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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15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08 21:30
조회
421
추천
3
글자
11쪽

135화

DUMMY

환영 속 시연은 어렸다.

지금보다 체격이 작았다. 팔이 더 짧고, 다리가 덜 길었으며, 얼굴에는 자그마한 주근깨가 달린 것이 확실히 앳되어 보이는 모습이다.


“시연아, 이번에는 한 달 정도 있다 갈 거야. 공부 열심히 하고. 이상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알지?”

“네. 알아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몇 가지를 당부함과 동시에 시연이 가야 할 학교를 알려주었다.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멀다고도 할 수 없는 거리. 걸어서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시연은 가게 될 학교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한 달···.”


똑같았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그에 반해 옮긴 학교는 대체 몇 개인지.

이젠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지역을 유랑했다. 서울부터 시작해 인천, 대구, 부산··· 말하기조차 힘들 노릇이다.


“한 달이 지나면 또 다른 곳으로 가겠네.”


시연이 담담히 중얼거렸다. 이미 그녀는 작금의 생활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그러나 익숙한 것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감정은 달랐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중얼거렸지만, 속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러 생각들이 용오름치고 있었다. 후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나만···.”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남들은 전학은커녕 이사조차 드문데.

왜 자신은 한 달이라는 짧은 간격으로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지. 아직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자아는 의문과 의구심을 뱉어댔다.


환영 속 시연은 어머니 몰래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침대에 드러누웠다. 두 팔을 뒷머리에 옮겨 손바닥을 베개 삼아 몸을 기울였다.

그러자 천장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전등이 켜져 환한 천장이었다. 뜬눈으로 몇 번 불빛을 바라보던 시연은, 얼마 가지 않아 이불로 얼굴을 덮었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장면이었다.


우웅.


시간이 흘렀다. 주말이 지나 평일이 되어 바삐 움직이듯, 학생 신분이던 시연은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환영에 담겼고, 담긴 환영을 바라보던 시연은 짐짓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저 학교였지. 미진초등학교.’


잊을 수 없다는 듯 학교명이 쓰인 명패를 응시했다.

학교길, 전학 수속, 반 배치. 모든 것이 알알이 떠올랐다.

과정을 모두 마친 시연은 반에 들어섰다. 자리에 앉았다.


초등학교 수준의 수업, 초등학생 수준에 맞춘 선생님.

모든 것이 보이고 들린다. 교시마다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학교에 간 지 일곱 날이 되었을 즈음.


‘···.’


시연은 들을 수 있었다.


“야, 재 잡아.”


불길하다 못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그런 목소리를.


“꽉 잡고 있어. 때리기 편하게.”


시작은 학교 후문이었다.

후문에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 늦잠을 자 출발이 평소보다 늦은 날이었다.

그런 날에, 후문 뒤 뒷골목에서 그런 목소리가 울렸다.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올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연은 저것이 초등학생의 목소리임을 알고 있었고, 앞으로의 일 또한 알고 있었다.


“오늘은 좀 보고 싶다. 우리 설진이가 우는 모습. 몇 번이나 때려도 안 울길래, 난 그게 신기하더라고.”


환영 속 시연은 뒷골목을 향해 다가갔다. 반만 내민 몸으로 상황을 응시한다.

들리는 목소리로 봐서는 두세 명 정도인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두세명은 고사하고 예닐곱 정도는 되어 보였다. 족히 일곱이 넘어가는 남자 초등학생들이 한 명을 둘러싼 채 험한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아···.’


말 다음은 행동.

넷 정도 되는 애들이 사지를 하나씩 맡아 꽉 붙잡고.

남은 셋이 번갈아가며 조소했다. 침을 뱉은 건 기본이요, 더 나아가 손찌검까지 이루어졌다. 피부가 긁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시발.’


무심결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기억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장면을 실제로 보게 되자 삽시간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오죽하면 그 모습을 보자마자 욕이 나왔을 정도로. 퉤. 시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뱉었다. 그에 반해 환영 속 시연은 떨고 있었다.


마치 지금까지 본 것이 전부 헛것임을 바라듯.

환영 속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게 흔들리는 동공은 당시 그녀가 느꼈던 감정을 행동으로 표현한 듯했다.


‘개 같네.’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가 더 나와버리고 말았다.

홀연히 고개를 돌렸다. 기억 속에 있던 모든 악몽이 튀어나와 뇌를 쿡쿡 쑤셔대는 기분이다. 몸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머리가 아팠다. 욱신거렸다.


욱신거린 머리를 애써 부여잡고서 시선을 다시 바로잡았다. 보이는 것은 여전했다. 사람, 사람, 사람. 오직 사람뿐이었다.

사람의 주먹이 보였다. 발이 보였다. 입이 보였다. 전부 빠르게 움직였다. 곤죽을 내버릴 기세로 움직이며 그대로 방망이를 휘두르듯 살결에 흠집을 낸다.


흠집이 모이고 모여 커지기 시작했다. 살구색으로 시작했던 설진의 피부는,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코와 입에서는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몸 전체가 타박상이라도 입은 양 푸르슴한 자국이 생겼다. 마치 몸에 불행을 낙인하듯 상처가 수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아, 새끼. 너도 참 독종이다. 그지?”


피가 흘러나와도,

몸에 자국이 생겨도.


설진은 말이 없었다. 그 어떠한 표정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하고 있는 것이 시연이고 목격하고 있는 것이 설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도대체 얼마나 때려야 반응할 거냐.”


