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허브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웹소설 > 일반연재 > 팬픽·패러디, 로맨스

허브민트
작품등록일 :
2023.03.07 20:27
최근연재일 :
2023.04.30 19:25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005
추천수 :
1
글자수 :
194,653

작성
23.04.24 20:03
조회
26
추천
0
글자
10쪽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DUMMY

라이스의 컨디션이 엉망이라는 것은 맥퀸 역시 한눈에 보고 알 수 있었다. 일단 추격을 허용하면 금세 따라잡힐 것이 뻔하다.


요령 있게 도망쳐 숨어준다면 다행이지만, 속도를 제대로 못 내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녀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줘야만 했다.


맥퀸은 아직 본격화가 끝나지 않은 정상급 우마무스메, 신체 능력이라면 오히려 더 유리하다.


'2분... 3분 정도면 라이스 씨가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겠죠.'


외진 골목이라지만 엄연한 도심이니만큼, 번화가와 대단히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단 인파 사이에 섞여 든다면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메지로의 사냥개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눈짓을 슬쩍 주고받자마자 달려드는 둘을 보면서, 그녀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




퇴원이 머지않았다지만, 라이스는 절대로 전력 질주를 해도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수술과 그 회복을 마친 것에 불과했으므로.


달린 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땅을 짚을 때마다 다시 부러질 것만 같은 통증이 이어졌다.


그러나 아프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맥퀸은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까.


평생 달리지 못하게 되어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릴 수만 있다면.


겨우 평범한 인간한테 따라잡힐 듯 한심한 속도였지만, 그 어떤 레이스에서보다도 간절하게 달렸다.


"흐윽... 우우욱..."


어떤 이들은 정신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한한 것은 아니다.


강철같은 의지조차 끔찍한 고통 앞에서 마모되어 간다.

눈앞은 흐릿해지고, 물속에 빠진 것처럼 주변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


한계를 넘어선 다리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으앗!"


갑자기 앞에 나타난 장애물에 부딪혀 몸이 튕겨 나갈 새도 없이, 튀어나온 두 팔이 휘청거리는 라이스를 감싸 안았다.


"내 말 안 들려? 라이스!"


간신히 혹사가 끝난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그녀의 몸은 가라앉지 않았다.


천천히 아픔이 가시자, 눈을 깜빡인 라이스는 곧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오라버니..."


"아직 무리하면 안 된다니까 이렇게 뛰면 어떡해...! 맥퀸은 또 어디 간 거야?"


언제나 보고 싶은 그의 얼굴이지만, 이토록 반가운 적이 또 있었을까.


겨우 지옥에서 탈출하자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에, 그녀는 참아왔던 눈물을 터트렸다.


"으우우... 흐어엉... 맥퀸 씨가... 큰일 났어... 가문에서 맥퀸 씨를 해치려고...!"


울부짖음에 가까워 알아듣기 힘들 법도 했지만, 그래도 2년 가까이 함께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트레이너는 용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친 라이스를 보살피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 위험한 것은 맥퀸이었기에 오래 고민할 수는 없었다.


맥퀸의 죽음은 그에게도 바라는 결말이 아니니까.


라이스에게도, 자신에게도 영원한 불행이 될 테니까.


"라이스, 다른 애들한테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해. 경찰이랑 구급차도 부르고. ...잠시 다녀올게."


"뭐, 뭣?"


상대는 우마무스메 둘이다. 심지어 명백한 살의를 가지고 있다.


트레이너 직업 특성상 우마무스메를 다루는 법도 배운다지만, 정말로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라이스는 눈물도 뚝 그치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으..."


자신을 조심히 앉혀두고 달려 나가는 그를 향해서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잡을 수 없었다. 물리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를 위해 뒤에 남은 맥퀸을, 이대로 내버려 두라고 말할 수 없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줘. 꼭 맥퀸을 데리고 돌아올 테니까."


그런 마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트레이너는 돌아오겠다 약속하고 멀어져 갔다.


'어째서... 하필 오늘...'


