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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28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6 06:49
조회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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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글자
12쪽

조가장 (2)

DUMMY


중년상인이 앞으로 나서며 크게 외쳤다.


“조가장의 기난수 대협시군요. 무슨 일로 길을 막으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찾는 사람이 있다. 잠시 그대들의 수레를 뒤져보았으면 좋겠는데”


사내답지 않게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의 말에 답했다. 중년상인의 정중한 말투와 달리 그 목소리는 불손하고 맥이 툭툭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글쎄요. 다짜고짜 상단의 화물을 뒤지겠다니, 저희 단주님께서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군요”


“임풍 단주도 아침 일찍 백리세가 무인들과 함께 떠난 것을 알고 있네. 아주 잠깐만 협조해주면 될 일이야”


“단주께서 없으시니 더욱 저희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이에게 화물 수색을 허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민감한 일인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흥- 코웃음을 쳤다.


“호인청. 어제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뻔히 알고 있지 않나? 현명하게 행동하게”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것은 기 대협이오. 지금 그대들은 이성을 잃고 문파간에 지켜야할 예를 크게 벗어나고 있소이다. 우리가 비록 조가장에 비해 작은 세력이긴 하나, 이렇게 존중받지 못할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중년상인의 어조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호한 거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대방이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거부한다면 힘을 쓸 수 밖에 없다”


막무가내인 상대방의 태도에 중년상인이 당황한 어투로 말했다.


“당신들이 어찌··· 그리고 이곳은 백리세가의 영역이오”


“백리세가의 이름을 들먹여도 소용없다. 뒷일을 생각할 것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자네들의 길을 막지도 않았겠지”


“기 대협.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요?”


중년상인이 긴장감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대방이 하핫- 메마르게 웃었다.


“자네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


대화가 이어질수록 분위기가 삭막해지던 그 순간.

갑작스레 뒤쪽 수레에서 읍읍-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거칠게 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인청이 가까스로 다시 진정시켜 놓았다는 소단주일테지만, 그 소리를 들은 조가장 무인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누군가 숨어있다!”


“역시!”


채챙-

사방에서 검이 뽑혀나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삽시간에 날카로운 기운이 주변을 덮었다.


“아니, 아니오. 잠시 내 말을 들어보시오! 저 분은 그대들이 찾는 자가 아니오!”


호인청이 황급히 목소리를 높였지만 상대방의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어설픈 거짓말을 하기엔 이미 늦었다. 너희같이 시간에 엄격한 이들이 본래 일정보다 늦어졌을 때부터 이미 수상하다고 생각했지. 백리연이 늦게 떠난 것도 자네들과 관련 있는 일일테지?”


그가 흥분한 조가장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무공이 제법 강하다고 했으니 발견 즉시 손발을 잘라놓아라. 단, 목숨만큼은 꼭 살려가야 한다!”


“잠깐! 우리 수레를 멋대로 뒤질 수는 없소. 이익···. 막아라! 저들을 막아라!”


호인청이 다급하게 외치고, 곧 사방에서 병장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했다.


마차 안에서 바깥의 소리에 귀기울이던 나와 대식은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저 놈들, 나 찾는거 맞지?”


“아이고··· 아이고···!”


대식이 말도 못하고 끙끙거렸다.


“고작 못난 아들 놈 이빨 좀 부셔놓았기로소니 이렇게까지 앙심을 품고 달려든다고?”


조가장은 백리세가와 사돈지간이 될 가문이 아니던가. 단지 나를 보호해줬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우방을 상대로 칼부림까지 벌인다는 것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삽시간에 사방이 혼란스러워진 가운데, 내가 뛰쳐나가기도 전에 누군가 바깥에서 마차 문을 왈칵 열어제꼈다. 화려한 복장으로 보나 얄미운 관상으로 보나 조가장 무인이 분명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무인이 우렁차게 외쳤다.


“찾았다. 이놈이다!”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어떻게 나를 단번에 알아보는 것인가.

