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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9.06 23:24
연재수 :
270 회
조회수 :
12,881
추천수 :
708
글자수 :
1,460,551

작성
23.05.3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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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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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03. 기억 셋

DUMMY

드디어 넷을 만난 듀시아는 막상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

기만을 피해 이곳에서 나가려니 이곳은 본래 넷의 영혼이 거하는 곳이었다.

집 주인이 집에서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기만을 몰아내는 것 역시 무리였다.

이제껏 듀시아가 기만을 상대로 버티긴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버틴 것이지 그녀를 이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넷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르겠지만.


"말해 듀시아. 여긴 왜 왔는지."


그녀의 눈빛은 거무죽죽하니 더이상 예전과 같은 빛을 내고 있지 않았다.


"왜 왔냐니. 너를 찾으러 왔지."

"... 이제 나는 쓸모없잖아. 기만에게 나를 던져주고 기만을 죽이는 계획은 실패한 거 아니었어?"


날이 선 목소리였다.

듀시아는 그녀가 무엇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짐작이 갔다.

그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해서 봐왔던 장면들은 하나같이 악의적으로 조작되어 있었다.

넷 주위의 사람들이 그녀를 구한 이유가 마치 사람들이 넷을 이용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


"네가 여기서 본 장면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야."

"사실이 아니라고?"


넷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 역시 비슷한 생각은 했다.


'기만은 속이는 존재야. 나 역시 어디선가 속고있는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그녀가 천둥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려고 하니 기만이 그녀를 막아서지 않았던가.

천둥소리를 내던 사람은 듀시아였을 것이니 그녀가 듀시아를 못만나게 하려고 했다는 뜻이다.

줄곧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처럼 굴던 기만이다.

그랬던 기만이 그녀를 강제적으로 제한할만큼 그녀에게 숨기고 싶은 사실이 무엇일까?


'듀시아의 등장과 함께 멈췄던 장면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어.'


정확히 말하면 무지개를 두른 듀시아의 등장과 함께였다.


'내게 힘을 준 자.'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에 의해 넷은 다른 이의 마법도 침묵시킬 수 있게 되었고 빛의 검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내게서 힘을 빼앗아 간 자.'


중요한 순간에 빛의 검을 마음대로 빼앗아간 자.

그녀에게 있어서 기만이나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나 믿을 수 없는 자들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기에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를 달고 온 듀시아 역시 넷은 믿을 수 없었다.


넷은 줄곧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던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듀시아... 너는 몰랐어?"


뭐를 몰랐냐는 소리인지 질문이 불분명했지만 듀시아는 그녀가 묻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만 이 질문은 단순히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넷. 네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아니. 내 질문에 답부터 해."

"..."

"듀시아. 너는 기만이 내 몸을 노리고 있다는 거. 몰랐어?"


머뭇거리는 그의 입술을 본 넷의 시선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알았구나."

"맞아. 알고 있었어. 하지만..."


치지직


듀시아가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 찰나.

허공에 어둠이 일렁이더니 넷의 모습을 한 기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웅


까만 덩어리가 듀시아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일렁이는 어둠을 본 순간 듀시아 역시 마법을 준비하여 기만의 공격에 대응하였다.

빛과 어둠이 함께 뒤엉키며 두 사람 주위로 펼쳐져 있던 장면이 일그러졌다.


힘 겨루기에서 승리한 것은 어둠이었다.

어둠은 커다란 폭포가 되어 듀시아 위로 쏟아져 내렸다.


"넷. 저자가 네게 한 짓을 기억해."


기만이 넷 주변으로 휘돌고 있는 무지개를 보며 으르렁 거렸다.


"나를 죽이기 위해 어느날 갑자기 네게 마음대로 힘을 주더니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니 가차없이 너를 버린 자야."


넷에게 기만의 말은 마냥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기만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의 발걸음이 기만을 향해 한 발 나아갔다.


"듀시아라고 다를거 같아? 너를 사랑한다면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


다신 한 걸음.


"결국 자기랑 다르다는 이유로 너를 바꾸려 드는 편협한 자일 뿐이야."


또 한 걸음.


"지금의 너는 왜 사랑받을 수 없는 건데?"


마지막 한 걸음.

