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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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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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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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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글자수 :
579,291

작성
22.08.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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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4화 재회 (2)

DUMMY

제이드는 생각에 잠긴 채, 후작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갑자기 후작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나올 줄이야.’


제이드를 데리러 왔던 디아나가 망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후작과 마찬가지로 제이드가 공주의 약혼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할까.’


후작이 준 하루의 유예기간, 공주의 요구에 수락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집무실을 나온 것을 언제 알았는지, 디아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아? 힘들면 거절해도 돼.”


디아나의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제이드의 표정을 살핀다.

평소라면 괜찮다고 말했겠지만, 제이드는 빈말로라도 그런 말을 하기 힘들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


제이드는 저택 밖으로 나갔다.


*


밤시간에 열리는 시장, 야시장 또한 이곳의 구경거리 중 하나이다.

주민은 해가 진 저녁에도 축제처럼 시장에 사람들이 붐볐고.

그 사이를 제이드는 우울하게 걷고 있었다.


‘왜 오는 거냐.’


후각을 자극하는 향긋한 꼬치구이 냄새들.

동심과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시장의 놀거리가 가득했지만.

제이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 때려치울까? 그냥 제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실로 명쾌한 해결책. 이 속 썩이는 기사단을 버린다면.

제이드는 더 나은 환경에서 수련하고.

자신만의 오리진을 만드는데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곳에 올 필요도 없고, 또 곤란한 상황도 적겠지.’


우울한 생각만 가득 찬 머릿속.

근처 아주머니의 힘찬 목소리가 제이드를 깨웠다.


“총각!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거 먹고 힘내!”


갑자기 앞쪽에서 빠르게 날라온 둥근 물건을 받는다.

빨갛게 잘 익은 큰 사과가 손에 들어온다.


‘놓치면 하나 더 던질 생각이었나.’


가게 주인이 껄껄 웃으며 들고 있던 사과를 바구니에 넣었다.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하고, 사과를 한입 베어문다.

갑작스러운 격려였지만, 제이드에게는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래, 우승은 해야지.’


예선전을 감동받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주위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생각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들자, 무시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활기가 넘쳐나는 시장, 제이드도 즐길만한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자, 팔씨름 행사 중입니다. 이기시면 제국 여행권을 드립니다.”


저기 어디서 들어본 말을 하는 팔씨름 행사처럼.

제국 광장과 다른 점은 저런 시시한 것에 사람들이 신경조차 안 쓴다는 점이었다.


‘제국에서 가장 먼 지방인데, 저런 이벤트를 하다니. 정말 별종이네.’


애초에 한눈에 봐도 매우 강해 보이는 대머리 민소매 아저씨한테 덤비는 용자가 있을 리가.

그 익숙한 형체에 제이드가 한순간 두 눈을 의심했지만.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라이언?”


의자에 앉아 팔짱을 낀 채 좌중을 둘러보는 남자는, 그의 스승을 자처했던 라이언이었다.

그는 다가오는 제이드를 반갑게 맞이했다.


“제이드,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내일 아침에 찾아가려 했는데, 잘 됐다.”

“여기는 왜 온 겁니까?”


제이드는 개인적인 일로 그가 여기까지 왔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라이언한테 다른 용무가 있다고 확신했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쾰른에서 공주가 온다잖아. 제국에서도 주시해야지.”

“그렇군요.”


제국의 발 빠른 대처.

물론 별일은 없겠지만, 라이언이라면 유사시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난 보이지도 않아, 애송이?”

“아니요, 리나인 씨가 있어서 더욱 안심되네요.”


라이언뿐만 아니라 대하기 껄끄러운 리나인도 바로 뒤쪽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시끌벅적한 시장 속에서 의자에 기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참 이질적이었다.


“아으. 따분해.”


아저씨같은 말투에 단정치 못한 자세이지만.

뭘 모르는 이들은 저 권태로운 눈동자에 매료되어.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 분명했다.


‘정말 거북하단 말이야.’


제이드는 리나인과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디아나가 신기할 따름.

그녀와 비교하면 라이언은 정말 듬직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 있으면 우리가 나설 테니까 걱정 마.”

“네, 감사합니다.”


라이언의 발언에 제이드는 불안감이 해소되었고, 이제 공주와 만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


쾰른의 사절단을 하이웰 공작이 받아들이면서 조촐한 환영이 끝나고.

공작이 빌려준 저택에서 제이드는 아그네스 공주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공주님. 오늘부터 호위를 맡은 중앙 제2 기사단장 제이드입니다.”

“안녕, 제이드.”

“...”

“보고 싶었어요.”


일부러 예의를 차리고 먼저 인사를 전했지만.

아그네스는 서슴없이 제이드에게 친근감을 과시했고.

그 결과, 공작가의 하녀들이 곁눈질로 그들을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할지 대충 예상이 가는데.’


저 하녀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여기 지도층들이 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문제지.


“요새 어때요? 일은 할만해요? 차별은 없어요?”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아그네스 덕분에 제이드는 곤혹스러웠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아는 척은 곤란해.’


이러다가는 모든 국민들에게 제이드의 정체가 까발려질 판.

제이드는 눈으로 노려보며 그녀를 조용히 시켰고.


“산.책.”


하녀들에게 들리지 않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잠시 머뭇거린 아그네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제일 가까운 하녀에게 말했다.


“...산책을 가고 싶습니다. 정원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하녀의 안내에 따라 아그네스와 또 다른 호위기사가 정원으로 향하고.

