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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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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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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34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4 04:4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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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2쪽

금자 열 냥 (4)

DUMMY


금자 열 냥이라고 할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시세도 맞지않는 포목을 한꺼번에 다 사간다고 했을때 눈치 챘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한참을 깔깔 웃던 백리연이 말했다.


“정말 멀리 못가셨군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쉽게 찾아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중년상인을 원망섞인 눈초리로 돌아보자, 그는 슬쩍 웃음지으며 뒤로 한발자국 물러났다. 이 모든 것이 백리연의 지시로 이루어진 일임이 분명했다.


“소저께서는 혹시 저를 잡으려고···?”


만약 그녀가 나를 붙잡으러 온 것이라면 이제는 정말 안녕이다. 대식에게 미리 약속된 신호를 보내자, 대식이 옆구리에 팔을 붙이며 몸을 빳빳이 굳혔다. 나는 막대기처럼 변해버린 대식을 옆구리에 낀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이제 우리는 언제든지 바람처럼 사라질 준비가 되어있다.


백리연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제가 왜 이 소협을 잡으려 하겠어요?”


“그거야 이유는 많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네요. 담벼락 노상방뇨에, 제 정혼자의 이빨을 부숴놓지 않나... 백리담 오라버니 머리카락까지 뽑아놓지 않나···”


“...머리카락은 비밀로 지켜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억울함 가득 담아 외쳤지만 백리연은 자신의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아무튼 저희는 소협에 대하여 아무런 악감정이 없어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들이 한가득이지요. 일단 타세요. 보는 눈이 많아서 좋을 것이 없으니”


백리연이 자신이 타고 있는 마차의 빈 자리를 가리켰다. 대식을 옆구리에 낀 채 주변을 둘러보며 주저하자 그녀가 다시 한번 채근했다.


“어서요. 제가 만약 당신을 붙잡으려 했다면 어찌 이렇게만 왔겠어요? 그대의 실력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데”


과연 그녀와 함께 동행한 것은 평범한 상단 행렬일 뿐이었다. 상단을 보호하는 호위무사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절대 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강호의 음험함이란 이루 짐작할 수 없다 했으니···”


백리연이 눈을 지긋이 감았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타세요”


그녀의 표정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냉큼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에 탄 대식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도련님이 원래 그런 막되먹은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가끔 감정 조절을 못할 때가 있을 뿐인데, 제가 앞으로 계속 잘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만 더 도련님에게 기회를 주시면···컥!”


녀석의 목젖을 타격해 더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못하도록 막았다. 중년상인이 마차의 문을 닫으며 백리연에게 말했다.


“매입한 수레와 당나귀들은 말씀하신 대로 바로 처분하도록 하겠습니다”


“호 숙부님, 고마워요”


“어어, 잠시만! 내 당나귀들을 그렇게 마음대로–”


“내가 금자 열 냥에 매입했으니 저것들을 어떻게 할지는 이제 나의 소관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백리연이 품에서 번쩍이는 무언가를 튕겨내며 말했다. 마차 안을 환하게 빛내는 그것은 틀림없이 금자, 금자, 그리고 금자들이었다. 손을 뻗어 각기 제방향으로 날아오르는 금자들을 휘리릭 낚아채니, 내 손과 마음이 빈 공간없이 가득 찼다.


대식과 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것들의 영롱한 빛을 감상했다. 조가 녀석을 때려눕히고 도망친 뒤 반쯤 포기했던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되니 그 반가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금자에 정신팔린 사이 마차가 덜거덕거리며 어디론가 출발했다. 백리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고 축하할 만한 일이에요”


“맞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금자란 정말 모이면 모일수록 아름다워 보이는군요”


“그것 말구요. 조가장 전체를 적으로 돌려놓은 것을 말하는 거에요”


축하한다는 말이 반어법이었을 줄이야. 퍼뜩 현실로 돌아온 내가 눈을 깜박였다.


“조가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에요. 예전에 비해 많이 변모하긴 했지만, 본디 그들은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계산적일 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한 성격으로 유명한 집안이었죠. 이 소협께서 아무리 무공과 신법에 자신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추격을 받는 것은 꽤나 골치아픈 일일 거에요”


그녀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비록 내가 시비를 걸어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하필 그런 가문과 원수를 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은 격이었다. 입을 쩍 벌린 나를 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일단 아버지께서는 이번 일에 그대의 잘못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셨어요. 하지만 조가장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백리세가로서는 이 소협을 티나게 보호해 줄 수가 없어요. 제가 서둘러 그대를 찾아나선 것은, 다른 이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이 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던 거에요”


그녀가 굳이 상단 행렬에 몸을 숨기고 나를 찾아온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나를 붙잡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고 오해했으니 또 한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소저께서는 이렇게 저를 도와주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정혼자를 때려눕혀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조심스레 물어보았지만, 그녀는 내 질문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비단 조가장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 세가는 지금 벌어지는 일들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그대를 더 신경써주기가 어려워요. 아버지나 허총관께서도 이 소협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셨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다음으로 미뤄야할 것 같군요”


허 총관이면 몰라도 백리세가의 가주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니 나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마음에도 없이 아쉽다는 말을 반복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리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모두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백리세가에 이어 조가장과 얽힌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이미 한도 초과이다. 백리연은 또 무슨 복잡한 강호의 이야기를 나에게 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려운 이야기면 굳이 말해주지 않으셔도···”


“어제 저녁 저희 백리세가와 동맹무가들간에 아주 중요한 회합이 있었어요.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내가 듣던 말건 백리연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지만, 특히 이 소협이 구해낸 팽도혁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죠. 그것 외에도 허총관께서 모으던 정보, 각 문파들의 이야기들을 종합하니, 배후에서 사파들을 조종하던 이들의 윤곽이 대충 잡히더군요”


“헛···! 그들이 누구입니까?”


