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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보칼수없 님의 서재입니다.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햄보칼수없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5
최근연재일 :
2023.07.20 22:45
연재수 :
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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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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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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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47화. 튤립

DUMMY

궁재(宮宰) 네빌 윈드워커는 아는 이름이 나오자 마음의 경계를 한층 더 푼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반가운 이름이군. 내가 아직 풋내기 모험가일 때 진 헤크의 파티에서 잠시 짐꾼을 했었거든.”


“네에?!”


“왜? 나정도 되는 모험가는 짐꾼 시절이 없었을 거 같나?”


솔직히 모험가의 세계에선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간 네빌이 짐꾼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아는 그 촌장님이 그 파티의 리더였다니.


“촌장님이 그렇게 대단한 분이셨어요?”


“내가 아는 모험가 중엔 가장 오래 현역으로 있었지. 보통 모험가는 수명이 짧거든. 그런데도 그렇게나 오래 현역으로 버텨냈다는 건 순수하게 강하다는 의미지. 등급도 ‘남색(藍色)’까지 오르기도 했고.”


사실 모험가라는 직업에는 명목상의 계급은 없다. 다만 의뢰 받을 수 있는 퀘스트의 난이도 등급을 무지개색의 일곱 단계로 구분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에엑? 남색이요? 그럼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이잖아요?”


그는 미소어린 표정으로 까끌해보이는 짧은 턱수염을 만지며 대답했다.


“남색의 모험가는 나라 전체에 100명도 안되니까 꽤 높은 등급이지.”


나는 어릴 때 진 헤크 촌장에게서 이런저런 모험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정작 모험가 등급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선 묻지도 듣지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남색은 막연히 생각하던 등급보다 훨씬 높아서 나는 적잖이 놀랐다.


“남작님은 모험가의 정점이었으니 보라색까지 오르신 거죠?”


“그렇지. 보라색의 모험가가 되면 소속 국가에 일정 기간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거든. 내 경우는 왕의 고문직으로 궁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궁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궁재까지 맡아버렸다네.


하하하 솔직히 요즘 같아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야. 좁은 궁궐에서 일하는 건 성미에 맞지도 않고··· 차라리 던전에서 구르는 게 나은 거 같아서 말이지.”


길 안내를 맡은 네빌 윈드워커 남작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왕의 정원을 지나 왕궁의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동으로된 휘장 두 개와 황금으로된 휘장 한 개를 꺼내어 나눠주며 말했다.


“동휘장은 방문객이 머물 수 있는 층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데 이것만으로도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을 걸세. 하지만 이 금휘장은 특별히 자네에게 주겠네.”


나는 금휘장을 받아들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네 덕에 처음으로 안내 일이 어색하지 않고 즐거웠어. 내 책을 많이 읽었다니 학자로서 기쁘기도 하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네.


궁에 머무는 동안 내 집무실에 한 번 찾아오게. 위치는 4층의 중앙쪽 방이야. 그 황금 휘장을 가슴에 달고 다니면 누구도 통행에 제재를 가하진 않을테지. 그렇다고 그걸 달고 아무데나 가면 안되지만 말이야.”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보고가 끝난 다음 찾아뵙겠습니다.”


“좋아. 자네에겐 내가 최근에 발간한 책의 친필 사인본을 선물해주도록 하겠네. 시간이 허락된다면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눠보고 싶군.”


“영광입니다!”


그는 우릴 손님용 방으로 안내한 다음 잠시 후 있을 알현에 대해 얘기했다.


“먼 리안에서 달려오느라 몹시 피곤할듯 하지만 도착하고 바로 알현하도록 준비하라는 왕명이 있었다네.


그러니 목욕 후 정복으로 갈아 입은 다음 이곳에서 대기해주시길. 그럼 1시간 후에 다시 오겠네.”


탁!


방문이 닫히자마자 우린 각자의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누웠다.


“휘유···.”


“으으 피곤해···.”


