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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웹소설 > 일반연재 > 팬픽·패러디, 로맨스

허브민트
작품등록일 :
2023.03.07 20:27
최근연재일 :
2023.04.30 19:2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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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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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수 :
194,653

작성
23.04.2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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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DUMMY

"감사하실 것도, 미안해하실 것도 없어요."


무덤덤하고, 짤막한 성의 없는 대답.


"다시 당신이 제 트레이너가 되어주시길 바랐고, 그러다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죄송할 뿐이에요."


그녀는 정말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래?"


담담하고 평온하게 대응하는 맥퀸에게 트레이너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있었는데."


명배우의 가면에 균열이 일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그러나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맥퀸의 반응과 상관없이, 그는 오늘 자신의 진심을 보일 생각이었으니까.



"텐노상 가을에, 그때는 분명 후회하지 않을거라 생각했어."



인연에 시작이 있다면, 끝도 있는 법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다른 길을 가게 되어서,

사소한 일로 싸우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해서,

병이나 사고로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아무리 친했더라도, 슬퍼하더라도,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트레이너로서... 너를 지켜야 한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기에 가문의 횡포로 트레이너 계약을 파기 당했을 때 그는 맥퀸을 원망하지 않았다.


맥퀸이 왜 책임을 뒤집어써서 이 사달을 냈느냐며 탓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 곁을 떠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맥퀸이라면 내가 없어도 잘해 나갈 거 라고 믿었거든."


끝내 첫 담당에게 만족스러운 결말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을 뿐.


"네가 나를 다시 만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면..."


허나 그는 맥퀸의 약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명문가 출신이며, 이미 능력을 입증한 맥퀸의 트레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는 차고 넘칠 것이다. 자신을 쫓아낸 가문이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둘 리가 없으니까.


새로운 트레이너가 생기면, 그녀도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길을 마저 걸어가게 되겠지. 그가 아닌 다른 트레이너와 함께.


맥퀸의 무거운 사랑을 알지 못했기에, 그는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떠난 자리를 새로운 인연이 채우는 것을 받아들였다.



"미안해. 정말로."


하지만 맥퀸은 그를 트레이너로 삼기 위해 반년을 기다렸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까?


맥퀸이 다시 손을 내밀었던 그때, 단호하게 이전의 관계가 끝났음을, 돌이킬 수 없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 최선이었겠지만...


깨진 화분 조각을 다시 붙여보려다 실패하고, 새로 피어난 꽃까지 시들게 할 뻔했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두 사람에게 주었다.


"이제와서 사과해도, 늦었겠지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애초에 제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해도, 한참 만에 대답한 맥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잊었던 감정이 다시 치밀어오르는 듯한 감각을 그녀는 애써 외면했다.


미련은 없다. 없어야만 한다.


없어야만 할텐데.


"...맥퀸은 예전에 항상 나와 일심동체가 되고 싶다고 했었지만, 실제론 그렇지 못했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말하지 않고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


"......"


"나는 네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어. 어쩌면 앞으로도 영영 그렇겠지. 네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말하면 달라지는 게 있나요? 트레이너 씨에겐 라이스 씨가..."


그렁그렁 맺힌 눈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라도 그녀는 구원받았다고, 맥퀸은 웃으면서 두 사람을 축복해 주고 싶었으니까.


"네 말대로 나는 라이스에게 돌아가야 해. 라이스도 나도, 같은 마음이니까."


오늘 이대로 헤어진다면, 또다시 맥퀸과 이렇게 마주할 기회가 있을까?

쓰다만 책처럼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나서는 안 된다.


그는 이전처럼 어설픈 배려 따위는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더 나은 결말을 위해서.


"그렇지만 너 역시 나의 소중한 담당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 나는 네가 미련이 남지 않길 바랄 뿐이야."


"저는 미련 같은 건..."


"비록 떠나지만, 난 진심으로 네가 행복하길 바라. 그러니까, 이제 서로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


다만 진심을 말할 뿐이다.




"...저도 후회하고 있어요."


사행으로 강착당한 것? 물론 후회한다.


그를 지키기 위해 가문과 맞서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후회하는 일은...


"트레이너 씨를... 연모했다고..."


솔직하게 전하지 못한 마음.


"말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그를 잃었다. 솔직하지 못하고, 비겁하고, 나약했던 미성숙함의 대가를 무겁게 치렀다.


