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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36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5 01:55
조회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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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
11쪽

조가장 (1)

DUMMY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식 녀석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참 도련님도 답답합니다. 아가씨께서 그렇게 신호를 보냈는데 그것을 그렇게 외면하십니까?”


“뭔 소리야? 언제 무슨 신호를 보냈다는 거야?”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면 왜 그렇게 저희에게 이런 저런 자세한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마지막에 그 기대감에 찬 눈빛 못보셨습니까? 거기에 대고 혈변이니 뭐니···혈변··· 혈변··· 어휴!”


가슴을 두드리던 대식이 급기야 고개를 푹 떨궜다. 녀석의 말을 듣다보니 좀 농담이 저급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어쩌겠는가.


“정말 필요했으면 그녀가 직접 얘기했겠지. 그리고 천하의 백리세가인데 고작 나같은 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떠나기 전 입술을 굳게 다문 그녀의 모습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 이제 갓 소녀 티를 벗었을 뿐, 성숙하다고 말하기에는 이른 나이의 백리연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혜롭고 신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동에 확신이 있었고, 가문에 대한 깊은 책임감까지 갖추고 있었다.


“아무튼 참 대단한 여자야”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던 중년상인이 내 말을 정정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지요”


아차. 무언가 말을 실수한 것 같아 뜨끔했다. 중년상인이 빙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저 여인이라는 표현은 아가씨를 묘사하기에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백리세가의 미래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요. 비단 세가 사람들뿐 아니라, 저희같이 오랜 기간 백리세가와 가까이 지내온 모든 이들에게 이미 그녀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대는 백리세가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아쉽게도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상단은 백리세가와 오랜 기간동안 밀접한 교류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자연히 아가씨 또한 아주 어린 소녀시절부터 보아왔지요”


백리연이 그를 숙부라 불렀기에 나는 당연히 그 또한 백리세가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저 협력관계인 상인이었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자부심으로 어깨를 쫙 피고 있는 중년상인을 흘깃 노려보았다. 비록 백리연의 부탁으로 이루어진 행동이라고 하나, 그의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간 당사자인 나로서는 썩 기분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전에는 아주 대단한 연기력이었소. 상인이 연기도 잘하다니 아주 훌륭한 일이오”


비꼬듯 이야기했지만 중년상인은 전혀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 껄껄 웃으며 답했다.


“상인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연기자이지요. 거래라는 것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기분이 좋든 싫든 티를 내서는 안됩니다. 모욕을 당하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하 웃어넘기고, 횡재를 하더라도 표정을 관리해야 하는 법이지요”


그의 말로부터 무언가 얻을 것이 있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보니 이 자는 이 거대한 상단 행렬을 이끄는 책임자가 아니겠는가. 이제 갓 장사의 꿈을 펼치려고 하는 나와는 하늘과 땅같은 격차가 있는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셈이었다.


“대인께서 이 길에 뛰어드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주로 어떤 품목을 다루십니까?”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질문하자 그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


“어휴,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아가씨의 친구분이라면 저희에게는 귀한 손님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껏 예를 차리던 순간, 갑작스레 마차 뒤쪽 수레에서 읍읍-!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그 익숙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마치···”


아. 곧 생각이 났다.

며칠 전 강제로 팽도혁의 입을 틀어막고 오던 때 나던 소리와 똑같은 소리였다. 이 중년상인도 누군가를 납치라도 하고 있는걸까?


슬쩍 중년상인의 눈치를 살피니, 잠깐 사이 그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 채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구나! 아무리 그래도 벌써 깨어나다니···”


중년상인이 안절부절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뒤쪽 수레에서는 지속적으로 신음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억지로 이 상단 행렬에 억류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누구를 납치라도 하신거요?”


“납치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상인이 얼토당토 않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고는 황급히 뒤쪽 수레로 뛰어갔다. 대식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도련님, 아무래도 이들이 다루는 품목이 사람인가 봅니다. 이 마차에 계속 타고 있어도 되는걸까요?”


“그러게 말이야. 백리연 소저가 왠 인신매매단에게 우리를 맡긴 모양이야. 일단은 기다려보자. 수 틀리면 바로 도망칠테니 마음의 준비를 해놓거라”


“강호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곳 같습니다···”


그 사이 뒤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거칠게 몸을 뒤트는 소리, 쟁자수들과 무인들이 다급히 속삭이는 소리, 꾸짖는 소리, 달래는 소리 등 이런 저런 것들이 뒤섞여서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할 수도 없는 시간이 지난 뒤, 잠깐 사이에 온통 땀범벅이 된 중년상인이 가쁜 숨을 내쉬며 돌아왔다.


“헉..헉···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시오”


그가 우리가 탄 마차에 몸을 싣고 나자 상단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잠깐 사이에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중년상인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허덕이던 그가 우리의 경계어린 눈빛을 보고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걱정마십시오. 모양새는 좀 이상할 수 있겠지만, 납치는 아닙니다”


“음. 우리가 적기방의 팽씨를 강제로 데려올 때도 비슷한 말을 하긴 했었소. 나중에는 결국 협조하긴 했지만, 처음엔 그다지 유쾌해보이지 않았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하자 중년상인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정말 아닙니다. 저희 상단의 소단주님을 저희가 왜 스스로 납치하겠습니까?”


