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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23,508
추천수 :
92
글자수 :
579,291

작성
22.08.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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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2화 전원 (3)

DUMMY

누가 봐도 쓰러질 것 같은 위태로운 형태.

마무리 일격을 날릴 것인지 용병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고개 숙인 채 힘겨워하던 기사는, 마침내 스스로 검을 놓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쓰러지면 안돼!”

“일어나! 맞서 싸워!”



기사가 꿈이었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소년의 아버지로 보이는 자가 목이 터져라 응원하지만.


“나 더는 못보겠다...”


장렬히 쓰러진 기사는 일어날 기색이 없었고.

그가 엎어지자마자 서로에게 검을 겨누는 놈들의 꼴 사나운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니들이 그러고도 잘 살 것 같아?”

“이 쓰레기 같은 놈들, 다 탈락해 버려!”


모두가 경기장 위에 분노를 쏟아낸다.

한 두명이 아닌 관람석에서 들려오는 노골적인 비난에 선수들이 당황했다.


‘매년 있는 일인데, 왜 이리 유난이야.’

‘여태 다같이 즐겼잖아 오늘 왜 이래.’


보통은 저 탈락자를 향해 기립박수를 치며 격려하고.

내년을 기대한다는 아쉬움이 담긴 응원을 보내기 마련.

참가자들 사이에 동요가 일고, 가슴 속에서 자그마한 죄책감이 피어났지만.


‘본선에서 보여주면 그만이야!’


그 와중에 욕이란 욕은 다 듣고 탈락하기 싫었던 중년기사는.

마지막까지 경기장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다.


“우,우승! 본선 진출이다!!!”


주먹을 불끈 쥔 중년 기사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펴며 승리를 자축하는데.

관중석이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우승은 축하해주는 건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승리의 축복을 만끽하려고 하는 순간.

중년 기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고, 뒤이어 귀가 터질듯한 함성을 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젠장, 믿고 있었다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던 젊은 기사가 손으로 엉덩이를 털며 태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활에 성공한 모습이 감명 깊었는지, 제일 가까이 있던 소년은 입을 막으며 오열 중이었다.


“이건 사기야, 저렇게 멀쩡한 게 말이 돼? 처음부터 연기했던 거라고!”


중년기사는 제이드의 연극에 목에 핏줄을 세우며 항변했지만, 공허한 외침일 뿐.

관람석의 환호성에 밀려 묻혀버린다.


“이건 또 신선하네. 내 연기에 눈물을 흘릴 줄이야.”


이번만큼은 제이드도 무언가 느낀 것이 있는지, 깊은 눈으로 관람석을 바라보았다.

제이드는 울고 있는 아이를 가리키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라며 손짓하고.

바닥에 떨어진 한 검을 들어 올렸다.


“멋있는 거 보여줄게. 잘 봐라.”


제이드가 검을 들어 올리자 장내의 소음이 줄어들고, 모두가 그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 또한 기도를 올리듯 두손을 꼭 모으고, 붉어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다들 속은 거라고, 왜 모르는 거야!!!”


중년 기사의 외침이 구차하게 울려 퍼지는데.

그 모습이 마치 궁지에 몰린 악당 같았다.

제이드도 분위기에 따라 자세를 달리했다.


‘이래놓고 기습으로 끝내면 멋없지.’


속공을 추구하는 제이드답지 않게 천천히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찬란히 빛나는 오러블레이드가 생성되고.


“도대체...”


중년 기사는 검을 들어 올리지만, 열심히 성토하던 입이 더는 열리지 않았다.

이미 무대는 갖춰졌고, 클라이맥스 후 결말만이 남아있는 상황.

타닥타닥.

관객들도 볼 수 있는 속도로 달려가는 제이드가 상대를 스쳐 지나가고.

중년기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위로 검을 치켜세우는 승리 포즈.


“#@$#$#@!!!!!!”


이제는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함성을 내지르는 관객들을 배경으로, 제이드의 예선전이 끝났다.


“저게 수도의 새로운 기사단장인가.”


특별 관람석에서 예선전을 보던 한 인물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대회 첫날이라 특별히 참관하게 된 프리지아 동부의 군주, 하이웰 공작령의 관대한 주인.

프리드리히 하이웰 공작이 제이드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버지, 그를 동부로 맞이할까요?”


공작과 쏙 빼닮은 알프레드 공자가 공작의 의중을 여쭈었다.

프리지아 왕실이 바다와 같은 푸른색이라면.

하이웰 공자가는 숲과 같은 녹색계열의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우와! 저 기사분이 우리 영지로 오시는 거에요?”


활발하게 질문을 하는 청초한 분위기의 숙녀는.

공작부인이 사별한 이후 가문에 남아있는 유일한 홍일점, 프루다 하이웰 공녀이다.


“글쎄다. 우리가 오란다고 올지는 모르겠구나.”


진중한 표정으로 침음하는 공작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공녀를 바라보았다.


“저 기사님이 마음에 드는 것이냐?”

“네! 멋있어요.”


존재만으로도 공작을 기쁘게 하는 그녀가 환히 웃자.

공작의 기분은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했다.


“알프레드, 어떻게 하는 게 좋아 보이지?”


공작이 아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자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오히려 환영하는 듯 보였다.


“한번 노력해보겠습니다만, 사심으로 데려오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알프레드는 대답하면서 프루다를 슬쩍 노려보았는데.

그녀는 공자의 눈길을 모르는 척 피하며 자신의 초록 빛깔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인재를 품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지. 클라크에게도 번복의 의사는 없는지 알아보거라.”

“네, 넌지시 떠보겠습니다.”


1일차 경기가 마무리되고 공작가 사람들은 저택으로 돌아갔고.

알프레드는 부인의 방으로 찾아갔다.

