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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54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1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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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추천
30
글자
12쪽

암살

DUMMY



“부방주님, 부방주님! 이곳에 계십니까?”


어둠 속을 다가오던 인영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가만히 몸을 일으킨 채 그를 살폈다. 그의 신형이 아직 어둠 속에 파묻혀 있어 정체를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조심스레 다가오던 그가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팽 부방주님이 이곳에 계시오?”


그제서야 자신을 찾는 목소리를 듣게 된 팽도혁이 포목더미 사이에서 읍읍- 신음소리를 내었다. 곧장 수레 쪽으로 향하는 인영을 내가 멈춰 세웠다.


“잠시만”


인영이 몸을 멈춰선 채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모닥불에 비친 내 얼굴을 볼 수 있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부방주를 찾는 것을 보니 아마 팽도혁의 수하일 것이다. 만약 이 자가 팽도혁을 구하려 한다면 막아야 할지 내버려둬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백리연이 그를 지키고 있으라고 부탁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것이 내가 끼어들어야 할 일이 맞는 것일까? 이것도 금자 열 냥의 약속에 포함된 것으로 봐야할까?


“그대는 적기방의 사람이오?”


“그렇소”


“저 쪽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요? 혹 백리세가 남매를 만나지는 못했습니까?”


“나도 당췌 모르겠소”


사내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용변이 마려워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누군가가 갑작스레 우리 방을 습격했소. 살육극이 벌어졌습니다. 단 한 명뿐인데 감당할 수 없는 고수이더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문득 내가 들었던 길고 사이한 웃음소리가 떠올라 백리담과 백리연이 사라진 방향을 방향을 힐끗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 쪽은 조용하고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합세하더라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았소. 누군가는 부방주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 밤길을 달려왔습니다”


팽도혁이 읍읍- 몸부림을 쳤다. 나는 더이상 그가 팽도혁을 만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 백리담 남매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같은 방원들끼리 이런 급박한 소식을 전하는 것조차 막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쪽으로”


수레로 그를 안내하여 포목 사이에 짓눌려있던 팽도혁을 꺼내고 뒤로 물러났다. 어둠 속을 헤치고 다가온 사내가 다급히 다가서며 팽도혁에게 인사했다.


“부방주님, 제가 왔습니다”


사내가 팽도혁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어둠 속에서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뒤에서 그들이 조우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팽도혁의 눈이 뎅그랗게 커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읽히는 것은,

반가움보다는 놀라움. 낯익음이 아닌 낯설음.


그 순간, 마치 날카로운 것이 나의 관자놀이를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화살이 날아왔을 때와 같은 느낌.


‘살기(殺氣)...!’


사내의 비수가 빠르게 팽도혁의 목줄기를 파고 들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뻗어보려 했지만 사내와 팽도혁의 간격이 이미 너무 좁았다.

비수를 쳐내는 것을 포기하고 사내의 오금을 발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팽도혁의 목이 뚫리는 대신 얼굴이 촤악- 그어졌다. 검은 피가 공중으로 튀어올랐다.


사내가 빠르게 균형을 회복하며 뒤쪽으로 쉬쉭- 비수를 찔러 넣었다. 나는 사내에게 붙은 자세 그대로 몸을 뒤쪽으로 눕히며 그의 공격을 피했다. 사내는 나를 공격함과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손을 뻗어 쓰러지던 팽도혁의 멱살을 붙잡았다. 다시 한번 그의 비수가 팽도혁을 끝장내려는 순간, 땅에 등을 튕기며 벌떡 몸을 일으킨 나의 발차기가 그의 옆구리에 제대로 틀어 박혔다.


퍽—!


사내의 몸이 멀찍이 튕겨나갔지만 신음 한번 없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킨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어라?”


자신의 암살이 실패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닥불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얼굴을 확인하니 어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낯선 인물이었다. 그가 적기방원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어제 객잔에서 부딪혔던 이들 중 사내처럼 동작이 빠르고 민첩한 이는 없었다. 게다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팽도혁의 수하로 위장하여 접근하는 그 말솜씨며, 겁먹은 듯 목소리까지 떨리던 그 연기력이라니.


크으읍–! 팽도혁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여전히 그의 입에는 채 빼내지 못한 천쪼가리들이 우겨져 있는 상태.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대식이 황급히 그에게로 다가가 상처를 지혈했다.


“너는 누구냐?”


이곳 중원에는 나의 신원을 묻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 대답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이야말로 누구요?”


사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단검을 나에게 겨누었다. 포기할 생각이 없음은 분명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의 새빨간 적의(敵意)가 향하는 곳은 바로 나.


본의 아니게 팽도혁을 지키는 역할이 된 셈이다. 난감해진 상황에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말로 합시다, 말로. 내가 이 팽가 놈이 이뻐서 그런 것은 아니고··· 왜 그렇게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시는지?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 하지 않았소?”


사내가 한차례 실소를 터뜨리더니 곧장 나에게 달려들었다. 몸을 낮춰 바닥을 스치듯 다가오는 그 모습이 마치 뱀을 보는 것 같았다. 빠르고 영리한 뱀. 아무래도 뱀을 잡는 데에는 막대기가 제격일 터인데, 안타깝게도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는 것이 없었다. 뭐, 그래도 조그마한 뱀을 잡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터.


상대방이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 지척에 다다를 때까지 내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사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사이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사내가 결국 일검을 횡으로 그었지만 내 몸에 와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반응하는 것을 본 뒤 그에 맞춘 후속동작을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애초에 이런 간보기 같은 수법에 당해줄 생각이 없었다.


