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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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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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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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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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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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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정문으로부터 저택까지 이어진 길.

깨끗한 분수대에 잉어들이 유영하는 것이 보인다.

주변에는 정원사가 열심히 가꾼 수목들이 존재하는, 여전히 변함없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손잡이 부분이 덜 다듬어졌군.’


어릴 때부터 정말 마음에 들었던 검 모양의 수목이 손잡이의 모난 부분이 조금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제이드 도련님, 영주님이 업무에 열중하시느라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노인 집사가 제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도련님의 방에서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제이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택에 들어온 이후, 자꾸만 한눈을 팔게 되면서 그리움을 자극했다.

저절로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군.’


제이드는 이 익숙하고 평안한 분위기를 경계했고,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있다가는 어영부영 시간이 지체될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난 도련님이 아니다. 프리지아에서 온 사절단 대표다.’


제이드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집사를 무시하고 걸음을 내딛는다.

그 거침없는 걸음과 끝에 있을 목적지에 집사가 당황하며 제이드를 불렀다.


“도련님! 어딜 가시는...!”


뒤에서 집사가 붙잡았지만, 제이드는 거칠게 털어내며 속도를 올린다.

한시라도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

영주가 있을 장소야 이미 알고 있었다.


“헉, 헉. 도련님...!”


거의 뛰는 것이나 다름없는 속보, 고령의 집사는 따라오는 것도 힘겨웠다.

다행히 제이드의 생각대로 영주의 집무실은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막상 문이 가까워지자, 제이드는 어떻게 말을 꺼낼지 무척 고심이 되었다.


‘...일단 들어가자.’


그게 문 앞에서 조금 고민한다고 마땅한 해결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기에.

일단 얼굴을 보기로 결정했다.


“헉, 흐억. 뭐,뭣하느냐, 도련님을 말려라!”


제이드가 집무실을 노려보는 사이.

집사가 근처까지 다가오고 문 앞을 지키는 기사에게 버럭 소리를 내지르지만.

기사는 제이드를 막을 수 없었다.


“영감님. 그러다 저 죽어요. 도련님도 설마 암살하러 오신 건 아니겠죠.”

“...!”


갑자기 정곡을 찔린 제이드는 몸을 흠칫 떨다가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집사가 기사에게 고래고래 외치지만, 딴청을 피우는 기사를 뒤로하고.

제이드가 당당하게 집무실 문을 발칵 열어젖혔다.


“영주님 안녕하십니까, 프리지아 파견대 제이드 기사단장입니다...!”


마를롱이 그러하듯, 선전포고처럼 크게 외쳤지만.

영주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그의 아버지 발테르 백작이 아닌.


“...포르테 형, 님?”


그의 형, 포르테 어셔였다.

곧바로 검을 뽑아드는 기사단장과 다급히 아이를 챙기는 처음 보는 하녀가 보인다.


‘처음 보는 하녀인데. 그리고 저 애는...?’


책상과 조금 떨어진 곳에는 3살 정도의 아이가 하녀의 품에 폭 안겨 있었다.

어셔 가문에서는 볼 수 없는 다홍색 머리칼이 돋보인다.

제이드와 아이의 눈이 마주치고.


“딸꾹, 으앙아아아!!!”


하늘을 찌를 듯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제이드는 인상을 쓰며 귀를 틀어막았고, 하녀는 아이를 감싸 안으며 달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제이드가 당황하고 있을 때.

시끄러운 와중에도 업무에 집중하는 포르테 어셔가 그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래, 오랜만이다.”


하나도 반가워 보이지 않는 얼굴과 중저음의 목소리.

어셔 가 특유의 은발 머리와 제이드와 다른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항상 피로를 호소하는 모습이 그가 아는 포르테가 맞았다.


‘아버지는 아직 은퇴하실 나이가 아닌데, 왜 형이 영주 자리에 있는 거지?’


의문을 느끼던 제이드는 고개를 든 포르테의 모습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입에 잘 달라붙지 않는 존댓말로 의문을 제기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근데 오른쪽 눈은 대체...?”



어긋나 있는 초점과 눈가에 난 흉터.

오른쪽 눈은 본래 포르테의 동태 같은 눈이 아니었다.


