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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Sn50 님의 서재입니다.

기사단장의 투잡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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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Sn50
작품등록일 :
2022.07.18 12:32
최근연재일 :
2022.12.02 17:00
연재수 :
1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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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96
추천수 :
92
글자수 :
579,291

작성
22.09.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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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53화 어셔 백작가 (2)

DUMMY

제이드가 낮잠에 빠져 꿈속을 여행하고 있을 시각.

백작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는데.

차라리 악몽이었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제발 날 내버려 둬!!”


외투를 가져오기 위해 하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백작은 허공에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공간임이 분명한데도.


“발테르, 제이드가 왔어요.”


백작의 귀에는 사별한 부인, 소피아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녀가 귓가에 나긋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여왕님의 말씀을 잊으신 건가요?”


얼마 전부터 환청과 환각 시시때때로 찾아왔었는데.

유독 오늘따라 심하게 괴롭혔다.

소피아가 귀를 틀어막은 백작을 향해 호통친다


“어서 제이드를 구속하세요!”

“시끄러!!!”


백작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이 정원에 울러 퍼졌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소피아는 백작에게 몸을 기대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당신, 여왕님께 맹세하셨잖아요.”


그 애틋한 손길에 백작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전부 나의 업보인가.’


부인이 목숨을 걸고 지킨 제이드를 우선이라 여겼고.

백작은 제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었다.


‘그게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결국 이리 허약해지고 헛것을 보는 미치광이가 되었지만.

자식들에게 피해는 없으리라 여겼었는데.


‘끝까지 너에게 미안한 일만 하는구나.’


발작을 멈추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백작은.

눈에서 총기가 사라졌지만, 그 신체에는 젊었을 때의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얼마 있지 않은 시들시들한 수풀 사이, 허공에 있는 균열의 틈새 속에서.

백작의 변화를 지켜보는 자가 있었다.

황금색 펜타그램이 각인된 로브를 입은 예언자, 로먼이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


어셔 백작가에 도착한 로먼이 먼저 마친 일은.

백작에게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이었고.

여왕과 맹약으로 점점 망가진 덕분에 수월한 편이었다.


‘암시까지 걸려들 줄이야.’


백작은 환각까지 보게 되며, 그가 상정했던 것보다 과한 상태가 되었다.


‘이럼 조금 균형이 맞으려나.’


가디언이 채택한 작전의 약점은 시간이다.

이는 여왕에게도 가디언들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핵심.

여왕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이 승부의 행방은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이 상황은 적어도 여왕한테는 유리하게 작용하겠지.’


로먼이 속한 집단에서는 쾰른을 버리기로 했지만.

직접 현장에서 행동하는 그의 판단으로는, 버림말로 쓰기엔 아까운 인간이다.


‘이 정도가 허용 범위다. 괜히 말려들 필요는 없으니까.’


여왕이 쉽게 쓰러질 인물로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적당한 도움을 준다면 제국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맥없이 끝나지 말아 줬으면 해, 서로 박터지게 싸워보라고.”


로먼은 서로가 죽고 죽는 전투가 벌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


저벅저벅.

방문 너머 복도를 울리는 사람의 발소리에 제이드는 낮잠에서 깨어났다.

눈가를 비비며 정신을 차리는데 이상하게 하나도 개운치 않았다.


‘뭔가 꿈을 꾼 거 같은데, 가물가물하네.’


잡힐라말락하는 기억을 놓아 버리고, 점차 다가오는 발소리에 방문을 노려보자.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완전무장을 마친 백작가의 기사들.

제이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살폈다.


‘잔뜩 겁먹었군.’


기사들이 긴장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제이드를 포위망을 짠다.

돌이켜 보면 저택 문을 지키는 병사는 무척 용감한 자였다.


‘그래 봤자 하룻강아지에 불과하겠지만.’


여튼 현실로 돌아온 제이드가 먼저 이러는 이유를 파악하고자 했으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발테르 백작이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등장했다.

딱히 나이 들었던 외모가 젊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굽었던 등이 펴지고 전신에 활기가 넘쳤다.


“아버지, 회춘하셨군요.”