끝내 참아왔던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트레이너는 그런 맥퀸을 안아주었다.


"미안해. 너를 힘들게 해서. 네 마음을 몰라서... 받아줄 수 없어서... 내가 미안해."


너무나도 늦게, 그러나 마침내 털어놓은 진심에 그녀는 한참을 오열했다.


앞으로는 울지 않도록, 떠나는 그가 모든 눈물을 가져가도록.





"트레이너 씨, 정말로 저에게 미안하시다면, 마지막으로 제 잘못 하나만... 용서해주시겠어요?"


여전히 젖은 눈으로 그리 말하는 맥퀸에게, 트레이너는 쓸쓸히 웃어주었다.


"내 잘못이라니까..."


"지금 잘못, 하려고요."


트레이너가 의문을 표하는 것보다, 맥퀸이 그의 입술을 빼앗는 것이 더 빨랐다.


당황해서 버둥거리는 그는 입이 막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무의미한 저항은 멈추었다.


이것은 그녀의 마침표일 테니까.




---




그녀는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다.


끝을 인정하고 그를 풀어주었을 때, 트레이너는 축축해진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훔쳤다.


화를 내지는 않았다. 불쾌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견딜 수 없는 어색함이 흘렀을 뿐이다.


문득 두 사람은 다가오던 사이렌 소리가 어느 순간 사라진 상태였음을 깨달았다.


"라이스가 용서해 줘야 할텐데..."


"아무리 그래도 비밀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라이스 성격이라면 마지막이라고 용서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없는 두 사람이었다.




"오라버니 또 바람폈어...?"


등 뒤에서 들려온 '상큼발랄한' 목소리에 트레이너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고, 맥퀸은 가려진 사각지대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옆으로 숙였다.


거기에는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몸을 벽에 기댄 채 질질 끌고 오고 있는 라이스가 서 있었다.


당장에라도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은 그녀에게서, 검은 자객의 날카로운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였을까.


"라이스 씨... 그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맥퀸 씨는 용서할게."


부들부들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라이스는 싱긋 웃어 보였다.


"오라버니는 벌... 받아야겠지?"




---




그날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트레이너는 필사적인 해명을 하면서, 사이렌의 정체가 라이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멀리서 들으면 진짜인지, 핸드폰에서 재생하는 건지 구분도 안 될 거라 생각한 그녀가 속임수를 시도했다고.


그리고 그렇게 아픈 몸을 질질 끌고 온 다음, 두 사람의 진한 입맞춤을 발견하고도 기다려 주었다는 이야기까지.


"내가 사랑하는 건 정말 라이스뿐이야. 믿어줘. 절대 의도한 게 아니라..."


"응. 동화책에서 봤는데, 꽃 씨한테 벌 씨가 꼬이는 건 당연하데."


"..."


"벌집을 태우는 건 벌 씨가 불쌍하니까, 꽃을 안전한 집 안에 가져와서 보살피면 되지 않을까?"


"......."


"그럴거지 오라버니?"




----------




푸른 장미가 활짝 피어난 여름을 지나, 낙엽이 떨어지던 가을의 어느 날에.



메지로 가문의 핵심부 인원 대다수는 수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속당하거나,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방만하게 경영되어 왔던 메지로 소유의 계열사 주식은 폭락했고, 부정하게 축적한 부는 추징금 전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불투명했다.


그나마 남은 희망은, 너무 늦기 전에 내전으로 가문이 분열되면서 메지로의 유산이 이어질 가능성이 남았다는 것.


맥퀸 지지를 선언하고, 본가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상금과 자산 따위를 한데 모아, '레이크 빌라'라는 이름의 새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초록 모자 사무원이 전달한 익명의 후원금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한때 사용인까지 포함하면 수백 명 넘게 거주하던 메지로 저택에,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실질적인 생활공간 역시 축소되고, 관리되지 않아 어질러진 저택은 폐가...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몰락한 가문의 처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레이크 재단의 미래와 메지로 가문의 존속을 위해, 서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장폐지/파산 위기에 놓인 메지로 가문의 기반들을 모두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은 신생 레이크 재단이었다.


이 황량하고 불편한 저택에 레이크 재단의 특사와 호위가 방문한 이유였다.


"...왜 그랬습니까?"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쇠약해져 뼈만 남은 가문의 당주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라모누는 몸을 기울인 다음, 그대로 전해주었다.


