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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30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02 21:30
조회
426
추천
3
글자
11쪽

131화

DUMMY

세 번째 실패 후 다시 환영이 나타났다.

엘리나가 보였다. 수인이 보였다. 둘 다 원탁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한 것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모인 건 아닌 듯했다.


“엘리나 황녀. 요즘 들어 수인들의 실종 빈도가 늘어나고 있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 황실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수인의 머리에는 월계관이라 할 만한 것이 씌워져 있었다. 나뭇잎을 엮어 만든 관 사이사이에 놓인 보석은 수인의 지위를 상징하는 듯했다.

아니, 굳이 월계관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한 나라의 황녀인 엘리나에게 존댓말을 쓰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자리한 이는 수인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이였다.

월계관 너머 튀어나온 사자의 귀가 눈을 사로잡았다. 얼굴을 감싼 갈퀴를 잠깐 쳐다보다, 엘리나는 시선을 돌렸다.


“아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네.”


그러자 돌아온 것은 수인의 말이었다.

문제 인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인지가 아니야. 인지라면 한참 전부터 했겠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지 이 일을 꾸미고 있는 범인의 색출일세.”


꼭 범인이 제국 안에 있다는 것처럼.

수인은 그렇게 말했다. 그저 떠본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엘리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증거가 차고 넘치도록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헤임 제국에 방문한 수인들 중 20%가 실종되고 있었다. 적은 수치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열에 둘이 실종된 격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열에 둘은 살해당한 셈. 말이야 실종이지 실종 수인을 다시 발견한 경우는 적었으니 살해나 다름없었다.


“저희 황실에서도 불철주야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렇군. 잘 알고 있네. 엘리나 황녀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으니 말일세. 다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과가 없으면 무용지물일세.”

“실제로 성과를 올린 전적도 있지 않습니까? 토인족 지도자의 딸인 루루···.”

“그건 황실의 전적이 아니지 않은가.”

“···.”


수인의 말이 이어졌다.

엘리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 눈앞의 수인에게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전적이 그것인데, 그마저 황실의 공이 아니다. 교회의 전적이었다.

그리고 이는 곧 무능력을 뜻했다. 수인이 보기에 엘리나는 이룬 성과도, 내밀 만한 전적도 없는 무능한 황녀일 뿐이었다.


“수사권을 확대시켜주게. 우리 수인족들도 제국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싶네.”

“···.”

“그렇게 버텨 봤자 안될 일이라는 건 알지 않는가. 물론 처음에 요청했을 때에는 그럴만한 명분이 없어 물러났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잖은가.”


엘리나는 침음을 흘렸다.

수인이 수사권을 요청한 지 반년.

명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타국에게 수사권을 넘겨주는 것은 위험하다 못해 안될 일이었지만, 지금 엘리나에게 그것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만일 있다고 해도 억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건 곧 엘리나의 무능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일 터.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달부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 사항인지 엘리나 황녀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네. 굳이 날짜를 미룰 이유는 없어 보인다만.”

“···.”

“엘리나 황녀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고 싶네. 수인인 우리가 조력한다면 분명 범인을 색출해낼 수 있을 걸세.”


결국, 엘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에게 수사권을 넘겨 준 그때의 회담이, 그림이 되어 멈췄다.


“네 번째.”


설진은 무망중 육성으로 말했다.

목소리로 엘리나의 실패를 거론하고 말았다. 몰입. 혹은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어느새 설진의 정신은 환영 너머를 향해 있었다.


[차분한 마음이 발동 중입니다.]


정신 마법의 위력을 감퇴시켜주는 차분한 마음은 무소용.

완전히 이입하게 된 설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엘리나의 실패 횟수와 과정, 그리고 낙담. 이 모든 것은 그가 게임에서 접한 것들이었다.


그때를 떠올리자 감정이 격해졌다. 요동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떨리기 시작한 손은 더더욱 심하게 흔들렸다.

눈에서는 작게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중이다. 변수 하나 없이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된다면, 그 끝은 어떻게 될지 알기에 설진은 낙담했다.


‘이대로 간다면···.’


죽는다.

엘리나가 죽는다.


죽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다음 따위는 없었다. 엘리나는 후계를 두지 않았기에 대를 이을 사람이 없었고, 이는 곧 제국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수인과 요한의 건조차 수습되지 않았는데.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안 그래도 힘든 일이 두 배로 늘어나 버렸다. 감당하지 못한 제국의 미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


우웅.


다시 진동이 울렸다.

환영이 이어졌다. 환상이 지속된다.


그 환상에 엘리나는 없었다. 단지 엘리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수인이 있었다.

수사권을 얻은 후 제국에 방문한 듯했다. 그는, 수도를 중점으로 여러 곳곳을 수색하더니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낮짝 한 번 뻔뻔하군. 동포들을 그리 납치해 간 주제에 어떻게 그리 무능의 연기를 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악녀나 다름없는 여자야.”

“수도를 반경으로 최대한 찾아봤습니다만, 딱히 나온 건 없었습니다.”

“그런가. 수고했네.”


부하로 보이는 수인에게 손짓한 그는 수고했다는 듯 휴식을 명령했다. 고개를 숙이며 물러가는 부하를 향해 돈 자루를 쥐여주었다.


