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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32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09 21:30
조회
415
추천
3
글자
12쪽

136화

DUMMY

우웅.


진동 소리가 깊게 드리웠다.

귀를 자극하듯 울리는 진동은 마치 지진이라도 된 것 같았다. 시연은 어둡디어두운 심연 속, 유일하게 빛이 남은 이곳을 바라보았다.


만일 이곳을 찾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으련지.

여기서 환영을 보지 않았으면 지금 느끼는 슬픔도 분개심도 모두 없던 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짐짓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약한 소리인가.’


동시에 피식 웃었다. 손을 들어 올려 시스템 창을 띄웠다.


[목표 : 심연을 클리어하세요.]

[한 명이 클리어할 때마다 한 층이 클리어됩니다.]

[현재 클리어 인원 : 1]


‘한 명···.’


넷, 자신을 제외한 셋 중 한 명은 이미 심연을 클리어한 상태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고생고생해서 클리어했을 터인데, 자신은 상황을 기피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돌연 입가에서 허여멀건 김이 솟아올랐다.


‘누구일려나. 찬우?’


심연을 먼저 클리어한 사람이 찬우가 아닐까 생각했다.

설진, 채린과는 달리 아무런 티가 없어 보였었으니. 파티 생활에 잘 녹아들고, 때때로 대꾸도 하며 나름의 생활을 구축했으니.


더 생각하려던 시연은 이내 생각을 끊었다. 동시에 일그러지고 있는 환영을 바라보았다.

교장선생님과 설진의 담임 선생님. 그들이 모두 그림처럼 멈추더니, 머잖아 사라졌다. 장면이 전환되는 것 같기도 했다.


‘···후.’


시연은 벽 하나 없는 자리에 서서, 그대로 걸터앉았다.

동시에 깊게 심호흡했다. 동굴 속 찬 공기가 코와 입을 향해 부유하고, 들어가고, 내뱉어지기를 반복하며 순환했다.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최대한 진정코자 노력했지만, 아까의 충격이 아직 가신 건 아닌지 고통이 밀려왔다. 신체적인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정신적인 고통임에도 아팠다. 더 아렸다. 가슴이 찢어지고 사무친다는 감정이 얼마나 큰 쓰라림인지 알게 될 정도로.

극복하지 못한 과거가, 트라우마가 낙인이 되어 가슴에 박히는 것처럼. 그리하여 몸이 타듯, 소사(燒死)하듯, 미친 듯이 아픔을 느끼듯-.


‘···진정해.’


애써 몸을 진정시켰다. 정신을 달랬다.

후아- 후아-. 심호흡을 내뱉었다. 크게 들이쉬어 심장을 불리고, 크게 내쉬어 심장을 줄였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고통은 점차 줄어들었다.


팔을 뻗어 이마에 가져다댔다. 축축한 느낌. 뜨거운 기분. 열이 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펄펄 끌어 오르는 이마가 지금의 상황을 대변했다.

팔에 묻은 땀을 떨쳐내고자 휘둘렀다. 물과 공기가 만나 차가운 촉감을 만들었다. 피부가 점차 차가워지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물기가 빠졌다.


후아-.


다시 호흡.

진정이 아닌 환영에 대적하기 위한 호흡.

환영 속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기 위한 호흡.


심호흡했던 아까의 폐보다, 지금의 폐가 조금 더 덜 뛰었다. 심장 박동이 더 느려졌다. 이는 곧 진정을 의미했고 정신의 회복을 뜻했다.


‘오케이···.’


숨을 내쉬면서도 시연은 웃었다. 아득하기만 했던 고통이 점차 완화되고 있었다. 아니,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우웅.


재차 진동이 울렸다.

시연은 그에 맞춰 고개를 들어올렸다. 더 해 볼 테면 해보라는 듯 환영을 분연히 응시했다. 앉은 채 다리 하나를 뻗어 세우고, 팔을 내밀어 올렸다.


“너.”


환영이 말했다. 아니, 환영 속 시연이 말했다.

환영 속 시연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앉은 시연과는 다르게, 환영 속 시연은 벽에 기댄 채 두 손을 뒤로 빼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었다.


