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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55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15 06:36
조회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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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글자
12쪽

적기방 (1)

DUMMY


“도대체 어디서 활을 쏜거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사방을 흝던 백리담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은 키작은 풀들만 가득한 드넓은 평야였다. 간혹 가다 성인만한 크기의 나무와 바위들만이 간간히 있긴 했으나, 사람이 몸을 숨기고 활을 쏠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어디서도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아마도 멀리서 화살만 쏘고 재빨리 도망친 모양이에요”


서슬퍼런 기세로 주변을 살피던 백리연이 천천히 긴장을 풀며 말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더이상 위협이 느껴지지 않자, 백리담의 분노가 팽도혁에게로 향했다.


꽁꽁 묶인 채 수레를 뒹굴고 있던 팽도혁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 그가 으르렁거렸다.


“적기방, 이 버러지같은 놈들. 이딴 암습을 하다니!”


“흥, 무식한 놈이 운 하나는 좋구나. 다음 번에도 네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던 팽도혁은 마치 죽여달라는 듯이 백리담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화가 치밀어오른 백리담이 그의 턱 밑에 검을 들이밀었지만 백리연이 재빨리 그를 만류했다.


“적기방의 소행이 아니에요”


당장이라도 팽도혁의 숨통을 끊어버릴 듯한 기세였던 백리담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방주는 급사하고, 이제 그들이 기댈 곳이라고는 부방주인 팽도혁 뿐이에요. 그의 목숨이 우리 손 끝에 달려있는데 어떻게 암습할 생각을 하겠어요? 이 녀석의 목숨을 담보로 움직일만큼 결단력과 실력있는 사람은 적기방에 남은 이들 중에는 없죠”


남의 조직 사정까지 훤하게 꿰뚫어보는 듯한 그녀의 말에 백리담도, 팽도혁도 할 말을 잊었다.


“맞습니다. 화살을 쏜 것이 그들이라면 저렇게 태연하게 우리를 따라오고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을 향해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지평선에 닿을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까만 무복에 등에 붉은색 세모 기를 꽂은 한무리 무인들이 우리가 온 길을 그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객잔에서 백리연에게 쫓겨났던 적기방 무인들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동안 그쪽을 관찰하던 백리연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팽도혁을 건사하려면 코빼기도 보이지 말라고 했더니··· 저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군요. 그나저나 이 소협께서는 저게 그냥 보인단 말인가요?”


적기방 무인들이 우리 수레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말에 팽도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수하들이 무사하다는 것에 대한 안도, 그리고 고마움과 걱정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녀석들···!”


자신을 암습한 것이 적기방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백리담은 팽도혁을 다시 수레에 내팽개치며 중얼거렸다.


“사파 무리 주제에 눈물나는 충성심이로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화살들을 주워 자세히 살피던 백리연이 말했다.


“이렇게 짧은 화살은 본 적이 없어요. 흔히 쓰이는 화살이 아니군요”


그녀의 말마따나 백리담을 노린 것은 흔히 알고있던 화살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무엇보다도 그 길이가 보통 화살의 삼분지 일에도 못 미칠만큼 짧았는데, 그런 조그마한 화살이 그렇게 맹렬한 힘을 지닌 채 날아왔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화살보다는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여유를 되찾은 백리담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 쓰라리지··· 연아. 이 쪽을 좀 봐다오. 화살이 스친 것이냐?”


그제서야 그의 한쪽 머리카락이 원형탈모가 온 것 마냥 휑하니 빠져버린 것을 알아차린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하자, 나는 며칠 굶은 강아지마냥 애처로운 눈빛으로 간절한 수신호를 보냈다. 비록 그를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그렇지 않아도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백리담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그녀의 입이 씰룩거리더니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나를 향해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여보인 그녀가 태연한 기색으로 백리담의 등을 두드렸다.


“살짝 스친 것 같은데 별 상처는 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라버니. 어서 들어가서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빨리 몸을 회복해야죠”


“이 와중에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백리담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느라 피곤했는지 순순히 다시 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선 그의 옆머리를 뒤늦게 발견한 팽도혁이 눈을 둥그렇게 뜨며 희열에 찬 미소를 지었다.


“으핫! 이 녀석 꼴을 봐라.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퍽!!!


백리연에게 얻어맞고 턱이 돌아간 팽도혁이 꼬르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이미 눈이 반쯤 감긴 백리담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말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쓸데없는 말을 나불댈 뻔한 팽도혁을 제압한 건 고마운 일이지만,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웃는 백리연을 보니 왠지 모르게 등골이 서늘했다···


백리담을 마차에 밀어넣은 그녀의 옷깃을 잡아끌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라버니분께서는··· 괜찮으시겠지요?”


그녀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


“신경 안 쓰셔도 되요. 머리카락 따위야 언젠가는 다시 나는 것 아닌가요?”