“이걸로 다른 병사들과 여흥이라도 즐기게. 사흘간 고생했으니 그 정도 휴식은 당연한 것이네.”

“가, 감사합니다!”

“이만 물러가게. 이틀 후 다시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부하는 떠났다.

혼자 남게 된 그는 발걸음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교회로군.”


발걸음이 닿고 닿아 도착한 곳은 수도의 교회 건물이었다.

스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제로 보이는 이들이 환영해 주었다. 적당히 손을 흔든 그는 걸음을 옮겨 교회 내부로 들어섰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일세. 요한 교황.”


교회의 접견실에 착석한 그는 요한을 바라보았다.

황실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인물. 실종된 루루를 찾아주기도 했으며, 은근슬쩍 수인의 수사권 확대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수도를 반경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발견한 건 딱히 없더군.”

“엘리나는 영악한 여자니까요. 수도처럼 눈에 띄는 곳에 수인들을 숨겨놓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지방의 던전에 가둬놓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흠··· 확실히 그렇겠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한의 말에 긍정했다.

정확한 경위는 모르나 요한은 수인을 완벽하게 구워삶은 듯 보였다. 황실의 접견실에서와는 달리 뾰족한 어투가 나오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오히려 요한을 동료라 여기는 듯했다. 경계를 상당수 푼 그의 모습은 그가 요한에게 얼마만큼의 신뢰를 가졌는지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이걸 한 번 봐주시겠어요?”

“음? 이건.”

“제국의 지도입니다. 그중에서도 이곳들···.”


요한은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치더니만, 손가락을 움직였다.

가리킨 곳은 제국의 외곽 지역.

그중에서도 X자 표시가 된 곳들이었다.


“이쪽은 저희 교회 측에서 조사를 끝내놓은 지역입니다. 저희도 나름 노력했지만, 엘리나가 워낙 영악한지라 딱히 소득이랄 것은 없었습니다.”

“그럴 만해. 대화를 몇 번 나눠본 것만으로도 알겠더군. 마음속에 시꺼먼 게 꽉 찬 여자야. 야망도 가득하고.”

“그렇지요. 저희도 그런 엘리나를 최대한 견제하곤 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군요. 황실은 역시 황실인 듯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그걸 위해 여기 온 것 아니겠나. 요한 교황은 수인들의 실종 사건을 돕고, 나는 요한 교황과 협력해 황실을 무너뜨린다. 이게 계약이니 말일세.”


요한과 수인들 사이에서는 모종의 계약을 맺은 듯 보였다.

더불어 수인을 납치한 진짜 범인이 누군지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요한 교황이 X자를 하지 않고 남겨놓은 곳은··· 아르, 케메엔, 디인. 이 세 곳인가.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어딜 탐색하시겠습니까? 한 곳씩 맡고, 남은 하나는 합동 작전으로 탐색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괜찮네. 이미 너무 많은 수고를 해 줬어. 남은 세 곳은 우리가 전부 탐색하지. 분명 소득이 있을 것이라고 믿네.”


우웅.


장면이,

바뀐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탐색의 일자가 찾아왔다. 먼저 탐색하기로 결정한 곳은 케메엔. 그곳의 던전으로 향한 수인 일행은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인들의 흔적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꼭꼭 숨겨 찾기가 어려운 것인지, 아님 꽝인 것인지. 알 수 없기에 그는 점차 불안해졌다.


남은 두 곳 중 하나인 아르 탐색을 시작했다.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수인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쯤되니 불안감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남은 던전인 디인에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과 불안함을 품고서 디인 던전 탐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괜찮나!?”

“으, 으으.”

“말하지 말게. 상처만 덧날 뿐이네. 이봐! 여기 치료를 부탁하네!”


구속된 채 쓰러져 있는 수인들.

구타나 고문을 가했는지 그들은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거의 송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치료사를 부르던 그는 돌연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이런 짓을 잘도···!”


약한 척, 무능한 척을 하며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은 엘리나가 떠올랐다.

그건 단지 앞모습일 뿐이었다. 그녀의 뒤는, 동전의 양면처럼 전혀 달랐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든 것을 알아버렸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응징뿐이었다. 그는 군대를 모아 황실을 치겠노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고자 했던 그의 귀에 들린 것은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다.


“으. 아.”

“말하지 말게! 내 그대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네. 한시라도 빨리 군대를 모아 엘리나 이 악녀를 처단할 것이야!”

“황실, 이. 아니라-.”


꼭 이것만은 알려야 한다는 듯 입을 연 수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돌연 그의 손이 멈췄다. 아프다거나, 황실에 대한 분노를 쏟아낼 줄 알았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들린 건 황실의 짓이 아니라는 변호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그는 머릿속이 더욱더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황실이 아니라니. 엘리나가 이런 짓을 꾸민 게 아니라니.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토록 끔찍한 짓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수인이 말했다.


“교, 회의 짓- 입니다.”


형형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를 하고서 이 말만은 꼭 전달하겠다는 듯 성대를 연 수인의 목소리가, 명확하리마치 귀에 꽂혔다.

텁-. 그러자 수인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그의 손이 멎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수없이 들이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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