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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9.06 23:24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12,879
추천수 :
708
글자수 :
1,460,551

작성
23.06.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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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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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06. 한 입만

DUMMY

별동대가 한바탕 휩쓸고 나간 텔제민 본대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특히 골락의 초월자 아우레우스는 수뇌부 회의를 위해 막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주먹에 히펠을 두른 채로 들어왔다.


"이제부터 골락은 따로 움직입니다. 그렇게 아세요."


그녀는 누구라도 제 말에 토를 달면 죽이겠다는 의미인지 히펠을 두른 주먹을 치켜들고는 막사를 쭈욱 훑었다.

막사를 살피던 시선이 마침내 텔제민과 골락 연합군의 총지휘관인 아돌 앙귀스에게 가서 멈췄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얼굴이었다.


잠자코 있던 아돌이 그녀에게 말했다.


"우선 앉지."

"아니. 더 이상 나눌 이야기는 없습니다."


적들은 본대에서 탈출할 때 뿐만 아니라 본대에 몰래 숨어들 때에도 물감을 쓴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시간을 들여 히펠을 쌓아야 가능한 공격을 적들은 등장하자마자 날려댄다.

만약 처음 히펠을 쌓을 때부터 본대에 있다면 히펠렌스들이 눈치를 챘을 것이니 히펠을 쌓는 중에는 본대에 없었다는 말이 된다.


히펠을 다 쌓은 이후에 환한 빛을 내면서 본대에 숨어드는 것도 불가능하니 남은 가능성은 결국 저들이 나갈때처럼 물감을 써서 들어왔다는 소리다.

이걸 알게된 이후 이들은 부대 내를 한 번 훑었지만 물감과 비슷한 것은 찾을 수도 없었다.


이어지는 결론.


'적들 중 한 명이 물감을 가지고 먼저 부대 내에 잠입한다.'


그리고 이게 뜻하는 바는 적들이 본대 근처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도 어쨌든 두 발로 뛰어서 닿을 정도의 거리라는 소리다.

어느쪽에서 왔는지 방향을 특정할 수 없는 이상 수색해야하는 범위가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찾아내기가 아주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텔제민 첫 번째 검의 답답한 대처는 이제 신물이 나니 내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나가서 적들을 찾아 그 목을 부러뜨려야 속이 좀 시원하겠어."


사실 진작 나온 말이었다.

병력을 풀어 주변을 수색하자고.

하지만 아돌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아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것이다.


"나는 앉으라 했네만."

"뭘 잊고 있나본데 첫 번째 검과 나는 협력 관계입니다. 그쪽이 내 주인이 아니라."


꾸준히 저들을 괴롭히는 적들을 지척에 두고도 아우레우스가 지금껏 참은 이유는 아돌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텔제민의 병력이 골락보다 훨씬 더 많기도 하고 히펠렌스의 수도 더 많았다.

계약 자체는 골락의 다섯 시장과 아돌,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이뤄진 것이지만 아돌의 심기를 건드려 관계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쪽에게 군에 대한 통솔권을 넘긴 것은 어디까지나 이번 전쟁으로 걸린 것이 많은만큼 괜한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였지 그쪽이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우레우스의 불같은 성격에 히펠렌스라는 위치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머리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녀 역시 상인들의 나라라 불리는 골락의 시장을 맡고 있는 자다.

손익에 민감한 자고 머릿속으로 계산이 멈추지 않는 자라는 뜻이었다.


"겨우 여섯 명 정도에 휘둘리는 지휘관 아래에 있다면 이번 전쟁의 결과는 안 봐도 뻔하지."


사실 여기서 텔제민과 갈라서겠다는 것도 그녀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여기서 끝나면 골락은 일을 벌여놓고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끝난다.

아니.

연합전 이후로 요엠가움의 위세가 줄지 않는다면 오히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

여기서 골락과 텔제민이 갈라선다면 요엠가움이 건재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그러니 그녀가 지금 그녀가 하는 것은 굳이 말하면 일종의 확인이었다.

과연 이대로 아돌 앙귀스를 따르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제일 이상적인 그림은 아돌이 정신을 차리고 덩달아 아우레우스의 지분이 커진 상태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반대로 뻔히 패배가 예견된 전쟁에 끝까지 함께하다가는 단순히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골락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굳이 질 것이 뻔한 싸움을 하는 취미는 없으니 아주 갈라지는 것도 괜찮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 말한 그녀는 잠시 아돌의 반응을 살폈다.

