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허브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웹소설 > 일반연재 > 팬픽·패러디, 로맨스

허브민트
작품등록일 :
2023.03.07 20:27
최근연재일 :
2023.04.30 19:25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997
추천수 :
1
글자수 :
194,653

작성
23.04.04 18:41
조회
23
추천
0
글자
12쪽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DUMMY

비록 어리석은 실수를 수도 없이 저질렀고, 결과적으로 패배했지만, 맥퀸의 지능을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도의적인 문제는 내려두고, 라이스의 트레이너가 되어버린 그를 한때나마 되찾기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과정을 보면 맥퀸도 전략가의 자질은 충분했다.


당주의 눈은 어떤 의미에서는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많은 측면에서 메지로 가문의 후계자로 적합했다.


사랑이라는 지독한 감정에 휘둘려 인생을 망치는, 그런 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결과적으로 '영리한' 맥퀸이 세운 계획은 이번에도 성공하는 듯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했다.




이 무렵에는 메지로의 영애들 역시 학원과 가문의 관계가 험악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다. 추악한 진실을 알았던 것은 맥퀸뿐이지만.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맥퀸의 부탁을 받은 아르당은 다짜고짜 애원하는 그녀의 기세에 떠밀려 수락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얼마 전까지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던 맥퀸이,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으니까.


문제는 그 웃음이 마음을 다잡은 사람의 여유가 아니라, 삶에 미련을 포기한 사람에게 남은 초연함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흉흉한 시국에 메지로 맥퀸이 트레센 이사장에게 보낼 편지라니?


일단 약속을 했으니 지키기는 하겠지만, 의문과 걱정이 사라지질 않았다.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으니..."


눈앞의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킨 그녀는 마저 한숨 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1시간여 만의 고민 끝에 아르당은 깨달았다.


'남들한테 보여 주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럼 저는 괜찮은 거겠죠...?'


자랑스러운 메지로 가문의 인자를 물려받은 그녀는, 언어의 마술사적 소양도 물려받았다.


편지를 맡긴 것은 당연히 본인을 믿는다는 뜻이다.

정확한 시점에 전해 달라는 부탁과, 비밀 엄수가 약속이다.

그녀가 편지를 열어 보면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참된 메지로 가문의 영애는, 명예롭게 계약을 지켰다.

절대로 계약서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 아니다.


"후읍...!"


심호흡을 마치고, 편지 봉투를 열었다.


"아..."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그녀의 유리처럼 가녀린 손가락 사이로 편지지가 흘러내려, 정원의 잔디밭에 떨어진다.




----------




혁명이든, 반란이든, 쿠데타든, 그런 음모들이 실패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는 사전 발각이다.


뜻을 함께하는 동조자를 모으는 것이 성공의 열쇠지만, 내부에서 밀고자가 나올 위험 역시 비례해서 늘어난다.


맥퀸은 아르당 오직 한 명만을 본인도 모르도록 끌어들인 셈이지만, 그 한 명조차 마냥 기대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맥퀸 씨, 죄송합니다. 약속을 조금 바꿔야겠어요.'


아르당은 메지로 가문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맥퀸의 반란에 동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약속이라고 해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을 맹목적으로 행하는 것은 더 큰 불의이기에, 그녀 또한 자신만의 선택을 한다.



"아르당, 웬일로 나를 부른 거야?"


"오랜만이야. 맥퀸은 어딨어?"


아르당은 바로 맥퀸을 찾아가서 설득을 시도하는 하책을 택하지 않았다.

뜯어 봤다고 말하기도 민망하고, 맥퀸의 결심은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닐 테니까.


메지로 파머와 골드 쉽이 그녀의 부름에 모였다.

파머에게는 뜬금없는 티파티를 강하게 권했고, 골드쉽에게는 맥퀸이 찾고 있다는 한마디로 충분했다.


저택 밖의 작은 카페에서 갑작스레 만든 모임이지만, 특별히 감시당할 만큼 수상한 일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제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두 분을 불렀어요. 맥퀸 씨가 큰 어려움에 처해있어요."


도베르와 라이언은 친분은 두터웠지만, 두 사람은 메지로 가문에 대한 애착이 자신 만큼이나 두터울 테니 혹여나 망설일 위험이 있었다.


반면 골드 쉽이야 철저한 맥퀸 바라기이며, 파머는 솔직하게 말해서 가문에서 철저히 소외된 처지다. 가문에 반기를 들어야 하는 일에서 가장 믿을 만한 두 사람이었다.


"나 따위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나..."


"요즘 맥퀸이 이상하긴 했어. 골드 쉽 님이 당연히 도와줘야지."