임신한 그의 아내가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셨어요. 오늘 대회는 괜찮았나요?”

“응. 좋았어. 눈에 띄는 기사도 하나 있었고.”

“프루다 아가씨가 또 눈이 돌아가셨겠군요. 후후.”


프루다 공녀가 기사에 눈을 빛내는 것이 훤히 보였는지, 부인이 가볍게 웃었다.

프루다는 만남을 청한 귀족 청년들을 바람 맞히며, 오늘도 멋진 기사에 찾는 것에 열중했다.


“평소와 같았지. 그렇다고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알프레드는 자신은 부인과 정략결혼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동생의 심정을 이해하고 존중해주고 싶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시고. 때 되면 알아서 찾겠지. 프루다가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니까.”


부쩍 팔불출이 심해진 아버지도 딸이 원하는 대로 살길 바라시는 것 같았다.


“이번 기사 분은 어떤 분이시죠?”


부인이 기대에 찬 눈으로 질문했다.

프루다가 다른 건 몰라도 기사 보는 눈 하나는 정말 좋았기에, 이번에 마음에 든 기사도 굉장할 터.


“...가늠하기 어려워.”

“당신이요?”


차분히 말하는 알프레드에 비해 부인은 깜짝 놀란다.

하이웰 기사 대회 우승자이자, 공작가에서도 알아주는 기사인 그가 모른다니 정말 의외였다.


‘처음 쌍검을 꺼낼 때만 해도 뭔 짓을 하나 싶었는데.’


관중들은 그의 연기에 속고 열광했지만.

알프레드는 느긋한 태도에서 제이드가 한참이나 여유롭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번 겨뤄보군 싶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알프레드는 진지하게 그와 대련을 해보고 싶었다.


*


5일이 지나 모든 예선전이 끝난 시점.

회의실에 모인 2기사단원들이 제이드에게 결과를 보고하는 중인데.

어째서인지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은 거지?”


귀를 뚫어버릴 기세로 파고드는 제이드의 손가락.

기사단원 모두가 말없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다.


'이거 실화냐...?'


정확하게 진실만을 전달했던 모양인지 정정발언은 없었고.

오로지 제이드만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전원 예선 탈락이라고?”


자신을 제외하고는 한 명도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제이드는 한참을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단원들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기에, 그저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 씹. 이게 말이 돼?”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으며 칼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던 길버트조차 이마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이런 쓰레기들 같으니.”


당당하게 전원이 신청했는데, 살아남은 인원은 제이드 단 하나였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험한 말이 나오며, 제이드는 진심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샅시간에 얼어붙는 공기.


“단장님, 죄송합니다!”


길버트가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사과하자, 제이드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지지만.

도저히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 제이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과는 아쉽지만 저희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다못한 클라크가 침울해하는 기사들을 대변하지만.

다시 한번 제이드의 짜증을 재점화시킬 뿐이었다.


“정말 이게 최선이야?”


제이드는 기사단 전부에게 질문했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는 그들의 태도에 짜증과 답답함은 늘어만 갔다.


“특별 훈련까지 해가며 나온 결과가 이 꼴이냐고.”

“불가항력이었습니다.”


길버트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들도 한심한 결과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이것이 잔인한 현실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동안 노력해온 시간이 아깝지 않냐? 어디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어!"


길버트의 말 한마디에 제이드의 답답한 심정을 풀어놓았다.


"나는 연기까지 하면서 기사단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도대체 너희가 하는 게 뭐야?”


제이드는 할 말을 다 토해내고는 의자에 축 늘어졌고.

기사들은 각자 속으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할 말이 없군.’

‘겁나 뭐라 하네.’

‘아니, 우리가 용병 떼거지를 어떻게 이기냐고.’


물론 모두가 반성하는 것은 아니었고, 반감을 가진 이들 또한 있었다.

가장 속상한 것은 그들인데, 위로는 커녕 원색적인 비난만 쏟아내니.

기사단장으로서 제이드의 면목를 의심했다.


“내가 이런 녀석들 대장이라니. 으휴.”


대놓고 한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지만, 단원들은 감내하였다.

아무리 괴로워도 그들이 기사단의 이름에 먹칠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명도 통과 못한 건 심했지.’

‘가만히 있자.’


아직도 할말이 남았는지, 제이드의 한탄은 끊이지 않았다.


“하이웰 가문 기사들은 열댓명은 통과했다는데, 우리는 한명 밖에 없네. 아이고!”

‘빠득.’

‘참자, 참는 거다.’


이를 악물며 수모를 견딘다.


“나는 말이다. 패배라는 단어를 몰랐다 이거야. 어떻게 패배를 할 수가 있냐.”

“쟤 착오입니다. 좀더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다시 한번 클라크가 나서며, 제이드의 비난이 섞인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려 했다.


‘클라크...’

‘여기 참가했으면, 너도 못 올라갔어. 임마.’

‘졸라 얄밉네.’


단원들이 가지고 있는 원망의 화살까지 떠안게 되었지만.

그 덕분인지 제이드는 태도를 바꾸었다.

부하들을 질책하는 대신.


“아니다, 너희들 실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자신을 꾸짖기 시작하는데, 감정이 격해지는지 책상을 때리며 과격하게 소리를 지른다.


“미안해!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어. 너희에겐 불가능한 일인데 말이야!”


자책이 맞는 것일까.

제이드가 자책할수록 기사들의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쓰으으발.’

‘맞는 말이긴 한데.’

‘그만 좀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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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4화 재회 (2) 22.08.30 147 0 11쪽
44 43화 재회 (1) 22.08.29 153 0 11쪽
» 42화 전원 (3) 22.08.26 142 0 11쪽
42 41화 전원 (2) 22.08.25 1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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