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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천마님 : 잽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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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2.19 20:30
최근연재일 :
2021.04.16 06:20
연재수 :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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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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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3
글자수 :
325,396

작성
21.02.24 22:20
조회
10,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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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환각?

DUMMY

“너 미쳤어?”


체육관에 불호령이 터져 나온다.

규모가 상당한 대형 체육관.

중앙에는 종합격투기 경기용 케이지와 동일한 케이지가 자리 잡고 있다.

벽 한쪽엔 챔피언 벨트 하나, 그리고 벨트를 매고 있는 사진이 세 개 걸려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젊은이들이 뜨거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샌드백을 두드리고, 체력훈련을 하고, 미트를 치며 꿈을 향해 나아간다.


한편, 벨트가 걸려있는 벽의 반대쪽.

그러니까 챔피언 벨트와 가장 먼 곳 구석에서 한 청년이 꾸지람을 듣고 있었다.


“예, 뭐....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 같긴 합니다.”


퀭한 얼굴로 대답하는 청년.

그 나름대로 진심이 담긴 말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더 큰 화였다.


“강우석이 이 새끼가... 뽀록으로 한 번 이기니까 진짜 정신줄을 놨나....”


청년을 혼내고 있는 것은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는 붉은 글씨로 Team Blood라고 적혀있다.


‘그래도 경기에서 첫 승리까지 했는데 여전히 천덕꾸러기 취급이네.’


청년, 강우석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바로 앞에서 코치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허어, 무관 시설이 아주 좋구나! 나 때는 말이야, 훈련할 공간이 없어서 산에 올라가고 했다 이 말이야.


우석의 눈에 체육관 구석구석을 들쑤시고 다니며 감탄을 연발하는 반투명한 노인이 보였다.

지난 시합 때부터 나타났는데,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진짜 내가 미친 게 분명하지. 환각이 보일 정도니까....’


연신 우석에게 말을 걸어오는 환각.

그는 대답을 하면 진짜 완전히 미친놈이 될까봐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깨어있을 때는 오히려 상황이 나았다.

잠에 들면 꿈에까지 나타나 그를 괴롭혔다.

생긴 건 할아버지인데 꿈속에서 기운이 어찌나 좋던지 도망가도 바로 따라잡고 방어를 하려고 해도 귀신같이 빈틈을 노려 우석을 두들겨 팼다.


“경기 끝나고 열흘 지났으면 이제 몸도 다 회복이 됐을 건데. 체중 관리 안 해? 이제부터 시작인 건데 똑바로 해야 될 거 아니야? 어? 너 이런 식이면 다음 시합 잡아주기 힘들어.”


코치가 화를 내는 이유는 지난 경기 이후로 변한 우석의 태도였다.

으레 MMA 시합이 끝난 뒤로는 몸에 쌓인 대미지를 회복하는 기간이 주어진다.

그 이후에는 다시 훈련에 돌입하게 되는데, 우석은 식사량을 줄이지 않으면서 근육을 키우는 데에 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그가 속한 체급은 페더급.

65.5kg의 체중을 맞추기 위해서는 근육을 너무 늘리지 않는 게 좋았다.


“코치님.”


“왜!”


“저 체급을 올리면 안 될까요?”


우석이 어렵게 꺼낸 말에 코치는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석의 키는 174cm.

심지어 팔이 별로 길지 않고 몸통도 두꺼운 체형이다.

그나마 다리는 제법 길었지만 종합격투기에 유리한 몸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라이트급으로 올라가겠다고? 하아... 우석아, 체급이라는 게 그냥 무작정 정하는 게 아닌 거 알잖아. 팀 코치진이 다 니 체형이랑 리치, 타격 스타일을 고려해서 정해줬는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안 되지.”


우석이 평소와 다른 기행을 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 코치가 이번엔 부드럽게 설득을 하려 했다.


“이번에 만약 라이트급 경기였으면 운빨로도 절대 못 이겼을걸? 4~5키로 차이가 그냥 숫자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닌 거 알잖아? 선수가 지도자를 믿어야지. 우리 말 들으니까 봐봐. 결국 1승 따내는 거.”


-내 말을 들은 덕분에 이겼지. 그리고 니 몸뚱아리는 지금 뼈만 겨우 남아있는 몰골이고.


허공에 떠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저 유령 같은 노인.

우석은 그것의 정체가 자신의 속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경기 중에 머리를 세게 맞으면서 살짝 맛이 간 덕에 이런 형태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이다.


‘확실히... 계체량이 끝나고 나서 리바운드를 해도 힘이 나질 않긴 했어.’