노숙을 불사하며 장장 한 달이나 말을 달린 끝에 도착한 왕궁이었다. 하지만 잠시 씻고 옷갈아 입을 시간만 주고 바로 보고에 들어가야 한다니!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강행군이었다.


헬포드 남작은 대자로 뻗은 상태에서 말했다.


“좀 있다가 목욕탕에서 메이드들이 직접 우리 몸을 씻길 것이니 주의하도록.”


“네?!”


그는 놀라서 몸을 반쯤 일으킨 내게 말했다.


“놀라지 마라. 왕궁의 메이드들은 모두 훈련받은 병사다. 왕은 암살 위협에 늘 시달리기 때문에 혹시라도 몸과 옷에 암기를 숨기지 않았는지 철저하게 몸수색을 하려는 것이다.”


영주의 말에 나는 퍼뜩 그 생각이 들었다. 내 몸에 새겨진 두 가지 문신. 하나는 가시나무왕을 봉인한 왼팔의 문신.


또 다른 하나는 두더지 마수가 봉인된 오른팔의 문신. 내가 마법 사용자라는 게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지는 건 이쪽이 될 터였다. 나는 수신호로 얘기했다.


[도청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금부터는 수신호로 얘기하겠습니다. 저는 암기를 숨기진 않지만 문신을 들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겠네요.]


내 말을 들은 영주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며 마찬가지로 수신호를 통해 말했다.


[아! 그 문신! 메이드들이 마법에 정통하진 않아도 문신과 같은 특이사항은 분명 위로 보고가 될테지. 이거 의외의 지점에서 곤란한 일이 생기는군.


좋은 방법이 없느냐? 문신을 숨길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차라리 목욕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겠군. 물론 목욕을 하지 않으면 왕 앞에 서지도 못하겠지만.]


단순히 보여지는 것만 막는 것이라면 이루릴의 환상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내 몸을 보는 사람들에게 문신이 없는 깨끗한 몸을 보게 만들면 간단한 일. 나는 오른팔의 팔찌를 만지며 말했다.


[제게 숨길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에 대해선 믿고 맡겨주시길.]



***



1시간 후.


목욕을 마치고 정복으로 갈아 입어 멀끔해진 우리 세 사람은 네빌의 안내에 따라 왕좌가 있는 홀로 이동하고 있었다.


거대한 온수 욕탕과 사우나 시설에서 제대로된 목욕을 하고나니 여독과 함께 긴장감과 스트레스까지 한 번에 날아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개운해요! 목욕탕이 있다는 건 너무 좋군요. 우리 영지에도 꼭 도입해보고 싶은 시설입니다.”


그 말을 들은 네빌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목욕탕이 마음에 들었다니 설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기쁘군. 왕궁 밖에서 덥힌 물을 왕궁안 목욕탕으로 보내는 게 핵심 기술이지.”


“물을 끓이는 연료는 뭘 사용하나요? 그리고 송수관의 재질은요?”


이어지는 내 질문을 듣고 네빌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핵심 기술에 대한 걸 여기서 바로 대답해줄 순 없지. 호기심이 왕성한 청년이로군! 나중에 내 방에 들르면 그것도 포함해서 얘기해주지.


그나저나 자네는 국왕 폐하 앞에 나아가기 직전인데도 전혀 떨지 않는군? 보통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거나 부들부들 떨거나 하는데 말이야. 나도 이 일을 꽤 오래했지만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 보겠네.”


그의 말대로 던컨 오크하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면서 문 앞에 서 있었다. 리안과 같은 변경의 기사가 왕을 직접 만나볼 경험이 있었을리가 없을 터.


나역시 떨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나마 ‘정보’가 있었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밤늑대 부대를 통해 수집한 휴민트를 종합했을 때, 궁내 여론은 이미 서리용 토벌을 우선하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은 건 왕과 대신들 앞에서 약간의 쇼맨쉽을 발휘하는 것 뿐.’


“자 이제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국왕 폐하를 알현하게 될 것이네. 예법은 간단해. 절대 왕과 눈을 마주쳐서는 안되고 엎드린 상태에서 왕이 묻는 말에만 대답하도록 하게.


