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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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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7.01 00:42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11,562
추천수 :
694
글자수 :
1,372,149

작성
23.05.11 18:31
조회
30
추천
2
글자
11쪽

197. 우쭐대는 거 꼴 보기 싫네

DUMMY

하늘에 떠오른 커다란 화염구.

거기서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불줄기는 어둠의 조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불태우고 있었다.


데멘스의 목을 벤 직후 잔나비의 히펠을 이용해 불줄기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던 카리타는 지금 불줄기 안에서 데멘스피데가 불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본래 잔나비의 은신을 이용해 불줄기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잔나비는 데멘스피데가 세워둔 방벽을 통과한 직후 탈진하여 쓰러진 것이다.

그로 인해 카리타가 방벽을 빠져나가기 전에 불줄기가 그녀 위로 떨어져 내린 것이고 말이다.

이대로 죽나 싶었지만 불은 조금도 뜨겁지 않았다.


반대로 목이 잘린 데멘스피데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불에 타기 시작했다.


"나를! 구원하소서! 나의 신이시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까만 기운이 왈칵 솟아났지만 그러는 족족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에 타서 없어질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카리타가 나직이 읊조렸다.


"아무래도 그쪽이 믿는 죽음보다 제 쪽의 마법사님께서 더 강하신가봐요."

"닥쳐라! 나의 신은 완전무결하시다! 그분만이 진정한 신이시란 말이다!"

"예 뭐. 그러면 그렇게 믿다 가세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모조리 불에 타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나서야 카리타는 기절한 잔나비를 데리고 불줄기에서 빠져나왔다.

불줄기에서 카리타가 빠져나옴과 동시에 불줄기가 멈췄다.


힘을 다했는지 불을 꺼뜨린 적발의 마법사는 그대로 기절하듯 쓰러졌다.


잔나비를 업은 카리타를 향해 못 보던 얼굴이 빠르게 다가왔다.

짧게 친 갈색 머리의 여성이었는데 그녀 역시 한 손에 지팡이를 쥔 것이 혁명단인 모양이었다.


"그쪽 괜찮아요?"

"예?"

"죽을 정도로 위중한 상처 없냐고요."

"아... 네. 없어요."

"그 뒤에 업고 있는 사람은... 숨은 붙어있고. 지혈을 해야겠네. 이쪽으로 와요."


잔나비의 상처를 본 여자는 잔나비를 깨끗한 천 위에 눕혔다.

한쪽 어깻죽지가 잘렸고 한쪽 다리도 잘렸으며 여기저기 상처가 심각했다.

쓰러진 와중에도 히펠로 상처를 틀어막아둔 덕에 출혈이 적어서 지금까지 버틴 것이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검을 휘두른 그였다.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요엠가움 측도 연합전을 대비하여 의원을 준비해뒀다.

실제로도 데멘스피데에 의해 죽지 않은 의원들은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며 다친 사람들을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의원들과 눈앞의 여자는 그 궤를 달리했다.

손 끝에 빛무리가 맺힌다 싶더니 금방 지혈이 되는 것이었다.

다른 의원들이 이곳에 달려들었다면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을 상처였음에도 그녀는 순식간에 치료를 마쳤다.


"저기요!"


치료를 마친 그녀가 다른 환자에게 가려고 하니 카리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뵈나 율레에요."

"아... 뵈나씨."

"아니. 뵈나는 가문 이름이고 율레가 내 이름."

"아 네. 율레씨. 바로 경... 이 분께서는 사실까요?"

"응. 안 죽어요. 내가 치료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뵈나 율레는 휘적휘적 다른 환자를 찾아 떠났다.

많은 기사들이 데멘스피데가 흩뿌린 숨결을 막는다고 고군분투했지만 모두를 지킬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뵈나 율레는 할 일이 많았다.


"엄청 멋있는 언니..."


멀어지는 율레를 멍하니 바라보는 카리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하얀 천을 온 몸에 두른 무로브 출신의 사람이었다.

대낮의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하늘색 눈동자를 보면 좀 전에 손도끼를 날려대던 남자가 분명했는데 언제 챙겨입었는지 머리부터 발 끝까지 새하얀 천이 덮여있었다.


"난 무로브의 청류이자 용의 몸을 지키는 자이다."

"청류라면..."


사막 왕국 무로브와 요엠가움의 교류가 활발한 것은 아니지만 무로브 역시 역사가 오래된 나라이다 보니 이곳의 문화나 특징 같은 것은 기록으로 접할 수 있다.

그 중 '청류'는 요엠가움으로 치면 왕과 같은 존재로 쉽게 말해 무로브를 다스리는 지도자라고 할 수 있었다.


이를 깨달은 카리타가 다급히 몸을 낮추며 인사를 올렸다.


"무로브의 청류를 뵙습니다."


이제야 사내의 생김새가 왜 일반적인 무로브인과 다른지 이해가 갔다.

다른 무로브인들은 살면서 솔볕을 피할 수 없어 피부가 탈 수밖에 없지만 무로브의 지도자인 청류는 항시 솔볕을 막아주는 자들이 함께한다고 한다.

이게 그의 피부가 하얀 이유.


또한 다른 자들이 머리에 문양을 그려 소속을 나타낸다면 청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오직 청류만이 얼굴에 문양을 그리지 않을 권한이 있다.

즉, 깨끗한 얼굴이 그가 바로 청류임을 나타내는 증표였다.


청류가 몸을 낮춘 카리타를 붙들어 일으켰다.


"몸을 낮추지 말아라. 네가 이곳의 최고 기사인가?"

"최고 기사라면... 그 히펠렌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오?"