마침내 기만이 그녀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거대한 어둠 아래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빛무리와 함께 넷의 옆으로 등장한 것은 듀시아였다.


"나랑 같이 좀 가."


순식간에 넷의 손을 낚아챈 듀시아는 다시 한 번 빛무리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


- 내 물건에 손 대지 마. 더러운 빨간 머리야.

- 뭐... 라고? 더럽다고?


더럽다는 말에 발끈한 여자아이의 조막만한 주먹이 까만 머리 아이의 턱을 때렸다.

아직 뼈가 제대로 여물지도 않은 주먹임에도 그녀의 주먹은 제법 매서웠다.


- 아야!


빨간 머리를 한 여자아이에게 한 대 얻어 맞은 남자아이는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며 저를 때린 여자를 노려보았다.


- 네가 먼저 잘못한 거야.


남자 아이가 바로 쥔 지팡이 끝으로 노란 집광체가 맺히기 시작했다.


파직


이제 갓 학교에 입학한 실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집광이었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떼르 듀시아.

벌써부터 차기 대현자라 불리는 그는 카밀로테 마법학교에 입학한지 이제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주받은 가문의 여자 아이가 제 지팡이를 허락도 없이 만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있을 생각도 없었다.


2와4사이월의 넷.

듀시아와 더불어 입학 전부터 사람들 입방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아이.

빨간 머리 가문 출신이 좋아보인다면서 그의 지팡이에 마음대로 손댄 것도 거슬렸는데 심지어 그를 때리기까지 했다.


파지직


듀시아의 노란 집광체가 내뿜은 전기가 넷을 덮쳤다.


- 아야!


보이는 것에 비해 위력은 그저 팔다리가 저릿할 정도였다.

또래에 비해 배운 것도, 겪은 것도 많은 듀시아는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아이였고 적당히 겁만 주려는 의도로 약하게 재현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아이라면 이 정도만 해도 겁을 먹고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다만 그가 간과한 게 있다면 넷은 그의 생각보다 더 거칠게 자라왔다는 것이다.

빨간 머리라는 이유로 갖은 괴롭힘을 당했고 그 안에서 넷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왔다.


고작 팔다리가 좀 저린다고 가만히 물러설 그녀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 이 자식이 진짜!


그녀는 바득바득 그에게 달려들더니 기어코 그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이쯤 되니 듀시아도 마법을 재현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 역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며 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보이지 않는 힘이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 그만하세요. 두 사람.


떼르 이트나.

듀시아에게는 큰아버지되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듀시아와 넷을 담당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는 잔뜩 흥분해 허공에서도 서로를 향해 팔다리를 휘두르고 있는 두 아이의 이마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 무슨 일이길래 싸우는 건지 설명해봐요. 조카님부터.

- ... 빨간 머리가 제 지팡이를 허락도 없이 만졌단 말이에요!

- 빨간 머리라고 하지 마! 이... 이! 까만 머리야!


이트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삼키며 짐짓 무서운 얼굴을 지었다.


- 둘 다 이제부터 제 허락 없이 말하면 혼날 줄 알아요.


두 꼬맹이의 기세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 자 그러면. 넷양? 왜 조카님의 지팡이를 마음대로 손 댄 거예요?

- 새로 나온 지팡이길래... 그냥 좀 보려고 한 거예요.

- 주인의 허락도 없이 만지면 주인이 싫어하겠죠?

- ... 제가 좀 보겠다고 했으면 보여줬겠어요?


넷은 제 빨간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이었다.

어린 아이가 짓기에는 너무 이른 표정이었다.

이트나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고 있었다.


- 큰아버지... 저주 옮아요...


듀시아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 말에 이트나의 손이 우뚝 멈췄다.


***


넷이 듀시아와 함께 도착한 곳은 그녀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기억이었다.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넷이 처음으로 친구를 얻는 계기가 되었던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까만 힘에 멈춰진 기억을 다시 재생시키지 않아도 그녀는 이후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저주가 옮는다는 듀시아의 말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트나 학교장.

이후 이트나는 듀시아에게도 저처럼 똑같이 그녀의 빨간 머리를 쓰다듬게 하였다.

그러면서 그가 했던 말이.


- 조카님. 머리가 빨갛고 까맣고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이에요.