휭—


단검이 코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뒤 사내가 요란하게 회전하며 뒤로 물러났다. 단검이 사방으로 번뜩였지만 역시나 내가 그의 뒤를 추격하지 않은 이상 말짱 헛것에 불과했다.


결국 처음 그 자리로 온전히 되돌아간 그를 보며 이번엔 내가 실소를 터뜨렸다. 방금 보인 상대방의 움직임을 요약하자면, 그야말로 달밤의 체조가 되시겠다.


사내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내가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쯤하고 가시오”


“뭐?”


재차 공격을 준비하던 사내가 당황하여 되물었다.


“팽가 놈을 꼭 죽이고 싶은 모양인데, 내 앞에서 누가 죽는 것을 볼 수는 없소이다. 조금 전이 마지막 기회였어.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오”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도리어 성질을 돋운 모양이다. 짙어지는 사내의 살기를 느끼며 쯧쯧 혀를 찼다.


“적당히 물러날 줄 알아야지. 이러다 백리담이 돌아오면 그 성질머리에 정말 큰일날 수도 있어. 감당할 수 있나?”


“야 이 미친 새끼야! 당연히 잡아 족쳐야지, 저 놈을 왜 그냥 보내?”


뒤쪽에서 팽도혁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으니 많이 다치치는 않은 모양이었다.


“어라, 팽씨···”


팽도혁에게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사내가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날려 쇄도했다. 기세는 전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번엔 재보는 것 없이 내 몸을 확실히 뚫어버리려 한다는 점이 달랐다. 서늘한 단검의 기운이 순식간에 나의 턱 밑까지 파고들었다.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사내의 손목을 노렸다. 내 손이 그의 오른손목을 쳐내는 순간, 단검을 쥐고 있던 손에서 곧장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상대방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다음 수를 준비하는 유형.


그렇다면 그의 다음 수는 명백하다. 쉽게 단검을 포기한 대신, 왼쪽 허리춤에서 역수(易手)로 뽑혀나온 장검이 나의 허리를 양단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계 공격이었다.


“엇—!”


숨죽이고 지켜보던 대식과 팽도혁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장검 또한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가볍게 공중에 떠올랐던 내가 사내의 왼손을 발로 차내자, 장검이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자, 또 꺼낼 무기가 남아있나? 아직도 덤빌 생각이야?”


서로간에 압도적인 기량 차이를 확인한 상황.

잠깐 사이 사내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가더니, 마지막에는 마치 가면을 쓴 듯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손을 칼날처럼 쭉 펴고,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쥔 사내가 재차 달려들었다. 겨우 두어수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그답지 않은 무식한 돌진이었다. 그 기세가 거칠었을 뿐 아니라, 가슴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린 듯한 함성까지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아–!!”


더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뿌연 잔상을 일으키며 뒤쪽으로 돌아간 뒤, 그의 발목을 강하게 밟았다.


우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살짝 내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아프겠다···!’


사내가 균형을 잃고 휘청이며 팔을 휘저었다. 그 순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줄 알았던 소매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튀어나왔다.


‘암기!!!!’


몸에 소름이 돋아난 이유가 뼈 부러지는 소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가 준비하고 있던 또 다른 수를 감지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재빨리 양 팔로 둥그런 원을 그리며 소매를 휘저었다. 암기들을 두 팔 사이의 공간에 가두어버릴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향하는 방향이 내가 아니라 우리의 싸움을 지켜보던 팽도혁이었다. 나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수 였다.


다급히 사내의 몸을 끌어당겼으나 이미 암기들이 맹렬히 쏘아지고 난 다음이었다. 급한대로 일장을 날려 그의 가슴을 강하게 가격하며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우득- 사내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뒤늦게 들려왔다.


風吹過身心. 풍취과신심. 바람이 몸과 마음을 통과해 지나간다.


한줄기 바람이 되어 공간을 건너 뛰었다.


수레에 쌓여있던 포목을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확- 펼쳐냈다. 겹겹이 펼쳐지는 천들이 방어막을 형성하자, 바늘들이 팽도혁의 미간을 뚫기 전에 가까스로 모두 받아낼 수 있었다.


검은 천을 뒤집으니 바늘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는데, 맹독이 발라져 있는지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팽도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림인으로서 항상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사내이면서도, 정작 무기력하게 묶여있는 상태로 두번이나 살수에 당할 뻔하자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어이, 팽씨. 당신 살리려다가 상품에 하자가 생겼으니 그대가 물어내셔야겠소. 최소 금자 두 냥이오”


팽도혁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너··· 너 이 새끼. 이 와중에도 바가지를··· 내가 묶여있는 몸만 아니었어도 가볍게 막아냈을 것이다”


“아무 반응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청구하더라도 저 놈한테 청구해야지, 왜 나에게 지랄이냐?”


나는 뒤쪽에 쓰러져 있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발목과 갈비뼈를 내가 부셔놓은 것은 맞지만, 바닥에 엎드린 채 아무 미동이 없는 사내를 보자 가슴이 서늘했다.


재빨리 다가가 사내를 뒤집었다.


“....!”


잠깐 사이 사내의 몸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가며 새카맣게 변하고 있었다. 눈은 핏줄이 온통 터진 채였고, 열 손가락과 팔 근육이 흉하게 오그라들어있었다. 무표정했던 얼굴에는 감당할 수 없이 끔찍한 고통을 참아낸 흔적이 가득했다.


맹독의 흔적.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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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7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8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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