발끈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그는 비뚜름한 조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다섯 시장의 동의를 얻고 하는 일은 아닐텐데?"


아우레우스는 아돌이 적에게 붙잡혔을 때 어디 머리를 크게 다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정도 의견 취합도 하지 않고 왔을까?

골락 다섯 개의 도시 중에서 초월자인 그녀와 가장 부유한 도시의 시장인 에텔의 발언권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나라 차원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시장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텔제민과 함께하기로 결정할 때에도 모든 시장이 모여 결정을 했고 그건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용병왕과 먼저 떠난 에텔 시장을 제외하고 모든 시장과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달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다른 시장들의 의견도..."

"한 사람 더 있지 않나."

"... 에텔 시장, 그는 아직 소식이 없..."

"왔네."


왔다고?

언제?

아니 그보다 왔으면 왜 그동안 우리를 찾지 않았지?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의문에 대한 답을 채 듣기도 전에 그녀 뒤로 누군가 들어왔다.

이전보다 더 말랐지만 구부정한 어깨에 퀭한 눈빛까지 그녀가 익히 아는 것이었다.


"에텔 시장... 당신."

"아."


아우레우스를 본 에텔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치 잊고 있던 것이 다시 떠오른 듯한 표정이었다.


"아... 가 아니지. 몸은 왜 이렇게 상했어? 함께 갔던 요쿨라토르... 그 용병왕은 어디있고?"


에텔을 본 그녀가 질문을 쏟아냈지만 에텔은 그녀는 무시하고 아돌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인가?"

"이거라니. 그래도 그쪽과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사람인데."


에텔크리시.

처음 아돌에게 대현자의 뜻을 알리며 배신을 종용했던 자.

사실은 제사장이었던 그는 사흘 전에 은밀히 본대로 돌아왔었다.


"에텔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 하는 말은 무슨 말이고?"


다른 병사들 모르게 본대에 돌아오는 것은 같더니 보아하니 골락 측에도 돌아왔다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돌아온 것도 숨겼고 만나고도 제대로 상대 해주지 않으니 아우레우스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도 했다.

더군다나 지금 에텔이 말하는 본새가 그녀가 알던 시장이었던 에텔과는 달랐다.


푸둥푸둥한 볼에 가려진 그녀의 눈에 옅은 파문이 일었다.

파문은 이내 에텔 뒤로 따라 들어오는 여자를 보고 한층 더 커졌다.

아우레우스를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았던 삐쩍 마른 제사장, 레플루앙시였다.


"아저씨. 잠깐 기다려 달라고 내가 했는데. 먼저 가버리면 어떻게 해."


아우레우스의 머릿속에 사흘 전의 일이 스쳐지나갔다.

적들이 제사장도 이길 정도로 강하다며 겁먹은 아돌이 짜증이 난 그녀는 제사장이라는 자가 어떤지 확인해보겠다며 레플루앙시를 찾아갔고 그 결과 레플루에게 단번에 제압 되었었다.


이후 아돌에게 짜증이 나니 그녀를 죽이네 마네 하던 레플루가 갑자기 그녀를 한쪽에 던져두고는 밖으로 나갔었고 말이다.

그때 했던 말이 분명


'아저씨.'


였다.


"설마... 당신."


아우레우스의 떨리는 목소리에 답을 한 것은 아돌이었다.


"저 자도 제사장이다. 몰랐나보군."

"그럴리가... 그는 골락에서 자란..."


에텔이 보란듯이 피워올리는 새까만 힘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아돌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우레우스를 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나? 저들은 우리 주위에 있으며 언제든 우리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들이야."


사실 수뇌부끼리 회의를 하는 곳에 제사장들이 참석하지는 않는다.

제사장들이 현재 이곳에 있는 이유는 아돌은 일부러 에텔을 이곳에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는 아우레우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그녀의 성격상 제사장에게 한 번 졌다고 꼬리를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계를 넘겠다고, 두려움을 극복하겠다고 오히려 더 격렬하게 달려들 확률이 높았다.

