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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14 00:18
연재수 :
252 회
조회수 :
11,357
추천수 :
690
글자수 :
1,347,047

작성
23.04.26 18:03
조회
45
추천
2
글자
11쪽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DUMMY

카리타.

텔제민 출신의 고아.

약초꾼이었던 아빠는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한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고 시름시름 앓던 그녀는 카리타가 뛰기 시작할 때쯤에 병으로 죽었다.


혼자 남은 그녀를 거둔 사람은 아빠와 함께 약초를 캐러 다니던 노부부였다.

아빠가 죽고나서 사정이 어려워진 모녀를 도왔던 노부부는 엄마가 죽고 나서도 감사하게도 그녀를 돌보아 주었다.

노부부에게서 카리타는 자비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녀가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을 때쯤에 그녀를 키워주던 노부부도 죽었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고 그저 순리대로 생을 다했을 뿐이었다.


다시 혼자가 된 그녀는 노부부의 지인 아래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화내기 일쑤였고 카리타가 실수라도 하면 그녀를 때리기도 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구나.'


천성이 밝은 아이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악의를 경험할 때마다 그녀가 노부부에게서 받았던 자비가 더욱 소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자비는 마치 보석처럼 빛나고 소중한 것이었다.


소중한 경험을 갈고 닦으며 반추할 때마다 그녀가 겪은 경험은 점점 깎여 나갔고 그 자리에는 마음 그 자체만이 남아있었다.

마음은 짙은 보라색의 빛덩이였다.


이내 보라색 빛덩이가 그녀의 손가락을 타고 몸에 스며들었다.


굳이 행동을 보지 않고도 상대방이 품은 마음의 결이 어떤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은 이때쯤이었다.


***


왕의 막사 안은 부정적인 감정 투성이었다.


가령 뿔소가 잔나비에게 품은 감정은 격렬한 분노였다.

5년 전의 전대 뿔소가 죽은 사건이야 워낙 유명하니 카리타도 뿔소가 왜 그리 화가 나있는지 이해는 갔다.


사실 요엠가움을 배신한 것이라 알려진 잔나비를 좋게 보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잔나비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오직.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 명은 당연히 비난의 대상인 잔나비였다.

그의 마음은 다른 사람처럼 분노가 가득했다.

하지만 분노보다 더 그는 억울해 하고 있었다.


카리타는 여기서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바로님이 한 일이 맞다면 억울함을 느낄 이유가 있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면 일을 망친 이에게 화가 날 것 같지만 억울할 것 같지는 않았다.


'반대로 바로님이 한 일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설명이 된다.


모든 정황은 잔나비가 벌인 일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는 상황.

카리타는 설득력있는 정황들을 모두 무시하기로 했다.


노부부가 죽고 혼자가 되면서 그녀가 배운 것이라고 한다면 같은 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카리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정황보다도 그가 당장 느끼고 있는 감정을 믿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그녀의 선택에 확신을 심어준 또 다른 한 명이 등장한다.


스피나 베나톨.

피올빼미 기사단의 단장이자 일곱 수호수 중 올빼미의 이름을 받은 자.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분노하고 있지 않은 자가 바로 올빼미였다.


"스피나님?"


빛나는 히펠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검을 꼭 쥔 채로 카리타는 올빼미에게 물었다.


"스피나님께서는 바로님께 쌓인 게 많으시잖아요?"

"... 당신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그러니까요. 여기서 바로님께 가장 유감이 있을 사람이... 그러니까. 아르마 사토르님과 스피나 베나톨님 두 분이시죠?"


한 명은 아빠의 원수, 다른 한 명은 줄곧 저를 억눌러왔던 압제자.


"아르마님은 지금 화가 나셔서 앞뒤 안가리고 검을 휘두르고 계세요."


카리타의 말대로였다.

뿔소는 이 일에 상관 없는 기사가 거슬린다고 함께 죽이려고 들 정도로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태다.


"하지만 스피나님께서는 어땠죠?"


올빼미는 뿔소처럼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무작정 뛰어들어 잔나비를 죽이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정확한 순간에 잔나비가 피할 수 없는 때를 노려 단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어린 기사께서는 지금부터 말을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아르마 경께서 이성을 잃었다고 저까지 이성을 잃어야 했다는 말인가요?"


모든 사람이 화가 난다고 이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침착해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올빼미는 확실히 그녀의 분노를 표현했다.

단 한 번이긴 했지만 잔나비를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올빼미가 이 부분을 짚자 카리타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면요. 그러면요. 왜 마지막에 웃으신 건가요?"

"..."

"분명 웃으셨잖아요."


잔나비의 정수리에 칼을 내리치던 올빼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단 그때만이 아니다.

카리타가 막사 안에 들어와 올빼미를 봤을 때부터 그녀는 계속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게 카리타가 잔나비를 지킨 이유였다.


"제가 웃은 게 뭐가 문제라는 걸까요? 줄곧 제게 거짓말을 시키고 원치 않은 전투를 시키는 등. 원수나 다름 없는 자를 마침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 저의 소인배같은 마음 씀씀이가 문제인 건가요?"


순간 카리타의 말문이 막혔다.

아마도 지금 올빼미의 말은 거짓일 것이다.


평소 그토록 싫어하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기뻐할 수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기뻐하기까지 가는 과정이 올빼미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잔나비가 배신을 한 거 같다는 의문이 제기되면 놀라야 하고 주위 사람들의 격려로 5년 전 일의 진실을 말할 때에는 두려움이나 용기 등등 다양한 감정이 올라와야 한다.

