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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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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5.21 20:23
연재수 :
2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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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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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7
글자수 :
1,327,308

작성
23.04.20 20:32
조회
44
추천
2
글자
12쪽

185. 기억 둘

DUMMY

더 짙은 어둠.

이미 내 눈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방은 어두운데 이보다 더 어두운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난 더 짙은 어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내 모든 감각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야 내 가슴 속에 차오르는 배신감을 견딜 수 있을 거 같았다.


기만이...

그녀가 하는 말 중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만이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혁명단... 그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왜 숨겼을까?


기만의 말대로 내 몸을 차지한 기만이 약해진 틈을 타서 기만을 없애려고 했던 것일까?


쿠르르르르릉


"방금 전에 무슨 소리가..."


분명 천둥 소리였다.

하늘에서 땅으로.

그 길에 있는 공기를 뜨겁게 달구며 떨어져 내리는 벼락 줄기가 내는 위협적이기 그지 없는 소리.


그래.

분명 위협적인 소리일텐데.

대기를 찢으며 으르렁 대는 이 소리가 반가운 이유는 무엇일까?


"잘못 들은 거겠지."


나에게 더 짙은 어둠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더니 어느순간부터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던 기만이었다.

기만은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어서 가자. 곧 있으면 더 짙은 어둠이야."

"... 잠깐만."

"왜... 왜 갑자기?"


왜냐는 기만의 질문에 나는 할 말이 궁색해졌다.

굳이 말하면 미련일 것이다.

혁명단이, 부모님이, 딜람과 세슈람이, 듀시아가 나를 미끼삼아 기만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차마 믿고 싶지 않아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아까 보니까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사람의 기억도 볼 수 있던데... 다른 기억들도 볼 수 있을까?"

"굳이 아픈 기억을 더 보겠다고? 그럴 필요가..."


쿠르르릉

쾅쾅


이번에는 좀 더 또렷하게 들렸다.

기만이 하는 말이 천둥소리에 묻혔다.


"네가 원하는 기억 보여줄 테니까 일단 가서 이야기할까?"


또박또박 차분하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무슨 말을! ... 하는 거야? 다급하다니."

"나에게 뭐 숨기는 거 있어?"


어쩌면.

미련이라고 생각했던 내 감정이 어쩌면 미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내게 말을 거는 자가 누구인지 보다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그녀는 기만.

모두를 속이는 자.


"너. 나에게 숨기는 거 있구나."


번쩍


샛노란 빛줄기 몇 가닥이 어둠만이 가득한 이 공간으로 침략해 들어왔다.

가느다란 빛줄기로 충분했다.

내 눈앞에 서있는 또 다른 나의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인하기에는 말이다.

기만은 당황하고 있었다.


빛이 비춤과 동시에 울리는 반가운 소리.


쿠르르릉

콰아아앙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소리를 향해 뛰어갔다.

어둠을 찢으며 스며들어오는 빛무리가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아니. 넌 그곳으로 못 가."


또 다른 나의 손이 내 머리채를 잡아 끄는 느낌과 함께 내 눈앞의 장면이 휘리릭 바뀌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집이었다.


- 우리가... 우리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집은 난장판이 되어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서있었다.


아빠?

지금보다 주름이 적고 머리를 짧게 밀지도 않아 덥수룩하긴 했지만 분명히 아빠였다.

덥수룩한 머리의 아빠는 피투성이였고 그 뒤에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아빠의 앞에는 검은 형상의 누군가가 서있었다.

이미 몇 번 본 적 있어서 알고 있다.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두르고 있는 것은 스코아마로 독사가 모습을 숨길 때 쓰는 물건이었다.

즉, 저 자는 독사란 소리였다.


심지어 독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젊은 엄마 아빠 주변으로 세 명이 더 서있었다.


- 아기를 넘겨라. 그렇다면 너희들은 죽이지 않겠다.


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설마 나를 죽이겠다고 온 거였어?


