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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민트 님의 서재입니다.

[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웹소설 > 일반연재 > 팬픽·패러디, 로맨스

허브민트
작품등록일 :
2023.03.07 20:27
최근연재일 :
2023.04.30 19:25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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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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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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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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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DUMMY

봄이 왔다.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마침내.


봄이라는 계절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준다. 두꺼운 옷을 장롱에 넣어두고,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 신선한 일상을 시작할 시간이니까.


...하지만 누구에게든 인생에 시련은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 희망찬 계절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텐노상 봄의 경기가 열리는 교토에도 물론 있었고.





"준비됐어, 맥퀸?"


"물론이에요. 응원해주시는 수많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질 수 없으니까."


알 사람은 모두 알고 있듯이, 메지로 가문의 텐노상에 대한 애착은 특별하다. 그리고 맥퀸은 역사상 처음으로 텐노상 봄의 3연패에 도전하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녀를 최고의 스테이어로 평가하고 있다. 그들에게 맥퀸의 패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맥퀸에게는 가문의 존귀한 사명과, 팬들의 기대와, 메지로 맥퀸 개인으로서의 꿈 모든 것이 걸린 경기였다.


이전의 부상은 완전히 회복했다.

오늘을 위해 최선의 준비를, 자신이 신뢰하는 트레이너와 함께 해왔다.

오늘의 자리는 그녀를 위한 무대다.

의심할 여지 없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



그러므로, 지금의 불안함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긴장감일 뿐이다. 최후까지 방심하지 않는 신중함이다.


이대로 경기장에서 예정된 결과를 거두어오면 된다. 다른 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니까.


"최선을 다하고 와. 맥퀸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런데 어째서 그는 슬퍼하고 있는 걸까.

이래서는 신경 쓰여서 온전히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녀는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너 씨."


"응?"


"트레이너 씨는 저를 위해 최선을 다하셨죠?"


"물론이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맥퀸을 위해서 트레이너는 밤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일했고, 그녀도 그것을 안다.


"하늘에 맹세코 진실만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래. 맥퀸은 내 담당 우마무스메니까, 너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그는 질문의 의도를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대답을 먼저 했다.

분명 그는 틀림없이 사실을 말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녀에게도 전해졌다.


"그러면 제가 텐노상에서 우승하길 바라시나요?"


이대로 기다리면 트레이너는 아마 그렇다고 답할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망설임을 기다리지 못하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제 승리는 라이스 씨의 패배를 뜻해요. 라이스 씨가 지길 바라실 수 있나요?"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트레이너는 눈을 피하고, 뭐라 답하지 못한 채 말을 삼킬 뿐이었다.


맥퀸은 애써 미소 지었다.


"죄송해요. 이상한 질문이었죠. 꼭, 제가 트레이너에게 승리의 왕관을 가져다드리겠어요."


맥퀸이 대기실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선택해야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의 마음에, 인간관계에 어떻게 순위를 매길 수 있냐고들 비난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줄 세워 순위를 정하고, 등급을 매기고, 탈락자를 정한다. 인생은 모두가 승리할 수 없는 그런 경쟁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망설였다. 선택의 기로를 마주칠 때마다 순간순간의 입장과 상황에 맞추어, 한 사람을 배신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피해 왔다.


그리고 이제 미뤄둔 빚을 정산할 시간이 왔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을 반복한 결과, 그는 최악의 순간에, 자신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정하고, 마음을 짓밟게 될 것이다.


"미안해......"


아무리 사죄한다고 해도,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



...어째서일까, 어째서 그가 곤란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이런 질문을 던진 걸까.

스스로 생각해도 최악이다. 아무런 득도 되지 않는 질투에 불과하다.


'아니... 아니에요. 질투 같은 게 아니에요. 트레이너 씨가 슬퍼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이상과 동떨어진 현실이 그녀의 마음을 양쪽으로 찢어 갈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맥퀸은 도저히 자신의 잘못된 인식을 수정할 수 없다.


인정해 버리면, 트레이너를 포기해야 하니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에게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외부에 있다는 뜻이다.


'라이스 씨만 없었다면...'


