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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376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6.04 21:30
조회
383
추천
3
글자
11쪽

154화

DUMMY

“일단-.”


향후 행동을 설명하려는 설진의 모습엔 거침이 없었다.

마치 정해두기라도 한 듯, 굳게 결정이라도 내린 듯했다.


“기다리죠.”


이윽고 개입이 아닌 대기의 주장이 튀어나왔다.

설진의 말에 셋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시연은 굳게 다문 입으로 침묵을 유지했다. 무언가 신호라고 할 만한 행동이라면 작게 고개를 끄덕인 것 정도. 무언으로 설진의 결정을 지지한 것이다.


채린은 불안한 눈망울로 싸우고 있는 사제들을 바라보다, 설진의 말에 답했다.


“···네.”


곧았던 설진의 말과는 달리 조금 정도는 흔들리는 듯했다.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말을 흐리게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골목 너머 싸움판 대신 본 것은 하늘. 오후의 시간, 서서히 노을빛이 몰려들 때가 된 시간의 하늘이었다.


그러고 보니 싸움을 시작한 지도 꽤 지났다. 설진은 노르슴한 빛이 구름에 번져진 광경을 쳐다보다, 방향을 돌려 찬우를 응시했다.

뭐랄까. 찬우의 반응은 생각보다 밍밍했다. 설진의 말을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반응이 심상찮았다. 마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했다.


그러다간 갑작스레 손을 꽉 쥐더니, 이윽고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쉬이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의 격류가 휘몰아치는 듯 보였다.


“···.”


설진은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무언가 더 말한다면, 그건 사제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리는 꼴이었다.


“저희는 조금 더 있다가 개입할 거에요.”


대신 연 입이 알린 것은 구체적인 행동 계획.


확실히 지금 개입하는 것보다, 뜸을 더 들이고 개입하는 것이 교회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대기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감정을 빼고,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인가.’


설진은 지금 상황을 비유하듯 머릿속에서 뇌까렸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비슷한 상황이긴 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사제 넷을 희생시킴으로써, 요한 척결을 위한 토대를 만들 수 있으니.


‘···이 외엔,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네.’


이것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면 뭐라 표현할 수 있을는지.

설진은 짐짓 숨을 내뱉었다. 입김을 타고 뿜어진 숨이 하늘을 유영하듯 떠다녔다. 보이진 않았지만 그러는 것 같았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보통의 대중매체에선 이 과정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주인공이나 선량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라기보다는, 악역이나 배신자 역할의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목표였다.

결국 마지막에는 소를 희생하지 않고서 대를 이룰 방법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며 끝내는 것이 보통의 결말이었다.


다만,


‘여긴 그런 게 통용되지 않아.’


이곳은 탑이었다. 냉혹한 현실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지 않는다면, 대와 소 모두 고통받을 뿐이다.

설진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이라고, 그동안 게임을 진행하며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설진은 선망받는 영웅 따위가 아니다. 그저 일반인의 사고방식을 지닌, 조금 불우한 아이에 불과했다.

탑에 들어오기 전까지 단 한 번의 도움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데, 이런 일에 나서서 타인을 도와준다는 건 무슨 괴변이고 헛소리인지.


그래서 설진은 나서지 않았다.

지금 저들을 구하러 나선다면 요한을 죽일 수 없기에.


‘···.’


오히려 그렇게 생각했다.

저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요한 척결의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면, 되레 싸게 먹히는 편이라고.


세상은 냉혹하므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곳이므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실이었다.


“개입할 때, 제가 신호할게요.”


조금 더 기다렸다.

사제들의 상처가 늘어났다.


* * *


사제들의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 명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실신했고, 한 명은 무기를 잃었다.


쓰러진 데른의 무기를 여사제가 줍긴 했다만 무거웠다. 평소 쓰던 것이 아닌 타인의 무기는, 무게중심에서 상당한 걸림돌이 되었다.


생각하는 속력은 5를 가리키고 있는데, 정작 3.5에 불과한 속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상상치도 못한 곳에서 제한이 걸려버리니 여사제는 미칠 지경이었다.


“진짜, 개 같네 이거.”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낭패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운 좋게 와이번을 잡은 것까진 좋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상황은 3대5. 여전히 사제들은 수적 열세를 점하고 있었다.


“좀 빨리 쓰러져 줬으면 좋겠는데. 응?”


맞지 않는 무기를 들고서 최대한 분전하고 있지만, 상황은 와이번에서 진전되지 않았다. 남은 다섯 몬스터들은 쉽사리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쓰러진 게 데른만이라는 점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만큼 사제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공격은커녕 수비조차 버거울 정도로.


“으으! 더 버티긴 힘들 것 같은데!”


멀리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창을 쥔 남자였다.


그는 골렘과 라큠을 도맡고 있지만, 이젠 한계라는 듯 크게 외치며 도움을 호소했다.

혼자서 셋을 묶어두고 있는 건 확실히 좋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인 모양. 여사제는 헤른에게 소리치며 발걸음을 돌렸다.


“헤른! 조금만 버텨줘! 저쪽을 지원해야 할 것 같아!”

“아, 알았어!”


헤른과 여사제가 상대하고 있던 것은 리자드맨.

꽤 많은 공수가 오갔는지 리자드맨의 몸엔 크고 작은 상처가 나 있었지만, 정작 목숨을 끊어버릴 정도로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결국 어디까지나 생체기에 불과한 상처.