묵묵부답.

여전히 설진은 말이 없다.


눈은 이지를 잃은 듯 정면을 쳐다보고 있으며, 입은 닫힌 채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도 비슷했다. 딱히 움직임이라 할 만한 동작은 없었다.


그저 낙망한 듯한 눈동자만이 시선을 옮기고 있을 뿐.


그 시선에 흠칫한 남자애가 손을 뒤로 뻗었다.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물러난 것이다.

그렇게 몇 초. 체감상으로는 약 십 초 정도를 멈춘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쓰레기통 가져와.”


마치 명령하는 듯한 말투.

나름의 자리가 있었는지 다른 아이들이 자그마한 쓰레기통을 들고 왔다. 반 정도 채워진 쓰레기통이었다.


“좀! 그딴 눈깔 하지 말라고!”


이윽고 분개의 감정을 보이더니,


쿵!


설진의 얼굴을 향해, 뒤집어씌웠다.


얌전히 씌운 것이 아니다. 세게. 순간 지진이 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머리에 쓰레기통을 박아 난 소리였다.

이어 내용물이 떨어졌다. 후두둑. 먹다 남은 음식물이라도 있었는지, 벌레가 몇 마리 내려왔다. 웅웅. 윙윙거리며 하늘로 날아갔다.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응?”


놈의 목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괴롭히고 있는 건 놈인데, 설진을 두려워하는 듯해 보이기도 했다.


단지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과격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뿐. 그뿐인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시연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쓰레기통 치워 봐.”


다시 그런 말이 오가고.

서넛이 붙어 쓰레기통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여전했다. 무표정. 낙망한 듯한 얼굴. 쓰레기가 묻었을 뿐이지, 여전히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오 씨!”


결국 참다 못했는지 발길질을 날린다.

뻐어억! 그대로 설진에게 쇄도했다. 왼쪽 뺨 부근을 향한 신발 하나. 그 신발이 틀어박혔다. 설진의 여윈 몸이 뒤쪽으로 크게 날라갔다.


설진의 몸이 날아간 순간.

시연은 제 스위치가 망가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 저 씹새끼가아!!”


시연의 목소리.

환영을 보던 시연은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육성으로 욕을 내뿜으며 달려들었다. 발길질을 날린 놈을 뚫어져 보더니만 주먹을 쥐고서 앞으로 향했다.


“이거 열어! 열라고!”


하지만 앞으로 향하려던 시연은 이 이상으로 전진할 수 없었다.

마치 접근을 불허하는 것 같은- 투명한 벽에 의해서.

설진이 겪은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정도로 시연은 분개한 상태였다.

쾅! 쾅! 소리가 울렸다. 투명한 벽을 부숴버리겠다는 곧은 의지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미친 듯이,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허억, 허억-.”


그러나 결과는 실패.

거진 30분을 달려든 것 같았지만, 벽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해보라는 듯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고서는 환영의 상황을 바꾸었다.


후문 뒤 뒷골목이 아닌, 학교 내부로.


학교에서 행해지는 폭력은 묵직하다기보단 악랄했다.

교활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머리를 툭툭 친다든지, 실수인 척 우유를 쏟는다든지. 종이를 작게 잘라 던진다든지.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들.

이건 모두 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말인즉 학년부터가 달랐던 시연은 알 수 없었던, 오늘 처음 알게 되었던 일이었다.


꽈악-.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아는데, 이 모든 것은 단지 환영이고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 힘이 들어간 주먹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되려 더 분노한 듯 소리마저 나고 있었다.


쿵!


결국, 벽을 향해 거센 주먹을 내질렀다.

뚫리지 않았지만, 열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내질렀다.


내지르고, 내지르고, 또 내질러서.

손이 붉게 물들어갈 때까지.

물들어 가다 못해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나올 만큼.


쿵! 쿵! 쿵! 쿵! 쿵!


소리는 계속해서 울렸다.

투명한 벽은 굳건했지만, 그건 시연의 주먹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주먹이 벽과 격돌했다. 탑에 온 이후 시연이 가장 분개했을 때라면, 자신 있게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분노는 컸다.


그러던 중 우웅- 다시 장면이 바뀌는 소리가 나더니.

두 개의 모습이 양분돼 나뉘어 나타났다.


하나는 경찰에 신고한 시연의 모습.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선생님의 모습.


전화를 통해 지금 초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렸지만, 딱히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었다.

그 이유가 지금 밝혀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경찰들이, 모두 쉬쉬하며 사건을 덮어버리고자 하고 있었다.


“조용히 처리하게. 애들한테 주의 주고. 고작 학교가 이런 일로 흔들릴 필요는 없지 않나. 내 연줄이 좀 닿아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해 놓겠네.”

“알겠습니다.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이라고 불린 사내는 헛기침을 몇 번 내뱉더니 고개를 휘저었다. 그만 나가보라는 뜻이었고, 설진의 담임 선생님은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말했다.


“아, 귀찮게 진짜. 좀 할 거면 안 들키기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애새끼들이라 그런가.”


담배를 꼬나물며, 주머니에선 라이터를 꺼낸 채.


“시발, 내 팔자야.”


후우.


연기를 내뱉으며 혼잣말했다. 이내 대충 주변을 훑더니, 구석진 곳에 담배꽁초를 버리고선 유유히 걸음을 옮긴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시연은,


‘하.’


헛웃음도 웃음도 아닌, 그저 의미 모를 실소를 흘렸다.


우웅.


다시, 장면이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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