02 8,822 127 14쪽
7 불공평 +3 21.03.01 8,949 129 12쪽
6 생존 미션 +2 21.02.28 9,057 142 12쪽
5 전사의 길 +7 21.02.27 9,425 135 13쪽
4 엄청나다 +6 21.02.26 9,697 134 14쪽
3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14 21.02.25 10,192 130 13쪽
2 환각? +12 21.02.24 10,565 139 12쪽
1 최약체 +15 21.02.24 12,749 13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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