그리고 왕이 물러가라는 말을 하기 전까진 왕에게 등을 보여서도 안돼. 자 그럼 건투를 빌겠네.”


문이 열리자 우린 양쪽으로 도열한 근위기사들을 지나 왕좌 앞으로 나아갔다.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게 닦인 근위기사의 황금색 판금 갑옷이 불빛에 번쩍이고 있었다.


그 길의 끝. 흰 대리석으로 높게 쌓아 올린 단상 위에 청(靑)의 옥좌(玉座)가 있었다. 글자 그대로 거대한 푸른 옥을 깎아서 만든 그 의자는 높은 천장과 주변의 촛불들이 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로운 푸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옥좌에는 고드릭 왕이 강철관을 쓰고 앉아 있고, 그 양옆으로는 리안나 왕비와 1왕자 조젠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로버트 핼포드 남작이 무릎을 꿇은 채 입을 열었다.


“파라곤의 수호자이시며, 푸른 옥좌의 주인···.”


“아아 됐다! 우리 사이에 새삼스럽게 허례 허식은 집어치워라. 나의 오랜 친구 로버트여!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 다들 고개를 들라! 얼굴을 보고 싶구나.”


남작의 곡배(曲拜)를 중간에 끊은 건 고드릭 왕 본인이었다. 그는 옥좌에서 일어나 대리석 계단에서 성큼성큼 내려오더니 남작의 바로 앞까지 와 섰다.


“하하하 로버트 이친구야!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어서 일어나 내 포옹을 받아다오. 응? 이게 얼마만이야?”


왕은 굳은 표정의 남작을 끌어 안고 등을 두들겨주고 있었다. 표면적으론 왕과 남작은 같은 스승 밑에서 수학한 동문이자 친우. 나이는 남작이 몇 살 연상이었지만 둘은 어릴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들었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국왕 폐하.”


“그래! 리안에서의 삶은 좀 어떤가? 듣기로 요즘 형편이 많이 폈다던데?”


로버트 핼포드는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굽어 살펴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습니다.”


“하! 이친구좀 보게? 제법 인사 치례도 늘었지 않은가? 리안에 새로 들어온 부관이 유능하다지? 그게 이 친구인가?”


왕이 나를 가리키며 묻자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직 어리지만 농사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발탁한 이후 귀하게 쓰고 있습니다.”


왕은 내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로버트 핼포드 남작과 동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은 청년의 얼굴을 한 미남자였다.


황금색에 가까운 진한 금발에 잿빛 눈동자. 그리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남자는 우아하지만 스스럼없는 태도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가까이 오거라.”


‘모르고 봤다면 멀쩡한 사람인줄 알았겠군. 이 사람의 정체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적은 물론이고 첩보 부대와 마법사들까지 가차없이 학살하는 피의 군주.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나는 예법에 따라 왕이 내민 손에 입을 맞추고 무릎을 꿇었다.


“소인 윌리엄 애커만이 국왕 폐하를 뵈옵니다.”


그는 내 손을 붙잡은 채 말했다.


“어린 청년이 장하구나. 리안은 옛부터 척박하기로는 왕국에서 제일 가는 변경. 하지만 외적과 마수들의 침략을 막는 중요한 요새로서의 역할이 막중한 요충지로 짐이 눈여겨보고 있는 곳이지.


그래서 내 친구이자 왕국 제일의 검호 로버트 핼포드 남작을 변경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리안에서 매년 뜻밖의 대풍년을 기록하고 있다니 참으로 장한 일이다.


내 그대에게 상을 내리고 싶군.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보거라. 이 왕국을 달라는 부탁을 제외하면 뭐든지 들어주겠다.”


와하하하!


왕의 농담섞인 말에 지켜보고 있던 대신들과 기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기회다!’


“실은 한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그래. 말해보거라.”


“소인은 본래 농사꾼이었으나 과분한 은혜를 입어 리안의 부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만 본분인 식물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숲에서 진귀한 꽃을 발견하였는데 여왕 폐하께서 꽃을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바치기 위해 가져왔습니다.”


