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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6.21 18:00
연재수 :
254 회
조회수 :
11,437
추천수 :
692
글자수 :
1,360,283

작성
23.05.04 19:51
조회
44
추천
2
글자
11쪽

193. 속옷 달리기

DUMMY

어둠의 땅이자 용이 다스리는 나라.

비르무트.


널따란 침대 위에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부스럭


이리저리 엉켜서 잠든 사람들 가운데로 누군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녀가 가볍게 손을 털자 까만 천이 나타나 그녀의 나신에 빙그르르 둘러졌다.


"음~ 흠흠."


잠에 든 자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자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프라바르도는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조금 전까지 그녀와 몸을 섞은 자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일명 열락의 밤.

프라바르도에게 선택 받은 생명체들은 그녀의 저택에 초대되어 그녀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열락의 밤을 경험한 자들 중 이성을 가진 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곳에서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경을 느낄 수 있으며 동시에 이전보다 더 충만하게 차오르는 어둠의 힘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 쾌락도 쾌락이지만 열락의 밤을 경험한 자들은 모두 이전보다 더 강해졌기에 광신도 중 많은 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최근 출정을 준비한다고 유스티티엔이 빡빡하게 구는 통에 한동안 열락의 밤을 보낼 수 없었던 프라바르도였다.

유스티티엔의 눈을 피해 몰래 한두 명씩이랑만 자려니 감질나던 차였는데 용의 명령으로 유스티티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한대륙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유스티티엔이 자리를 비운 이후 그녀는 매일같이 손에 닿는대로 사람들을 모아 몸을 섞어대고 있었다.


모두.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서 사랑을 받고 싶은 그녀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많은 사람들과 몸을 섞을 수 있던 그녀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녀가 몸을 섞은 사람들의 수만큼 그녀를 사랑하는 자들이 늘어났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행복했던 시간을 되뇌기 위해 좀전까지 제 몸을 쓰다듬던 수많은 손길을 헤아리고 있을 때였다.


'음?'


그녀의 감각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쟤는 왜 또 저런다니...'


저런 식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자는 흔치 않았고 저렇게 있는 그대로 기세를 숨기지 않고 프라바에게 표출하는 짓은 감히 같은 제사장이 아니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마침 다른 제사장들은 자리를 비운 상태이니 남은 자는 한 명 뿐이었다.

들떴던 기분이 금새 가라앉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방에서 그를 맞으면 여기에 자고 있는 자들이 다 깨고 말테니 그녀는 얼른 몸을 띄워 저택 바깥으로 향했다.


"어머. 깜짝이야. 이게 누구야."

"프라바르도. 얘기 좀 하지."


날아오고 있던 자의 정체는 과연 그녀의 예상대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었다.

제사장이라는 존재가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자이지만 눈앞의 남자, 아니 남자였던 자는 그 정도가 심했다.


피부는 억지로 뜯어내 까만 피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팔다리 길이는 본래 길이보다 절반 정도로 짧았는데 듣기로는 그가 뼈를 억지로 뜯어내 반절로 부러뜨린 다음에 다시 이어붙인 거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등에는 날개랍시고 제 가죽을 짜깁기 하여 붙여두고 있었고 그의 엉덩이 쪽에는 팔다리에서 가져온 뼈를 이어붙여 만든 꼬리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데멘스피데.

제사장 중 한 명으로 가장 최근에 제사장의 자리에 오른 자였다.


"데멘스. 너는 여전히 흉측하구나?"

"시끄럽다. 결함 덩어리인 자가 완전무결함에 다다르려 한다면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추한 법이다."

"그 완전무결함을 위해서 네 성기를 꼭 잘라냈어야 해?"

"그분께서 갖고 계시지 않으니 나 또한 필요 없다."

"치... 어릴 때는 내가 그렇게 좋다고 좋다고 따라다니더니."

"... 쓸데 없는 과거 이야기는 삼가라. 프라바르도."


타국의 사람들은 용을 따르는 비르무트인들을 한데 묶어 광신도라 칭하지만 진정으로 광신도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자는 오직 한 명, 데멘스피데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용은 완전무결함의 상징이자 신이었다.


용을 숭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용을 닮겠다고 그는 제 몸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프라바가 듣기로 가장 먼저 잘라낸 것이 바로 그의 성기라고.

하여튼 용에 대한 신앙 하나로 제 신체를 이리저리 바꾸더니 결국 그에 걸맞는 힘을 얻었고 제사장에 오른 것이다.


가장 빠르게 제사장의 자리에 오른 자가 칼리다비스라면 가장 빠르게 강해진 자는 데멘스피데였다.


