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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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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4,721

작성
22.05.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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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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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48화

DUMMY

“베르. 칼을 잠시 빌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네, 교황님. 여기 있습니다.”


요한의 말에 베르가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그대로 역수로 잡은 채 요한에게 건넸다.


“그럼 잠시···.”


요한은 끝말을 흘리며 오른손에 검을 감았다.

오른손에 감긴 검을 들어올리며, 검날 부분을 제자신에게 향했다.


마치 자해라도 할 것 같은 모양새다. 대체 뭘 하려는지 궁금해진 베르의 시선이 요한에게 향했다.

축축한 바닥. 끌어오르는 습기가 던전 속 동굴임을 알리는 듯했다. 천장에 다닥다닥 붙은 종유석에서 물 한 방울이 떨어질 즈음,


처억!


“교황님!”


베르가 손을 뻗었다.

다름 아닌 요한에게.


얼굴은 어찌나 질려 있는지, 놀란 모양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베르의 칼을 받아 간 요한은 자신의 팔을 잘랐으니까.


물론 인간이 스스로 팔을 자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벤다’기보단 ‘뭉갠다’가 더 옳은 표현일 것이고,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팔을 뭉개지 못한다. 그게 정상이었다.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 분명 그게 정상일 터인데.

베르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숨을 삼켰다.


“괘, 괜찮으십니까?”


왜냐면 요한은 자기 팔을 베었으니.

뭉개다 못해 걸레짝으로 만들었으니.


‘거, 검의 예기가.’


요한이 멈추지 않고 강행한 것도 있겠지만, 지분은 검에게 있었다.

베르의 검은 쉽게 구하지 못하는 명검. 그 예기는 검에 닿은 모든 것들을 베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그 날카로움과 요한의 행동 의지가 합쳐지자, 기어코 사달이 났다.


터업-.


분해된 팔이 떨어졌다. 베르는 지금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붙어있었던 요한의 팔이 이분돼 낙하했다.


떨어진 피는 회빛깔의 동굴 바닥을 흠뻑 적시는 듯했다. 이윽고 땅으로 낙하한 붉은 피가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하더니만,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정작 요한은 담담하다.

이래도 된다는 듯. 상관없다는 듯 시종일관 신중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


그러다 옆에서 걱정하는 듯한 사제들을 바라보더니,


“아. 괜찮습니다.”


단지 그 한 마디를 건넸다.

잘린 팔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상황이요, 대답이었다.


“어차피···.”


머잖아 요한이 다른 한쪽 손을 뻗었다.

뻗으며 말했다. 그러자 흘러내린 줄로만 알았던 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륵- 스르르르-.


피는 곧 밀집되어 모여들었다.

주워담을 수 없는 액체를 주워담듯, 그리하여 양동이에 액체가 담기듯.

꼭 물을 쏟은 영상을 역재생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 역재생이 점차 움직인다.

정확히 말하면 모인 피가 이동했다.


앞으로, 위로.

잘린 요한의 팔에 피가 들어갔다. 비단 피뿐만이 아니다. 잘린 근육도, 찢긴 혈관도 모두 상처가 수복되듯 팔 안에 들어가 제기능을 시작했다.

꼭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 듯한 광경.


“재생될 것 같았습니다.”


요한의 말을 마지막으로, 완성된 팔이 움직였다.

다름 아닌 요한의 어깨로.

분해가 가능한 로봇이라도 되는 건지, 미약한 미소를 띠며 웃은 요한이 팔을 몇 번 문질렀다. 마치 팔을 잘랐던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한편 팔이 잘리고 붙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베르는,


“걱정했습니다! 교황님.”

“걱정을 끼쳐 죄송하군요. 이젠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뻐애햐 할 날입니다. 저희가 그토록 바라던 염원을 향해, 한 발자국 나아갔으니까요.”


팔이 잘리고 다시 붙는 과정에서, 한 치의 신성함도 느끼지 못했다.

