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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16 18:43
연재수 :
247 회
조회수 :
11,171
추천수 :
685
글자수 :
1,315,375

작성
23.04.24 21:58
조회
35
추천
2
글자
12쪽

186. 이래도 아니야

DUMMY

히펠렌스, 초월자, 최상급 기사.

호칭은 다양하지만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인류의 자랑스러운 검이었으며 희망이었다.

사람들이 누구를 제일 믿고 의지하는지 줄을 세워본다면 인류 최후의 보루라 여겨지는 대현자를 제외하면 히펠렌스는 단연코 제일 앞을 차지하는 이였다.


이는 연합전에 참전한 요엠가움의 병사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연합전이라는 두렵고 떨리는 전쟁에 병사들이 참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고 이 믿음을 갖게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요엠가움의 초월자들, 수호수들의 존재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자들이 쓰러져서 돌아오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 명도 아니고 여섯 명 모두 말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용해에서의 전투를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그저 왕과 그를 뒤늦게 따라간 수호수들이 알 수 없는 적들과 싸웠다는 것 말고는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왕은 돌아오자마자 말단 기사 한 명을 데리고 자리를 비웠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줘야 할 수호수들은 이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었다.


정보의 부재는 병사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함께 터무니 없는 소문으로 생산, 가공 되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이렇게 어수선한 승리의 벽.

요엠가움의 병사들이 불안에 떨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창인 때에 왕이 머물던 막사 안에는 수호수들이 모여있었다.


솔늑대.

룬잔나비.

피올빼미.

바위뿔소.

파도수리.

불거북.


나무뿔사슴을 제외한 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

룬잔나비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있으면 사기가 곤두박질 칠 거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말을 꺼내는 잔나비를 보며 뿔소가 코웃음치며 말했다.


"이미 바닥이다."

"... 뭐라? 내가 잘못 들은 거 맞소?"

"바로 경 정도 되는 사람이 잘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뭘 묻는 건가. 잘 들었다."

"아니 들리기야 잘 들렸소만... 대대로 캅카푸 대평야를 지켜온 요엠가움 최후의 방패 아르마 사토르 경의 입에서 나온 말이 진정으로 맞나 싶어서 말이오."


사토르 가문의 초월자 뿔소, 아르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미 사기는 바닥이고 우리는 이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 가서 뭐, 힘을 내라고 연설이라도 할 셈인가?"


그녀의 말대로 수호수가 전투에서 정신을 잃고 돌아왔다는 사실이 병사들에게 끼친 영향은 다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그 근간 자체를 뒤흔드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할 셈이오? 머리를 쓰지 못하게 몸을 굴리든지, 아니면 먹을 것을 푼다든지. 뭐든 해야하는 거 아니오?"


다른 이유로 사기가 떨어진 것이라면 그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잔나비의 말을 듣고 있던 올빼기가 말했다.


"그러면 몸이 힘들다 결국 죽겠구나. 배부르게 먹고 결국 죽겠구나... 뭐 이런 반응이지 않겠어요?"

"스피나 경. 자고로 사람은 입을 조심히 놀려야 하는 게요."

"주의... 하겠습니다."


잔나비의 착 가라앉은 말투에 올빼미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두 명 다 같은 히펠렌스 임에도 불구하고 위계가 명확하게 나뉘어져 있는 모양새였다.

이러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두 가문이 지키는 영지가 모두 텔제민을 상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텔제민으로부터 요엠가움을 지키는 영지 모이니아와 팔마.

그리고 이곳의 영주인 잔나비와 올빼미는 서로 좋든 싫든 엮일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누가 쳐들어왔고, 어디로 쳐들어왔으며, 방식은 어떠했는지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어찌보면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이런 관계에서는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주도권을 갖기 마련이다.

잔나비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자리에 올라 제 힘을 갈고 닦은 자라면 올빼미는 잔나비에 비하면 수호수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자였다.

영지의 부요함도 차이가 있어 언제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것은 올빼미 쪽이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잔나비가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뿔소는 이런 심각한 때에도 서열을 명확히 하려는 잔나비의 태도에 짜증이 났다.


"잡설은 집어 치우고. 때로는 내리는 비를 맞아야 할 때도 있는 거다. 지금이 바로 그때고."

"... 현 상황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데에는 저도 같은 동의해요."


올빼미가 조심스레 뿔소의 말을 지지하자 잔나비의 얼굴이 금새 울그락불그락 바뀌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조용."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늑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는 우리에게 이곳을 맡기셨으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늑대의 발언이 저의 말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는지 잔나비가 의기양양해지는 때였다.


"허나 그 전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네. 바로 경."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짚고 넘어간다는 겁니까?"


잔나비의 얼굴이 이제는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얼굴 표정을 이리도 다양하게 짓는 것을 보면 기사가 아니라 극을 해야하지 않았나 싶은 수준이었다.


"그 전투말이야..."


무슨 전투인지 제대로 말하지도 않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수호수들 모두 같은 전투를 떠올리고 있었다.

용해에서 벌어진 제사장들과의 전투 말이다.


아니.

그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 옵니다!


일단 초월자라고 불리고는 있지만 이들 역시 제사장들과의 전투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목전에서 본 전투가 바로 테노부스와 그 유명한 제사장 유스티티엔의 전투였다.

만약 다른 제사장들도 유스티티엔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지금 그들로는 턱도 없을 터였다.


다만 수호수라는 이름을 등에 지고 있는만큼 결코 쉽게 물러날 마음은 없었다.


- 수호수들이여! 물러나지 마라!


솔늑대의 포효와 함께 히펠이 일렁이는 순간.