"그래."

"아...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말단 기사인데..."


그러자 청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넌 최고 기사가 맞다."

"에?"

"처음에는 내가 오해했다."


청류가 전장에 뛰어들자마자 마주한 자가 바로 카리타였는데 그때 그녀는 검에 보잘것없는 기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달랐다.


"적의 공격에도 홀로 물러서지 않는 용기는 물론, 마지막에 적을 베어낸 기는 분명 그 근본에 닿아있었다."


카리타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 들었지만 그가 말을 끝내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들 주위로 수호수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를 구사하는 자가 최고 기사가 아니라면 이곳의 누구도 최고 기사라 불릴 수... 읍!"


카리타는 서둘러 청류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청류가 기겁을 하며 카리타의 손을 떨쳐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아니. 그게..."

"내 너를 좋게 여겨 그 공을 치하하고 있었는데 내 말을 이렇게 끊다니!"

"죄송해요오."

"... 혹시 그 이유가 무엇이냐? 내 말이... 목소리가 듣기 싫었던 것이냐?"

"네? 아닌데요오..."

"그러면 무엇이냐."


수호수들이 다가왔음에도 청류는 그들은 상관도 않고 카리타에게 이유를 따져 묻고 있었다.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그녀가 곤란해하고 있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해라. 네가 지금 저 자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


그는 좀 전까지 쓰러져 있던 적발의 마법사였다.

큰 키에 피처럼 붉은 장발.

그는 그가 쥐고 있는 지팡이에 의지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율레! 하지만 저 여인이 내 입을 틀어막았단 말이다. 혹시 내게서 구취가 나는 것인가?"


청류의 물음에 율레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사과하지. 아직 애라서 말이야. 어릴 때부터 모두가 떠받들어 주다 보니 버릇이 좀 없다."

"그 말 당장 취소해라! 트리아트 율레 당신이 아무리 무로브의 구원자라고 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카리타는 어쩐지 청류의 얼굴이 앳되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좀 어린 모양이었다.


"이제 스물이면 애가 맞다."

"우리 무로브에서는 열아홉이면 성인이다! 더군다나 당신의 나라에서는 열여섯이 지나면 성인이라고 당신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카리타는 청류가 자기보다 고작 두 살밖에 어리지 않는데 한 나라의 지도자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충격이었다.


"쯧. 하여튼 난 트리아트 율레라고 한다. 아까 봤겠지만 마법사고.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파편에게 호되게 당한 것 같은데 이곳의 왕을 만나게 해주겠나?"


트리아트 율레가 청류 앞을 가로막으며 카리타에게 말을 걸자 뒤에서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청류가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테노부스 전하께서는 지금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자는?"


그러자 늑대가 앞으로 나아왔다.


"나는 라나부스 요엠가움, 테노부스 전하의 동생 되는 사람이네. 부족하지만... 대지를 달리는 솔늑대라는 이명으로 불리고 있으며 현재 이곳의 총책임자일세."

"왕의 동생이라면 내가 말을 높여야 하는 거겠지?"


그러자 또 율레의 뒤에서 쫑알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로브의 구원자는 곧 무로브의 청류와 같은 위치이니 아무에게나 말을 높이지 말라는 소리였다.


"... 편한대로 하게... 하시지요."

"그렇게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으면서 못 이기는 척 능청을 떠는 적발의 사내는 카리타와는 다른 의미로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자였다.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듣고 싶은데."


율레의 질문에 늑대가 자초지정을 설명하였다.


"그렇군. 죽음의 숲으로 오라는 명령을 받고 움직이려는데 배신자들이 난리를 쳤다."

"그렇네...습니다."

"전령이 여기 이 자고?"


율레는 카리타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 맞아요."

"잠깐 나를 따로 볼까?"


그가 카리타를 끌고 가려고 하니 늑대가 그를 막아섰다.


"잠시만요. 무언가 알고 계신 것 같은데 저희에게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용과 대현자가 한 편이라는 것은 무슨 말인지.

대현자가 없다면 용을 막을 방법이 존재하는지.

무엇보다.


"적들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더군요. 저희들의 힘이 거의 통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들 중 정점에 선 히펠렌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데 저희들과 다르게 공격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테노부스가 그 중 하나였으며 카리타도 마찬가지다.

위의 두 사람이 특별한 히펠을 갖고 있어서라고 하기에는 오늘 온 청류의 공격도 통했다.

거기에 그의 눈앞의 사내 트리아트 율레의 마법은 아예 적을 없애기까지 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늑대의 물음에 나선 것은 청류였다.


"그걸 모르다니. 최고 기사가 맞기는 한 것인가?"

"... 제가 부족하니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 무로브를 적시는 생명의 강이시여."

"당신들이 뽑아내는 기는 근본에 닿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이요?"

"그래. 이 세상을 창조한 권능자의 힘에 닿아 있지 않고 애먼 곳에 닿아 있으니 통할 리가."

"그... 권능자의 힘에는 어떻게 닿는 것입니까?"


청류가 콧대를 높이 세워 우쭐 거리며 말했다.


"그야 그곳에 계신 분께서 우리를 초대해주셔야 한다."

"그건 또 누구..."

"당신들이 아는 이름은 아마 이것일테지."


모든 마법에 능한 자, 트리아트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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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198. 질척거리지 좀 마 +1 23.05.16 29 2 12쪽
» 197. 우쭐대는 거 꼴 보기 싫네 23.05.11 31 2 11쪽
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1 2 10쪽
195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23.05.10 32 2 11쪽
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1 2 15쪽
193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5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30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0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2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2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9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6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7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5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9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9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30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3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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