교황의 모습이라기보단 괴물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베르는 방금의 일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의 일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아니, 아니다. 교황님은 교황님일 터. 내가 무슨 생각을···.’


도리도리-.


분명 그렇게 느꼈음에도, 베르는 고개를 저었다.

교황은 영원한 교황. 바뀐 것은 고작 그것뿐인데, 어찌하여 성직자가 괴물이 되겠느냐마는-.


베르는 부정하듯 눈을 감았다.


“이것 참, 오엘에겐 고마워해야겠군요.”

“네?”

“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던가요?”


돌연 들려오는 요한의 말에 베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엘? 오엘이 누구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알지 못할 사람에게 감사하는 요한의 모습을 본 베르는 의문이 들었다.


“저, 송구합니다만 교황님.”

“네. 베르. 말씀하십시오.”

“오엘이란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베르의 질문에 요한은 턱을 괬다.

오엘의 존재를 숨기려는 것보단,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듯했다.


“으음. 뭐라 말씀드려야 할까요.”


이윽고 떠올랐는지 제 팔을 가리킨다.

방금 떨어졌다가 다시 붙은 팔이었다.


“쉽게 말씀드리면 그겁니다. 제 몸을 불사의 육체로 만들 수 있게 해준 사람.”


그 말인즉.


“저에게 염원석을 준 사람이죠.”


불사의 염원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 염원석을, 오엘이 건넸다는 말이 된다.


“···.”


요한의 대답에 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나비의 최종 보스, 어릴 적 엘리나의 목숨을 노린 흑마법사가 오엘임을 모르는 베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제 설명이 부족했나 보군요. 차차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자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말이죠.”

“아, 알겠습니다.”

“그럼 슬슬 던전을 뜨도록 할까요. 은신처를 만들어온 지도 꽤 되었으니, 조만간 이곳은 폐기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추후 다시 시작하지요.”


요한은 그리 말하며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러분이 전부 저처럼 될 수 있도록, 간절하게 바라겠습니다.”


* * *


“거짓말.”

“네, 거짓말이죠. 하지만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어서요.”


방음 마법이 달린 카페 안.

엘리나와 설진을 포함한 다섯은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설진은 몬스터 건의 진행도를 알고, 44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엘리나는 일의 진척도를 알리고 향후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설진 님의 말대로 지금은 싸워야 할 때니까요.”


엘리나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런 뉘앙스로 말하긴 했었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라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교회를 틀어막아야 한다고.


그 말뜻이 잘 전해진 건지 엘리나는 작업을 시작했다.

흘린 몬스터의 책임을 교회로 돌릴 수 있게끔 날조를 준비했다.


“그렇죠. 확실히 아무 언질 없이 몬스터를 흘리기보다는, 명문을 만들어 두는 편이 유리하긴 하죠. 보험을 들어두셨군요.”


엘리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의 선택은 꽤 탁월했다.

마을에 들인 몬스터를 교회의 병력들이 막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될 터이니.


물론 황실과 비견되는 세력인 만큼 한 번에 곤두박질치진 않겠지만, 일단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꽤나 소정의 성과를 올린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금이 간 신뢰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니.

심지어 엘리나는 황녀였다. 현재로선 황국의 최고 권력자인 자리.


권력 싸움이라면 이쪽도 밀리지 않는다.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대강 파악한 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리나인가.’


한편으로는 역시 그녀다 싶었다.

처음에 보여주었던 친절한 엘리나는 이제 없었다. 남은 건 교회를 척결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황녀만이 있을 뿐.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이걸로는 부족했다.

지금 상황을 정의하자면 이랬다.


교회의 입지와 권력을 떨어뜨리려 하는 건 옳은 판단이고 좋은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요한을 무너뜨리기에는, 교회라는 세력이 너무나 거대했다.

지금 엘리나가 한 행동은 거대한 산에 흠집을 낸 것에 불과했다.