어느새 무지개 빛이 까만 힘을 태운 것인지 멈췄던 장면은 그녀가 기억하는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너를 저주받은 빨간 머리가 아니라 넷이라는 평범한 아이로 보게 된 순간이야."

"... 이게 뭐."

"다시 잘 봐."


그의 말과 함께 그녀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 속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트나의 주변도, 이트나의 손을 따라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듀시아의 손끝에도 희미하게나마 빛이 일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형형색색의 빛은 넷에게 닿아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넷 사이에 무지개가 걸렸다.


"허튼 짓 하지마."


누가 봐도 지금 모든 마법에 거하는 자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거 아닌가?


"뭐. 당신이 친구를 만들어줬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래봤자 기만을 죽이기 위해서 그녀가 필요했기 때문에 한 일이다.


번쩍


다시 빛이 일었다.


어린 아기인 그녀와 그녀의 부모가 독사들에 의해 죽을 뻔 했던 때였다.

그들을 구한 오르디나 이레 대장과 그들 사이에도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번쩍


넷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율레 부대장과 무엇하나 제대로 쥘 수 없는 넷의 작디작은 손 사이에도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야!"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는 듀시아를 향해 넷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듀시아는 연속된 공간이동 마법에 숨을 헐떡거릴 뿐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힘겨워보였는데 그럼에도 듀시아는 멈추지 않았다.


번쩍


처음으로 그녀가 고양이 신비를 만난 순간이었다.

이 일을 통해 그녀는 죽음의 숲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트리아트 셋의 마법을 배우게 되었다.


번쩍


딜람에 의해 그녀가 미카에 숨어든 것이 걸렸던 순간이었다.

이 일을 통해 그녀는 죽을 뻔 했지만 마음을 바꾼 딜람에 의해 죽음을 면하고 치안군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로도 수십, 수백 번 장면이 바뀌었다.


모든 장면은 넷이 지금껏 걸어온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치안군에 들어갔다가 혁명단을 알게 되고, 그들과 함께 파편에 맞서 싸우는 그 모든 여정들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나온 모든 순간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무지개가 걸려있었다.


"... 마. 지막... 이야."


듀시아가 힘겹게 짜낸 말이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번쩍


다시 한 번 빛이 명멸하고 드러난 장면은 넷의 기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장면이었다.


빛의 검을 든 트리아트 셋이 용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그는 용을 죽이고는 제 목숨 역시 잃었다.


"..."


장면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곳에 시체 한 구가 놓여있었다.

거기에 놓인 시체가 트리아트 셋이라는 것을 넷은 알 수 있었다.


변화가 일어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우웅


이미 죽은 그의 시체 주변으로 환한 빛무리가 깃들었다.

빛으로 가득 들어찬 트리아트 셋의 육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쭈욱 감겨있던 눈이 뜨였다.

그가 눈을 뜸과 동시가 무지개 빛이 솟아올라 온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그날 그가 다시 살아나며 내뿜은 무지개는 2000년을 지나.


우우우우웅


지금의 넷에게 이어져 있었다.


"단 한 번도."


듀시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어딘가 낯설었다.


"단 한 번도. 너를."


그녀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선명한 무지개가 그녀의 몸에 이어져있었다.


"떠난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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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207. 알아들었으면 끄덕여 24.01.15 21 1 13쪽
206 206. 한 입만 23.06.05 26 1 12쪽
205 205. 어디에요 여기에요 23.06.02 88 1 12쪽
204 204. 다신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23.05.31 37 1 11쪽
» 203. 기억 셋 23.05.30 29 1 12쪽
202 202. 연합군 집합 23.05.25 34 1 11쪽
201 201. 싸움은 장비발 23.05.23 31 1 11쪽
200 200. 오스트랄로암사쿠스 23.05.22 51 1 11쪽
199 199. 왜 뼈는 때리고 그러세요 23.05.17 28 2 10쪽
198 198. 질척거리지 좀 마 +1 23.05.16 36 2 12쪽
197 197. 우쭐대는 거 꼴 보기 싫네 23.05.11 33 2 11쪽
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6 2 10쪽
195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23.05.10 35 2 11쪽
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6 2 15쪽
193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8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31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2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4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3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54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6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9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9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6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3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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