대식이 주먹을 불끈 쥐며 눈을 빛냈다. 무공이라면 정말 일도 모르는 녀석이 꼭 이런 이야기에는 유독 관심이 많았다. 잠시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던 백리연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나직히 속삭였다.


“아마도 옛 혈교와 연관이 있는 세력인 것 같아요”


“헛···.혈교..!”


“혈교!!!!”


내내 시큰둥해보이던 나까지 탄성을 지르자 백리연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소협도 그들에 대하여 들어보셨나요?”


“처음 들어봅니다만···”


“......”


“아무튼 조직명에 혈자가 들어가는 것을 보니 무시무시한 놈들임에는 틀림없겠군요”


심각한 분위기에 나름 농담 한번 던져본 것인데, 대식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무시무시한 놈들이 맞습니다. 예전에 저 멀리 신강 쪽에서 활동하던 흑도세력인데, 그들이 지나간 곳마다 피와 시체가 가득했다고 하더군요”


백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비록 저도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당시에는 온 중원을 공포에 휩싸이게 만들만큼 기세가 어마어마했다고 하더군요. 화산이나 아미같은 대형 문파도 그들에 의해 거의 멸문하다시피 했었고···”


“하지만 그들은 이십년 전 무림맹에 의해 완전히 분쇄된 것 아니었습니까?”


백리연과 제법 진지하게 무림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식. 왠지 낯설게만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이 녀석 혹시 장사꾼은 그만두고 호사가나 되려는 것인가.


“그래서 그들의 정체를 빠르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던 거에요. 너무 시간이 오래 흐리기도 했고, 당시 그들이 활약했던 지역이 이쪽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잠깐이나마 직접 그들을 만났던 팽도혁의 묘사를 듣다보니, 그 자들의 인상착의와 무공, 기병들이 혈교가 암약하던 시절 활동했던 인물들과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더군요”


백리연의 표정은 한없이 무거웠고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백리세가는 사실상 전시 상태와 다름없어요. 적기방을 보호하기 위한 선발대는 이미 어제밤 출발했고, 저희 아버지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도 오늘 아침 적들의 근거지로 의심되는 곳을 향해 출발했죠”


“네? 오늘 아침에 말입니까?”


“맞아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긴박하게 일이 돌아가게 되었죠. 밤 사이 또다른 첩보가 들어온 터라, 모두 한데 모인 김에 단숨에 적들의 기세를 제압하기로 결정했어요”


나와 대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백리연 남매와 팽도혁이 세가에 도착한지 고작 하루가 지날 뿐이다. 그런데 그 사이 적들의 위치를 분석하여 추정해내고, 그대로 곧장 적들을 분쇄하기 위해 출발한단 말인가? 여태까지는 어떻게 도발에 대응해 왔는지는 몰라도, 백리세가의 빠르고 과감한 움직임에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그 때였다.

아무런 예고없이 덜컹 마차가 멈추는가 싶더니, 백리연이 벌컥 마차 문을 열어 제꼈다. 문 밖으로는 한 무리의 백리세가 무인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하나같이 형형한 안광에 절도있는 기세를 갖춘 것이 범상치 않았다.


‘제길, 또 속았구나! 이번에야말로 정말 날 잡으러 왔나보다’


당장 마차를 부수고 도망칠 생각으로 대식 녀석을 꽉 붙잡은 순간, 백리연이 마차 밖으로 성큼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에요”


“...네? 그게 무슨···”


“얼른 아버지를 도우러 가봐야죠”


황당한 마음에 입을 헤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가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듯 하더니, 이렇게나 갑작스레 떠나간단 말인가?


백리연이 우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입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단호한 결의가 가득했다.


“걱정마세요. 이 소협이 안전히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이 분들께서 계속 도와주실 거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조가장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그대를 찾고 있으니, 완전히 이 지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가급적 마차 밖으로 모습을 보이지 마세요. 이 모든 일들이 정리되면 그때 또 뵙는걸로 하죠”


백리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인들이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며 말의 고삐를 건넸다. 그녀가 훌쩍 말에 올라타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소저, 잠깐···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녀가 흘깃 뒤돌아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표정은 밝아지고 눈은 반짝 빛났다.

마치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외쳤다.


“혈교인지 혈변인지 몰라도 너무 걱정마십시오. 이십 년이면 강산이 두번은 바뀔 시간 아닙니까? 그때 인물들이 아직까지 살아있다 하더라도 다들 꼬부랑 노인네가 되었을거요. 주먹에 힘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백리연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대식이 이유모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웃음 외에는 아무 대답 없이 몸을 돌린 그녀가 다시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가자!”


그녀가 탄 말이 질풍처럼 달려나가고,

백리세가의 무인들이 그 뒤를 따라 말을 달렸다.

흙먼지가 구름처럼 피어나 내 시야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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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6 24 11쪽
»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8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5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0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3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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