“뒤에 묶여있는 자가 당신네 소단주라고?”


“네. 저희 오금상단의 소단주이신 임강님이시지요”


임강? 임강···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름이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억지로 자기 대장의 아들을 억류해가는 사정이라는 것이 무엇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중년상인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단주님과 소단주님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좀처럼 서로가 의견을 굽히지 않고 다투다가, 결국 단주께서 아드님의 혈도를 짚고 꽁꽁 묶어 수레에 싣어버리셨죠. 본가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 풀어주지말라는 엄명과 함께 말입니다”


“...평소에 부자 간에 문제가 있소?”


“아닙니다. 본디 그 누구보다 화목한 부자지간입니다만, 이번만큼은 도련님께서 계속 고집을 부리시는 통에···”


아무리 아들이 말을 안들었다 하더라도 강제로 혈도를 짚고 묶어버리다니.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무림인이면 저렇게 무력으로 자녀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사실 서로가 서로를 끔찍하게 아끼다보니 벌어진 일입니다. 아침 일찍 상단주께서 백리율 가주님과 함께 출정하시기 전, 아드님에게 저희 상단 행렬을 이끌고 본가로 돌아가실 것을 지시하셨죠. 그만큼 위험한 일이니 혹여라도 잘못될 경우를 생각하신 것인데··· 소단주께서는 반대로 아버지를 절대 혼자 보내고 싶어하지 않으셨죠”


“효자로군, 효자야!”


듣고보니 부자간의 아름다운 이야기 아닌가. 비록 그 결말이 납치극같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말이다. 중년상인이 아직까지 식지않은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소단주님의 무공이 그간 몰라보게 성장했나 봅니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혈도가 풀려버렸습니다. 게다가 아가씨의 부탁을 듣느라 시간을 지체했으니··· 앞으로 갈 길이 먼데 큰일이군요”


“그런 사정이 있는데 왜 백리연 소저는 굳이 그대에게 우리를 맡긴거요?”


“아가씨께서는 이 일을 전혀 모르시죠.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도대체 왜? 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괜시리 또 다른 집안의 복잡한 일에 끼어들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마차랑 수레도 처분했으니 남은 것은 우리 둘의 몸뚱아리 뿐이라 조가장이 쫓아와봤자 딱히 두려울 게 없소. 백리연 소저나 그대들의 마음은 여기까지 받는 것으로 하고,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이다”


벌떡 몸을 일으키자 중년상인이 황급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소협을 이렇게 보내게되면 저희가 어찌 다시 백리연 아가씨의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소단주님은 다시 잘 진정시켜놓았으니, 마차 안에만 잘 계시면 절대 신경쓰실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이 마차에 타고 있으면 조가장의 추격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맞소?”


“그럼요. 조가장도 본디 저희와 친분이 꽤나 있는데다, 이 길도 저희 본가로 돌아가는 길인지라 의심할 생각은 못할 겁니다. 백리연 아가씨께서 왜 저희에게 이 일을 맡기셨겠습니까?”


“그러면 바깥에 숨어있는 저 무인들은 누구요?”


내 질문에 중년상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인들이 숨어있다구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가 질문을 하자마자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추어섰다. 기척을 숨기고 있던 무인들이 서서히 마차를 둘러싸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아가씨가 돌아오셨나?”


인상을 찌푸린 중년상인이 마차의 가림막을 살짝 걷어 밖을 내다보았다. 상단 행렬을 막아선 이가 누구인지를 확인한 그가 우리를 돌아보며 우물우물거렸다.


“...조가장 무인들이로군요”


그는 당황했고, 우리는 황당했다.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직히 으르렁거렸다.


“아무 일 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대 입으로. 바로 조금 전에 말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그렇지. 고향을 떠난 뒤로는 단 한번도 일이 쉽게 흘러간 적이 없다. 대식을 옆구리에 끼고 벌떡 몸을 일으켰지만 중년상인이 또 한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죠. 아마 그냥 확인차 멈춰 세웠을 겁니다. 저희 상단의 위신과 인맥이 있는데, 그들이 함부로 마차를 살펴보지는 못합니다”


“글쎄. 그대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운세를 뒤돌아 보았을 때, 그들은 무조건 이 마차를 뒤질 것 같소. 나는 또 낭패한 모습으로 달아나게 되겠지”


대식이 고개를 위 아래로 크게 끄덕였다. 녀석은 이미 옆구리에 손을 촥 붙인 채, 언제든지 나에게 들려 날아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중년상인이 비장한 표정으로 마차 문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조가장 사람들이 마냥 막되먹은 이들은 아니니, 잘 구슬려 돌려보낼 수 있을 겁니다. 어찌됐든 성급하게 마차에서 튀어나가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가 벌컥 마차 문을 열고 나갔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지만, 당사자인 내 마음 속에는 역시 불안감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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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 24.06.02 1,318 27 13쪽
27 노인 (3) +1 24.06.01 1,307 26 13쪽
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 조가장 (1) +1 24.05.25 1,457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8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5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0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3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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