벽의 색깔은 푸른색. 아니, 색깔이라기보단 하나의 자연 같았다.

이를테면 바다. 파도가 치지 않아 잔잔한 바다. 환영 속 시연이 기댄 벽은 그런 색을, 그런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 풍경에 두 손을 묻었다. 묻혔다.


시연의 옆. 옆이라고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먼 거리에선 검은색 그림자가 보였다. 평범한 성인의 크기였다. 적어도 시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왼쪽에는 그 성인의 그림자가. 오른쪽에는 그보다 더 작은 그림자가.

여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추측건대 남자로 보였다.


시연을 기준으로 왼편에 있는 성인의 그림자는 움직이고 있었다. 더 왼쪽으로. 미묘하지만 확실히 전진하고 있었다. 시연과 멀어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오른편의 작은 그림자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했다.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듯,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듯 가만히 서 있다.


“주시연. 너.”


다시 환영이 말했다.

지금보다 앳돼 보이는 목소리였으되,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어림잡아 1, 2년 정도. 그전의 시연의 목소리가 저랬었다.

낮은음이 섞인 목소리가 시연의 귓가를 타고 흘러들었다.


“무섭지?”


이윽고 묻는다.


“그동안 해온 모든 것들이- 전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하고.”

“나도 그래. 무서워. 남들이 좋은 대학에 갈 때 일용직이나 하고 있었고, 일을 마치면 기계처럼 집으로 돌아와 자. 취미 따윈 없었잖아. 있다고 해 봐야 그저 게임 몇 시간. 그뿐이었었잖아.”

“그곳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지 않아? 아니, 난 더 무서울 것 같은데?”


그곳이라 탑은 탑을 이르는 듯했다.


“너는 알고 있잖아.”

“설진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알고는 있잖아. 직접 듣기도 했잖아.”


과거라 함은 아픔을 이르는 듯했다.


“도와줄 수 있었잖아. 더 적극적으로, 더 개입할 수 있었잖아.”

“그런데 왜.”

“왜 그랬어? 왜 도와주지 않았어? 왜 그를 아프게 만들었어?”


아픔이라 함은 설진의 고통을 이르는 듯했다.

설진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음에도 수동적으로 움직인, 시연을 이르는 듯했다. 책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응? 한 번 대답해 봐.”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왜 그리지 않아 이 상황을 만들었느냐고.


“아프게, 만들어 주지, 않을 수, 있었잖아.”


마지막 말은 씹어 삼키는 듯했다.

삼키고 삼킨 말을 억지로 내뱉는 것 같았다.


“그러게.”


시연은 인정했다. 설진의 괴로움을 멈춰 줄 수 있는 것도, 괴롭힘을 중단시킬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천대받고 천대받아도 어릴 적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었다. 논란을 퍼뜨려 학교 하나를 공격하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지? 아프게 만들어 주지 않을 수 있었지?”

“그러게.”

“그런데 왜 그랬어?”

“그러게.”

“···.”


시연은 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피식 웃고 있었던 입은 여전했다. 올라가 벌린 입꼬리는 여전히 의미 모를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쯤 되니 되려 환영의 말이 사라졌다. 환영의 시연은, 잠시 말을 멈춘 후 거뒀던 손을 앞으로 옮겼다. 검은 손이었다.


촤아아-.


곧이어 파도가 쳤다.

잔잔할 줄만 알았던 바다의 배경에서 돌연 세찬 바람이 불었다. 분 바람이 물을 밀었다. 밀리어진 물이 거세져 파도가 되어 몰아친다.


환영 속 시연의 손은 여전히 검했다. 먹물을 발라 칠한 것 같았다.

그녀는 보라는 듯 검은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손이 검해. 이건 네가 그만큼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야.”

“···.”

“후회하고 있다는 증거야. 너는 지금 후회하고 있어. 회한하고 있어.”

“···.”


이젠 시연의 입이 닫혔다. 후회, 회한. 맞는 말이었다. 설진을 만나지 않았으면 모를까, 만나게 된 지금. 이만치 관계를 쌓아올린 지금 후회가 되었다.