여태까지 해 온 것만으로도, 그녀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망가진 다리로 이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녀를 돌보아준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라이스가 생각하기에는 없었다.



"...흐으읍!!"


이를 악물고 벽에 의지한 채로, 위태롭게 일어섰다.




---




잠깐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맥퀸을 간단히 무시하고 라이스를 쫓아갈 수 있다.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고 애써 다짐하던 그녀는 곧 수세에 몰렸다.


나이프를 든 상대를 견제하면 남은 한 명이 빈틈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렇게 도망치려는 쪽에 잠시 주의를 기울이면, 바로 뒤에서 위협적으로 날붙이를 휘둘러왔다.


이것은 그녀에게 익숙한 링 위의 스포츠가 아니라, 규칙 없는 뒷골목의 싸움, 그것도 극히 불합리한 조건의 싸움이었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1분이 겨우 지났을 때쯤엔 입구에서 밀려났다. 길목이 넓어지자 더 이상 동시에 뛰쳐나오는 적을 막아서지 못했다.


"이런...!"


맥퀸을 피해 두 사람이 동시에 라이스가 도망친 방향을 향해 뛰자, 맥퀸은 지체 없이 따라갔다.


'스피드라면 제가 제일 빨라요.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붙잡는다면...!'


그러나 그리 생각한 맥퀸이 전력으로 가속해 거리를 좁히자, 도망치던 둘은 일제히 반전했다.


맥퀸은 엄연히 그들의 목표 중 하나이고, 심지어 우선순위는 더 높았다. 가능하면 둘 다 잡기 위해서 도망치는 라이스를 우선해 노린 것일 뿐.


도망칠 생각이 없음을 읽힌 것은, 포커에서 폴드를 선언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안 그래도 불리한 상황에서 의도를 간파당한 이상 얕은 함정이라도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 가까워요!'


이대로는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맥퀸이 넘어질 정도로 몸을 낮췄다.


"큭!"


가슴을 찌르려던 칼날은 아슬아슬하게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균형을 잃어 엎어지면서 맥퀸은 상대의 다리를 후려쳤고, 엇갈리며 넘어지는 두 사람 모두 단검을 놓쳤다.


간신히 위기를 넘기고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빈손이던 나머지 한 명이 덮쳐왔다. 그대로 맥퀸의 목을 조르면서 악이 받쳤는지 욕을 퍼부었다.


"그만 애 먹이고 이제 좀 뒤지세요. 우리도 살아야 될거 아냐."


아무리 맥퀸의 지구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2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우위를 점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이었다면 모를까 체력을 상당히 소비한 그녀는 압박을 쉽게 풀지 못했다.


서로에게 정신이 팔린 두 사람과, 옆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신음하는 한 명까지, 세 사람 모두 주변 소리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맥퀸!!"


여기 있을 리 없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기 목을 노리는 팔을 붙잡던 맥퀸의 힘이 순간 풀렸다. 그 순간 맥퀸의 위에 올라탔던 녀석이 몸을 날린 트레이너와 함께 거칠게 바닥을 굴렀다.


단순한 것이 최고라는 격언처럼, 70kg의 질량 그 자체가 가진 운동량은 대우마무스메 호신술 따위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켁. 켁. ...트레이너 씨...!"


라이스처럼 의식이 끊기기 직전까지 몰린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기침 몇 번에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트레이너와 뒤엉킨 상대가 분노하여 그의 팔을 꺾어버리기 전에, 맥퀸이 먼저 걷어차서 둘을 떨어트려 놓는 것이 더 빨랐다.



급하게 달려와서 가쁜 숨을 내뱉고 있는 트레이너를 맥퀸이 일으켜 세울 때쯤, 방금 걷어찬 암살자도 곧 일어나 괴로워하는 동료를 부축하고 있었다.


물러날 기회를 엿보던 맥퀸의 귀가 움찔거렸다. 대치하던 두 우마무스메의 귀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사이렌 소리였다. 4명의 희비가 엇갈렸다.


"라이스 씨가 정말로...!"


트레이너는 방금 달려왔으니 논외고, 자신은 핸드폰을 꺼낼 틈도 없었다.

