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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천마님 : 잽 쳐!

웹소설 > 작가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2.19 20:30
최근연재일 :
2021.04.16 06:20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360,607
추천수 :
5,673
글자수 :
325,396

작성
21.02.24 22:20
조회
12,748
추천
135
글자
10쪽

최약체

DUMMY

-둥둥...! 둥둥...!


북을 베이스로 한 비장한 음악이 재생됐다.

스피커를 통해 울리는 묵직한 진동에 맞춰 강우석의 심장도 함께 박동했다.

짧은 머리에 다부진 몸.

MMA용 오픈 핑거 글러브를 착용하고 있는 그는 연신 심호흡을 했다.

대기실 밖에서는 벌써 환호성이 가득했다.


“나가자.”


세컨드를 봐주기 위해 온 코치가 우석의 등을 두드렸다.

이에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대기실을 나섰다.

경기장 내부 커다란 디스플레이에는 프로필이 떠올라있었다.


대한민국

강우석(Kang Woo Seok)

팀 블러드

전적 4전 4패


우석이 나타나자 실내를 채우던 환호 소리가 조용해졌다.

그것은 그를 위한 함성이 아니었으니까.

그 흔한 가족의 응원소리조차 없었다.

국내 종합격투기의 ‘최약체’ 강우석.

넓은 경기장 안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아~ 블루코너의 강우석 선수가 입장합니다.]

[MMA 4전을 치른, 제법 경험이 있는 선수죠?]

[단단한 맷집 덕분에 금강불괴라는 별명까지 붙은 강우석!]


해설위원의 부연설명, 특히 금강불괴라는 별명이 언급될 때 객석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데뷔하는 선수가 레드코너라는 거, 아주 이례적이거든요.]

[그렇죠. 보통은 도전자, 언더독이 블루코너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는 이제 MMA 첫 경기를 갖는 최정 선수가 레드코너에 서서 먼저 입장을 했습니다.]


케이지 안에는 이미 젊은, 어쩌면 어리다고까지 할 수 있는 청년이 손목, 발목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긴장감이 일절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오늘 종합격투기 경기를 처음 치르는데도 질 것이란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입식 타격에서 훌륭한 성적을 보이고 넘어온 선수를 그만큼 대우해준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되면 블루코너가 된 강우석 선수의 소속팀에서 항의를 할 법도 한데요. 큰 이슈 없이 진행이 되었다는 건 팀 블러드에서도 묵인을 했다고 봐야겠네요.]


우석은 해설위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하... 결국 팀에서도 날 저버렸나....’


그가 혼자라고 느끼는 이유.

함께 온 코치마저도 오롯이 그의 편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스윽


비참한 기분에 가라앉던 우석은 바세린의 차가움을 느끼고 정신이 들었다.

어느새 스태프들이 찢어지기 쉬운 부위에 보호용제를 바르고 있었다.

우석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바세린과 뒤섞이는 걸 느꼈다.


“후우.... 할 수 있다...!”


우석이 작게 읊조렸다.

심장이 쉬이 안정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오늘 경기는 그의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프로 데뷔 후 4연패.

단 1승도 없는 패배의 연속.

5연패를 한 선수를 써줄 격투기 단체가 과연 있을까?

MMA 경기를 처음 뛰는 상대에게 레드코너를 지정한 것만 봐도 답은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번 시합마저도 5경기 계약이 아니었다면 배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석아. 연습한대로 해. 가드 바짝 올리고. 넌 한 방이 있잖냐.”


“아... 예. 알겠습니다.”


코치가 진심이 별로 보이지 않는 투로 말했다.

우석은 뭐라 한 마디 대꾸를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다른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그는 복잡한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리고 케이지 쪽으로 걸음을 뗐다.


-퉁, 퉁, 퉁


철제계단을 올랐다.

시커먼 두 기둥 사이로 열려있는 케이지의 문.

우석에게는 마치 그를 씹어 삼키려는 호랑이의 입처럼 느껴졌다.

그는 애써 웃으며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웠던 케이지 밖과 상반된 내부.

환한 조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팔각형으로 벽을 치고 있는 철조망.

각 기둥과 바닥엔 광고 배너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입장한 우석의 맞은편엔 최정이 탄력 좋은 바닥을 시험이라도 하듯 제자리에서 통통 뛰고 있었다.


“두 선수 중앙으로.”


주심이 두 선수를 불렀다.

그는 마지막으로 글러브와 마우스피스, 낭심 보호대 등을 확인했다.

이후 후두부 타격 금지나 케이지를 잡지 말라는 등의 반칙에 대한 내용을 읊은 뒤 경기가 시작됐다.


-툭


시작과 동시에 최정이 로우킥을 날렸다.

우석은 가볍게 다리를 들어 방어했다.


‘역시 킥 게임을 주력으로 삼는구나.’


우석의 눈이 빛났다.

경기 흐름이 그의 예상과 비슷하게 흘러갔으니까.

최정은 로우킥과 프론트킥을 마치 잽처럼 사용했다.

그는 무에타이를 베이스로 입식 타격계를 휩쓸었던 선수였다.

이 때문에 우석은 최정과의 경기를 준비하며 그의 입식 타격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았다.

볼 때마다 그의 타격 실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MMA니까.... 나한테도 유리한 점이 있어.’


우석이 풋워크를 적극 활용하며 거리를 벌렸다.

종합격투기의 케이지는 입식 타격이 펼쳐지는 링에 비해서 넓다.

한쪽에서 계속 피한다면 치열한 타격 공방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최정이 적극적으로 킥을 차면 우석은 그의 공격 거리를 벗어나버렸다.


-우우우!