체급을 정했다고 해서 평상시에도 체중을 체급에 맞추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계체량 전날이나 전전날 즈음부터 수분과 몸속의 탄수화물을 빼내서 일시적으로 무게를 낮추는 작업을 한다.

계체량을 통과한 다음 시합 때까지 물과 음식을 먹으면서 리바운드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평상시 컨디션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런데 우석은 리바운드 이후에도 컨디션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몇 차례 코치들에게 힘듦을 호소해도 원래 그런 거라는 답변이 나올 뿐.

그런 와중에 계속해서 환각이 유혹했다.


-이거, 살아있는 게 용하군.

-몸 안에 힘이라고는 실오라기 하나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데 뭘로 버티고 있는 거지?

-주먹을 사용하는 놈이 이게 대체 무슨 꼴인지.... 쯧쯧쯧.

-몸에 맞는 훈련을 해라!


그래서 우석은 자기도 모르게 시합 후 회복 기간이 지나고도 계속 식사량을 늘리고 근력 운동을 추가한 것이다.

페더급 체급을 위해서 코치진이 제시한 훈련과 배치되는 행동이었다.


“솔직히 라이트급으로 뛰어보지도 않았고 진짜 제가 페더급이 딱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체중 올려서 스파링이라도 뛰어보게 해주십시오. MMA는 숫자놀음이 아니잖습니까!”


“임마, 여기 코치들이 키워낸 선수만 해도 몇 명인데....”


“무슨 소란이야!”


우석과 코치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우레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짙은 눈썹.

고집스러운 입매.

살집이 제법 있음에도 단단해 보이는 몸.

비단 외형뿐 아니라 기세에서 나오는 아우라 마저 강인한 인물이 다가왔다.


“과, 관장님...!”


우석에게 호통을 치던 코치의 목소리가 급격하게 작아졌다.

팀 블러드에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

감독 겸 체육관 관장 피영욱의 앞이었으니까.

대한민국 격투기계에서 그의 입지는 대단했다.

국내 격투기 단체의 챔피언 출신이며 이제는 팀 블러드를 통해 세 명의 챔피언을 배출한 인물.

코치는 피영욱에게 다가가 우석과 나누던 이야기를 전했다.


“체급을?”


피영욱의 표정에 기분 나쁜 기색이 역력했다.


‘아, 큰일 났다. 관장님 자존심 건드렸구나.’


우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피영욱이 그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그의 자존심이 큰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선수 시절, 시합에서 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설욕전을 했고 다시 승리를 가져왔다.

팀을 운영할 때도 만들어진 지 그리 오래된 곳이 아니지만 절대 다른 팀에게 굽히는 법이 없었다.


‘나를 블루코너로 넣은 것 빼고....’


어떻게 보면 우석을 아예 제대로 된 팀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했다.


-지 자존심이 세면 그만큼 제자를 제대로 키워야지! 에잉!


환각이 우석의 속내를 대변해줬다.


“강우석.”


피영욱이 낮은 목소리로 우석을 불렀다.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예...!”


“우리 팀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세계적인 무대로도 선수를 많이 배출했고, 국내 단체에서 챔피언을 세 명이나 만들었다.”


그의 눈빛은 몹시 싸늘했다.


“이런 실력의 지도자들을 못 믿겠다는 거냐? 니가 훈련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는 건 아니고? 같은 코치진에게 훈련받는데 혼자서만 연달아 지고 있어. 그런데 겨우 한 번 이긴 직후에 한다는 소리가.... 하.”


피영욱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면 어디 원하는 대로 라이트급 맛을 봐봐라.”


관장은 체육관 내부를 쭉 훑어보았다.

재미난 구경이라도 생긴 듯 집중되었던 이목이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양석현!”


“넵, 관장님!”


피영욱이 샌드백을 치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을 불렀다.


“우석이랑 스파링 한 번 뛰어줘라. 라이트급으로 올라가고 싶다네.”


그의 말에 양석현이 피식 웃었다.

우석을 위아래로 훑으며 노골적으로 깔보는 표정을 짓는다.

족히 180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

어깨도 벌어지고 팔도 길다.

우석과 리치 차이가 머리 하나 만큼은 날 듯했다.

누가 봐도 격투기를 하기에 적합한 체형이었다.

게다가 날카로운 눈빛과 기세까지.


-흐흐,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제야 알겠군.


강인한 외형의 양석현을 살핀 환각이 의미를 알 수 없는 혼잣말을 뱉었다.


* * *


라이트급이 명칭 때문에 가벼워 보이지만 70kg이 상한선인 체급이다.