"그래. 하여튼 네가 찾아온 이유는 뻔하지. 한대륙으로 가고 싶다는 거지?"


그는 유스티티엔이 제사장들을 이끌고 비르무트를 떠난 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용을 찾아가 떼를 쓰고 있었다.

자기 역시 한대륙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네 엄마가 안된다고 하시지 않던?"

"나의 신을 그렇게 부르지 말아라. 그리고 허락이라면 받았다."


용의 군단보다 한 발 먼저 한대륙으로 나갈 선봉에 자신이 빠졌다는 것을 들은 데멘스피데는 용을 찾아가 간청했지만 용은 귀찮다고 그를 발톱으로 짓이겨버렸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몸이 회복되면 다시 용을 찾아갔고 애써 회복한 몸은 곧바로 용에 의해 처참하게 으깨졌다.

그렇게 대여섯 번 더 온몸이 으깨지고 나서야.


- 이 버러지가! 귀찮게!

- 신이시여. 저를... 보내소서.

- 제발! 꺼져라! 네 마음대로 하란 말이다!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하아... 이 많은 애들을 나 혼자 이끌고 가라는 소리니?"

"누가 들으면 네가 진짜로 이들을 이끈다고 생각하겠군. 하루가 멀다하고 버러지들과 난잡하게 몸이나 섞어대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 참! 난잡? 그 난잡함에 푹 빠져서 헬렐레 할 때는 언제고?"

"... 과거 이야기는 삼가라고 했을 텐데 프라바르도."

"프라바님! 프라바님! 좋아해요! 프라바님! 안아줘요!"


그녀의 조롱에 데멘스피데의 흉측한 몸 위로 새까만 힘이 뒤덮였다.

까만 힘은 두껍고 단단한 비늘이 되어 그의 몸을 촘촘히 채웠고 그의 머리에는 용과 같은 얼굴이 만들어졌다.


캬오오오


광신.

맹목적인 믿음을 바쳐 그가 이룬 힘은 다름 아닌 신앙의 대상 그 자체였다.

비록 그 크기는 원래 용에 비하면 작디 작았고 재현한 힘 역시 본래 용의 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극히 일부에 불과한 힘으로 그는 제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키이이이잉


크게 벌어진 주둥이에서 붉은 힘이 응축되더니 그대로 프라바를 향해 날아갔다.

프라바는 데멘스피데가 내뿜은 숨결을 피하지 않고 몸으로 받아냈다.


"애들 깨. 좀 조용히 해."


그녀의 몸은 광선에 찢어지는 대신 광선을 흡수하고 있었다.

커다란 힘에 울룩불룩 흉측하게 출렁대던 그녀의 몸은 점차 본래 매혹적인 몸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그의 공격을 피해없이 흡수한 그녀가 말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갈 거면 빨리 가."

"..."


얼굴 부분이 다시 본래 흉측한 모습으로 돌아온 데멘스가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그래도 네게는 말은 하고 가야할 거 같아서 들른 것이다."

"그래. 알겠어."

"... 그럼 난 이만 가도록."

"아 좀.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가래도."

"..."


어쩐지 모두 저를 귀찮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


수호수들과 카리타는 눈앞에 갑작스레 등장한 용에 몸이 굳었다.

용이라고 하기에는 겨우 사람 정도의 크기로 매우 작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섣불리 작은 용을 공격하는 자는 없었다.

작은 용이 가진 힘이 좀 전에 그가 상대하던 까만 촉수 괴물보다 더 하다고 하냐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힘의 크기는 비슷하거나 용이 조금 더 크거나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힘이 갈무리된 형태였다.


올빼미 기사단의 부단장의 몸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운은 이리저리 의미없이 흐르는 힘도 많았고 형태를 이룬 촉수도 검은 힘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작은 용은 검은 기운이 완벽하게 형태를 이루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히펠을 압축하면 압축할수록 모양이 선명해지고 단단해지는 것과 같다.

눈앞의 작은 용은 직전까지 수호수들이 상대했던 자와 가진 힘은 비슷했지만 질 자체가 달랐다.


용의 얼굴이 사라지더니 그 안에서 흉측한 사람의 얼굴이 나왔다.

쩍쩍 갈라진 대지처럼 메마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여기에 있는가?"


목소리에 흉포한 기세가 담겨있어 당황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질문 자체가 뜬금 없었기에 수호수들은 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구도 답을 하지 못하자 데멘스피데가 말을 이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운명은 죽음에 속해있다. 그러니 내 너희에게도 기회를 주마."

"우움... 기회요?"