미적지근한 경기 양상에 관객이 야유를 던지기 시작했다.

해설위원들도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냈다.


[아~ 강우석 선수. 오늘 아주 소심한 태도로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효 타격은 서로 없는데요. 대신 점수는 당연히 경기를 공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최정 선수에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우석은 관객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상대의 표정을 살필 뿐이었다.


‘먹히나...?’


아니나 다를까, 최정의 미간이 좁혀졌다.

처음에는 MMA식 스탠스로 무게중심을 낮췄는데 킥을 차며 계속 움직이니 보폭이 줄어들고 무게중심이 올라갔다.

입식 타격에서 넘어온 직후의 선수들이 으레 하는 실수 중 하나였다.


‘제발 눈치 채지 마라!’


약을 올리듯 공격을 피해 다니던 우석은 어느새 코너에 몰렸다.

최정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을 했는지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였다.

우석도 그에 맞춰서 소극적인 반격을 했다.

급하게 던지는 스트레이트와 훅 등이 최정의 상체를 두드렸다.

눈에 훤히 보이는 허접한 주먹들.


[아~ 강우석 선수! 결국 잡혔어요! 오늘 경기 내용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막무가내로 큰 펀치들을 날립니다!]

[상대는 입식 격투에서 잔뼈가 굵은 최정이죠? 역시 숄더롤에 상체 움직임으로 간단히 처리하네요!]


최정이 복싱에서의 방어 기술을 사용하자 해설위원들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종합격투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누구보다 심장이 뛰는 것은 우석이었다.


‘지금이다!’


도망 다니다 코너에 몰린 것.

상체 위주로 공격을 한 것.

모두 상대의 타격 스위치를 올리기 위한 셋업이었다.

그리고 최정은 어느 순간부터 태클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자세를 잡고 있었다.


-슉


우석이 가볍게 잽을 던졌다.

최정은 상체를 살짝 뒤로 빼며 손쉽게 회피했다.

하지만 우석의 노림수는 타격에 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자세를 낮춰 최정의 왼쪽 다리를 잡았다.

싱글 레그 태클을 건 것이다.


-쿵


우석의 테이크다운 시도는 성공하는 듯했다.

바닥에 쓰러진 최정이 우석의 상체를 단단히 붙잡기 전까지는.


‘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몸이 한 바퀴 굴렀다.

그 결과 최정이 상위 포지션을 차지했다.


-우와아아!


환호하는 관객들.

순간적으로 펼쳐진 상황에 다들 놀랐다.


[최정~ 최정! 입식 타격계의 샛별이 MMA의 스타가 되는 순간입니다!]

[강우석 선수의 테이크다운이 성공하는 순간 최정 선수가 다리로 강우석 선수를 다시 넘겼어요! 대단한 순발력입니다! 예전 코리안 언데드 전창석 선수 경기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온 적 있죠?]


타격, 그래플링 그 어떤 면에서도 우석은 최정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해설위원들은 이미 경기가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태클에 대한 대비를 안 한 게 아니었어...! 자신감이었던 거지!’


순식간에 스윕당한 우석은 다리로 최정의 몸통을 감쌌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클로즈드 가드 포지션을 만드는 게 전부였다.

최정은 망치로 내려치듯 무자비하게 주먹을 꽂았다.


-퍽! 퍽!


우석은 몸을 비틀면서 파운딩을 피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 몸부림은 결말을 고작 몇 초 유예시켜줄 뿐이었다.

얼굴 곳곳이 붉게 물들고 잇몸이 터져 피가 배어나왔다.


-쾅!


이윽고 우석의 턱에 주먹이 제대로 적중됐다.

바닥에 뒤통수를 강하게 부딪힌 우석은 눈앞에서 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그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쯧쯧... 이런 수준 미달의 개싸움이라니.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석의 머릿속에 울린 것은.

머리를 얻어맞아 의식이 흐릿한데 반투명한 할아버지가 공중에 떠있었다.

노인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위기 중에 나타난다는 각성 같은 것일까?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아닌데...?’


-다리를 위로 뻗어!


우석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정체불명의 노인이 소리쳤다.

우석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최정의 몸을 감싸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

운신이 자유로워진 최정은 완전히 몸을 일으켜 위력적인 파운딩을 날리려 했다.

동시에 우석의 발은 업킥인지 가드 포지션을 빠져나오려는 동작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움직임을 보였다.

어쨌든 하복근 운동을 하는 것처럼 두 다리는 하늘을 향해 뻗었고....


-퍽!


잔뜩 흥분한 최정은 무게를 실어 주먹을 날리려다 올라온 발에 턱을 갖다 박은 꼴이 됐다.


“크흣!”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최정이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우석은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일단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퍼억


최정은 선 채로 그로기 상태가 되어 가드를 올리지도 못했다.

이내 주심이 달려들어 온몸으로 막아서며 양손을 머리 위로 흔들었다.

경기 종료를 의미하는 손짓.


“어...?”


그제야 우석은 스스로가 승리했다는 걸 인지했다.


“으아아아!”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그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가슴을 울리는 진동이 그에게 이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눈앞엔 희끗한 노인이 둥둥 떠있었다.


-염병. 마정대전이라도 이겼냐? 삼류낭인만도 못한 놈 겨우 잡아놓고.... 쯧쯧....


작가의말

남의 할아버지가 주인공 버프를 걸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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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지막 날 +2 21.03.02 8,821 127 14쪽
7 불공평 +3 21.03.01 8,948 129 12쪽
6 생존 미션 +2 21.02.28 9,056 142 12쪽
5 전사의 길 +7 21.02.27 9,424 135 13쪽
4 엄청나다 +6 21.02.26 9,696 13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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