평상시 체중은 80kg대까지도 올라가기 때문에 강력한 선수들이 많다.

두터운 선수층 덕분에 지옥의 체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스파링을 위해서 케이지 안에 들어간 우석은 평체 82kg의 양석현을 보면서 페더급과의 차이를 실감했다.

시합 이후 회복기간이 지난 지금 자신의 몸무게는 73kg이다.

키, 파워, 맷집 그 어떤 것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저거 봐. 거의 조카랑 삼촌 싸움 아니냐?”

“석현이 형이 몇 대 맞아주고 시작해야 될 거 같은데? 크큭.”

“전적도 3승 무패랑 1승 4패 차인데.... 석현이는 아마 KO승 하나만 더 만들어도 WFC 입성 가능할걸.”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던 팀원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운동이나 하라고 다 쫓아냈을 피영욱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아무래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재질이 뛰어나군.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

-벌써부터 약점을 파악하려는 거 같네.

-근육이 상당히 잘 자리 잡혔어. 권각을 내지르기에 적합한 형태야.


환각이 연신 칭찬을 뱉었다.

우석의 상대인 양석현을 향해서.


‘하하.... 그냥 두들겨 맞을 준비나 하란 뜻이네.’


우석은 내면의 소리마저도 패배를 직감하고 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한탄했다.


-어? 방금 내 말에 대답했어. 그렇지? 역시, 너... 내가 보이는구나? 크흐흐흐.


양석현에게 붙어서 이곳저곳 뜯어보던 노인이 순식간에 우석의 곁으로 날아왔다.

코치에게 욕먹고 관장에게 찍힌 상황이다.

우석은 어차피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기에 환각에게 대꾸를 해주었다.


‘그래 보인다, 보여! 그러니까 정신없게 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줘. 지더라도 온 힘을 다 쏟고 져야지...!’


속으로 생각만 해도 뜻이 전달되는 걸 보니 더더욱 환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라면 할아버지의 모습이어도 한 소리 하는 게 찝찝하지 않았다.

열흘 동안 무시당하다가 드디어 대답을 얻어낸 게 기쁜 것일까?

환각이 우석의 앞에 서서 웃음을 터트렸다.


‘스파링에 방해는 되지 말아줘라, 제발.’


-스파링? 아아, 비무를 말하는 것이냐?


‘하.... 무협지 컨셉의 환각이라니. 무협지는 학생 때나 읽고 말았는데.... 파이트머니 정산 받으면 꼭 병원엘 가봐야겠네.’


우석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는 몸을 풀었다.

상대는 팀 블러드 라이트급에서도 수준이 높은 선수다.

어차피 승산은 없는 스파링.

그가 해야 할 것은 지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크흐흐.... 이기기 어려워 보이지?


스트레칭 하는 그에게 깐족대는 환각.


-어떻게, 이기게 해줘? 다시 한 번 도와줘봐? 지난번처럼?


저리 비키라는 말에도 계속해서 시야를 가린다.

우석은 만약 싸움이 시작돼도 환각이 방해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도와줄 건데. 그럴 능력이나 있어?’


진짜로 도움을 받으리란 기대는 없다.

격투기는 결국 자신의 힘으로 싸우는 것.

그저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 케이지 밖으로 나가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대꾸를 해줬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내가 말 안 했나? 하늘 아래 나보다 잘 싸우는 놈은 없다고.


그러더니 환각이 또 다시 미친 소리를 내뱉는다.


-나, 천마야.


작가의말

내 환각은 컨셉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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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ㅅㅋㅊㅇ +4 21.03.09 8,546 129 14쪽
14 봐주고 있는 건가? +2 21.03.08 8,607 127 14쪽
13 새로운 +6 21.03.07 8,637 140 12쪽
12 타이밍이 좋았다 +2 21.03.06 8,621 132 14쪽
11 팀 그리즐리 +4 21.03.05 8,717 126 13쪽
10 +3 21.03.04 8,699 132 12쪽
9 반사이익 +3 21.03.03 8,707 134 14쪽
8 마지막 날 +2 21.03.02 8,822 127 14쪽
7 불공평 +3 21.03.01 8,949 129 12쪽
6 생존 미션 +2 21.02.28 9,057 142 12쪽
5 전사의 길 +7 21.02.27 9,425 135 13쪽
4 엄청나다 +6 21.02.26 9,697 134 14쪽
3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 +14 21.02.25 10,192 130 13쪽
» 환각? +12 21.02.24 10,565 139 12쪽
1 최약체 +15 21.02.24 12,749 13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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