- 이 아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 그걸 듣게 된다면 너희 역시 죽는다. 그래도 괜찮나?

- ...

- 자. 살고 싶다면 아기를 넘겨라.


저건 거짓말이다.

독사를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저들이 증거를 남길리가 없다.

아기인 나를 죽이면 엄마 아빠도 마저 죽일 것이 분명하다.


- 여보. 속지마.


다행히 지혜로운 엄마는 저들의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엄마 아빠가 명백히 불리한 입장이라는 것이었다.


- 살 기회를 날리다니 멍청하군.


독사들의 앞에 집광체가 맺히기 시작했다.

나도 죽지 않고 엄마 아빠도 죽지 않았으니 여기서 죽지는 않는다는 소리인데... 어떻게 살았지?


내 의문에 대한 해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집 안으로 자그마한 물방울이 흘러들어와 있었다.

흰색의 끈적한 물방울이었다.


곧 흰색 물방울에서 날카로운 날붙이가 나오더니 그대로 독사들의 몸을 관통하였다.

순식간에 독사 네 명이 죽는 것을 본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물감을 쓰는 마법사는 오르디나 가문에 많지만 그 물감을 공격하는 데에 쓰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다.

오르디나 이레.

일번대 대장이자 혁명단의 수장.


밖으로 나가자마자 내가 본 것은 망토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갑작스레 땅으로 꺼지는 모습이었다.

땅에는 질척거리는 물감이 퍼져 있었다.

물감에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르디나 이레 대장님과 같은 부대 오르디나 이센 부대장님이었다.


- 어떻게 됐어요?

- 막고 왔다.

- ... 독사에서 눈치를 챈 걸까요?

- 그 강박증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눈치를 챘다기 보다는 긴가민가 불안해 할 바에는 그냥 치워버리려는 속셈이었겠지.


강박증 녀석은 아마 떼르 가주를 뜻하는 것일 것이다.


- 그 아이가 저희가 정체를 드러낼 위험을 무릅써가면서까지 지켜낼 가치가 있는 아이인가요?

- 옛말의 아이지 않느냐.

- 그렇죠. 옛말의 아이. 그런데 꼭 옛말의 아이만이 대현자를 죽일 수 있는 거예요? 그냥 가서 죽이면 안돼요? 꼰대 세잖아요.


저렇게 깝죽거리다가 또 뒤통수 맞으려고.


따악


응.

역시나.


- 잘 모르면서 섣불리 행동하면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넌 신중함을 배워야 해.

- 아니 뭘 가르쳐 줘야 내가 알지! 아무것도 안 알려주고! 혁명단이라는 무슨 오글거리는 단체에 들어오라고나 하고!

- 조용히 하고 따라오거라.


은밀히 움직이는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죽음의 숲 속이었다.

율레 부대장님과 함께 있었던 검은 고양이 투실라고가 두 사람을 이끌었고 나는 두 사람 뒤를 바짝 뒤쫓았다.


마침내 온갖 색의 빛이 가득한 공터에 도착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소위 말하는 무지개를 이루는 빛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 빛으로 된 이가 있었다.


내 삶을 이상하게 꼬아놓은 장본인.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

그는 이센 부대장님을 트리아트 셋의 마법 중 하나로 날려 보내놓고는 이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 오늘 옛말의 아이를 죽이려고 독사에서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 응. 그래서 어떻게 했어?

- 아시면서 뭘 물으십니까. 독사들은 죽이고 대현자에게 기별을 넣었습니다.

- 그래. 그러면 이제 한동안 그 아이는 무사하겠구나.

- ...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님께서 하신 말씀이시니 이게 맞는 길이겠지만 잘 이해는 가지 않습니다.


항상 확신에 가득찬 얼굴이었는데 이레 대장님도 주춤할 때가 있으셨구나.


- 옛말의 아이를 집어삼키고자 하는 대현자가 옛말의 아이를 지킨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겁니까? 왜 굳이 나이를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까?

