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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27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19 21:30
조회
395
추천
3
글자
12쪽

142화

DUMMY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는지.

체감상 다섯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만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통화 버튼을 누른 채린이 긴장한 듯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스윽-.


귀에 가까이 가져다댔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성대가 부르르 떨리는 기분이다. 지금 채린의 심경은 복잡하다 못해 혼란스러웠다.

뚜르륵. 뚜르륵. 전화 연결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억겁처럼 느껴졌다. 음정이 한 번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긴장감에 식은땀이 흘렀다.


‘빨리 해결해야만 해···.’


머릿속에 들어온 것이라곤 그저 사건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생각뿐.

연지에 대한 분노나 의심은 전무했다. 대학교 친구라는 성취 지위는, 채린에게 있어 연지의 존재를 가깝게 만들었다.


통화음만 울리던 핸드폰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뚝-.


짧고 명쾌한 소리.

아니, 적어도 채린에겐 그렇게 들리지 않았을 터였다.


한순간에 끊긴 전화 소리는, 연지 쪽에서 일반적으로 거절 버튼을 눌렀다는 방증이나 다름없었다. 초유의 사태에 머리가 하얘졌다.


“···.”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영상의 댓글에서도, 생방송의 실시간 채팅에서도.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모든 곳이, 모든 곳에서 채린의 욕이 가득하다.


창녀, 쓰레기, 불건전한 여자.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몰랐다. 그저 아팠다.


자신에게 긍정적이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부정적으로 변했다. 연지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을진대, 뭐가 그리 불만인지 욕이 가득했다.

비속어가 사방을 메우듯 인터넷을 점유했다.

모조리 채린을 향한 것들. 제대로 된 사실도 모르면서, 정작 채린의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맹공격이라도 하듯이 댓글을 단다.


맞으면 아프듯.

욕을 듣는 것 또한 아파 마지않는 것이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신체가 아닌 정신이 아프다는 점.

한순간에 쌓아올린 실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극복한 줄 알았던 과거의 자신이, 반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집에 콕 틀어박히다 못해 알바조차 하지 못하는 히키코모리.

그렇게 다시, 회귀라도 하듯 돌아가려 하는 중이다.


그대로 돌아가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주변에는 욕이 가득했고, 얼굴 공개 때문에 이미 신상이 팔린 상태였다. 전보다 더 최악으로, 더 악화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소속사는 뭘 했냐고?

움직이기는 했다. 단지 뒷돈을 받아 연지에게 유리한 진술을 했을 뿐.


그걸 계기로 여러 인터넷 이슈어들이 채린을 맹비난하기 시작한 건 예삿일이었다. 그다음 일어난 일은 ‘이시아’라는 존재를 빠르게 지워나갔다.

계약은 해지당했다. 사회적으로 매장된 채 사회로 퇴출당했다.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


얼굴이 드러나는 일을 할 수 없기에 영상 편집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고도 하기 뭐했다. 수입은 불완전한데다, 건수가 없는 날도 허다해서 하루에 얼마 못 버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으로 벌어둔 돈이 없었으면 분명 굶어 죽었을 터였다. 그렇게 피폐하다 못해 파국적인 삶을 살았다.


어느 날에는 먼 곳으로 떠나봤다.

자신이 살고 있는 자취집과 거리가 꽤 되는 곳으로. 그곳으로 이동해, 동네 미용실 같은 곳에 들러 머리를 바꿨다.


트윈테일로.

평범하게 자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미 피폐해진 삶은, 그녀에게 일탈을 강요했고 채린은 그에 동조했다.


만들어진 머리 스타일 그대로 집에 도착했다. 술을 마셨다. 취하다 못해 몸이 망가질 때까지 들이켰다. 이런 나날이 수십이 넘도록 반복됐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일 때면 손목을 그었다. 피가 나왔다.

붉은 액체가 흘렀다. 채린은 작게 실소했다.

그날 이후로, 검했던 트윈테일에 색이 입혀졌다.


그리하여 설진이 처음 만났을 때 봤던, 붉은 트윈테일의 소녀가 탄생했다.

인기나 관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일탈이었다. 망가지고 망가져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버려서 한 짓이었다.


컴퓨터를 통해 영상 편집 일을 하고 있자니 광고가 눈에 밟혔다.

게임이었다. 스페이스 온라인이라는 탑을 오르는 게임.

게임을 잘 몰랐기에 시작하길 꺼렸던 것이지, 실력 자체는 있는 편이었기에 나름대로 클리어를 해나갔었다. 그렇게 설진, 바티나스, 유약을 만났다.


그렇게 엔딩을 봤고 탑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탑 속에서 다시 한 번 절망을 겪었다.


“···.”


환영을 보고 있던 채린의 입가가 바싹 말라갔다. 식물이 물 하나 없이 건조한 환경에 방치되듯, 그리해 죽어가듯, 채린의 상태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이미 망가졌지만, 더더욱 망가지고 있었다.

트라우마가 다름없었던 일이 복기되자 온갖 부정적인 심경이 복받쳐 올랐다. 심연(深淵) 속 시련(試鍊)은, 채린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다신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혹한 악몽을.


콜록-.


돌연 헛기침이 나왔다. 입이 오므려졌다가 곡조를 그렸다. 실소였다. 헛기침과 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현상이 하나씩 반복됐다.

헛기침하면 몸이 떨렸다. 실소하면 목이 따가웠다.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반복했다. 이미 망가지다 못해 부서져 버린 몸이고 정신인데, 여기서 더 나빠져 봤자 얼마나 나빠지겠느냐고.