다른 수호수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 처럼 말이야.'


이런 추측이 사실이든 아니든 올빼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지금.

문제는 카리타에게는 이런 사실을 다른 이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특별한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니.


- 카리타. 네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알리지 말거라. 그 능력은 마법에 가까운 것이니 자칫 잘못하면 이단으로 몰릴 수 있다.


라는 테노부스의 명이 있었기에 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카리타는 순식간에 할 말이 궁색해졌다.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자가 있었다.

몸을 일으킨 잔나비였다.


그가 움직이니 수호수들이 모두 검을 고쳐쥐었고 느슨했졌던 분위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어린 기사의 말대로 진정하고 내게도 말 할 기회를 주게. 스피나. 자네는 5년 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가 보지?"


히펠렌스가 되길 꿈꾸는 상급 기사들이 초월을 요청하여 몇몇 수호수들이 뿔소의 영지에 모인 날이었다.

으레 그렇듯 누구 하나 초월을 통과하지 못했고 초월이 끝난 이후 올빼미가 잔나비를 찾아왔었다.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어달라고 말이야."


과연 그 이야기는 은밀하게 전할 말이긴 했다.

잔나비가 수리와 올빼미와 힘을 합쳐 사슴을 끌어내리고 있는 중이었고 올빼미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전대 뿔소가 살해당했고 올빼미와는 은밀히 만난 덕분에 그 시간에 잔나비가 올빼미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증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영지를 비우자고 제안한 것 역시 자네였네. 그날 자네는 내게 분명 이리 말했지."


이번 일을 통해 사슴의 영지에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거 같다.

우리쪽에서 먼저 영지를 비운다면 사슴도 어쩔 수 없이 따를 것이다.


"내 영지에 피해가 생길 것을 염려해 허락하지 않으니 자네가 내게 말하지 않았나?"


인솔자를 붙일 것이며 그 경로는 잔나비의 영지인 모이니아가 아닌 올빼미의 영지인 팔마를 거칠 것이다.


"내가 가진 힘으로 자네에게 불리한 일을 시킨 적은 많았지만 자네가 먼저 나서서 손해를 감수하고 움직인 적은 없었기에 의아했었네만... 텔제민과 손을 잡았을 줄이야."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기 때문일까.

아까까지는 아무리 아니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도 듣지않던 수호수들이 이번에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늑대가 물었다.


"용해에서의 전투는? 왜 혼자 가만히 있었던 것이지?"

"그건..."


잠시 뜸을 들인 잔나비가 말했다.


"부끄럽지만 몸이 굳었기 때문이오."


테노부스와 유스티티엔의 전투를 보며 잔나비는 이 전투가 그의 능력을 아득히 벗어나는 전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도망치려는 생각은 없었소. 그저... 몸이 굳어 반응이 좀 늦었을 뿐이오."

"지금 저 말을 믿는 것은 아니겠죠?"


올빼미가 말했다.


"저 자가 사슴을 끌어내리기 위해 내게 무슨 짓을 시켰는지 알고는 있나요? 텔제민과의 전투에서 제 영지를 지키겠다고 내게 명령 한 것은 또 어떻고?"


그녀는 잔나비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상기시키며 이상하게 바뀐 분위기를 금새 저의 것으로 끌고 왔다.

뿔소가 그녀를 거들었다.


"확실히 바로 경이 한 말에는 증거가 없다."

"증거가 없기는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잔나비의 말에 다른 수호수들이 침음에 잠겼다.


"흐음..."


이야기의 진전이 없는 답보 상태가 이어졌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어디까지나 잔나비가 제사장들과의 전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유가 제사장과 한패이기 때문이라면?

그 증거는?

제사장과 텔제민이 함께던데 혹시 텔제민을 영지에 들인 이유가 텔제민과 한패이기 때문인가?

어?

제사장과도 텔제민과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잔나비 당신.

우리를 배신했구나!


늑대가 내놓은 생각을 보면 어디 하나 확실한 증거는 처음부터 없었다.

증거 자체가 이미 다른 추측에 근거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추론이 그럴듯한 설득력을 가졌던 것은 어디까지나 잔나비의 평판이 그만큼 좋지 않아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잔나비를 보다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등장함으로 늑대의 추측에 균열이 가고 말았다.

일단 잔나비와 올빼미가 서로가 대척점에서 수상한 점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둘 중 한 명이 적어도 전대 뿔소의 죽음에 관여하고 있으며 텔제민과 내통한 것은 명백했다.

다만 그게 누구인지 명확하게 가려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저... 잠시만요."


수호수들의 시선이 어린 기사에게로 몰렸다.


"지금 좀 답답한 상황인 거 같은데요오... 맞나요?"


그녀의 질문에 수호수들은 한숨을 쉬면서도 일단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 일단은 두 분 다 감금..."

"지금 뭐라고 하는 게야!"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잔나비와 올빼미가 동시에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리타가 말을 급하게 바꾸었다.


"...은 좀 그렇고 거취에 제한을 두면 안될까요?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

"이보다 더 급한 일이라 했는가?"


카리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저희 빨리 여기서 퇴각해야 해요."

"퇴각?"

"예. 용의 군세가 오고 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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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0 2 15쪽
193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3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29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0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0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2 2 11쪽
»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6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5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4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7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8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29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2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5 2 10쪽
166 166. 황금곰 +1 23.03.14 32 2 10쪽
165 165.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23.03.13 4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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