제이드가 한마디로 간단하게 감상평을 남기며 넘어갔지만.

백작가의 사용인들은 백작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고.

기사들도 어리둥절한 태도로 명령에 따르고 있었다.


“헌데 제 방엔 어쩐 일이십니까?”


제이드는 백작의 의중을 여쭈었지만.


“저택에 함부로 발을 디딘 침입자를 감옥에 처넣어라!”


돌아오는 건 그를 구속하라는 명령이었다.

기사단장이 수갑을 들고 다가오는 것이 농담은 아닌 모양이다.

제이드가 느낀 감정은 당황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먼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제이드는 침대 밑에 내려놓았던 검집을 주웠다.

다가오는 기사단장의 걸음이 멈추면서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기사들이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자세를 갖춘다.


“...구속에 불응할 생각인가.”

“...”


제이드와 기사단장의 눈싸움이 지속되는 순간.

무거운 침묵 속에서 기사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드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이대로 싸운다면, 어셔 가문과 척을 질 텐데.’


협조는 물 건너갈 것이 틀림없으며, 사절단은 프리지아 왕국으로 쫓겨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만회할 기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판단을 마친 제이드는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 순순히 항복할게.”


누군가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고.

철컥.

제이드의 손에는 두꺼운 수갑이 채워지고.


“따라오십시오.”


수갑이 채워진 제이드는 백작령 수용소가 아닌, 저택의 창고로 안내받았다.


“들어가십시오.”


경비병이 문에 있는 걸쇠를 풀며 제이드 보고 안으로 들어가라 손짓했다.


‘조잡하군. 나를 가두기 위해 급하게 만든 건가?’


걸쇠는 창고와 어울리지 않는 비싼 금속으로 만든 데다가.

딱히 튼튼하지도 않아 보이는 게 급조한 것으로 보였다.


‘처음부터 함정이었던 건 아니고. 아버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란 소린데.’


끼익.

문이 닫히고 사방이 어두컴컴해진다.

해가 저물어 오직 창문으로 비치는 달빛만이 전부인 공간에서.

제이드는 미리 와 있었던 뜻밖의 인물을 만났다.


“...형은 왜 여기 있어?”


포르테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제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뭐 말하기 싫으면 말고.”


어차피 자신과 비슷하게 붙잡혔겠지라고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는 자리로 포르테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았다.

또 하나 추가된 힌트, 이곳에 갇힌 포르테를 보며 제이드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보나 마나 여왕이 뭔가 손을 쓴 거겠지.’


제국에서 기력이라는 놀라운 힘도 겪었는데, 사람 조종하는 것 정도는 이해가 갔으며.

오히려 저 힘이 여왕의 독재를 유지하는 비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도 여왕의 술수라고 가정하면...’


백작의 목적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제이드를 포획한 후 수도로 이송하는 것.


‘다행인 점은 여왕이 지금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는 거고.’


여왕도 이제는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함정을 파고 기습을 가하면 모를까, 이렇게 온화하고 허술하게 가둘 리가 없었다.

사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아직 작전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아버지께서 형을 이곳에 가뒀다는 것은, 방해 요소라 여겼다는 뜻이지.’


말만 그렇게 했지 포르테는 제이드를 수도로 보낼 생각이 없을 터.

백작의 행보에 걸림돌이 됐을 거다.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은.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 정도군.’


영주의 자리를 탈환해서 포르테에게 안겨주고 회유하는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영주에 자리에 앉은 포르테를 협박하는 것이다.


‘음. 딱히 두 가지라 보기는 어렵네.’


결국 핵심은 포르테였고, 때마침 그는 바로 옆에 존재했다.


“크흠.”


제이드는 목을 가다듬으며 머릿속에서 내뱉을 말을 골랐다.


‘영주 자리를 안겨줘도 그 이후가 문제지.’


포르테를 어떻게 유도하느냐에 따라 일의 판도가 뒤바뀐다.

그에게 제시할만한 것들을 찾아보자, 포르테에게 소중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이가 있었지.’


포르테의 딸, 제이드는 조카를 떠올렸다.

만약 이후에 협상을 하게 된다면 올려두기 좋은 약점이었다.