[우웅]


어느덧 환영은 끝나 있었다.

피폐해진 채린의 삶을 마지막으로 이내 스러졌다. 이제 채린이 앉아 있는 심연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암흑이 되었다. 깜깜하게 변해 번졌다.


흰 도화지에 검은 물감을 쏟아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지금 보고 있는 어둠이 채린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뜻하는 것 같았다.


하압-.


들이쉰 공기가 실소와 함께 섞였다. 답답했다. 목이 막힌 듯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목에서부터 내뱉어진 침에 피가 섞였다.

아니, 피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두워진 공간은 채린의 얼굴도, 몸도, 심지어 손조차도. 모든 것을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허우적-.


손을 뻗었다. 의미 없는 행위였다.

···잠깐, 정말로 손을 뻗었나?

무뎌진 감각은 생각에 괴리를 입혔다. 뇌가 파열되기라도 한 것처럼 사고 회로가 온전히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어둠만이 채린을 옥좨들었다.


“···으으.”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무저갱에 빠진 것 같다.


어둡다. 눈이 침침하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손을 뻗었음에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아픔이란 감각도 이제 없다.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아팠던 머리도, 잦은 헛기침으로 섞여나온 피도 보이지 않는다. 고통 또한 마찬가지로 없었다.


그저 더 이상 생명체로 있을 수 없게 된 기분이다.

하아. 숨을 내뱉었다. 숨결은 느껴졌으되 이지를 상실한 듯했다.


“그냥··· 이대로.”


무심결에 손이 올라갔다.

올라갔는지조차도 알 수 없는 손을 목으로 가져다 대었다.


“죽어버릴래···.”


희망따위 없는 비극을,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고만 있을 바에야.

차라리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목으로 향한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우웅.


진동이 울렸다. 동시에 채린의 손에서 마력이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사방을 점유할 정도로 깊게 흘러나온 마력이 목을 꿰뚫으려는 순간.


텁-.


“···!”


채린은 볼 수 있었다.


“그만.”


귓가를 자극하는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그만해.”


올라갔던 팔을 잡아 내려놓는 설진의 모습을.


* * *


‘···생각보다 심한데.’


암울한 과거가 있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짐작하고 있는 것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얼마나 당한 거야.’


채린이 겪은 과거를 본 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녀 또한 자신이나 시연과 같이 세상에 환멸감을 느낀 사람 같아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 같아서, 설진은 씁쓸함을 느꼈다.


“···후.”


의외로 자신 같은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아니, 있는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단지 설진이 겪은 불행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것이어서, 자신 이외의 것들은 생각하지 못했을 뿐.


그리하여 자신 이외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후우.”


쓰게 웃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채린에게 고될 것 같다는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목숨을 위협받는 일을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완전히 오판이었다. 채린은 지금 연신 헛기침을 해댈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쓰린 얼굴로 다량의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이 더 흐른다면 과다출혈로 죽는 건 아닌지.

물론 탑에 들어선 외부인의 육체이기에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지금 상황은 정말 죽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더 이상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저벅, 저벅. 땅이 울릴 정도로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만.”


심연 클리어의 특전.

그것은 타 심연 도전자의 ‘심연’을 보거나 개입할 수 있는 것.


“그만해.”


그래서 개입했다.

손에 감긴 채린의 팔은 얇았으되, 피부 몇 군데가 긁혀 있었다.

타인에게 당한 상처라기보단- 자신이 한 것 같은 상처. 설진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의 일탈은 붉은 트윈테일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무수히 많은 자해의 흔적을 애써 무시했다. 지금 놀란 모습을 보여줘 봤자 좋을 건 없었다. 되레 채린을 자극할 뿐이었다.


“오, 빠?”


탁.


들려오는 목소리에 설진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채린의 음성이었다. 초인을 활성화한 설진과는 달리 앞이 보이지 않을 터임에도 그녀는 그리 말했다.


“왜 설진 오빠가 거기에···?”


의문보다 당혹스러운 감정이 앞선 질문.

설진은 뭐라 답하려다 이내 입을 닫았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오빠. 서, 설마···.”


흐린 끝말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채린은 지금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자신의 과거가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었다.

그런데 알려져 버렸다. 자신이 얘기한 것도 아닌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는 갔다. 설진은 조금은 내려간 동공으로 채린을 바라보다, 천천히 말문을 텄다.


“못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거짓으로 포장할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설진은 진실을 얘기했고, 그 말을 들은 채린은-.


“아, 아하. 하하하.”


울음이 잔뜩 섞인, 끓는 듯한 목소리로 질긴 웃음을 뱉었다.

웃음은 한동안 이어졌다. 목이 쉬어도 끝나지 않았다. 성대에 가래가 끓어 목소리가 갈라져도, 웃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봤구나, 오빠. 그렇구, 나. 봐버렸- 하. 하하.”

“···.”

“본 소감은요. 본 소감이 어때요? 높은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 한순간에 추락하는 모습은 재밌으셨어요?”


말 자체는 힐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아니었다. 단어와 단어가 어색하게 이어지는 것도, 시를 읊듯 천천히 말하는 어투도 전부 그녀의 혼란스러움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두서없이 이어지는 빠른 말에 설진은 채린에게 다가갔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채린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상처는 아물지 못한 채 벌어졌고, 벌어진 상처는 점차 그 크기를 불려나가고 있으니.


그래서 설진은-.


와락.


아무 말 없이, 그저.


“···.”


채린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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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136화 22.05.09 41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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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33화 22.05.06 415 3 11쪽
132 132화 22.05.05 41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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