“그렇게 다 내팽개치고 도망치면 우리가 괜찮을 줄 알았어?”


가족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생각 못할 차가운 목소리.

제이드는 그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더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포르테는 열심히 끄적이던 펜을 내려두고 일어섰다.

제이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아기와 눈을 마주친다.


“됐어. 누군가는 수습해야 했으니까.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정말 괜찮은 것일까.

제이드는 들어오기 전만 해도 당당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아기와 작별인사를 나눈 포르테가 제이드를 끌고 나온다.


“응접실로 가자.”


호기롭게 찾아왔지만, 막상 가족과 마주 보게 되자 제이드는 공손한 태도로 앉게 되었다.

따뜻한 차를 앞에 둔 응접실에서 어색한 기류와 적막함이 감돌고 있을 때.

제이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 울음소리를 보니까 장군감이네.”

“딸이다.”


다시 한번 제이드의 말문이 막히고 다급히 화제를 돌린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하고 꽤 중요한 사항으로.


“그 소리는 역시 형의 딸이란 거지?”


제이드와 8살 차이인 포르테는 19살이란 어린 나이에.

백작가를 떠받드는 장로의 딸과 결혼을 했었지만.


‘형수님은 7년 전에 사망하셨는데.’


그가 알기로 포르테는 부인과 사별한지 오래였고.

영지에서 제이드가 떠난 지 1년도 안 된 상태였다.

최소 2살은 되어 보이는 아기가 있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자식으로 추정되는 아이야.”

“추정, 사생아란 소리야?”


제이드는 상상도 못했었는지 경악한 모습이었다.

항상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주던 포르테가 이런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네가 가족을 신경 쓰기는 했냐?”


포르테가 비웃으며 빈정거리지만, 제이드는 이를 객관적인 평가로 받아들였다.

솔직히 그게 아니더라도 포르테의 개인사 따위 관심도 없었을 테니까.


“애 엄마는 누군데.”

“의절할 때는 언제고, 그게 궁금해?”


포르테의 질책에도 제이드는 변명 따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유일하게 자신을 꾸짖을 수 있는 가족이었으니까.

매몰차게 군 것도 잠시 차를 홀짝이더니 가볍게 내뱉었다.


“안나야. 너도 알 거다.”

“안나? 안나 에카르트를 말하는 거야?”


안나 에카르트라면 공작이 아낀다고 소문이 자자한 막내딸을 말하는 것일 터.

분명 이전부터 포르테를 좋아한다고 연회 때 쫓아다닌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형 미쳤어? 그 꼬맹이에게 손을 댄 거야?”

“푸흡!”


제이드의 물음에 포르테가 차를 뿜었다.

안나는 제이드의 가슴에도 못 미치는 아담한 체구의 소녀였다.

제이드보다 나이도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어째서인지 점차 커지는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나왔고.


“애초에 네 덩치에나 꼬맹이지. 얼마 전 성인식도 치른 여식이다. 너랑 고작 한 살 차이라고.”


포르테는 스스로 떳떳하다고 주장하지만.

잔뜩 흥분해서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것이 매우 구차해 보였다.


“크흠.”


보다 못한 기사단장이 서툴게 헛기침을 하고.

정신을 차린 포르테는 차를 마시며 차분한 태도로 돌아왔다.

진정한 포르테는 제이드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서 여긴 왜 온 거야? 너도 알고 있을 것 아냐. 여기서 더 들여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걸.”


포르테의 사생활이 조금 흥미로웠지만, 본론을 꺼내야 이야기가 진행되었고.

더 이상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제이드 또한 차로 목을 축이고 진지하게 말한다.


“나도 알아.”


옛날부터 두 나라의 소통은 이 정도가 한계였다.

하이웰 공작령와 어셔백작령.

각국의 사절단을 절대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난 이곳을 넘어 수도까지 침범할 생각이지만.’


제이드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우선 영주를 찾았다.


“아버지는 어딨어?”


북쪽은 웬만한 변수가 일어나진 않는 한 다리를 터뜨리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문제는 백작가의 병력인데, 이는 백작의 협조가 있다면 순조로웠다.


“...따라와.”


잠깐 주춤한 포르테는 이번에는 저택 밖으로 향한다.