제이드도 그 뒤를 따라나섰다.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불러주시길.”


한낮에 차를 마시기 좋아 보이는 장소에 아그네스를 데려다 주었고, 하녀는 조용히 물러났다.

제이드는 맞은 편 의자를 꺼내 털썩 앉으며, 아그네스에게 다른 호위기사를 치우라 손짓하는데.


“데이브, 잠시 다른 곳에 있어 주시겠어요?”

“안됩니다.”


아그네스는 제이드의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데이브는 그녀의 명령을 거부했다.


“안되긴 뭐가 안돼. 꺼져.”


인내심이 바닥난 제이드가 데이브를 향해 눈을 부라리지만.


“너 같은 범죄자하고 공주님을 같은 공간에 둘 수 없다.”


정론으로 반박당하고 만다.

쾰른에서 제이드는 사형당할 흉악한 범죄자였으니까.

딱히 할 말이 없었던 제이드가 조용히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셋 센다.”

“데이브, 가세요.”


아그네스가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지만.

데이브는 제이드의 무례한 행동을 보고 검 손잡이를 붙잡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고.

이어질 사태에 아그네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나.”


텅.

의자가 뒤로 넘어지고 제이드가 테이블 위를 지나간다.

데이브가 제이드의 발목을 노리며 검을 휘둘렀지만.


“까불고 있네.”


제이드는 다리를 살짝 들며 가볍게 회피하더니, 날쌘 발차기를 날렸다.

피할 수 없는 것을 인지한 데이브는 맞을 것을 각오했다.


“크윽! 이놈...!”


예상보다 강한 발길질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린 데이브의 검이 제이드의 팔로 향했다.


“뭐하냐.”


이미 깊숙이 파고들어 간 제이드는 데이브의 팔을 사정없이 꺾었고.

목을 잡아 테이블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묵직한 주먹질 몇 방, 데이브는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녀석을 호위랍시고 여길 오다니, 제정신이야?”


제이드는 기절한 데이브를 대충 내던지며, 아그네스에게 물었다.


“실력은 부족하지만 충직한 기사입니다. 이번엔 안 좋게 작용했지만.”


안쓰럽게 쳐다보는 아그네스의 맞은 편에 다시 제이드가 앉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뭘 하려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소용없으니까 돌아가.”


제이드는 그녀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서 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위협하듯이 미리 경고를 날렸지만.


“알고 있어요.”


제이드의 경고에도 아그네스는 딱히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얼굴에 띠는 처연한 미소가 제이드의 마음을 흔들었고.

제이드는 도리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알면서 왜 왔는데.”

“한번 보고 싶어서.”


동정심을 사려는 전략일까.

설령 아그네스의 모습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제이드는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쾅!

제이드가 탁자를 두 동강 내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나는 쾰른 여왕을 죽이는 게 내 일생의 목표다. 그리고 그년은 네 어머니지. 이걸 알고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거라면... 내 쪽에서 사양이야.”


아그네스는 침울한 표정으로 제이드를 바라보지만.

이를 악문 제이드는 그녀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 부관을 붙여줄게. 난 네 약혼자도, 기사도 아니야. 호위할 생각 따위 없어.”


그 말을 끝으로 제이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지만.

가는 내내 먹먹한 심정이 드는 것으로 보아, 아그네스의 전략은 제대로 먹힌 듯싶었다.


*


다음날 제이드가 말했던 대로 공주의 호위로 찾아온 것은.

제이드의 부하로 보이는 짙은 갈색머리의 강직한 기사였다.


“아그네스 공주님. 제이드 기사단장님의 부관 길버트라고 합니다.”

“...네, 그렇군요.”


아그네스는 실망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친절하게 길버트를 맞이했다.


‘얼굴 봤으니 됐어.’


아그네스는 그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으나.

이어진 길버트의 말이 그녀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단장님이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단장이라면, 제이드를 말하는 거겠죠?”

“네, 지금 모셔도 되겠습니까?”


높아진 아그네스의 목소리.

길버트는 잠시 의아했지만 주어진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네, 당장 가요!”


아그네스는 굉장히 의욕적인 모습으로 길버트를 뒤따라 나섰다.


한편, 제이드는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잘하는 짓일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후회를 적을지, 혹은 더 나은 상황일지 확신할 수 없었다.


‘호위를 맡게 된다면, 내가 아그네스와 무슨 대화를 했고 또 어떤 행동을 하는지 감시하겠지.’


공주의 호위를 허락한다면 손실이 너무 컸다.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을뿐더러, 쓸데없는 감정을 소모하고 시간 낭비를 할지도 몰랐다.


‘그나마 이득이 있다면 쾰른에 대한 정보가 있겠지만.’


장기말에 불과한 공주가 얼마나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여왕에게 타격을 줄 만한 약점을 쥐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긴 하지.’


스스로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다는 것.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제이드는 응어리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단장님, 아그네스 공주님을 모셔왔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쉬어.”


고심하는 와중에 길버트가 아그네스를 데려왔고.

제이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길버트가 나가기 무섭게 공기가 무겁게 느껴진다.


“...”

“...”


아그네스는 어제 들었던 경고 때문인지 침묵을 유지했고.

제이드 또한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후...’


마음을 다잡고 제이드가 내뱉은 말은.

아그네스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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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5화 재회 (3) 22.08.31 139 0 11쪽
» 44화 재회 (2) 22.08.30 14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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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1화 전원 (2) 22.08.25 1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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