‘더 필요해.’


더 많은 수단을 사용해 교회를 추락시켜야 했다.

더 많은 방법을 사용해 교회를 무너뜨려야 했다.


심지어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아무리 교회를 지리멸렬시켜도, 그들에게는 요한이 있었다. 곧 불사가 되어 황국을 찢어발길 요한이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뤘을지도.’


어쩌면 이미 불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진은 엘리나를 앞에 두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 그것을 이끌기 위해 머리를 굴려 보았다.


떠오르는 게 몇 개 정도는 있었지만, 전부 유의미한 성과를 내긴 힘든 방법들.

숨을 뱉은 설진은 침음을 흘렸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턱도 없겠지요.”


그때, 엘리나의 입이 열렸다.

그녀 또한 지금 상황을 대강 아는 모양.


“유리잔 하나로 바닷물을 뜬 격이라 해야 할까요. 몬스터를 흘려 마을에 피해를 주고, 그 잘못을 교회로 돌리는 건 좋은 방법이지만 부족하지요.”

“···알고 있었군요.”

“교회에 대해선 나름대로 조사를 했으니까요. 아니,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대강 예측이 갈 수밖에 없답니다.”


엘리나는 설핏 웃으며 말했다.

부족하다고 하는 그녀의 모습에 곤란함은 없어 보였다. 마치 생각해 낸 계책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교회의 입지를 추락시키는 건 제가 하지요. 교회는 우를 범했거든요. 아주, 거대하다 못해 황국이 흔들릴 만큼 큰 잘못을요.”

“···?”

“매수- 라고 하면 알아들으시겠나요.”


엘리나의 말에 설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매수. 뭔지 알 것 같았다. 에피소드 초기 모험가 길드에서 들은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교회가 황실의 팔라딘과 성기사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말.

그것만이 끝이 아니다.

설진은 심연에서 황실의 병사들이 교회로 옮겨가는 걸 봤다. 생각하건대, 엘리나는 이걸 말미암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갈 셈이었다.


‘확실히··· 나쁜 방법은 아니야. 하지만-.’


몬스터 침공 탓을 교회로 돌리는 것에 이어, 황실 병사 매수의 건을 거들먹거리며 교회를 공격한다.

이거라면 확실히- 교회의 지지율을 감퇴시킬 수 있을 터.


“짐작하신 것 같네요.”


설진의 생각을 긍정하듯 엘리나가 덧붙였다.

뭔가 싶어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채린과 찬우에게 설명한 설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황녀님. 당신이 그쪽 싸움에 발을 들이게 된다면···.”


진흙탕 싸움.

나쁜 계획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엘리나의 부재.

교회의 입지 추락을 위해 엘리나가 정치 싸움에 껴들면서, 실전에 가용할 수 있는 전력. 즉, 황실의 전투 전력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선에 참여하지 못하면 무력적으로 황실은 약세를 점할 수밖에 없지요.”

“···.”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황실 측에 합류에 전력을 보강해주셨으면 합니다. 예상컨대 상대는 매수당한 성기사와 팔라딘. 이 둘이 될 겁니다.”


엘리나는 정치 싸움을.

그리고 설진 일행은 전투에 참전을.


‘이게 낫겠네.’


설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나가 전선에서 물러난다는 건 치명적이었지만, 정치 쪽 보강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게다가 아예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설진 일행이 전선에 합류해 시간을 벌어주면 된다.


‘단절석도 있으니까.’


비록 50% 확률이긴 하지만, 요한을 봉인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외려 설진 일행이 전선에 나서지 않는다면 요한을 상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터.


“알겠습니다. 받아들이죠.”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설진 님. 그리고 일행 여러분들.”


설진은 엘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 수락의 의사에 고개를 한 번 숙인 엘리나의 눈동자엔, 굳건하다 못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바야흐로 서막이 흐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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