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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33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01 21:30
조회
426
추천
4
글자
11쪽

130화

DUMMY

어두운 공간.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한 치 앞을 볼 수 없고, 필시 방향을 잃어 방황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공간에.


‘엘리나.’


그녀가 있었다.

그녀만 있는 공간만이 빛이 들어왔다.


엘리나를 반경으로 무대라도 생긴 것 같았다. 심연이 만들어낸 환영은 상상 이상으로 직관적이어서, 그 어떠한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과 빛.

그중 빛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지라, 설진의 시선 또한 자연스레 빛 쪽으로 끌렸다. 그리하여 설진의 눈에는 엘리나가 보였다.


환영이 만들어낸 엘리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실망한 것 같기도 했고, 낙담한 것 같기도 했다. 보아하니 흘러가는 상황이 좋지 않은 듯 보였다.

엘리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자 머잖아 다른 환영이 생겨났다.


아넬, 아메르, 리아엘라, 나타벨.

엘리나의 최측근들이자 깊은 연을 가지고 있는 자들.


‘···.’


그런 그들과 엘리나가 마주 보고 있었다.

황좌에 앉은 엘리나와 넷이 서로를 보고 있었다.


“황녀님, 죄송합니다. 실종된 루루를 찾기 위해 정예들이 불철주야 움직였지만, 소득이랄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아넬의 말이었다.

상황을 보고하는 듯한 말투였다.


40층에서의 일이 아닌 그전의 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헤임 제국 에피소드의 초기.


교회가 의도적으로 루루를 납치했을 때. 지금의 시간과 시점은 그쪽으로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설진의 눈이 자연스레 아넬을 향했다.


‘죄송합니다? 소득이 없다?’


아넬.

자신이 빙의했고, 순간이기는 하지만 자신이었던 인물.


설진이 알기로 아넬은 루루 구출에 몸담지 않았다. 루루의 실종 장소를 알아내고 구출하러 간 것은 엘리나와 교회 측 정예 사제들.

아넬이 관여한 부분은 없거니와 엘리나의 명 또한 없었다.

애당초 아넬은 루루와 관련 없는 인물이다.


‘달라.’


아넬에게서 이상함을 느꼈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리아엘라였다. 그녀는 앞선 아넬과 같이 면목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내 상황을 보고했다.


내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루루의 흔적을 찾아다녔지만 발견한 것 하나, 얻은 것 하나 없이 수사는 종결.

아무리 봐도 좋게 포장할 수는 없는 성과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리아엘라는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비단 둘뿐만이 아니다.

나타벨도 아메르도.

전부 유의미한 성과는 얻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들여다보던 설진은 이윽고 엘리나 쪽으로 시선을 옮기더니만,


“괜찮습니다. 그대들의 노고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 말하는 그녀를 응시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입과는 달리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흔들리고 있었다. 동공이 떨리며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다만 사항이 사항이다 보니 휴식 시간을 많이 드릴 순 없는 점 양해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루루의 실종 건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문제인지라-.”

“당연합니다. 황녀님. 두 시간 이후 다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또한 지금의 사항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후훗. 고마워요, 아넬.”


아넬을 포함은 넷은 전부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조금만 쉬고 다시 출발하겠다고, 그리 입을 열었다.


‘루루의 실종은 큰 문제니까.’


설진은 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심연이 보여주는 환영이지만, 그 환영 속에서 루루는 수인 중에서도 귀한 신분을 타고난 아이였다. 수인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딸이었다.


그런 지도자의 딸이 실종된 것이다.

수인의 거처가 아닌 동맹국인 제국에게서.


당연하지만 루루의 실종은 어떤 식으로라도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을 터.

동맹 관계의 존속을 위해 엘리나는 루루의 수색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예를 시켜 찾게 하고, 조사와 수사를 반복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단서를 얻지 못한 실정이다. 적어도 지금의 환영에선 그랬다.

설진의 귀에 걸음 소리가 울렸다. 치켜든 고개 너머 네 정예들이 물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방에 남은 건 엘리나 혼자였다.


“후··· 큰일인데.”


혼자 남은 엘리나가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제국의 신뢰가 감소할 텐데···.”


만일 루루를 찾지 못하게 된다면, 그리하여 영영 잊어버리게 된다면.

제국과 수인국의 동맹 관계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불신이 생겨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최악의 상황엔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 수도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했다. 앉아 있던 엘리나는 뭐라도 하고자 몸을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는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황녀 전하!”


밖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정예는 아니었다. 일반 병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엘리나는 들어오라 말했다. 덜컥-. 황국에서 근무하던 병사는, 아니. 정찰병으로 보이는 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실종된 루루를 찾았답니다!”


그 순간 엘리나의 안색이 밝아졌고.


“교회 측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밝아졌던 안색이 굳어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웅-.


환영이 이어지고 있던 도중, 돌연 진동 소리가 울리며 장면이 멎었다.

움직이던 엘리나도 보고하고 있던 병사도 모두 멈추었다. 영상이 순식간에 한 장의 그림으로 전환된 느낌. 이윽고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만일 이대로 흘러갔다면.’


if의 세계. 그러니까, 환영이 보여준 하나의 가정.

그 일련의 과정이 설진의 머릿속에 틀어박혔다.


루루의 구출이 황실-교회 측의 공로가 아닌 온전히 교회의 공이었다면.

그때를 생각했다. 만약이 아니었다. 실제로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황실의 입지가 낮아진다.’


