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31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12 21:30
조회
406
추천
3
글자
11쪽

137화

DUMMY

“···.”


환영 속 시연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을 유지한 채 고스란히 시연을 응시할 뿐.


이윽고 검했던 손에 변화가 생겼다. 블랙홀을 담은 것 같은 짙은 검은색이, 화이트홀을 만난 듯 희게 변하더니 이내 살색으로 변했다.

평범한 사람의 손. 그리고, 지금 시연이 가지고 있는 손이었다.


시연은 자그마한 미소를 띠며 몸을 일으켰다. 앉아 있던 몸으로 심연을 클리어하려니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읏차. 땅에 손을 짚었다.

땅을 짚은 손에 힘을 줬다.

손잡이를 잡고 몸을 일으키듯, 손으로 몸을 들어 올린다는 기분으로.


이윽고 완전히 일어난 시연이 환영 속 시연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환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으되, 주변 환경 또한 눈에 띄게 변했다.

어둡기만 했던 심연에 밝음이 드리웠다. 전력을 공급해 전등을 켜는 것처럼, 눈에 익을 정도로 환해진 주위 광경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단 하나만큼은- 옅어지고 있었다.

환영이었다. 손도 얼굴도 점차 스러지더니,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다. 시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투명한 벽은 사라졌지만 환영을 만질 순 없었다.


“···심연.”


시연에게 있어 심연이라 함은 마음 속 두려움이었다.

바꿀 수 있었으되 바꾸지 않았던 과거. 할 수 있었으되 하지 않았던 일.

그 일이 낙인처럼 새겨져 성장을 정체시켰다. 나아갈 수 없게 가로막았었다. 막히고 막히고 또 막히어서 결국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와서, 극복해 냈다.

입가에 실린 미소는 여전했다. 뭐가 그리 기쁜지, 아니. 기쁘다기보다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거추장스러웠던 먼지를 전부 털어낸 기분이었다.


“역시 고마워해야 하려나.”


으읏- 차.


팔을 위로 쭉 뻗어, 기지개를 피며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고통이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도움이 되었다. 과거에 응어러진 마음을 떨쳐낼 수 있게 도움받았다.


그래서 편해졌다. 도움을 받고 한 걸음 나아가자, 마음이 편안해진 기분이었다. 너무나 편안해서 이곳이 심연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심연을 클리어했습니다.]

[42층이 클리어되었습니다.]

[10000G를 획득하셨습니다.]


42층의 클리어.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그런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목표 : 심연을 클리어하세요.]

[한 명이 클리어할 때마다 한 층이 클리어됩니다.]

[현재 클리어 인원 : 2]


이걸로 두 명.

당당하게 클리어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시연은 쭉 뻗었던 팔을 회수했다.

동시에 뒷걸음질을 쳤다. 멈춘 건 등에 찬 돌덩이의 감촉이 느껴졌을 때였다.


“후-.”


돌연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 조금은 두려운 감정이 생겼다.


심연을 클리어했음에도, 아니. 오히려 심연을 클리어해 생긴 감정이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어쩌지.’


시연은 심연을 향해 말했다. 과거를 마주하겠노라고.

그리고 그건 곧 설진에게 과거의 일을 말하겠다는 의미였다.


초등학교 시절 그때의 일을.

물론 시연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기란 어려웠다. 시연은 설진을 괴롭힌 것이 아닌 그저 방관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사람이 객관적이기란 어렵다고.

주관적으로 본다면 앙심을 품을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었다. 사림인 이상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건 당연하고도 당연했다.


‘뭐, 이것도 결국···.’


온전히 시연이 감수해야 할 대가. 어찌 보면 책임이었다.

운이 나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이 만연했던 시연의 입가가 점차 내려가더니만, 머잖아 쓴웃음으로 변했다.


아직 말하지조차 않았는데 실패의 결과가 스멀스멀 뇌리에 떠올랐다.

만약 용서받지 못한다면 파티를 나가야겠다고.

그리해 적당한 층에 정착하겠다고. 별별 상황이 머릿속에 엉켜든다.


도리도리-!


애써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 시연은 시스템 창을 띄웠다.


그러자 다른 한 줄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그러게요. 제가 싫어하면 어쩌죠.”