아마 라이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불러온 것으로 생각하면 빠르긴 해도 그럭저럭 앞뒤가 맞았다.


의기양양해진 맥퀸과 트레이너와는 대조적으로, 두 암살자는 실패했음을 깨닫고 이를 갈았다.


"넌 진짜 다리 하나 부러진 애를 놓치는 게 말이 되냐?"


"니가 저년한테 낚여서 삽질만 안 했어도 내가 안 놓쳤어!"


그들은 메지로 가문을 위해 오랫동안 더러운 일을 처리해 왔지만, 감옥에 갇히면서까지 일을 성공시킬 의리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계약에 불과하니까.


패배자들이 흔히 그렇듯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며, 다급하게 소리의 반대편으로 줄행랑쳤다.




---




그들이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간신히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던 도중, 먼저 말을 건넨 것은 트레이너였다.


"오랜만이네. 다친 데는 없어?"


처음 계약을 파기하고 나서 재회까지 걸린 6개월보다, 훨씬 더 무거웠던 2개월이 지난 후의 재회였다.


4년의 인연을 그저 지나가 버린 추억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냉엄했던 시간.


"...네."


맥퀸은 자연스럽게 그를 바라보려 했다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눈을 피했다.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선뜻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타인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던 용기 있는 영웅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지금 이 자리에는 상처받고 겁먹은 소녀만이 남아 있었다.


"라이스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 말에 맥퀸은 바짝 고개를 들었다.


먼저 운을 뗐지만, 쉽사리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트레이너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지만 맥퀸이 매일 악몽 속에서 만나던 그와는 달랐다.


가슴에 사무쳤던 그날의 원망도, 경멸도,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미안해."


아득한 과거의 기억 속에서, 맥퀸은 그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어째서 사과하시는 건가요...? 저는..."


"담당의 마음조차 모르는 미숙한 트레이너라서... 너와 일심동체가 되어주지 못했으니까."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작가의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라이스 샤워의 오라버니' 23.04.30 36 0 9쪽
39 '홀로 여정을 마치는 법' 23.04.26 15 0 6쪽
38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23.04.25 15 0 12쪽
»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23.04.24 27 0 10쪽
36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말아요.' 23.04.10 25 0 10쪽
35 '끝까지 맥퀸 씨를 방해할거야.' 23.04.09 29 0 10쪽
34 '트레이너 씨와 함께 꼭 행복하시길.' 23.04.08 26 0 10쪽
33 '하늘에 닿을 듯이.' 23.04.07 20 0 11쪽
32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23.04.06 37 0 11쪽
31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23.04.04 24 0 12쪽
30 '어떤 스위츠보다도 달콤한' 23.04.03 32 0 11쪽
29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23.04.02 35 0 11쪽
28 '유일한 구원' 23.04.01 23 0 15쪽
27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3.03.31 22 0 11쪽
26 '트레이너, 자네의 담당을 믿나?' 23.03.30 21 0 11쪽
25 '라이스는 말이야, 맥퀸 씨를 용서했어.' 23.03.29 20 0 13쪽
24 '오라버니는 지금... 행복해?' 23.03.28 17 0 8쪽
23 '늦었지만, 이제는 다를거야.' 23.03.27 28 0 9쪽
22 '이번 경기가 끝나면, 정말로.' 23.03.26 19 0 9쪽
21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23.03.25 18 0 10쪽
20 '이기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23.03.24 20 0 12쪽
19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야죠.' 23.03.23 19 0 12쪽
18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23.03.22 17 0 11쪽
17 '말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는데.' 23.03.21 19 0 16쪽
16 '라이스가 멀리 가버려도, 내가 꼭 따라갈게.' 23.03.20 20 0 13쪽
15 '하나쯤은 뺏어갈 수 있잖아요.' 23.03.19 20 0 13쪽
14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23.03.18 18 0 13쪽
13 '사랑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23.03.17 17 0 10쪽
12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23.03.16 30 0 11쪽
11 '맥퀸 씨, 오라버니를 좋아하는거지?' 23.03.15 2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