맥퀸의 판단은 최선이었다.

거악이 심판당하고, 정의는 승리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

그 세상에 죄인인 그녀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진심으로 반성했기에, 저지른 잘못 이상으로 책임지려 하는 맥퀸을 아르당은 거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약속을 어겼다.




----------




"...저도 할 수 있었어요."


기자회견을 마친 그녀는 해방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맥퀸은 저택의 가장 깊숙한 방에 정중하게 모셔진 다음, 건강상의 이유로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될 예정이었다. 엄연히 메지로 가문 소속인 맥퀸을 그런 명분으로 구속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다시 새장에 갇힐 운명이라 할지라도, 한 번이나마 죽기 전에 뜻대로 날아보았으니 괜찮다고.


맥퀸에게 다가오는 메지로의 마수를 막아서는 골드 쉽이 없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맥퀸, 뛰어!"


"에?"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다.


누구나 각자의 꿈을 위해, 이익을 위해, 목표를 위해 움직인다. 그러한 충돌 사이에서 노력만으로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운을 탓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반대로, 가끔 뜻하지 않게 일이 잘 풀리기도 한다.


"답답아, 뛰라고. 한정판 디저트 먹으러 갈 때처럼 뛰란 말이야!"


"제가 언제 그랬..."


그녀의 항의는 이어지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두 명을 막아서던 골드쉽에게, 뒤에 있던 요원들까지 다가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맥퀸을 따라온 수행원들 역시 우마무스메가 다수였지만, 골드 쉽은 혼자서 버티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아악! 여기 사람 친다!! 너희 다들 빨리 사진 안 찍고 뭐 해!"


사실 날뛰는 것은 골드쉽이었고, 요원들은 그저 지나쳐 가려 할 뿐이었다. 그녀의 연기는 어깨만 살짝 부딪혔는데 공중제비를 돌아 넘어지는 축구 선수의 인자를 계승 받은 것만 같았다.


수십 명의 기자단이 지켜보는 지금, 맥퀸을 조용히 끌고 가는 것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골드 쉽은 경우가 다르기에 저택으로 끌고 가 감금할 수도 없다. 폭행 사건으로 비화되면 끝장이다.


골드 쉽이 기행을 저지르면 '골드 쉽이 골드 쉽 했다'며 넘어가겠지만, 메지로 가문의 체면은 (곧 땅에 처박힐 예정이지만) 그렇지 못하니까.


"아... 알았어요!"


그렇게 장판파의 장비가 빙의한 골드 쉽이 왼쪽 통로를 차단한 사이에, 맥퀸이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앞선 계산을 끝마친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자신을 위해 달려온 친구를 믿고, 무작정 몸부터 움직인 것이다.


따라 나오려는 기자들, 회견장 밖에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바글바글하게 모두 얽힌 현장은 혼돈의 도가니였다.


"맥퀸, 이쪽이야!"


이런 정체와 혼란 속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파머가 뛰쳐나와 맥퀸의 팔을 붙잡고 대도주를 시작한다.


메지로 다운 주법 따위는 진작에 내다 버린, 실패자들이 내몰리는 장애물 달리기나 뛴다고 멸시당하던 메지로 파머.


메지로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는 눈앞의 길을 여유롭게 개척하며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




"하하하...."


맥퀸을 보조하기 위해 따라왔다가, 졸지에 반역자를 체포하는 감시자 역할을 맡게 된 라모누는 어이가 없어서 소리내어 웃었다.

평소에 레이스 이외의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이사님, 이대로라면 놓칠 겁니다. 어떻게..."


맥퀸이 메지로 가문을 배신하는 일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이런 식의 난입과 막무가내 도주는 정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내주세요."


"예?"


"안 그래도 이사장이 우리의 트집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우리가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잖습니까. 뭐 납치라도 하실 겁니까?"


"...알겠습니다."


지금은 맥퀸이 터트린 폭탄을 수습하는 게 더 급하긴 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나 맥퀸,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너를 메지로 맥퀸으로 볼 텐데. 이사장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그 중얼거림은 동생을 향한 걱정이었을까, 배신자를 향한 조롱이었을까.




----------




의도가 다른 데에 있다고는 해도, 맥퀸이 저지른 일을 사실대로 발표하는 것뿐이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가장 괴로운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이사장이 교육자라는 점과, 성향상 엄벌보다는 교화가 더 바람직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맥퀸에게는 두 번째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의 직위는 개인의 입장보다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자리이므로, 감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렇게 씁쓸함을 달래던 와중에 비서 타즈나가 들어왔다.


"이사장님, 아무래도 확인하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가?"


