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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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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75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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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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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2쪽

노인 (1)

DUMMY


임강의 선언에 짧으면서 긴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조 장주가 발작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따라 웃지 않았다. 웃음을 그친 조 장주가 정색하며 쏘아붙였다.


“우리 모두를 네놈 혼자서 막아보겠다는 거냐? 네가 무슨 힘이 있다고?”


“한번 지켜 보시오”


임강이 짧게 답한 뒤 입을 꾹 다물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적잖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주변인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씨, 홀로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전혀 굽히지 않는 기개··· 이런 것들은 절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어설프게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겐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긴 하지만, 임강이 보여주는 진실됨은 뭇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있어보였다.


단, 그를 상대하는 조가장 녀석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그가 자신을 철저히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조 장주의 명을 받고 나선 무인이 얼굴을 울그락불그락거리며 달려들었다.


“이 건방진 애송이가!”


그는 우락부락한 외모에 걸맞지 않게 몸이 날래고 움직임이 날카로웠다. 붕붕거리며 두 팔을 휘젓는가 싶더니, 훌쩍 몸을 날려 임강을 덮쳤다. 외모만으로는 소녀같이 갸냘픈 임강이 그에게 곧 깔려버릴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퍽퍽퍽!!!


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뒤쪽으로 쭉 밀려나더니 꽈당 엉덩방아를 찍었다.


“이런!”


당황한 표정을 지은 무인이 요란하게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애초에 쓰러지는 것조차 그의 계획이었던 것인마냥 화려하고 멋진 회전 동작이었다.


“하아아아압!!!”


허리춤에서 곤봉을 꺼내든 무인이 괴성을 지르며 재차 달려들었다. 하지만 무기를 들었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합수가 늘어났을 뿐, 잠시 뒤 임강의 화끈한 주먹에 강타당한 그가 다시 한번 허공을 날았다.


한참을 날아간 무인이 땅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하필 조 장주의 말 발치에서 멈췄다. 흰 말이 히힝 거리며 몸을 비트는 통에 조 장주는 이리저리 고삐를 당겨 말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표정이 하얗게 질린 무인이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조 장주의 눈치를 살피던 그가 억지로 다시 달려들 자세를 취하려 했지만, 결국 입에서 핏줄기를 보이며 다시 주저앉았다.


‘내상이다!’


순식간에 결판나버린 승부에 사람들이 입을 헤 벌리고 있을 때, 조가장의 진영에서 다른 이가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시커먼 얼굴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무인이었다. 몸을 낮춘 채 쇄도하던 그가 임강에게 다다른 순간, 근육을 응축시키는가 싶더니 번쩍이며 발검(拔劍)했다.


갑작스레 상대가 바뀌었음에도 임강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주먹을 올린 채 상대를 지켜보던 임강이 고개와 허리를 비틀며 검을 피해냈다. 상대의 검은 임강이 피해낼 때마다 한차례씩 속도를 더해갔다. 곧 은빛 검광이 사방을 뒤덮고, 아무런 무기없이 그를 피해내기만 하는 임강의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보였다.


대식이 숨을 헙 들이마시며 내 손목을 당겼다.


‘도와줘야하지 않습니까?’


‘쉿!’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초식을 거듭할수록 공격이 빨라졌다. 붕붕거리던 소리가 점점 더 날카롭고 찢어지는 소리로 변화했다. 내내 검을 피해내며 물러서던 임강의 발이 어느새 그가 땅에 그어놓았던 선에 걸쳐졌다.


내내 피하기만 하던 임강이 변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가 갑작스레 상대방의 간격 안으로 몸을 집어넣으며 주먹으로 하복부를 노렸다. 쭉 째진 상대방의 눈이 번쩍 빛났다. 어느새 한바퀴 돌아온 쾌검이 당장에라도 그의 몸을 두동강날 기세로 뚝 떨어졌다.


검이 주먹보다 빠르다. 섣불리 반격하려다 외통수에 빠진 임강은 마치 검을 막아내려는 것 마냥 왼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


지켜보던 대식이 내 옆구리를 꽉 잡았다. 깜짝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 짧게나마 경험한 임강의 무공이라면 절대 저 정도에 당할 수준이 아니지 않았던가. 저렇게 대책없이 검을 맨몸으로 막으려 할 줄이야?


그러나···


쩡!!!!


검과 팔이 부딪혔는데 쇠끼리 충돌하는 소리가 났다. 임강을 두동강낼 기세로 전력을 다해 검을 내리찍었던 무인의 표정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황급히 검을 회수하려 했지만, 그 찰나의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임강의 주먹이 조가장 무인의 명치를 파고 들었다.


퍼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두 무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사방에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무인이 비틀거리며 뒤로 몇발자국 걷더니 풀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임강은 내뻗었던 팔과 다리를 천천히 접으며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그가 바닥에 그어놓았던 경계의 안쪽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숨죽이고 그들을 지켜보던 무인들 사이에서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당연하게도 오금상단의 무인들이었다. 그와 반면, 정작 압도적인 숫자를 바탕으로 공터를 포위하고 있는 조가장 무인들의 분위기는 찬물을 맞은 듯 했다.


나는 임강에게 또 한번 크게 감탄했다.


‘정말 치사하구나!’


팔뚝의 옷이 찢어져 나풀거리는 사이로 딱 보기에도 단단해보이는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두 주먹만으로 검을 상대하면서도 어째 태연하다 했더니, 저런 비장의 한 수를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다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나로서도 어느 정도 배울만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마음 속에 꼭 담아두었다.