- 파편이라는 것은 사람의 몸을 바꿔가며 영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꿀꺽


- 새로운 몸을 차지한다면 그 힘이 눈에 띄게 약해진다는 거야.


그렇구나.

알고 있었구나.

내가 먹힐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파편이 약해진다는 것도.


아니.

단정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나를 미끼로 쓸 생각이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 아이의 몸에 들어가면 그 힘은 더 작을 수밖에 없으니 넷이 클 때까지 기다릴 거야.

- 아이가 다 성장하면 그때에야 차지하겠군요.

- 맞아. 그리고 그때가...


아니야.

하지마.

제발 멈춰.

그 말을 하지 말아줘.


- ... 너희가 움직일 때인 거지.


우뚝


잘 흘러가던 기억이 멈췄다.


***


"정말... 질기구나."

"하악... 하악."


기만은 질린 표정으로 듀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혼의 세계는 기만에게 있어서는 참 성가신 곳이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영혼의 세계에서는 영혼인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건네는 힘을 더 자유롭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이다.


듀시아는 자신과 단독으로 맞서고도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기만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듀시아가 마법에 제 힘을 무의식적으로 섞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온전히 트리아트 셋의 힘을 가져다 썼다면 자신은 지금쯤 벼락에 불타 없어졌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건 말이 안된다.

인간이 저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는 것은 죽기라도 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 정도 수준으로 저 스스로를 내려놓은 듀시아가 대단한 거다.


"그대로... 가다가는. 너 정말 죽는다."


듀시아의 마법이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반대로 기만 역시 그를 완전히 끝장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만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짜증났다.


넷의 영혼을 완전히 차지한다면 듀시아와 연결된 이 상태를 바로 끊어낼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영혼으로 들어온 듀시아를 무시하고 그의 육체를 죽이기에는 이곳과 바깥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다보니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만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이 귀찮은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흐. 혀가. 길어진 걸 보면. 힘이 부치는가 보지? 이. 파편! 쪼가리야!"

"한낱 인간 주제에..."


그때였다.

기만은 문득 넷의 어둠이 더욱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녀가 넷에게 보인 기억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크큭. 여기서 나가는 것은 너인가 보다."


기만은 영혼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을 듀시아에게 쏘아냈다.


콰아아아앙


어둠의 줄기가 듀시아의 영혼을 꿰뚫었다.


그녀에게 영혼을 죽일 권한은 없다.

그저 어둠에 잠재워 그녀가 잠시 가지고 있을 권한만 있을 뿐.

그녀가 소유하지 않은 영혼이라면 충분한 타격을 줘 물리치는 것 정도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듀시아의 영혼은 여기서 사라져야 옳다.

하지만 사라져야 할 듀시아의 영혼은 사라지는 대신 크게 일렁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난! 절대. 지지 않아!"


몸체에 큰 구멍이 나놓고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듀시아.

듀시아의 형상을 서둘러 거둬낸 기만은 그제서야 이곳에 그녀 혼자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번쩍


우뚝 멈췄던 기억 속에 갑작스레 환한 빛이 번쩍였다.

동시에 들리는 소리.


우르릉 쾅


내려치는 벼락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듀시아였다.


"... 듀시아? 여긴 어떻게?"


그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였다.

상처 투성이의 손을 들어 그가 가리킨 것은 멈춰있던 기억이었다.


또로롱


무지개색을 하고 있는 빛덩이가 멈춰있는 기억에 스며들었다.

기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너희가 움직일 때인 거지. 너희는 나와 함께 기만에게 먹힌 넷을 구하고 넷과 함께 기만을 무찌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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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 185. 기억 둘 +1 23.04.20 45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4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7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8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7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29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2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4 2 10쪽
166 166. 황금곰 +1 23.03.14 3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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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164. 불씨 한 톨 꽃 한 송이 23.03.10 33 2 11쪽
163 163.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23.03.09 38 2 11쪽
162 162. 에라 모르겠다 23.03.07 29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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