"메지로 아르당 씨가 찾아왔습니다. 이사장님께 꼭 직접 전해야 할 게 있다고, 대신 전해드린다고 해도 한사코 고집하고 있어서..."


예상치 못한 이름에 이사장의 눈이 커졌다.

사태 이후 그녀는 메지로 관련 인물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었다. 그것은 트레센 학원에 다니는 수많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그들을 차별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사장이 메지로 가문의 핏줄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줄 만큼 치사한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정의감 하나만으로 메지로의 공격을 받는 라이스와 트레이너를 돕겠다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깐 고민했으나 접견을 거부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남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상류층의 예절이 몸에 배어있는 그녀는, 품위 있게 드레스를 들어 올리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래, 나한테 무슨 볼일인가?"


"이사장님께 편지를 직접 전해달라는 맥퀸 씨의 부탁으로 왔습니다."


라이스와 함께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맥퀸의 접촉은 처음이었고, 분명히 중요한 일일 것이다. 잔뜩 긴장한 채로 아르당이 건네는 편지를 받은 이사장은, 뜯어본 흔적에 살짝 눈을 치켜떴다.


"오면서 읽었나?"


"숨길 생각은 없어요. 거짓말은 더 큰 잘못이니까요."


그럭저럭 납득한 이사장은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

이 편지를 읽으실 때쯤이면, 기자회견을 보셨을 테니 제 진심을 믿어주실거라 생각해요. 비록 늦었지만,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습니다.


아마 라이스 씨한테 진실을 들으셨을 테고, 곧 그걸 발표하실 생각이라고 감히 예측하겠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말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겠죠.


저는 라이스 샤워 씨를 살해하려 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에 찍힌 인감이 메지로 맥퀸 본인의 진술임을 보증합니다.


스스로 이것을 밝힐 수 없는 까닭은, 가문의 부정을 모두 폭로하기 전에 끌려갈 위험이 있으니까요. 아니면 저를 정신병자로 진단하고 진실을 은폐할 수도 있고요. 이사장님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게 나을 겁니다.


저와 메지로 가문은 지금까지 저지른 죄악에 대해 마땅한 징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학원의 다른 자매분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피해자예요.

메지로 가문이라는 이유로 의심하지 마시고, 라이스 씨를 보호했듯 이사장님께서 살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문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




끝까지 읽고 눈을 감아버리고 만 이사장에게, 아르당이 말했다.


"맥퀸 씨의 부탁은 끝났지만, 염치 불구하고 저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반성하고 있는 맥퀸 씨를 조금이라도 선처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0 '라이스 샤워의 오라버니' 23.04.30 36 0 9쪽
39 '홀로 여정을 마치는 법' 23.04.26 15 0 6쪽
38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23.04.25 15 0 12쪽
37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23.04.24 26 0 10쪽
36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말아요.' 23.04.10 25 0 10쪽
35 '끝까지 맥퀸 씨를 방해할거야.' 23.04.09 29 0 10쪽
34 '트레이너 씨와 함께 꼭 행복하시길.' 23.04.08 25 0 10쪽
33 '하늘에 닿을 듯이.' 23.04.07 20 0 11쪽
32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23.04.06 37 0 11쪽
»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23.04.04 24 0 12쪽
30 '어떤 스위츠보다도 달콤한' 23.04.03 32 0 11쪽
29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23.04.02 34 0 11쪽
28 '유일한 구원' 23.04.01 22 0 15쪽
27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3.03.31 22 0 11쪽
26 '트레이너, 자네의 담당을 믿나?' 23.03.30 20 0 11쪽
25 '라이스는 말이야, 맥퀸 씨를 용서했어.' 23.03.29 20 0 13쪽
24 '오라버니는 지금... 행복해?' 23.03.28 16 0 8쪽
23 '늦었지만, 이제는 다를거야.' 23.03.27 28 0 9쪽
22 '이번 경기가 끝나면, 정말로.' 23.03.26 19 0 9쪽
21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23.03.25 18 0 10쪽
20 '이기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23.03.24 19 0 12쪽
19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야죠.' 23.03.23 18 0 12쪽
18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23.03.22 17 0 11쪽
17 '말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는데.' 23.03.21 19 0 16쪽
16 '라이스가 멀리 가버려도, 내가 꼭 따라갈게.' 23.03.20 20 0 13쪽
15 '하나쯤은 뺏어갈 수 있잖아요.' 23.03.19 20 0 13쪽
14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23.03.18 18 0 13쪽
13 '사랑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23.03.17 17 0 10쪽
12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23.03.16 30 0 11쪽
11 '맥퀸 씨, 오라버니를 좋아하는거지?' 23.03.15 22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