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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6 23:32
연재수 :
255 회
조회수 :
11,489
추천수 :
693
글자수 :
1,366,115

작성
23.05.10 00:31
조회
31
추천
2
글자
11쪽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DUMMY

다른 수호수들이 모두 데멘스피데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카리타는 잔나비가 뒤로 물러났을 때를 맞춰 그에게 접근했다.


- 바로님. 혹시 다른 사람의 히펠도 숨기실 수 있으세요오?

- 가능하다.

- 그러면 지금부터는 괜한 곳에 힘 낭비하지 마시고 차라리 제 힘을 숨겨주세요. 어차피 지금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잖아요.

- 좀 전의 네 힘도 통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는 것이야?

- 아마도요.

- ... 오래는 못 버틴다.

- 힘드셔도 꼭 버티셔야 해요. 아셨죠? 신호는 드릴게요.


잔나비는 의외로 근성이 있는 자였다.

용에게 넘어간 올빼미에게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리는 와중에도 그는 카리타의 히펠을 감싼 저의 히펠을 풀지 않았다.


데멘스피데라는 자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이상한 연설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카리타의 일격을 성공시키는 데에 잔나비가 큰 역할을 한 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나름 사슴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 음모를 획책할 때마다 함께한 사이라고 수리가 그의 의중을 짐작하고 도와준 것도 컸다.


수호수 중 가장 세속적이고 제 잇속만을 신경쓴다 여겨지는 잔나비와 수리가 저들의 몸까지 다 바쳐 카리타를 도왔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었지만 아무튼 그들의 도움으로 카리타는 데멘스의 가슴에 빛의 히펠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데멘스피데의 몸을 촘촘히 덮고 있던 비늘이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고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새까만 힘이 구정물처럼 울컥거리며 데멘스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해... 해치..웁!"


학습 능력이 도통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기쁜 나머지 그 정도의 사고도 안 되는 것인지.

늑대는 죽었던 적도 되살아나는 마법의 단어를 기어코 입에 올렸고 이를 뿔소가 얼른 틀어 막았다.

다만 뿔소의 행동이 너무 늦었던 것일까?


"지금 이 몸에 상처를 입힌 것인가?"


빛의 검을 가슴에 꽂아둔 데멘스는 쓰러지지도 않고 어디 괴로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감히... 나의 신을 닮은 이 몸을...!"


그저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버러지가!"


덥썩


그는 제 가슴에 꽂힌 빛의 검을 움켜쥐었다.

검을 뽑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빛의 히펠은 그가 무얼 하기도 전에 힘을 다해 사그라들었다.


"하하... 겨우 이딴 비루하기 짝이 없는 힘에... 신께서 내리신 힘이... 비늘이..."


그는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보다 자신이 자랑스레 여기던 힘이 카리타의 히펠에 뚫렸다는 점이 치욕스러운 모양이었다.


"용서할 수 없다."


이쯤되면 용을 따르는 신도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부족한 저로 인해 자신의 신을 욕보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는 좀 전의 치욕을 목격한 자들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쏴아아아아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의 구정물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꾸득


찐득하게 얽히고설키며 다시금 데멘스의 몸에 들러붙었다.

단순히 어둠의 힘이 파도쳤을 뿐이지만 그 여파는 작지 않았다.

데멘스와 가까이 있었던 자들은 그 힘에 휩쓸려 데멘스의 몸에 들러붙었고.


으득

으드득


곧 이리저리 부서지고 찌그러지며 그의 몸에 흡수되었다.


데멘스 바로 앞에 있던 카리타 역시 어둠의 파도에 휩쓸릴 뻔했지만 재빨리 움직인 뿔소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다.


"하..."


데멘스피데는 커다란 공처럼 부푼 흉측한 저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잠깐만 저를 좀..."


어둠의 파도에 휩쓸렸던 자들 중에는 올빼미도 있었다.

까만 힘이 그녀의 다리를 꺾여서는 안될 방향으로 잡아당기고 있었고 그녀는 촉수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데멘스의 의지에 따라 검은색 손이 만들어져 올빼미를 제 몸에서 떼어냈다.


"가... 감사합니다."


우득


"끅... 저기. 아픈데 저를 내려주시면..."


우드득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올빼미에게서 시선을 거둔 데멘스는 다시금 용의 머리를 뒤집어썼다.

이전과 다르게 형체도 불분명하고 여기저기 부풀어 있어 흉측한 모양새였다.

데멘스는 주둥이를 쩍 벌리더니 그대로 올빼미를 씹어 먹었다.


올빼미까지 다 씹어삼킨 그의 몸은 이전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몸을 하고 있었다.

이전에 작은 용의 모습처럼 단단한 비늘이 덮힌 것도 아니었다.

어디는 액체처럼 흐르고 어디는 부풀어 오르더니 터지기도 하는 등.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형체였다.


이전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그건 그가 내뿜는 힘의 양이었다.

작은 용의 모습으로 내보이던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이 모습이야말로 그를 제사장에 올려준 진정한 힘이었다.

그가 믿는 신인 용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지만 그 힘만큼은 진짜였다.


펄럭

펄럭


날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뭉툭한 덩어리가 움직이자 데멘스피데의 몸이 떠올랐다.


"전부 죽어라."


키이이이잉


붉은 광선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모두 이곳에서 벗어나라!"