“꽃이라고?”


내 말에 옥좌 옆에 앉아 있던 리안나 왕비의 몸이 들썩였다. 정보에 따르면 그녀는 소문난 화초광. 왕궁의 거대한 정원을 건설한 것도 애초에 그녀의 청때문이라고 들었다.


전대륙의 진귀하고 아름다운 꽃이라면 천금을 마다않고 사들이는 바람에 왕국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라는 후문.


“네. 허락해주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왕비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예상대로 두 눈을 빛내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하하 나의 왕비가 꽃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멀리 북부까지 퍼졌나보군. 좋다. 가져와봐라.”


그러자 네빌이 문밖에서 안으로 흰 천에 덮인 유리장을 들고 들어왔다. 왕에게 진상하는 선물은 이렇게 사전 검수를 마친 후 들고 들어오게 되어있으므로 궁재인 네빌에게 미리 맡겨두었던 것이다.


그는 유리장의 흰 천을 벗겨내며 말했다.


“독이나 유해한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음을 확인했습니다.”


드러난 것은 화분에 심겨진 푸른색의 튤립. 아직 꽃봉오리가 펼쳐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어머! 튤립이네!”


뒤에서 왕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꽃 마니아답게 그녀는 꽃망울 상태에서도 이게 무슨 식물인지 대번에 알아봤다.


그녀는 자리에서 내려와 네빌의 손에 들려있는 화분을 빼앗듯 들어올린 채 튤립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꽃망울이 이렇게 큰 튤립은 처음 보는구나. 게다가 화색은 벽옥처럼 진한 푸른색! 너무 아름답구나. 이런 건 어디서 발견한 거냐?”


사실 수천, 수만 송이를 강제 교배한 끝에 발견해낸 변종이었지만 그 사실을 왕비에게 솔직히 말할 순 없었다.


“리안의 숲 깊은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오늘밤 피어날 것으로 예상하오니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튤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정말로 수고가 많았구나! 이렇게나 귀한 꽃을 선물받다니! 너무 기뻐 말이 안나올 정도다.”


그러자 왕이 끼어들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짐이 1,000골드나 하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선물해줬을 때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구려! 은근히 질투가 나는데? 아무튼 진귀한 선물 정말 고맙다. 윌리엄!”


왕비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 오전 티타임에 그대를 초대하고 싶구나. 거기서 이 꽃에 대해 더욱 많은 걸 알려다오.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랑 혹시나 다른 꽃도 갖고 있는게 있는지 물어볼게 많으니···.”


내가 왕비에게 꽃을 선물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왕궁의 대정원에 리안에서 재배한 튤립을 직접 납품하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정원 운영의 모든 결정권은 왕비에게 있으므로 왕국의 이름난 정원사들과 화훼 농가에선 직접 재배한 꽃을 선보일 기회를 잡고 싶어 안달나 있는 상태. 그러므로 이건 어마어마한 사업 기회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숨은 이유.


나는 이 튤립의 꽃가루 속에 처용초의 미세한 씨앗들을 숨겨놨다. 꽃은 오늘밤 피어나게 조종할 수 있으니 씨앗이 날려 왕비의 호흡기로 들어가는 순간 처용초가 체내에 기생하게 될 것이다.


왕비의 시각과 청각을 원하는 때에 공유받을 수 있다면 보다 고급 정보를 손에 넣을 것. 게다가 처용초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머지 않아 왕을 비롯한 궁중의 주요 인사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내가 엿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왕은 내 어깨를 팔꿈치로 치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여튼 꽃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왕비라니까! 하하 왕비의 오전 티타임에 초대받다니 영광인줄 알게. 적어도 왕비의 눈엔 확실히 들은걸 보니 역시 유능한 부관이 맞군.”