"그렇다. 선명하게 우리 운명에 개입하는 죽음이라는 신을 섬길 기회를 말이다."

"저기. 말을 이상하게 하셔서 이해를 잘 못하겠어요오..."

"... 머리가 버러지만도 못하구나."


다른 버러지들이 침묵할 때 저 혼자 답을 하길래 데멘스피데는 순간 어린 벌레에게 흥미가 일었지만 흥미는 금방 경멸로 바뀌었다.


"아닌데에. 제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그쪽이 말을 이상하게 하시는 건데..."

"후우..."


데멘스피데는 머리가 나쁘다고 신을 믿을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한 번 설명하였다.

좀 더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를 따라 용을 섬겨라. 그렇다면 너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카리타의 입이 슬쩍 벌어졌다.


"아..."

"자. 선택하거라."

"잠시만요!"

"응?"


데멘스피데 앞으로 어린 기사가 나아왔다.


"근데요오..."


우우우웅


"?"


앞으로 나온 어린 기사의 검에 환한 빛무리가 맺히고 있었다.

유스티티엔과 비슷하게 생긴 힘이지만 그 성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데멘스피데는 알 수 있었다.


"제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우우웅


빛무리가 더 환하게 퍼져나왔다.

기만에게서 태어나 절망의 힘을 먹고 자란 그에게 빛무리는 태생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이었기에 그는 당장 빛무리를 어떻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린 기사에게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질문이 신경쓰여서 함부로 그녀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어도 용을 섬길 수 있을까요?"


우우우우웅


이제는 격하게 진동하는 힘.

그녀가 뿜어내는 힘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거슬렸지만 그녀가 하는 질문은 일평생 용을 섬겨온 그에게 있어서 반길만한 질문이었다.


"당연하다."

"진짜요?"

"그래."


우우우우우우웅


"이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 없어요?"

"... 그래."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 정도도요?"

"그래. 그러니 이제 그 빛은 좀 치우겠나?"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이래도요?"

"그래 그러니까...!"


데멘스피데가 짜증을 부리는 순간.

카리타는 뭉쳐놨던 빛의 히펠을 그대로 작은 용에게 쏘아냈다.


콰아아아아아앙


빛무리가 터짐과 동시에 카리타가 수호수들에게 외쳤다.


"얼른 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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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196.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23.05.11 20 2 10쪽
195 195. 불타오르네 불 불 불 불 23.05.10 31 2 11쪽
194 194. 내가 없어져 볼게 얍 23.05.08 31 2 15쪽
» 193. 속옷 달리기 23.05.04 44 2 11쪽
192 192. 이 몸 등장 23.05.03 30 2 11쪽
191 191. 말단이 힘을 숨김 +1 23.05.02 40 2 11쪽
190 190. 내 마음은 이게 아닌데 +1 23.05.01 31 2 12쪽
189 189. 권능자님 한 명 더 갑니다 23.04.27 42 2 11쪽
188 188.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1 23.04.26 47 2 11쪽
187 187. 범인은 이 안에 있어 +1 23.04.25 32 2 11쪽
186 186. 이래도 아니야 23.04.24 36 2 12쪽
185 185. 기억 둘 +1 23.04.20 45 2 12쪽
184 184. 벤다 안 벤다 벤다 안 벤다 23.04.19 34 2 12쪽
183 183. 좋은 소식 전해드려요 23.04.17 29 2 11쪽
182 182. 나오너라 +1 23.04.13 33 2 11쪽
181 181. 계약서는 꼼꼼히 읽어 보고 +1 23.04.12 105 3 11쪽
180 180.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23.04.11 35 2 12쪽
179 179. 잠깐이면 돼 +1 23.04.10 70 2 11쪽
178 178. 당당히 고개를 들게 친구여 23.04.05 52 2 13쪽
177 177. 진심 주먹질 23.04.04 79 2 11쪽
176 176. 오 권능자 비상 사태 큰일났다 23.03.31 37 2 12쪽
175 175. 제사장이다 꼼짝마 +1 23.03.29 28 2 11쪽
174 174.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23.03.28 31 2 11쪽
173 173. 들어는 봤나 23.03.27 29 2 11쪽
172 172. 어떻게 이름이 +1 23.03.23 28 2 11쪽
171 171. 마음만은 청춘 +1 23.03.22 30 2 11쪽
170 170.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거야 23.03.21 23 2 11쪽
169 169.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23.03.20 28 3 11쪽
168 168. 말이 너무 많은 사람 23.03.16 38 2 12쪽
167 167. 기억 하나 23.03.15 2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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