수호수들을 비롯하여 아직 전의를 상실하지 않은 기사들은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쥐어짜 데멘스피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붉은 광선이 그들의 히펠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이었다는 것이었고 불행이라고 한다면 기사들도 겨우겨우 막아낼 붉은 광선이 승리의 벽 전역을 뒤덮어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막을 수 있는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사방에서 피가 튀기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생명이 스러지고 있었다.


"크윽!"


꺼져가는 생명을 보며 카리타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뽑아낼 수 있는 히펠은 한계에 다다른 모양인지 희미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승리의 벽에 도착하고 난 이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구해야 하는 사람을 구했고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고자 했다.

두렵지만 싸워야 할 자가 있기에 그녀는 되도 않는 연기도 해가며 적을 상대했다.


하지만 고작 한 명 뿐인 적은 너무나 강했다.

카리타는 다음 수를 떠올리려 애를 썼지만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녀를 이곳에 보낸 테노부스를 비롯한 자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이곳에 올 여유가 없다.

즉, 이곳에 지원을 올 자들은 없다는 뜻이다.


'테노부스 전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 거예요?'


지원은 없다.

가진 바 능력도 부족하다.

카리타는 무력하게 모두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정말 한 사람도 살려보낼 생각이 없는지 쉬지도 않고 붉은 광선을 승리의 벽 위로 쏟아내고 있었다.

우습게도 카리타가 아직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가 전부를 죽이겠다 마음 먹었기 망정이지 그게 아니라 그녀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했으리라.



"자네도 이제는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나보군."


그녀의 옆으로 상처 투성이의 잔나비가 다가왔다.

그의 몸 상태는 수리에게 기대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검만 휘두르는 카리타의 모습을 긍정이라 생각한 잔나비가 말을 이었다.


"나를 업어라."

"..."

"나를 업고 여기서 빠져나가라."

"그게 무슨... 뜻이세요?"

"여기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여기를 빠져나가 이곳의 상황을 전해야 한다."

"지킬 수 있어요. 여기에 있는 모두 지킬 수 있어요."

"흥. 우둔한 척하는 여우라 생각했건만 사실은 영악한 척하는 곰이었군."


잔나비는 수리에게서 떨어지더니 우악스럽게 검을 휘두르는 카리타의 팔을 붙잡았다.


"내 히펠로 너를 한두 번 정도는 보호해 줄 수 있다."

"안 가요."

"너와 내가 함께해야 그나마 탈출할 가능성이 생긴다."

"안 간다고요."

"전하께 이곳의 일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전하께서도 다음 계획을 세우실 것 아니냐."

"저는..."

"우리는 우리가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지. 저들은 지금껏 우리의 검에 어울려줬을 뿐이야. 하지만 전하는 다르신 것 아니냐."

"..."

"네가 보기에는 어떻더냐. 승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

"그러면 더더욱 네가 가서 이곳의 상황을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


우득


그녀의 입술에서 짭쪼름한 향과 함께 핏물이 배어 나왔다.


"아뇨. 전하께서 제게 하신 명은 이곳의 전군을 무사히 이끌고 죽음의 숲으로 오라는 것이었어요."


제 팔을 붙들고 있는 잔나비의 손을 떨쳐낸 카리타는 검을 고쳐쥐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니 저는 이곳의 사람들을 지킬 겁니다."


- 전하 제가 너무 약해서 누군가를 지키지 못하는 순간도 오겠죠?

- 그럴 테지.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죠?

- 글쎄... 기적이라도 빌어보거라.

- 네? 기적이요? 그... 저희가 하는 일이 기적 같은거 아니에요? 막 바위도 베고. 막 하늘도 뛰어 다니고.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게 왜 기적이겠느냐. 그건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지.

- 아니 그러면 뭐가 기적인데요.

-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한다면 그게 기적이지 않겠느냐?


이날의 대화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카리타는 저도 모르게 기적을 빌었다.

그녀가 존경하는 테노부스 전하가 그녀에게 종종 언급했던 자에게 말이다.


트리아트 셋, 용을 죽인 모든 마법에 능한 자.


아마도 그라면 이런 상황을 뒤집을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전하께서는 그쪽이 굉장히 굉장하시다고 하시던데요... 그렇게 굉장하시면 여기도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그렇게 빌며 카리타가 한 발을 내딛었다.

이제는 깜빡거리는 히펠을 검에 두른 채였다.


쐐애애액

채애앵


날아오는 붉은 광선을 간신히 쳐냈다.

무릎이 풀려 주저앉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났다.


쐐애애액

쐐액


한 번.

두 번.

세 번.

...

이후로 몇 번을 쳐냈는지 모르겠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셀 수 없이 많은 광선이 날아들고 있었고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제발... 기적이든. 마법이든. 뭐든 좋으니까요."


카리타는 희뿌옇게 눈앞을 가리는 눈물을 우악스럽게 닦아내었다.


"저희를... 구원해주세요..."


화륵


"!"


화르륵

화르르륵


그녀의 기도에 호응하듯 하늘에 불로 된 지붕이 덮이고 있었다.

불의 지붕은 붉은 광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카리타의 눈이 불이 시작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피처럼 짙은 적발을 길게 늘어뜨린 사내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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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0 2 10쪽
»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23.05.10 32 2 11쪽
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1 2 15쪽
193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5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30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0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2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2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9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6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7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5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9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9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30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3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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