그때 더 도와줬으면.

더 능동적으로 움직였으면.

상황이 여기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인 이상 과거에 미련을 가지는 건 당연했다. 과거를 이기지 못해 미끄러지는 건 당연했다. 극복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었다.


“맞아. 나는 후회하고 있어.”


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이나 다름없는 대답이었다.


“그래, 너는 후회하고 있어.”


환영이 화답했다. 시연의 말을 재차 긍정했다.

왼쪽에 있던 성인 그림자에 색이 생기기 시작했다. 옷과 피부. 환영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설진의 그림을 만들었다.


“그래서 두려워해.”


설진이, 점차 왼쪽으로 이동한다.

멀어진다. 검은 손을 내민 시연과 차츰차츰 거리를 벌린다.


“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까. 진전할 수 없을까.”


이젠 보이는 곳보다 보이지 않는 곳이 더 많을 정도로 벌어졌다.


“언젠가, 끝이 나는 건 아닐까.”

“끝은 나겠지. 당연한 말이잖아.”

“그 시기가 엄청나게 빠르면?”

“슬프겠지. 후회하겠지. 내가 저지른 일인데. 내가 하지 않은 일인데.”


이번에는 오른쪽이었다. 성인보다 작은 그림자에 살이 붙는다. 색이 덧씌워져 어린 설진의 그림을 만들었다.

설진은 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 그때 봤던 무미건조한 눈. 아니, 설진과 재회했을 때 본 무(無)나 다름없는 표정.


그 표정 그대로 시연을 응시한다.

한없이 잠긴 것만 같아서 시연은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지 않는다. 심연 속에 빨려 들어간 몸이 할 수 있는 건 처절한 발버둥 정도.


발버둥이 빛을 보는 일은 없었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이거구나.”


시연이 중얼거렸다.


“뭐가?”


환영이 물었다.


“심연에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이. 이게 심연의 시련이지?”

“아파? 살갗이 벗겨지고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 아파?”

“어. 아파.”

“그럼 그게 시련인 거야.”


대화가 오갔다. 한참 대답하던 환영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다시금 시연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시연의 주변에 생긴 검은 막은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픈 것 같아 보이지 않지?”


표정은 한없이 평온했다. 손을 뻗고 있지만 발버둥이라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저건, 발버둥이기보다는 내뻗음이었다.

언제라도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쯤 되니 환영이 되레 당황했다.


“아프지 않다니. 무슨 말이야. 이렇게나 아픈데.”


당황한 듯한 환영을 향해, 시연이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나 아팠었는데.”


명백한 과거형.

말인즉 지금은 아프지 않다는 의미였다.


“저기. 사람은 누구나 후회하잖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 건지는 개개인의 몫이고. 나도 그랬어. 후회하고, 회한했어. 슬픔에 빠졌었어.”

“···그런데 왜?”

“후회만 하고 있어 봤자 되는 건 없잖아. 생각만 하고 있어 봤자, 나 혼자 끙끙 앓고 있어 봤자 변하는 건 없잖아? 행동해야지. 움직여야지.”


생각만으로는 글이 써지지 않듯.

생각만으로 그림을 그릴 수는 없듯.


지금의 상황도 같았다. 그저 생각만 하고 정작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루어지는 것 성취하는 것 하나 없이 시간만 지나갈 뿐이었다.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그렇게 보낼 뿐이었다.


그래서 시연은 결정했다. 의미없이 하루를 살아갈 바에야- 삶에 의미를 부여하겠노라고. 더 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움직이겠노라고.


그래서- 결정했다.


“심연이 끝나면 설진한테 말하러 갈 거야.”

“그러다가 설진이 너한테 실망하면? 도망가면 어떡할 건데?”

“그게 책임인 거지. 적어도 거짓된 관계는 유지하는 것보단-.”


심연 속에 갇힌 시연의 손이,

점차 위로 올라간다.


위로, 위로. 많이 갈 필요도 없었다. 그저 팔을 한 번 들어 올렸을 뿐인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낮은 높이의 심연이었다.

낮아진 높이의 심연이었다.


“백 배 낫잖아?”


시연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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