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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18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4.25 21:30
조회
421
추천
4
글자
11쪽

126화

DUMMY

서걱-.


끔찍한 절삭음이 동굴에 퍼졌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은 사람의 네 배에 달하는 짐승의 피였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은 짐승을 베고 또 베어 조각난 살점이었다.


탁-!


드릴 보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뿔이 떨어졌다.

보통의 드릴 보어보다 훨씬 거대했던 놈의 뿔은, 이젠 산산이 부서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쩌적-. 마치 상아가 으깨어진 것 같았다.


“후.”


얕은 숨을 토해낸 엘리나는 비스듬히 쥔 검을 납도했다.

아이언 골렘을 잡을 때와는 다르게 제사식 폭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리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움직여도 될 듯했다.


손을 몇 번 쥐락펴락한 엘리나는 으깨진 드릴 보어의 뿔 쪽으로 향했다.

덥석-. 이윽고 손에 드릴 보어의 뿔이 들어왔다.


‘이것도 변종이라면 변종이라 할 수 있는 거겠지.’


보통의 놈들보다 훨씬 큰 몸체.

더 날렵하고 더 강한 힘.


그런 돌연변이의 뿔을 집었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는 이 뿔을 요긴하게 써먹을 날이 오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써먹을 때가 없어도 괜찮았다.

가지고 있어 손해 볼 것은 없으니. 정 쓸 데가 없으면 황실의 장식품으로 써도 되는 노릇이니. 활용할 곳은 차고 넘치도록 있었다.


‘자, 그럼-.’


드릴 보어의 뿔을 집어넣고선 시선을 옮겼다. 싸움에선 전리품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의 상태를 살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었다.

딱히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부상자는 없나요?”


그럼에도 엘리나는 물었다. 이 또한 어릴 적 배운 군주의 덕목이요 이끄는 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없습니다.”

“저도 없어요.”


돌아오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군의 부상이 전무하거나 경미한 것만큼 희소식이라 할만한 것은 없었다.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앞을 가리켰다. 돌연변이를 잡은 건 희소식이었지만, 디반 던전에 들어온 목적이 목적인 만큼 이걸로 만족할 순 없었다.


더 나아가야 했다.

나아가, 증거를 찾아야 했다.


교회가 수인들을 겁박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아서 교회를 실추시켜야 했다. 그래야 제국이 발전할 수 있다.


“다행이군요. 그럼 휴식을 재개할까요? 십 분 정도 쉬었다 이동하지요.”


엘리나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여유는 있었다. 던전 또한 꽤 심층부에 진입한 상태다.

반드시 찾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엘리나는 동굴 벽에 기대며 앉았다.


* * *


동굴 속을 타고 밀려드는 바람은 자못 스산했다.

한기라고 할 정도로 추운 건 아니었지만, 쌀쌀하다는 말 정도는 붙일 수 있어 보였다. 엘리나는 저도 모르게 옷을 동여맸다.


10분의 휴식 시간이 지난 후, 전진을 시작한 일행을 맞은 것은 바람이었다. 더불어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생명의 기척까지.


“황녀님. 앞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집니다.”


엘리나 혼자서만 느낀 것이 아닌지, 아넬이 그리 말했다.

묘한 기척. 그래, 딱 그 말이 어울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고, 명확한 단서도 없는 지금 그 묘한 기척이 눈길을 끌었다.


‘마르쿤 던전에서 느낀 것 같은데.’


마치 한 번 느껴본 기척이라고나 할까.

기척만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전무하다는 점,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마르쿤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엘리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묘한 기척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원래의 목적인 던전 중심부로 이동할 것인지.


‘어디로 가는 게 나으려나.’


생각해 봤다.

자신이 요한이고 납치한 수인들을 숨겨야 한다면 어디에 숨길지.


‘하긴, 중심부는 너무 뻔한 곳이겠지.’


너무 뻔해서 들키기 쉽다.

만약 엘리나가 요한이었다면 중심부 부근에는 숨기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는 건 자연스럽게 묘한 기척을 따라가는 것.

끝까지 생각한 엘리나는 이내 결론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묘한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이 어디죠?”

“저쪽입니다.”


물론 자신 또한 방향은 어딘지 알고 있었다. 지금 아넬이 가리킨 것처럼 동굴 중심부를 반경 삼아, 비교적 좌측으로 꺾으면 되었다.

그러나 자신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소수의 몇 명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엘리나는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크게 해 아넬에게 물었다.


아넬이 왼쪽으로 방향을 가리키자, 다른 이들의 시선 또한 그쪽으로 쏠렸다. 이걸로 일행 모두 목표 지점이 어딘지 확인한 셈.


“들었지요? 모두 아넬이 찾은 곳을 향해 이동합니다.”


목표를 재차 고정한 엘리나가 왼쪽으로 걸음을 틀었다. 그렇게 20분. 서슬 퍼렇게 느껴지는 기척이 다시금 드릴 보어의 출현을 알렸다.


기실 이제 드릴 보어는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잦은 싸움 탓에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어디로 피하고 어딜 공격해야 하는지.


마치 단어를 익히고 글을 공부하듯.

익히면 익힐수록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늘어나듯.


지금이 딱 그랬다. 현재 일행은, 드릴 보어를 상대할 때만큼은 가히 학살자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빠르게 드릴 보어를 처치하며 나아갔다. 앞으로 전진하면 전진할수록 드릴 보어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산을 넘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30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약 한 시간이 더 소요되었을 즈음.


“저쪽에서 마력이 느껴지는군요. 꽤나 지독한 기분입니다.”