안 그래도 교회의 지지율보다 낮은 실정인데, 입지를 더 잊어버린다. 수인들도 황실보다 교회를 더 신뢰하게 된다.

종례에는 교류를 황실이 아닌 교회에서 하게 된다. 그 과정을 본 적이 있는 설진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엘리나의 첫 번째 실패였다.


우웅.


다시 진동이 울렸다.

멈춘 줄 알았던 환영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작물을 수확한 후, 또다시 밭을 갈아 다른 작물을 심듯.

사리진 줄 알았던 환영이 다시금 나타났다. 루루의 건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


“황녀님, 괜찮습니까? 던전에 들어온 것이 교회에게 알려진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요.”


아메르의 말에 엘리나가 답했다.

환영 너머 회색의 동굴이 보였다. 아니, 동굴이 아니라 던전이었다.


1차 탐색. 엘리나가 교회의 납치 증거를 찾으려 던전행을 감행했을 때.

환영은 그 당시를 비추고 있었다. 드문드문 출몰하는 골렘들이, 그 골렘들을 파쇄해가며 돌파하고 있는 엘리나가 설진의 눈에 들어왔다.


‘마르쿤 던전.’


요한의 목적인 영생을 이룰 수단인, 염원석이 보관된 곳.

중요한 물품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답게 그곳을 지키고 있는 몬스터는 골렘이었다. 몸체가 단단하여 격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몬스터였다.


그럼에도 엘리나는 나아갔다. 전진했다.

그러다가 아이온 골렘을 만났다. 몸이 철로 된, 일반적인 골렘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놈이었다. 엘리나는 전투를 준비했다.


제사식 폭우를 사용했다. 결과적으로 골렘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꽤 많은 기력을 소모하고야 말았다. 허억. 거친 숨이 밖으로 내뱉어졌다.


“아메르. 주문을 부탁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황녀님! 힐(heal)! 큐어(cure)!”


치료받고 더 나아가려는 순간.

염원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황녀님? 어찌하여 이런 곳에 계시는지요.”


요한을 만났다.


고비가 멀지 않았는데.

눈앞이 바로 목적지인데.


당시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엘리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요한에 비해 경험적인 측면이 떨어졌던 그녀는 요한의 말에 휘둘린 채 황실로 복귀했다.


황실로 복귀한 엘리나의 표정은 과히 좋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수척해졌다고 해야 할까.

몸도 마음도 지친 듯 보였다. 집무실 창문 너머, 은은하게 떠오르는 달빛을 바라보며 엘리나는 잠에 들었다.


‘두 번째 실패.’


루루의 실종을 해결하지도 못했고,

던전에서 유의미한 단서를 찾지도 못했다.


엘리나에게 있어 이건 두 번째 실패였고, 연이은 실패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도 남았다. 엘리나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우웅.


다시 변했다.

환영이 변한다.


2차 탐색. 이번엔 디반이었다. 다시 네 명의 정예들을 불러들였고, 드릴 보어를 처치하며 나아갔다.


‘이제 슬슬 아넬이 말을 걸 타이밍인데.’


엘리나가 납치당한 수인을 발견한 경위는 이랬다.

탐색 중 수상함을 느낀 아넬이 보고하고, 엘리나가 위치를 묻는다. 그곳으로 이동해 환영 마법을 꿰뚫어 보고 수인 납치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넬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엘리나 또한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설진은 머잖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환영 속 세계에서는 디반 던전이 아닌, 다른 곳에 수인들이 있었던 건가.’


디반이 아닌 다른 지역의 던전.

엘리나가 향했어야 할 곳은 그곳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보가 없었고, 그렇기에 사지선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 분의 일 확률을 뚫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던전행의 결과는 실패로 나타났고, 피치 못하게 돌연변이 드릴 보어하고도 교전해야 했다.


“아메르. 치료를 부탁드립니다.”

“아···.”

“아메르?”

“아, 네! 황녀님! 죄송합니다! 곧바로 치료를···.”


세 번째 실패.

그리고 세 번째 실패부터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좋은 변화가 아니었다. 자신에 관한 변화가 아니었다.


바로 주변 정예들의 변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엘리나에게서 멀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엘리나의 편인 쪽은 리아엘라 하나뿐. 나머지는 전부 거리를 두려 하고 있었다.


우웅.


‘···.’


환영은 잠시 다른 장면을 보여주었다.

아넬, 나타벨, 아메르가 황실이 아닌 교회에 있는 장면이었다.


교회에서 요한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대강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예측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배신.’


배신이라기보단, 매수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설진은 모험가 길드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남녀 둘이서 ‘교회 쪽에서 황실의 팔라딘과 성기사를 매수하고 있다.’라고 말한 그때가 생각났다.


그게 진실인 것이고, 그 여파가 황실의 정예까지 뻗친 것이 분명했다.

물론 정예들인 만큼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제까지 엘리나가 보인 실망스러운 행보가, 매수의 성공을 만들었다.


‘···.’


설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두운 공간, 빛 하나 닿지 않는 심연(深淵) 속.

무저갱과도 같은 곳에 비친 엘리나의 모습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단지 슬프고 슬퍼 보여서, 힘들다는 듯 엎드린 채 쓰러져 있어서.

그 광경을 보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심연은 감상에 젖은 시간 따윈 주지 않겠다는 듯 환영을 거둬들였다.


우웅.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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