순순히 따라가는데 제이드는 목적지를 짐작하고는 의아했다.


‘아버지가 여기 계신다고?’


초록으로 물들어진 마당과 달리 군데군데 비어있는 삭막한 환경.

생기가 없는 무채색의 공터.

제이드의 어머니, 소피아가 좋아하는 정원이었고.

소피아가 죽은 이후, 백작은 한 번도 이곳에 가지 않았었다.


“아버지는 잘 계시는가?”

“네. 평소처럼.”


어느새 도착한 정원의 중앙.

백작을 보필하는 것으로 보이는 하녀가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 너머로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왜소한 남성이 있었다.


“아버지, 포르테입니다.”


숨쉬는 것을 제외하면 미세한 움직임조차 없는, 발테르 백작이 고개를 돌린다.

백작에게 다가간 포르테가 슬픈 목소리로 묻는다.


“알아보시겠어요? 제이드에요.”

“아아아...”


불과 1년도 안 된 사이에 폭삭 늙어버린 신체.

검버섯이 핀 얼굴과 새 하얘진 백발이 백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머리가 산발이 된 그의 고개가 제이드를 향한다.


“제이드야.”

“아버지가 왜 이리...?”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백작은 걸을 힘조차 없는지 제이드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

제이드는 심각해진 얼굴로 포르테에게 설명을 요구했지만.


“우리라고 다를 거 같아? 정말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어?


분노가 담긴 핀잔이 들려왔을 뿐, 입에 담기조차 싫었는지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기적인 놈아.”


제이드는 자세한 설명이 없었어도 이해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내민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주었다.


“형, 부탁할 게 있어.”


스스럼없이 말하는 그 태도가 포르테를 자극한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모습.

포르테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마른 세수를 하다 이내 감정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형이라 부르지 마라. 염치가 없는 거냐? 이 꼴을 봤으면...!”


포르테가 처음으로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고 주먹을 말아쥔다.

제이드와 달리 재능이 없어 수련을 관두었지만, 기세만큼은 무척 날카로웠다.


“...수도로 끌려가고 싶은 거냐.”


마주보는 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힐 것 같은 답답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포르테가 졌다는 듯 힘을 풀었다.


“그래, 뭘 원하는데? 영주 자리라도 내놓으라는 거냐. 날 여기서 죽이고 네가 가져가든가.”


홧김에 꺼낸 말이었는데, 제이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아쉽다는 듯이 굴었다.


“그 생각도 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힘들지.”

“뭐...? 너 미쳤냐?”


그렇게 하기에는 어려운 점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제이드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른 시일 내에 백작가를 장악하고, 더는 여왕을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어때, 아주 간단한 일이지? 나한테 협조 잘하면 유혈사태는 없을 거야.”


영주의 협력은 이번 여왕 암살 작전의 선행과제이자 핵심이지만.

당연하게도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정신이 나갔군. 난 다 갖다버린 너와 다르다. 가문의 식구들이 있어. 헛소리 말고 돌아가.”


포르테의 입장에서 제이드 같은 망나니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순순히 믿을 리가 없었다.

포르테는 제이드에게 축객령을 내렸지만.


“조금 더 생각해봐. 내 방 안 치운 것 같던데. 거기 좀 쓸게.”


제이드는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큰 맘 먹고 뽑은 칼, 여기서 포기하기는 일렀다.


“안 꺼져?”

“한번 쫓아내 보던가.”


포르테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제이드를 째려보지만, 제이드는 배짱을 부리며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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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48화 선택 (1) 22.09.05 136 0 11쪽
48 47화 재회 (5) 22.09.02 130 0 10쪽
47 46화 재회 (4) 22.09.01 138 0 11쪽
46 45화 재회 (3) 22.08.31 139 0 11쪽
45 44화 재회 (2) 22.08.30 147 0 11쪽
44 43화 재회 (1) 22.08.29 153 0 11쪽
43 42화 전원 (3) 22.08.26 142 0 11쪽
42 41화 전원 (2) 22.08.25 14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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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6화 첫 임무 (1) 22.08.18 174 0 11쪽
36 35화 호위 (3) 22.08.17 172 0 11쪽
35 34화 호위 (2) 22.08.16 16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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