예전에 아돌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그게 괜찮았을지 몰라도 지금 저들 제사장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덤벼들었다가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헛되이 죽느니 차라리 저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강한지, 겨우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게 설령 한 사람의 자신감이며 노력이며 그 모든 것을 부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평소라면 누가 죽든 말든 아돌은 신경쓰지 않았을 테지만.


- 자네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용은 이미 죽었다.


테노부스네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붙잡히고 들었던 말이 계속 그의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었다.


제사장들이라는 자들은 실로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데 그런 제사장들을 이기는 자들이 있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세상 가운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제사장을 이기고, 결국 용의 껍데기를 쓴 파편까지 이기리라는 터무니 없어보이는 희망을 품은 자들 말이다.


지독한 어둠에 끌려다니는 것이 나약하기 그지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답을 알 수 없는 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삶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살다보면 언제가 답을 알게 되지 않겠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가 눈앞의 아우레우스를 살리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래도 일단 살아야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충격에 입을 다문 아우레우스와 함께 막사 안에 적막함이 내려앉았다.


아우레우스의 기를 죽여 목숨을 살린다는 목표를 이뤘기에 아돌은 더 이상 제사장들에게 볼 일이 없었지만 불러놓고는 아무것도 안하고 돌려보낼 수도 없었기에 아돌은 회의를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에텔이 아돌보다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이쪽에서 할 말이 있는데."


아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 제사장과 텔제민은 서로 협력하는 관계다.

그럼에도 굳이 '이쪽'이라며 선을 그었다.

단순히 에텔만의 화법일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나?"


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에텔은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바로 이곳을 습격하는 테노부스 일행을 죽이는 것이네."


애초에 제사장들이 한대륙에 한발 앞서 들어온 이유가 바로 혁명단들 때문이었다.

물론 요엠가움과 프로토케를 멸망시킨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나라를 통째로 멸망시키는 것은 화가 난 기만의 화풀이에 가깝고 원래 계획은 두 나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두 국왕을 죽이는 일이었다.


여기에 죽음의 숲에 깔린 마법을 없애는 것도 있지만 이건 유스티티엔이 해결하러 떠났으니 여기있는 자들이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하여튼.

지금 텔제민을 괴롭히고 있는 테노부스네를 처리하면 제사장들이 이곳에 넘어온 주된 이유 중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셈이다.

실제로 테노부스와 숨 가드나를 죽이면 다른 사람들 죽이는 거야 쉬운 일이었다.


"일단 핵심 전력인 저들을 죽이기만 한다면 텔제민이 요엠가움과 프로토케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이지."


에텔의 말에 아돌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래서?"

"그래.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이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고 싶은데."

"협력?"

"그래. 협력."


이어지는 에텔과 레플루의 말에 아돌이 느끼던 불길함이 덩치를 순식간에 키웠다.


"저들을 죽이려면 힘이 많이 필요한데 우리가 힘을 많이 썼거든."

"응. 맞아!"

"힘을 보충해야 하는데 말이야... 우리가 자네들을 좀 먹어도 되겠나?"

"많이도 아니고 그냥 조금만 먹으면 되는데!"

"한... 절반 정도면 될 거 같아."


두 제사장은 수만의 사람들을 먹겠다는 미친 소리를 태연한 얼굴로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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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207.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24.01.15 21 1 13쪽
» 206. 한 입만 23.06.05 26 1 12쪽
205 205. 어디에요 여기에요 23.06.02 88 1 12쪽
204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23.05.31 37 1 11쪽
203 203. 기억 셋 23.05.30 28 1 12쪽
202 202. 연합군 집합 23.05.25 34 1 11쪽
201 201. 싸움은 장비발 23.05.23 31 1 11쪽
200 200. 오스트랄로암사쿠스 23.05.22 51 1 11쪽
199 199. 왜 뼈는 때리고 그러세요 23.05.17 28 2 10쪽
198 198. 질척거리지 좀 마 +1 23.05.16 36 2 12쪽
197 197. 우쭐대는 거 꼴 보기 싫네 23.05.11 33 2 11쪽
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6 2 10쪽
195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23.05.10 35 2 11쪽
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6 2 15쪽
193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8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31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2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4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3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54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6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9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9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6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3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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