라이스 씨를 만나기 전의 트레이너는 자신에게 슬퍼하는 모습도,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그의 슬픔도 원인이 명확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면서 자신의 남자에게 울며 매달리기만 하는, 완벽한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가증스러운 존재.


질투가 아니었다. 질투란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에게 하는 것. 이것은 질투가 아니라 경멸이고 증오다.


모든 것이 훌륭하지만, 마음씨가 너무 따뜻한 것이 단점인 그를 위하여, 일심동체인 자신이 대신하여 해로운 여우를 사냥해야만 한다.


트레이너를 도울 수 있는 것은 맥퀸 자신뿐이니까.





---------------



-'라이스라면 할 수 있어.'


"...오라버니!"


놀란 그녀의 감긴 눈이 뜨이고, 보이는 것은 천장에 매달린 전등.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방에는 혼자뿐이었다.


그래, 꿈이구나.

...오라버니는 지금쯤 맥퀸 씨 옆에 있는 걸까.



-'라이스가 멋지게 이겨줄 테니까, 오라버니는 걱정하지 말고 맥퀸 씨의 트레이너로 일해줘.'


트레이너는 라이스의 말대로 맥퀸의 트레이너로서 충실하게 의무를 다했다. 대회가 다가오며 바빠진 후에는, 그가 맥퀸과 트레이닝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본 것이 전부다.


알고 있다. 트레이너는 자신을 선택해주었다는 것을.

가장 달콤한 열매는 그녀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래도 외롭다.


인내의 시간은 아무리 짧더라도 길게 느껴지니까.


가장 중요한 시련을 앞두고, 자신의 거의 유일한 지지자에게서의 지원이 끊어진 채로 오늘을 준비해왔다.


중요한 경기 직전에 깜빡 잠들다니, 컨디션 조절 실패일지도 모른다. 초조함에 밤늦게까지 트레이닝을 해도 쉬라고 말려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조금 일찍 대기실을 나선다.




-----



"라이스 씨."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선다.

맥퀸은 평소의 만들어진 웃음을 짓고 있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에서는 깊은 적의만이 느껴질 뿐.

적과 대화할 필요 따위는 없다.


"트레이너 씨가 괴로워하는 걸 보신적 있나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을 무시할 만큼 무신경하지 못하다.


"...응."


"언제였죠?"


잠깐 기억을 되짚어본 그녀는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을 답한다.


"라이스의 트레이너를 그만두던 날이었어."


"그래요?"


맥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이제는 최소한의 겉치레마저 던져버리고, 날 것 그대로의 악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제가 처음으로 봤던 트레이너 씨의 괴로움은 제 트레이너 자리를 그만두시던 날이었고, 두 번째는 라이스 씨 때문에 저한테 돌아올 수 없다고 하시던 날이었어요."


일단 맥퀸의 말은 사실이다. 문장의 명제만 따지자면 모두 참이라는 뜻이다.

물론 언론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듯, 맥락이 빠진 단순 사실이 진실은 아니다.


"거짓말 같나요? 라이스 씨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마음을 꺾어버리려는 수작이다. 그러니까 상처받을 필요 없다. 이를 악물고 맞서야 한다.


"...그러면 맥퀸 씨가 없어지면 되겠네. 이런 일 없게 말이야."


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고 해서, 하나의 결론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평행선을 달리던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하긴, 트레이너 씨 앞에서는 착한 척하지만, 그러니까 부르봉 씨를 응원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꿈도 짓밟을 수 있었겠죠. 이젠 저와 트레이너 씨까지 그리 만들고 싶으신 걸까."


상상도 못 한 악담에 그녀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흔들린다.


"뭐...?"


"열심히 해보세요. 당신이 추하게 발버둥 치든 말든, 저는 트레이너 씨를 위해 당신을 꺾고 말 테니까."



"...오, 오라버니 앞에서 그런 말 할 수 있어? 맥퀸 씨도 똑같잖아!"


뒤늦게 맥퀸의 뒤통수를 향해 라이스가 소리쳤지만,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



-오늘의 1번 인기, 메지로 맥퀸. 텐노상 봄 3연패에 도전합니다. 과연 그녀가 오늘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귀가 아플정도의 함성소리가 들려.

'맥퀸은 분명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는 거겠지.'