시스템 메시지가 끝을 맺기도 전에 설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미워하면 어떡할 거에요. 누나.”


피식-.


모조리 빛으로 변해 어두운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심연 속에서.

헛웃음처럼 보이는 미소가 동공을 스쳤다.


그제야 시연은 출력되던 시스템 메시지의 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다른 사람들의 심연(深淵)을 보거나 개입할 수 있습니다.]


심연을 클리어함으로써 생기는 관전 기능.


“어?”


짐짓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아직 제대로 된 인지하지 못한 시연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비단 손만이 아니었다. 시스템 메시지 중 하나인, ‘보거나 개입할 수 있다.’의 부분이 눈앞에 걸린 순간 뺨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화악-.


어찌나 붉게 변했는지 효과음이라도 넣어 줘야 할 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설진은 웃었다. 가감 없는 웃음이었다.


“···본, 거야?”


설진의 해맑은 미소에 시연은 침을 꾹 삼키고 물었으나,


“그러게요.”


돌아온 건 단지 그 대답 하나.


“아니, 장난치지 말고. 진짜, 본 거야?”

“그러게요.”

“아니, 야!”


얼굴을 붉힌 시연이 설진에게 달려들었다. 설진은 피하지 않았다.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저 가만히 있었다.


털썩-!


“아.”


그 탓에 넘어졌다. 엉켰다. 두 사람의 몸이 엉켰다.

설진이 밑으로, 시연이 위로.

시연의 팔에 설진의 목이 걸렸다.


“사과가 너무 과격한 거 아니에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있어서인지 시연은 지금 사복이나 다름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탓에 비교적 얇은 옷감이 서로를 감쌌다.


“···.”

“갑옷 입고 있었으면 엄청 아팠겠어요. 조력의 반지를 구해서 다행이었지. 없었으면 저 깔려 죽었을걸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설진은 능청스럽게 말을 잇는 중이다.

시연은 이마를 좁히며 팔에 힘을 가했다.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주자, 머잖아 커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와 귓가에 스며들었다.


그러던 중 돌연 팔에 힘을 풀더니만.


“미안해.”


그렇게 말했다.

목을 조인 건 나름의 부끄러움에서 벌어진 행동.

한 차례 헤프닝이 벌어진 후 제대로 된 사과가 나왔다.


다만 자세는 여전했다. 아래로, 누워서. 몸이 맞닿은 채 그런 대화가 이어지는 중이다. 누가 보면 사랑싸움이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괜찮아요.”


설진의 목소리였다.


“전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보다, 이제 이것 좀 풀어주실래요.”

“···!”

“누가 보면 사과가 아니라 암살하러 온 암살자인 줄 알겠어요.”


쓴웃음을 지은 채 말을 잇는다.

그제서야 시연은 팔을 치우며 몸을 일으켰다.

덩달아 자유를 얻은 설진 또한 일어섰다.


마주본 그대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다름 아닌 시연이었다.


“나, 원망 안 해?”

“안 해요. 안 해.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못하는 게 당연한 거지. 만약 거기서 나섰다면 누나 인생, 되게 피곤했을걸요?”

“···.”

“뭐, 그리고 그때는 워낙-.”


시연의 말에 화답하던 설진이, 입을 닫은 건 그때였다.

시연은 설진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니, 아니에요. 굳이 여기서 어두운 얘기를 하고 싶진 않네요. 괜히 분위기만 망치는 것 같아서.”

“···아.”

“그보다 슬슬 보상받을래요? 심연을 클리어했으니까, 그에 걸맞은 클리어 보상을 받아야죠.”

“아, 그렇지. 보상.”


설진은 말을 바꾸며 손가락을 뻗었다.

가리킨 곳은 심연의 구석. 환영이 반복되던 곳의 맞은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여기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몇 걸음 걸으면 닿는 거리. 그만한 거리였다. 시연은 그곳에서 환히 빛나고 있는 자그마한 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절석(斷絕石)을 획득했습니다.]


단절석. 설진이 심연에 도전한 이유이자 심연 던전의 클리어 보상.

불사가 된 요한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보구였다.


“이거구나. 단절석이.”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겼죠.”