“원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소협이 목숨을 살려준 셈인데 고작 그 정도 일에 화를 내겠어요?”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제가 관찰한 오라버니분의 성격에 따르면···”


“...성격이 좀 지랄맞긴 하죠”


한참동안 깔깔 웃던 백리연이 웃음을 그치고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놀라울 뿐이네요. 부끄럽게도 저는 화살이 박히고 나서야 공격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소협이 제 곁에 없더군요”


“소저께서 말하는데 너무 집중하시느라 그럴겁니다”


“글쎄요. 설사 제가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소협같이 움직이는게 가능했을까요?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쪽 마차로 넘어간다는 것이요?”


백리연의 집요한 질문에 일순간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그녀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마차에 훌쩍 몸을 실으며 미소지었다.


“어쩌면 제 인생 최대의 투자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대에게 약조한 금자 열 냥이 말이죠”



***



한차례 소동이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와 대식은 당나귀를 몰았고, 백리담과 백리연은 마차에서 회복에 집중했으며, 수레에 실린 팽도혁은 기절한 채 포목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백리연은 마차를 재촉하거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휴식을 취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라 판단한 듯 했는데, 경신술을 쓰거나 말을 스스로 탈만한 형편이 못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다른 대책이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혹시 내가 보호해 줄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터무니 없지만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백리연이 인생 최대의 투자이니 뭐니 하며 금자 열 냥을 운운한 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한마디로 뽕을 뽑겠다는 것이지.


아무튼 백리연같이 눈치빠른 여인 앞에서 무공을 보인 것 자체가 큰 실수이다. 이전에도 그렇고, 방금 전에도 그렇고.


“......”


조금 전 백리담을 노리던 화살을 막아냈을 때의 상황을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관자놀이를 미세한 바늘로 쿡쿡 찌르듯이 느껴지던 그 불쾌한 기운은, 아마도 살기(殺氣)라고 부르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삶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중원 세계에 떨어진 뒤로도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다. 변노인에게 무공을 배울 때에나 산적들이나 팽도혁 무리를 맞닥드렸을 때에도 그토록 강렬한 죽음의 기운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살기가 나에게로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저절로 반응해 버렸다는 것이다. 다치는 것도 싫고, 다른 사람의 피를 보는 것도 질색인 내가 아니었나. 그러나 그 오싹한 기운을 느낀 이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내 손이 백리담의 머리끄댕이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는데, 비로소 정신을 차린 팽도혁이 움찔대며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우 히··· 무흔 이리 이헜던 거지?”


백리연에게 얼마나 쎄게 얻어맞았는지 턱도 돌아가고 기억도 날아간 모양이었다. 나는 말없이 수레 쪽으로 넘어가 그의 턱을 맞춰주고 어깨도 두드려 주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는 커녕 세모눈을 뜬 채 나를 위 아래로 훑었다.


“네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냐?”


“그냥 장사꾼인데요”


“...말을 말자”


체념한 듯 고개를 돌려버린 그의 모습을 차근히 바라보았다. 한쪽 눈을 가로지른 커다란 흉터가 그 인상을 사나워보이게 만들긴 했지만,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눕혀져 있는 처연한 모습을 보자니 고향 마을의 옆집 아저씨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문득 그의 수하들이 혹여라도 그가 해를 입을까봐 저 멀리서 졸졸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태껏 악역처럼 보였던 그이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겐 존경받는 대장이자 신임받는 수하일지도 모른다.


백리연 남매가 탄 마차 쪽을 흘깃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백리세가와는 어쩌다가 원수지간이 된겁니까?”


“왜, 말해주면 풀어주게?”


“어림도 없는 소리죠.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풀어줄 거 아니면 꺼져라”


역시 이 사내는 악당인 것이 틀림없다. 턱을 괜히 맞춰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없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이번엔 팽도혁이 스스로 입을 열었다.


“며칠 전 백리세가 남매가 우리 적기방에 찾아왔는데, 항상 그랬듯 이번에도 서로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설전이 결국 비무로 이어졌지. 격렬한 대결이었다. 온갖 영약을 쳐먹은 저 백리담 녀석에게 우리 방주님도 전혀 밀리지 않았지”


팽도혁의 말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무려 백리세가의 후계자와 비무를 벌이고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자가 방주였다고 하니, 적기방이라는 곳이 그저 그런 문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무를 하다 서로 내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일이 더 커지지 않고 잘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이 떠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방주님이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갑작스레 쓰러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들이 놀라서 방주님을 부축했을 때엔, 이미 그의 몸이 싸늘하게 굳어가고 있었지”


“그것이 백리담 때문이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흥! 아무도 모르게 암수를 쓴게지. 저들이 정말 당당하다면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겠어?”


팽도혁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을 오래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백리담은 대충 보아도 쓸데없이 올곧게 자라난 전형적인 백도의 후기지수가 아니던가. 차라리 상대방을 시원하게 반쪽을 내었으면 내었지, 절대 암수를 쓸만한 성격은 못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에게 내 의견을 이야기 해 보았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팽도혁은 흥- 코웃음을 치며 경멸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놈은 이미 백리세가에게 붙어먹은 놈이 아니더냐. 더러운 돈에 매수당한 녀석과 이야기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컥!”


아차!


이번에는 차마 참지 못하고 녀석의 턱을 후려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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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7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 적기방 (1) +1 24.05.15 1,782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8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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