궁금할 겨를도 없이 녀석이 칼을 휘두르며 마차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어딜!”


단번에 손목을 쳐서 칼을 떨궈내고 이마를 쳐 날려보내니, 마차 안에 들어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훨훨 튕겨져 날아갔다.


그 사이 반대편 문이 왈칵 열리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던 대식이 균형을 잃고 마차 바깥으로 굴렀다.


“아이고, 도련님!”


손을 뻗어 굴러 떨어지려던 대식을 잡아내고, 대식에게 달려들던 녀석의 멱살을 쭉 잡아끌어 반대 방향으로 던져냈다. 히익-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간 녀석이 앞서 튕겨나간 녀석의 몸 위에 사이좋게 포개졌다.


“마차다. 마차를 공격해라!”


곧 여러 개의 장창이 마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분명 내 목숨만큼은 살려놓아야 한다고 지시한 것 같은데, 날카로이 찔러오는 장창의 갯수나 각도로 보았을 때엔 과연 그 지시를 이행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風吹過身心. 풍취과신심. 바람이 몸과 마음을 통과해 지나간다.


대식의 몸을 이리저리 접어가며 장창들을 피해내고 나니, 좁은 마차 안에서 마치 거미줄에 붙들려있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내친 김에 장창들을 부러뜨려 대식을 위한 작은 감옥을 만들어주고, 마차 지붕을 부시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콰직!


내 몸이 하늘 높이 비상하고,

사방으로 나무조각이 비산하는 가운데···


빠르게 주변 상황을 살폈다.

마차와 수레를 둘러싼 조가장 무인들과 그에 힘겹게 저항하는 상단의 무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차 뒤를 따르던 수레 중 하나에는 청의를 입은 청년이 밧줄에 몸이 꽁꽁 묶인 채 애벌레처럼 버둥거리고 있었다.


‘아하. 저 친구가 바로···’


커다란 구멍이 생겨버린 마차 위에 사뿐히 내려앉자, 엉켜붙어 있던 무인들이 손발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조가장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듯한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기분나쁘게 웃었다.


“틀림없군. 틀림없어!”


우두머리 녀석은 금빛 새가 그려진 화려한 무복을 입고 옆구리에는 검을 두 자루나 차고 있었다. 눈빛은 날카롭고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데다, 입술 한쪽 끝을 자꾸만 씰룩대는 것이 한마디로 기분나쁜 관상이었다. 그러나 지닌 무공에는 꽤나 자신이 있는 듯, 갑작스레 지붕 위로 튀어오른 나를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뭐가 틀림없다는 거냐?”


“네놈이 틀림없다는 거다. 감히 우리 조가장의 심기를 거스른 친구. 하룻강아지같은 녀석”


녀석이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흔들어가며 말했다. 언뜻 보기에 그것에는 누군가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종이와 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히죽히죽 웃는 것이 무척이나 기분 나빴다.


“왜, 이것이 뭔지 궁금하더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녀석이 들고 있던 종이를 구겨 나에게 던졌다. 꾸깃꾸깃한 종이를 잡아 펼쳐들자 웬 초상화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단순한 선과 점 몇 개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지만, 꽤나 솜씨있게 누군가를 잡아낸 듯한 모습. 언뜻 보니 약간 익숙한 얼굴 같기도 하고···


“이거 설마···.?”


“그래. 네 놈 얼굴이 그려진 수배 전단이지. 똑같지 않느냐?”


황당한 마음에 몇번이고 다시 종이를 내려다 보았다.

가느다란 눈에 족제비 같은 얼굴.

아무리 봐도 나의 영웅스러운 풍모를 잡아냈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이따위 그림이 뭐가 똑같다는 거야?!?!”


버럭 신경질을 내자 조가장 녀석이 낄낄 웃었다.


“부정해봤자 소용없다. 모두가 한번에 너를 알아본 것이 그 증거가 아니겠느냐. 우리 도련님께서 비록 무공 실력은 미천하지만 이상하게 시(詩), 서(書), 화(畵)에는 그야말로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여자를 꼬시는데 필요해서 그런가?”