단절석은 동그란 구 형태의 돌이었다.

마력을 주입하니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을 제외하면 보통의 돌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시연은 단절석 안에 담긴 유구한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요한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말이지.”

“그렇죠. 많으면 많을수록 봉인할 가능성이 올라가니까요.”


설진 또한 자신이 얻은 단절석을 꺼내며 말했다. 시연과 똑같이 평범하게 생긴 구 형태의 돌이었다.


‘하나 있으면 가능성이 생기고, 두 개가 낮은 가능성.’


동시에 설진이 생각했다. 단절석은 많이 확보해 두어야지 그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성공 확률이 늘어나는 것이다.


단절석을 하나 구했다면 요한을 봉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그건 정말 생기는 것에 불과하여서, 0%였던 가능성을 1%로 만드는 것과 같았다.

두 개부터는 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로에 가까운 가능성이 아닌 낮은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것이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25% 정도.


‘세 개가 반반. 네 개가 높은 확률.’


두 개의 단절석을 모아 요한을 25%의 확률로 봉인할 수 있다면.

세 개부터는 높아진다. 50%, 75%. 엄청나게 높은 확률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확실히 봉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일단 두 개를 구했으니까.’


설진과 시연이 심연에 성공한 건 굉장히 좋은 일이었다. 두 개. 가능성으로는 25%.

더불어 아직 채린과 찬우가 시련을 시작하지 않았으니 더 확보할 여지가 있었다.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절반, 둘 다 성공하면 75%였다.


“누나, 슬슬 다른 쪽으로 갈까요?”

“응? 채린이랑 찬우가 하려는 거 보려고?”

“네. 보는 것만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개입도 가능해요. 힘들어 보이면 도와줄 수 있을 거에요.”


설진의 말에 시연이 몸을 일으켰다. 확실히 심연을 클리어해 단절석도 구했겠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도와줄 수 있다, 라.’


대신 다른 이들의 심연에 개입할 수 있다는 말은 신기하게 들렸다. 게임 당시 그런 건 없었을 뿐더러 관전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어차피 주인공 캐릭터의 암울한 과거를 보여주는 것일 뿐인데 뭐가 그리 궁금하겠느냐마는.


어쨌든 지금의 경우는 많이 달랐다. 주인공 캐릭터가 아닌, 같은 파티원이자 일행이었다.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다.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심연에 실패한다면 망가질 것이다. 죽는다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높은 확률로 후유증이 생기고 말 것이다.


‘···.’


그렇다면, 응당 돕는 것이 맞는 판단일 터.


“알겠어. 가자.”


시연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설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시스템을 조작하더니만, 손을 뻗었다. 시연은 그 손을 잡았고-.


우웅.


진동이 한 번 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2 152화 22.06.02 392 3 11쪽
151 151화 22.05.30 394 4 11쪽
150 150화 22.05.29 403 3 11쪽
149 149화 22.05.28 396 3 11쪽
148 148화 22.05.27 409 3 12쪽
147 147화 22.05.26 395 3 11쪽
146 146화 22.05.23 407 3 11쪽
145 145화 22.05.22 403 3 11쪽
144 144화 22.05.21 397 3 11쪽
143 143화 22.05.20 398 3 11쪽
142 142화 22.05.19 396 3 12쪽
141 141화 22.05.16 393 3 11쪽
140 140화 22.05.15 405 3 11쪽
139 139화 22.05.14 408 3 11쪽
138 138화 22.05.13 404 3 11쪽
» 137화 22.05.12 407 3 11쪽
136 136화 22.05.09 415 3 12쪽
135 135화 22.05.08 422 3 11쪽
134 134화 22.05.07 424 3 11쪽
133 133화 22.05.06 415 3 11쪽
132 132화 22.05.05 417 3 12쪽
131 131화 22.05.02 427 3 11쪽
130 130화 22.05.01 426 4 11쪽
129 129화 22.04.30 418 4 11쪽
128 128화 22.04.29 430 5 12쪽
127 127화 22.04.28 419 4 11쪽
126 126화 22.04.25 422 4 11쪽
125 125화 22.04.24 425 5 11쪽
124 124화 22.04.23 437 4 11쪽
123 123화 22.04.22 439 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