소름 끼치는 자신의 목소리. 아니, 자신의 것이 아닌가?


-2번 인기, 라이스 샤워. 국화상에 이어, 텐노상 봄을 노립니다. 맥퀸과 좋은 경기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좋은 경기를 보여달래. 주제에 맞게 마지막에 적당히 져 달라는 말이네. 착한 라이스라면 알고 있지?'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악몽 같은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맥퀸 씨를 따라잡는 데 집중하는 거야. 그때처럼...

'부르봉 씨와 팬들을 불행하게 만든 것으로는 부족했나 봐.'

'맥퀸 씨도, 수만 명의 꿈도 모두 부숴버리려는 거구나.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내일은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


그녀도 그렇다.

오라버니를 포기할 수 없기에, 독하게 마음먹고 맞서 싸웠지만 지쳐가고 있다. 변해가는 자기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멈추면 맞이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기는 패배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라이스, 또 악역이 되려는 거야?'


"시끄러워."


정말로 시끄럽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라이스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무찌를 수 있는 것 역시, 그녀뿐이다.




심호흡을 하고 드넓은 하늘을, 관중석을 가득 채운 인파를 눈에 가득 담는다.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데,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모두는 아니야."


이번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맥퀸을 연호하는 함성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환청일까. 자기 합리화일까. 아무래도 좋다.



이런 한심한 자신이라도 응원해주는 사람을 위하여,


본인보다도 더 라이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하여.


비록 그날이 오늘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 그날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기 위하여, 그녀는 달린다.




마음속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극한까지 몰렸던 보랏빛 눈에 귀기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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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오라버니vs트레이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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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라이스 샤워의 오라버니' 23.04.30 36 0 9쪽
39 '홀로 여정을 마치는 법' 23.04.26 15 0 6쪽
38 '메지로 맥퀸의 트레이너' 23.04.25 15 0 12쪽
37 '하고 싶은 말, 있지 않았어?' 23.04.24 27 0 10쪽
36 '그리고 절대로 멈추지 말아요.' 23.04.10 25 0 10쪽
35 '끝까지 맥퀸 씨를 방해할거야.' 23.04.09 29 0 10쪽
34 '트레이너 씨와 함께 꼭 행복하시길.' 23.04.08 26 0 10쪽
33 '하늘에 닿을 듯이.' 23.04.07 20 0 11쪽
32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23.04.06 37 0 11쪽
31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요.' 23.04.04 24 0 12쪽
30 '어떤 스위츠보다도 달콤한' 23.04.03 32 0 11쪽
29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23.04.02 35 0 11쪽
28 '유일한 구원' 23.04.01 23 0 15쪽
27 '존귀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23.03.31 22 0 11쪽
26 '트레이너, 자네의 담당을 믿나?' 23.03.30 21 0 11쪽
25 '라이스는 말이야, 맥퀸 씨를 용서했어.' 23.03.29 20 0 13쪽
24 '오라버니는 지금... 행복해?' 23.03.28 17 0 8쪽
23 '늦었지만, 이제는 다를거야.' 23.03.27 28 0 9쪽
22 '이번 경기가 끝나면, 정말로.' 23.03.26 19 0 9쪽
21 '그렇게, 말해줘서 기뻤어.' 23.03.25 18 0 10쪽
20 '이기지 못해도 괜찮으니까.' 23.03.24 20 0 12쪽
19 '사람이 숙일 줄도 알아야죠.' 23.03.23 19 0 12쪽
18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23.03.22 17 0 11쪽
17 '말하지 않으면, 전할 수 없는데.' 23.03.21 19 0 16쪽
16 '라이스가 멀리 가버려도, 내가 꼭 따라갈게.' 23.03.20 20 0 13쪽
15 '하나쯤은 뺏어갈 수 있잖아요.' 23.03.19 20 0 13쪽
14 '이제 괴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아.' 23.03.18 18 0 13쪽
13 '사랑하지 않곤 배길 수 없는' 23.03.17 18 0 10쪽
» '누구를 위하여 나는 달리나.' 23.03.16 31 0 11쪽
11 '맥퀸 씨, 오라버니를 좋아하는거지?' 23.03.15 2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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