저 녀석의 도련님이라면 나에게 이빨이 털린 조승지 녀석을 말하는 건가.

개똥도 쓰이는 곳이 있다더니 그 녀석에게도 제법 잔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백리연같은 정혼자를 내버려두고 다른 여자를 탐했다니···


‘생각보다 간이 큰 녀석이었군!’


그 사이 마차에 뚫린 구멍을 통해 수배지를 확인한 대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대단한 솜씨로군, 대단한 솜씨야!”


“......”


확 화가 치밀어 올라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바람에 흩날려가는 종이 조각들을 후련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데, 조가장 녀석이 품 안에서 또다른 종이 뭉치를 꺼내 흔드는 것이 아닌가.


“소용없다. 그게 전부가 아니거든”


대충 보아도 수십장은 되어보이는 종이뭉치를 보며 어이가 없어 입을 헤 벌렸다. 백리연에게 조가장의 치밀함과 집요함에 대하여 듣긴 했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는 것이냐? 그냥 혈기왕성한 젊은 친구들끼리 쌈박질 좀 한 걸로 생각해주면 안될까? 애초에 시비는 그 녀석이 걸었다고!”


조가장 녀석이 킥 코웃음을 쳤다.


“사실 나도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겠느냐?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야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지. 자, 순순히 따라가겠느냐?”


“안 갈건데.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면 안된다고 배웠다. 특히 너같이 기분 나쁘게 생긴 놈이라면 더더욱”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자 녀석이 검을 빼어 양 손에 나누어 들며 웃었다.


“뭔 생김새를 가지고 욕을 하나. 너나 나나 피차일반이지”


“...어딜 봐서?”


“아무튼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팔다리 하나는 짤릴 각오를 해야할 것이다. 그나마 이빨은 장주님께서 직접 뽑겠다고 하셨으니 얼굴만큼은 건드리지 않으마”


아무래도 녀석들이 품은 앙심이 보통이 아닌가보다. 조가놈들에게 붙들려서 차례차례 이빨이 뽑히는 상상을 하니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녀석이 호인청을 바라보며 말했다.


“호인청. 우리는 저 녀석만 잡으면 된다. 혹여나 방해하면 너희 상단의 일원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이건 빈 말이 아니야”


“기난수! 당신들이 어찌 감히···”


“잘 판단해라. 우리는 더이상 백리세가의 눈치를 보지 않아. 그들의 시대가 끝나는 것도 머지 않았다”


호인청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조가장 녀석이 허풍을 치는지 아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상단 행렬 전체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나저나 저 녀석, 백리세가의 시대가 곧 끝난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일까?


그 때, 뒤쪽 수레에서 또 다시 거친 신음과 함께 몸부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뒤로 정신없어진 호인청이 주저하는 사이, 기난수 녀석이 나를 가리키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잡아라!”


산개해 있던 조가장 무인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찔러오는 창칼을 피해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호인청에게 크게 외쳤다.


“내 걱정은 마쇼! 도망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서슬 퍼런 날붙이들을 들이미는 조가장 녀석들을 한차례 훌쩍 건너뛰자, 마차 안 작은 감옥에 갇힌 대식이 다급하게 외쳤다.


“도련님! 도망치더라도 저는 데려가셔야죠!”


“미안하다! 적들이 너무 많아!”


내가 정말 도망칠 것으로 보였는지, 조가장 무인들이 내가 달려가는 방향을 우르르 가로막았다. 호인청이 뒤쪽 수레로 황급히 달려가며 상단의 호위무사들에게 외쳤다.


“이 소협이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라!”


“거 참, 끼어들지 말라니까?”


아슬아슬하게 창검을 피하는 사이 오금상단의 호위무사들이 가세했다. 요리조리 사방에서 번쩍이는 나와 두 세력이 충돌하며 수레를 중심으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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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노인 (3) +1 24.06.01 1,307 26 13쪽
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6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6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69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8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5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0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2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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