‘잔혹한 성정을 친근한 행동 속에 숨기는 군. 정치력이라면 영주보다 몇 수는 위일 것. 확실히 영주가 버거워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왕비의 손을 잡고 다시 옥좌에 올라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좌중을 내려다보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내 오랜 친구와 또 그 일행을 융숭히 대접하며 기분 좋게 회포를 풀고 싶었겠지만 오늘 그대들을 만나려한 이유는 다들 알고 있듯이 한 달전 그대들이 보내온 서신 때문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인사는 끝낸 거 같으니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로버트! 자네가 얘기해보게.”


드디어 오늘의 본 의제가 상정되었다. 아까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삽식간에 자신의 쪽으로 돌려 주도권을 가져간 건 좌중을 능수능란하게 휘어잡는 왕의 재량이 분명했다.


‘마냥 허수아비왕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군.’


왕국의 실권은 왕의 숙부 노브고르드 대공과 법황 아하스 아슈람이 양분하고 있다고 하지만 직접 대면해보니 고드릭 왕 본인도 보통은 넘는 인물임이 틀림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처음부터 후계자가 아닌 3왕자. 권모술수로 형들을 제치고 왕위에 오를 정도로 독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실권자인 대공과 법황을 자신의 후원자로 만들어낸 수완은 순수히 그의 정치력이었을 터. 대공과 법황뿐 아니라 왕역시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었다.


한편 명을 받아든 로버트 핼포드 남작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왕 앞에 나아가 말하기 시작했다. 리안의 운명이 결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공지드린 대로 금일부터 22시 45분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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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0화. 능력 흡수 스킬 23.06.28 3,245 92 13쪽
50 49화. 암살자 23.06.27 3,183 92 14쪽
49 48화. 피 대신 돈 +1 23.06.26 3,252 94 15쪽
» 47화. 튤립 +3 23.06.25 3,318 96 17쪽
47 46화. 왕도 노보스 +3 23.06.24 3,405 104 16쪽
46 45화. 휴민트 풀가동 +2 23.06.23 3,547 96 16쪽
45 44화. 대족장 비요른 +5 23.06.22 3,500 103 13쪽
44 43화. 얼어붙은 땅으로 3 +1 23.06.21 3,563 98 12쪽
43 42화. 얼어붙은 땅으로 2 +2 23.06.20 3,788 93 15쪽
42 41화. 얼어붙은 땅으로 +2 23.06.19 4,108 95 13쪽
41 40화. 관개 공사 2 +4 23.06.18 4,305 113 14쪽
40 39화. 관개 공사 +3 23.06.17 4,423 122 14쪽
39 38화. 반복 +3 23.06.16 4,479 110 14쪽
38 37화. 검의 천재 +2 23.06.15 4,584 114 15쪽
37 36화. 공감 능력 +3 23.06.14 4,686 125 15쪽
36 35화. 뜻밖의 재능을 발견하다 +11 23.06.13 4,834 130 14쪽
35 34화. 검술 명가의 반푼이 사남 23.06.12 4,849 128 14쪽
34 33화. 기사가 되다 +6 23.06.11 4,994 133 14쪽
33 32화. 무력(武力)을 인정받다 +3 23.06.10 5,100 136 14쪽
32 31화. 두더지 사냥 23.06.09 4,978 131 12쪽
31 30화. 두더지 마수의 습격 +1 23.06.08 5,151 121 17쪽
30 29화. 사업이 궤도에 오르다 +3 23.06.07 5,387 123 14쪽
29 28화. 집사 다니엘 +3 23.06.06 5,478 122 13쪽
28 27화. 증류기를 완성하다 23.06.05 5,533 133 12쪽
27 26화. 야근엔 뜨끈한 수제비? 23.06.04 5,596 149 14쪽
26 25화. 장인 마을 바엘 +4 23.06.03 5,809 142 16쪽
25 24화. 종자 개량 +6 23.06.02 5,809 156 13쪽
24 23화. 닭꼬치는 못참지 +6 23.06.01 5,995 150 13쪽
23 22화. 검술 대련 +3 23.05.31 6,030 149 16쪽
22 21화. 상남자의 술 보드카 +7 23.05.30 6,132 1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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