오히려 놈들을 자극해 버린 꼴이기도 했다.


캬아아!!


여사제가 헤른을 떠나 창을 쥔 남자에게 이동하자, 두 리자드맨은 지금의 기회라는 듯 괴성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칼이나 창 같은 냉병기를 쥐고 있진 않았지만 성인 남성이 체격보다 거대한 리자드맨은 체구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휘익! 휘익-!


“으읏! 제길!”


죽을 각오를 해가며 검을 휘둘렀지만 무소용.

몸은 자신보다 큰 주제에 날래기는 또 얼마나 날랜지, 살짝 긁힌 정도의 데미지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헤른의 검엔 피가 묻지 않았다.


“미치겠네, 이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어지는 건 자신이었다. 리자드맨을 견제하기 위해 비교적 큰 동작을 사용하다 보니 체력이 금세 바닥났다.

솔직히 말해 검을 내지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 지경. 체력이 아닌 정신력과 오기로 팔을 휘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캬아악!


헤른이 지친 걸 눈치챘는지 리자드맨은 두 방향으로 흩어졌다.

교란. 놈들은 헤른을 혼란스럽게 만들며 양동으로 칠 작정이었다.


그걸 알고 있는 헤른은 최대한 사각지대를 주지 않으려 이동했다. 그러나 발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는 급격하게 느려진 제 속도를 절감해야 했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어떻게든 오기로라도 버티려 노력했건만, 헤른은 주먹을 쥔 채 달려오는 리자드맨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퍼어억!!


“아아악!!!”


주먹은 그대로 안면을 강타. 헤른은 곧바로 쓰러졌다.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에 여사제도 창을 쥔 남자도 당황에 차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2대5.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여사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창을 쥔 남자는 몬스터 세 마리를 상대하느라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 곧 체력이 바닥날 듯 보였다.


그렇게 되면 2대5도 아닌 1대5가 될 터.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동료들을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쿵!!


급기야,


“허어-.”

“안 돼!”


라큠을 상대로 버티던 창을 쥔 남자가 쓰러졌다. 찢어진 옷 사이로 군데군데 깊이 들어간 타박상이 보였다. 몇 개월은 요양해야 할 정도로 큰 상처였다.


“야! 괜찮아!? 괜찮냐고!!”


창을 쥔 남자가 쓰러진 걸 보며 걱정하곤 있지만, 사실 정말로 위험한 건 여사제였다.

돌아다닐 때로 돌아다니고 분전하느라 체력을 전부 소진한 것은 물론이요, 골렘의 주먹에 심장을 직격당해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맞지 않는 무기를 든 탓에 팔을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헤른과 같이 리자드맨과 싸울 때, 이미 한 번 공격당해 불그스름한 피멍이 들었다.


헤른과 마찬가지로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일 지경.

아니, 이젠 그 기적이 이어지지 못했다.


“아-.”


아직 몬스터는 다가오지도 않았건만.


“아, 으.”


이미 소진할 대로 소진한 기력은 더 이상의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종래에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고개가 푹 내려갔다.


‘···죽는, 구나.’


숙인 고개 위로 들리는 라큠의 소리에, 여사제는 죽음을 직감했다.

오만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괜히 싸웠나 싶기도 하고, 같이 죽을 동료들을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했다.


왜 갑자기 몬스터들이 습격해 와서는,

이렇게 무력하게 죽어야 하는 건지.


이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곧 꺼질 정신과 목숨을 그저 뇌까리며, 감은 눈 사이로 보이는 어둠을 그윽이 응시했다.


그리고-.


촤악-.


여사제가 들을 수 있었던 건, 살점을 베는 듯한 날붙이의 소리였다.


‘···?’


날붙이의 소리를 들었다고?

자신은 이미 죽었어야 할 터인데.

아직 목이 날아가지 않은 것을 확인한 여사제의 눈이 실눈처럼 뜨였다. 숙인 고개를 점차 올려, 위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건.


“하아.”


한숨을 푹 내쉬며, 별것 아니라는 듯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버린.


“실망이군. 실망이야.”


사복의 남성이었다.


* * *


“하아.”


일부로 한숨을 내쉬었다. 크게, 이곳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끔.

더 나아가.

긴장한 듯한 얼굴로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사제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정도로 크게.


“실망이군. 실망이야.”


이윽고 설진은 목소리를 내었다. 실망. 초면에 만난 사람에게 할 말은 확실히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런 말을 해야 할 때였다.


촤악-!


한 번에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버린 검을 회수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눈썹을 살짝 내려서, 잔뜩 실망했다는 듯한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


“거기.”

“···.”

“말 좀 해 보겠나.”

“···네?”


잔상처로 얼룩진 여사제의 얼굴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여사제가 상황 파악을 했는지, 하지 못했는지가 아니니.

중요한 건 바로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있다는 점과, 교회를 맹비난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 모양이군. 훈련이라길래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 해서 잠깐 방문했더니,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줄이야.”


설진은 여사제에게 그리 말하고서는, 나머지 리자드맨을 베어버렸다.

골렘도 와이번도 라큠도 예외는 아니었다. 찬우의 안정적인 지원 아래 시연과 채린은 남은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했다.


사제들이 싸웠을 때하고는 달랐다.

마치 어른 대 아이의 싸움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전투는 일반적이었다.


그 일반적인 상황이 종료된 후, 설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 사람들을 지킬 자격이 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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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화 22.05.06 414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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