조 장주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임풍이 저 녀석을 처음 양자랍시고 소개할 때만 하더라도 한참 부족한 아이가 아니었나. 피도 천박하고 자질도 보잘 것 없었지”


조 장주의 매서운 눈길이 그의 아들에게로 향했다. 조승지는 얼마나 놀랐는지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고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위 아래로 숭숭 빠져버린 이빨 덕에 그의 얼굴은 이전보다는 꽤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너는 온갖 비싼 영약을 쳐먹고도 쓸데없는 잡기에 시간을 낭비하고 수련을 게을리하니 저런 녀석에게도 뒤쳐지는 것이다. 덕분에 정혼자의 신분이면서도 백리가의 신임도 온전히 받지 못했지. 내 말이 틀리냐?”


불똥이 자신에게로 튀자 조승지가 어버버 거리며 대꾸했다.


“하지만 아버지···”


“제발 좀 닥치고 있어라”


조 장주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까닥까닥하자, 조승지가 다시 풀이 죽은 채 뒤로 물러났다. 비록 나에게 먼저 시비를 걸긴 했지만, 이빨도 빠지고 아버지에게까지 저런 취급을 받는 것을 보자 한편으로는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임강은 여전히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조가장 무리들을 향해 주먹을 겨누고 있었다. 못마땅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조 장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죽여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검을 빼든 수 명의 무인들이 이번엔 동시에 임강을 향해 치달았다. 오금상단의 무인들이 임강을 도우려 이동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머지 조가장의 무인들도 검 끝을 세우고 간격을 좁혀왔다.


임강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찌 홀로 저 많은 무인들을 상대해낼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사면초가, 첩첩산중, 위기일발···


대식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탁탁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그래. 나도 염치가 있다. 비록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을 망정, 선의를 가지고 나를 도와주려 했던 이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조가장 녀석들에게서 영원히 도망쳐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 참에 조승지와 조가장주 녀석과도 깔끔히 정리를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번쩍 몸을 날려 주인공처럼 멋지게 등장하려는 그 때···


“뭣들 하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공터에 울려 퍼졌다. 그다지 큰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귀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그 생생함이 모두에게 가벼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사람들의 시선이 공터와 맞닿은 숲의 경계로 향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곳에는 꼽추마냥 등이 굽고 허옇게 긴 수염이 돋아난 노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새하얀 얼굴에 단추구멍마냥 작은 눈, 흑요석같이 까만 눈동자가 불길하게 반짝거렸다.


뒷짐을 진 노인의 등 뒤로 언뜻 붉은색 단창이 보였는데, 중원에 떨어진 뒤로 여태껏 그렇게 요사한 기운을 내뿜는 물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묘한 기분이 들어 팔뚝을 내려다보니 빽빽하게 닭살이 돋아 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상종하지 말아야 할 노인네다’


마음은 당장 훨훨 도망가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노인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가 조가장 무리 사이를 천천히 거닐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썰물처럼 무인들이 갈라졌다.


“이쯤이면 백리세가를 깔끔히 정리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아닌가. 왜 아직도 이곳에 있지?”


조 장주가 조용히 그의 질문에 답했다.


“잠시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 처리하고 갈 생각이었소”


“정신머리가 없는 녀석들이로군. 내가 언제 너희 멋대로 움직여도 좋다고 했던가? 그간 우리가 준비한 것을 또 한번 망칠 셈이냐?”


“이들만 정리하고 가면 됩니다. 얼마 걸리지 않는 일이오”


“백리세가를 허투루 보는 것이냐? 아무리 대부분의 병력이 떠나있다고 하더라도 대비할 시간을 주어서는 안될 터인데, 이곳에서 소꿉장난이나 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멍청한 새끼들 같으니···”


그의 모욕이 이어지자 조 장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임강 상대로는 줄곧 기세등등하던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나왔다.


“백리세가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있소. 그 일은 깔끔하게 마무리 지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도대체 처리해야 할 일이 무엇이란 말이냐? 설마 그 모지리 아들놈의 복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


조 장주는 대답 없이 침묵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은근히 조승지에게로 쏠리자, 그를 발견한 노인이 낄낄 기괴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소리는···!’


그의 웃음소리를 듣자 문득 적기방 무인이 몰살당했던 밤, 그 먼 거리를 건너뛰어 들리던 웃음소리가 생각났다. 어쩌면 이 노인이 그 참극을 일으킨 당사자일지도 모른다.


노인의 웃음이 멈추자 조 장주가 마른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우리도 엄연히 그대들의 협력자입니다.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소”


“협력자라··· 끌끌. 지랄하고 자빠졌군. 너희들이 제대로 역할을 해주었으면 우리가 대우를 해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한번 실패한 놈들이야. 고작 저 덜떨어진 아들놈 때문에 하루이틀을 못버텨서 대계를 그르쳤으니, 우리가 어찌 너희 따위를 협력자 대우를 해주랴?”


끝없이 모욕을 당한 조 장주의 턱수염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이 멀리서도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조승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몸을 돌려 다시 숲 속으로 향했다.


조승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기 죽은 그의 아들, 숨 죽인 채 자신을 바라보는 조가장 무인들을 의식한 조호연 장주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식의 대접이라면 우리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노인이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뒤돌아선 노인이 씨익 웃었다.

그가 꼽추같이 구부려져있던 등을 쭉 피자 갑자기 키가 석자는 더 커보이는 듯 했다.


몸을 웅크린 채 그를 지켜보던 나의 몸에 촤르륵 소름이 돋아났다. 당장이라도 이 심상치 않은 노인네가 무슨 끔찍한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적기방이 몰살되었던 것과 같은···


“그래. 마침 나 또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나의 고막이 먹먹해지는 느낌과 함께 세상이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피해··· 피해라!


나의 외침이 목소리가 되어 나오기도 전에, 노인의 붉은 단창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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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4 28 13쪽
» 노인 (1) +1 24.05.30 1,318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9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8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1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8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30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1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2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3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1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8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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