우뚝


몸이 멈추고 히펠이 멈췄다.

그게 끝이었다.


그들은 검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애써 되살린 늑대가 말했다.


"우리가 형편없이 당한 거야 실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꿀꺽


잔나비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막사 안에 울려퍼졌다.


"아예 싸울 의지가 없던 것은 전혀 다른 문제지 않겠나."


그 전투가 있던 날.

정확히 말하면 테노부스와 유스티티엔이 전력으로 부딪히는 순간을 틈타 다른 제사장들이 달려든 순간.

그들의 몸이 멈추고 그 사이에 제사장들이 쏘아낸 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전까지의 짧은 틈에 늑대는 보았다.

모두가 검을 쥐고 있는 그 와중에 저 홀로 아무것도 하지않고 가만히 있는 잔나비를 말이다.


"바로 경. 설명해 보시게."

"설명해 보라니!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줄곧 이상하게 생각했었네. 어째서 바로 경께서는... 우리의 긍지 높은 수호수인 잔나비께서는 검도 뽑지 않은 것일까? 혹 처음 마주한 강대한 적을 보고 몸이 굳은 것은 아닐까?"

"..."


가능성이 아주 없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초월자인 잔나비에게는 무례를 범하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늑대는 말하였고 또 이런 무례를 범했음에도 잔나비는 침묵하였다.


"하지만 이내 이런 생각이 들더군. 만약 검을 뽑지 않은 이유가... 뽑을 필요가 없어서였다면."

"라나부스 경!"




잔나비가 탁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에 늑대 역시 마주 일어나 서신 하나를 거칠게 탁자에 내던졌다.


"언제부터였지?"

"정녕 내가! 이 룬잔나비가 제사장과 한패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라면 설명을 해보란 말일세!"


잠시간의 침묵.


이내 잔나비는 늑대가 던진 서신을 집어들었다.


"텔제민과 제사장이 함께라고?"

"그렇네."


늑대는 테노부스가 한대륙을 떠난 이후 은밀하게 발이 빠른 자들을 모아 요엠가움의 주요 영지에 보내었다.

그들의 임무는 흩어진 제사장들의 흔적을 찾는다면 연락을 취하는 것.

이는 제사장을 쫓기 시작한 테노부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동생의 마음이었다.


"오늘 아침 받은 서찰이야."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자네가 텔제민을 어찌 그리 신뢰할 수 있는가 항상 의문이었는데 이제야 모든 것이 들어맞는 군."

"그게 무슨...!"


사슴이 선물을 호위하는 역을 맡음으로 어쩔 수 없이 그의 영지로 들어오는 프로토케 군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아무리 프로토케의 왕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억제할 수단이 아무것도 없는 제 영지에 국가 단위의 병력을 들이고 싶은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당연히 사슴은 반발하였지만 다른 수호수들은 그를 끝내 카밀로테로 보내고 말았다.


그때 잔나비가 사슴을 침묵시킨 방법이 바로 자기 역시 똑같이 하겠다는 말이었다.

자기는 물론 올빼미까지 텔제민의 군을 인도하지 않고 승리의 벽으로 먼저 오겠다는 조건을 건 것이다.


요컨대 우리도 우리 영지에 지키는 사람 없이 텔제민 군을 들일테니 너도 똑같이 하라는 소리였다.

연합전이 벌어진 이래 단 한 번도 타국의 배신은 없었지만 그들이 요엠가움의 영지를 지나오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꽤나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러니 타국의 병력이 지나오는 길에 영지가 겹지는 이들은 타국의 병력을 사건 사고 없이 인도하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사슴이 프로토케 군을 맞이하지 못하게 한 것은 이번 일로 영지에 좀 더 타격을 주겠다는 잔나비와 파도수리의 노골적인 수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를 위해 그 잔나비가 제 영지에도 타격이 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었지."


처음 늑대는 잔나비의 이런 선택이 영지의 부강함의 차이에서 오는 힘을 이용하려는 계책이라 생각했다.

잔나비의 영지 모이니아는 이번 사건 사고로 타격을 받아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지만 사슴의 영지는 아니다.

손해가 발생하면 힘이 빠져가는 그의 영지에는 단순한 손해 이상의 타격이 오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완벽한 설명이 있더군."


만약 텔제민이 그의 영지를 노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굳이 그들을 인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 그들을 믿을 수 있나?"


그에 대한 답은 방금 그가 받은 서찰 하나와 용해 전투에서 잔나비가 보인 태도를 종합해보면 나오는 것이었다.


"어째서 인류를 배신하고 저들에게 붙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것인가."


스릉

스르릉


늑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른 수호수들의 검이 잔나비를 겨누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나는 지금 경께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미안하지만 바로 경 자네의 흉계는 이미 다 드러났네."


늑대 역시 검을 뽑아 그를 겨누는 순간이었다.


막사의 입구가 우악스럽게 걷어지며 누군가 뛰어들어왔다.


"헉... 헉. 그. 전하께서."


솔늑대 기사단의 말단.


"테노부스 전하께서 저희보고 당장 퇴각하라고 하십니다."


카리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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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5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4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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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8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7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29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2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4 2 10쪽
166 166. 황금곰 +1 23.03.14 32 2 10쪽
165 165.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23.03.13 42 2 10쪽
164 164. 불씨 한 톨 꽃 한 송이 23.03.10 33 2 11쪽
163 163.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23.03.09 38 2 11쪽
162 162. 에라 모르겠다 23.03.07 29 2 11쪽
161 161. 귀하는 저희와 함께 하실 수 23.03.06 40 2 12쪽
160 160. 이것도 내 거 저것도 내 거 23.03.02 4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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