엘리나는 묘한 기척에 다다를 수 있었다.


“황녀님. 하지만 황녀님이 가리키는 곳은 동굴 벽인 것 같습니다만···.”


돌연 아넬의 말이 들렸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엘리나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비교적 던전 외곽에 있는 동굴 벽이었다.


도적이나 기사 같이 마력에 민감하지 않은 이들이 본다면,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죠.”

“그렇다는 건 혹시 숨겨진 장치 같은 것이···?”

“아니요. 숨겨진 장치 같은 것도 없을 겁니다. 제 눈에는 지금 이 벽이 하나의 통로로 보이거든요.”


여전히 아넬은 의문을 표한 채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엘리나는 그런 아넬을 포함해 모두에게 보라는 듯 검을 뽑아들었다.


“그보다 상상 이상으로 영악하군요. 좌측으로 방향을 꺾지 않고 중심부로 향했다면 저희는 이 ‘문’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문?”


아넬의 궁금증은 머잖아 해소되었다.

스윽. 바로 엘리나가 뽑아든 검이 벽을 통과함으로써.


“···?”

“별것 아닙니다. 단순한 환영 마법이지요.”


벽을 통과한 검을 다시 빼내며, 말을 이었다.


“공간을 파두고 환영 마법으로 덮은 겁니다. 그래서 벽처럼 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벽을 통과하는 것이 가능한 거지요.”


이어지는 설명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타벨과 아메르였다.


리아엘라는 엘리나의 말을 이해하려 머리를 싸맸지만 끝내 이해하지 못했는지, 우우-. 볼멘소리를 내고서 앞으로 다가왔다.


“황녀님. 들어가죠.”


기사에게는 기사의 역할이 있었다. 굳이 마법사가 될 필요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리아엘라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


전위답게 선두를 맡는다. 공격이 오면 막는다.

단지 그뿐이었다. 리아엘라는 긴장한 듯 침을 한 번 삼키더니, 이윽고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그 누구보다 벽에 가깝게 섰다.


“부탁해요. 리아엘라.”


기사는 위협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었다. 선두에서 적의 공격을 막고 흘리며 버텨야 했다. 그리하여 상처가 쌓여가는 게 바로 기사라는 직업이었다.

엘리나는 그런 리아엘라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앞에서 버텨주는 단단한 벽의 존재는,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느낌을 주곤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든든함이 다시 재림할 것 같았다.

언제라도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자세를 잡은 일행은, 이윽고 리아엘라를 선두로 벽 안으로 들어갔다. 통과되는 신체가 자못 신기하게 느껴졌다.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벽 너머를 통과한 일행이 본 것은···.


“으, 으아.”

“사, 살려.”


몬스터가 아니었다.

드릴 보어가 아니었다.


“화, 황녀 전하. 이건.”


나타벨의 말에 엘리나가 정신을 차렸다. 지금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 죽어갈 정도로 수척해진 수인이었다.

그마저 행동의 자유를 억압당했다. 몸이 칭칭 감긴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상태로 그저 죽어가고 있었다.


왜 그런 묘한 기척이 느껴지나 했더니만.

이제야 그 기척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런 것이 아닌, 그만큼 대상의 상태가 심각해서였다.


“아메르! 이들의 치료를 부탁합니다! 되도록 빨리요!”

“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인지한 엘리나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현재 일행 내 유일한 사제인 아메르에게 한 말.


굳이 자신의 말이 오가지 않더라도 치료를 시작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가지고 있는 자원이란 모든 자원을 내려놓고서 주문을 외고 있었다. 엘리나는 빠르게 수인들을 묶은 줄을 베어나갔다.


‘미친놈들! 미친놈들!’


수인 노예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건 알았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인을 얼마나 험하게 대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알 리가 없었다.

이리도 꽁꽁 감춰두었는데. 이리도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데.


엘리나는 몰랐겠지만, 설진이 시간을 끌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요한의 대비책은 완벽했다. 단지 내부에서부터 분열이 일어났기에 지체되어, 그 계획에 금이 간 것뿐.


‘이게 진짜야···?’


한편 공격이 날아드나 싶어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리아엘라도, 적잖게 놀랐는지 방패를 밑으로 내려놓았다.

싸움이고 뭐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 죽어갈 듯한 수인을 살리는 게 먼저였다. 리아엘라는 포박이 풀린 수인에게 달려갔다.


‘진짜 교회가 이런 짓을···.’


사실 어느 정도는 믿지 않았었다.

교회가 이런 짓을 하다니. 엘리나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엘리나의 의심은 지극히 당연했으며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리도 끔찍한 것이었다.


찰랑-.


리아엘라는 주머니를 뒤져 포션을 꺼내 들었다.

기사에게 있어 여분의 목숨이라 해도 될 정도로 소중한 회복 포션.

망설임 없이 포션의 마개를 땄다. 원래는 마셔야 그 효과가 온전히 들어가지만, 지금 수인들은 무언가를 마시기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그래서 부었다.

한 명이 아닌 여럿에게.


붓고, 붓고, 붓고 또 붓고···.

살려야 했다. 수인이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걸 아는 이상, 일단 살려야 했다.


‘살려야 해. 그래야 황실이 이득을 본다.’


현재 황실의 적대 세력인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들의 증언이 필요했다.

누가 그랬고 누가 납치했고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증언만 해 준다면, 흐름을 이쪽으로 넘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아엘라는 포션을 한 병 더 꺼내들었다.


촤아악-.


살린다는 생각을 하고서, 다시 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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