부성애를 자극해서 의욕을 높인다면 지금 상황에서도 나쁘지 않을 터.


‘딸을 위해서 힘을 내야지. 형’


포르테를 위로함과 동시에 함께 이 난관을 헤쳐나갈 전우애를 돋울 한마디를 준비했지만.

느닷없이 포르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엘린은 무사히 도망쳤으려나.”

“...엘린이 누군데?”


제이드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묻자 포르테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조카.”

“...다행이네.”


포르테의 발 빠른 대처에 놀라면서, 제이드는 한번 시작된 대화가 끝나지 않도록 노력했다.


*


달이 중천에 떠있는 새벽 시간.

이십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성문 밖으로 쫓겨나온다.

쿵.

성문이 닫히고.


“이제 이곳에 얼씬도 하지 마라.”


한 병사가 성벽 위에서 밖의 인물들에게 큰 목소리로 선언한다.

한밤중에 강제로 쫓겨난 이들은 바로 제 2기시단 소속 기사들이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저기요, 이대로 가라고요?”


황당함이 여실히 느껴지는 그들의 공허한 외침.


“빠뜨린 건 없지?”

“당연하지... 가 아니라! 기사단장이 없잖아!!!”


쫓겨나는 와중에도 마차를 비롯해 놓고 온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제이드의 명령에 적응한 기사들은 어느새 짐 싸기의 달인이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짐이 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몰라.”


그 누구도 물음에 답할 수 없었고 혼란은 수습되지 않고 점점 가속화되었다.

파비앙이 성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소리 지른다.


“야! 우리 단장 내놔!”


그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성벽에서 응답은 없었다.

파비앙이 난리 치며 소란을 피우자.

점차 기사들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이거 이렇게 돌아가도 되는 것 맞아?”

“되겠냐? 당장 문 열라고!!”


클라크는 파비앙처럼 과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눈에 힘을 팍 주고 문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고.

길버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면서도 인원을 파악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왜 부서져 있어!! 이거 담당 누구야?”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마차 안을 확인하는 세실이 수통의 윗부분이 뚫려있는 모습을 보고 기사들을 다그치는.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길버트가 입을 열었다.


“그만!!!!!!”


길버트의 일갈에 기사전원의 시선이 집중된다.


“다들 일단 모여봐.”


각기 다른 행동을 멈추고 길버트에게 다가간다.


“이거 놔!”

“파비앙, 그만하고 갑시다.”


클라크는 눈가에 힘을 풀고, 아직도 성문을 두드리고 있는 파비앙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모두가 길버트에게 모여드는 사이, 파비앙은 성벽을 붙어있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시여.’


성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방울이 달빛에 비쳐며.

강에 몸이라도 담근 것 같은, 푹 젖은 상태의 대머리 남성이 성벽을 빠르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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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9화 선택 (2) 22.09.06 134 0 11쪽
49 48화 선택 (1) 22.09.05 136 0 11쪽
48 47화 재회 (5) 22.09.02 130 0 10쪽
47 46화 재회 (4) 22.09.01 137 0 11쪽
46 45화 재회 (3) 22.08.31 139 0 11쪽
45 44화 재회 (2) 22.08.30 147 0 11쪽
44 43화 재회 (1) 22.08.29 153 0 11쪽
43 42화 전원 (3) 22.08.26 141 0 11쪽
42 41화 전원 (2) 22.08.25 139 0 11쪽
41 40화 전원 (1) 22.08.24 1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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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8화 첫 임무 (3) 22.08.22 154 0 12쪽
38 37화 첫 임무 (2) 22.08.19 152 0 11쪽
37 36화 첫 임무 (1) 22.08.18 174 0 11쪽
36 35화 호위 (3) 22.08.17 172 0 11쪽
35 34화 호위 (2) 22.08.16 168 0 11쪽
34 33화 호위 (1) 22.08.15 178 0 12쪽
33 32화 복귀 (2) 22.08.15 177 0 11쪽
32 31화 복귀 (1) 22.08.12 182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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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화 면접 (3) 22.08.10 18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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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7화 면접 (1) 22.08.08 200 1 11쪽
27 26화 제국으로 (3) 22.08.08 21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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