"다 가문의 번영을 위해서 그런 것인데, 맥퀸은 어째서 가문을 배신한 건가요?"


연보랏빛 귀가 살짝 움츠러들었다가, 이내 꼿꼿이 펴졌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한 가문의 번영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체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녀에게는 그 뒤틀린 질서보다 자매들의 웃음과 행복이 더 중요했다.


"무엇보다 저는 가문을 배신한 적이 없어요. 메지로의 존귀한 사명을 먼저 배신한 것은, 당주님과 원로들이 아닌가요?"


"맥퀸은 어려서 모르겠지만, 현실에는 정의도, 권선징악 같은 법칙도 없습니다. 결국 세상에 남는 것은 승리와 결과뿐이에요. 이제 이사장이 메지로 가문까지 집어삼켰으니,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세요. 후회할 때는 이미 늦었을 겁니다."


이전이라면 당주의 말에 흔들렸을지도 모르지만, 퀸에서 한 사람의 플레이어로 승급한 그녀는 흔들림 없이 반박했다.


"레이크 빌라는 트레센의 꼭두각시가 아니에요. 이사장님은 힘이 부족한 우리를 도와주신 것뿐입니다. ...세상 모두가 메지로 가문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으니까요."


자신이 믿던 세상이 무너졌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패장을 향해, 그녀가 보내는 시선에 담긴 것은 원망이나 증오가 아닌 동정심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때도 레이크 빌라의 일원들이 힘을 모아 맞설 테니까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서."


당주는 말없이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모든 메지로의 유산이 공중분해 되는 것을 지켜보느냐,

자신을 배신한 후계자에게 미약한 보탬이나마 남겨주느냐,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애초에 선택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떠나기 전에 맥퀸의 진심이 듣고 싶었을 뿐.


힘들게 고개를 끄덕이자, 라모누는 옆의 만년필을 들어 문서에 당주의 이름을 대신 서명했다.


"네가... 옳았ㄱ... 바란다."


그 말은 라모누가 전해주지 않아도, 맥퀸 역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현명한 선택을 내려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수십 년간 메지로 가문을 이끌어왔던 당주, 메지로 아사마는 맥퀸이 떠난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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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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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라이스 샤워의 오라버니' 23.04.30 36 0 9쪽
39 '홀로 여정을 마치는 법' 23.04.26 15 0 6쪽
»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23.04.25 15 0 12쪽
37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23.04.24 26 0 10쪽
36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말아요.' 23.04.10 25 0 10쪽
35 '끝까지 맥퀸 씨를 방해할거야.' 23.04.09 29 0 10쪽
34 '트레이너 씨와 함께 꼭 행복하시길.' 23.04.08 25 0 10쪽
33 '하늘에 닿을 듯이.' 23.04.07 20 0 11쪽
32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23.04.06 37 0 11쪽
31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23.04.04 23 0 12쪽
30 '어떤 스위츠보다도 달콤한' 23.04.03 32 0 11쪽
29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23.04.02 34 0 11쪽
28 '유일한 구원' 23.04.01 22 0 15쪽
27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3.03.31 22 0 11쪽
26 '트레이너, 자네의 담당을 믿나?' 23.03.30 20 0 11쪽
25 '라이스는 말이야, 맥퀸 씨를 용서했어.' 23.03.29 20 0 13쪽
24 '오라버니는 지금... 행복해?' 23.03.28 16 0 8쪽
23 '늦었지만, 이제는 다를거야.' 23.03.27 27 0 9쪽
22 '이번 경기가 끝나면, 정말로.' 23.03.26 19 0 9쪽
21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23.03.25 18 0 10쪽
20 '이기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23.03.24 19 0 12쪽
19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야죠.' 23.03.23 18 0 12쪽
18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23.03.22 17 0 11쪽
17 '말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는데.' 23.03.21 19 0 16쪽
16 '라이스가 멀리 가버려도, 내가 꼭 따라갈게.' 23.03.20 20 0 13쪽
15 '하나쯤은 뺏어갈 수 있잖아요.' 23.03.19 20 0 13쪽
14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23.03.18 18 0 13쪽
13 '사랑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23.03.17 17 0 10쪽
12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23.03.16 30 0 11쪽
11 '맥퀸 씨, 오라버니를 좋아하는거지?' 23.03.15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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