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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47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11 17:05
조회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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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
11쪽

와장창!

DUMMY


대식의 심상치않은 표정에 나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리연이라더니 그냥 백씨가 아니었던건가.


“백리세가? 설마 그 진짜 백리세가?”


“세상에 백리세가가 또 달리 있겠습니까? 백리세가 가주님에게 그 나이대쯤의 자제분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맞네, 맞아! 그 고운 인물이며, 귀티나는 언행이며··· 저는 한눈에 보통 신분이 아닌걸 알고 있었다니까요?”


“...방금 전까지는 몰랐었잖아”


언제 그런 잡다한 것까지 알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대식은 백리세가에 대하여 열심히 나에게 설명했다. 요즘 안휘성에서 남궁세가를 제치고 제일 잘나가는 세가라는 둥, 관리하는 장원과 상단이 수십개이고, 이래저래 딸린 식솔과 무인들이 수백이라더라 등등···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자가 시원시원하게 나오던 것을 보면 녀석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으리으리한 무림세가의 사람이 왜 수상한 무인들에게 낭패한 기색으로 쫓기고 있단 말인가?


한참 신이 나 있던 대식도 날카로운 내 추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기세가 한풀 꺾였다.


“게다가 의복도 수수한 것을 보니 그닥 대단한 집안은 아닐 것이야. 아마 직계는 아니고 먼 핏줄 정도겠지”


“거 참, 사람 옷 입는 것 가지고 판단하시는 건 좀··· 아무튼 미모의 여성 아닙니까? 그리고 먼 핏줄이라 하더라도 백리세가의 사람이라면 보통 신분이 아닙니다”


“되었다. 그 여자는 뭐랄까, 내 취향과는 좀 거리가 있달까···”


한창 대화에 열중하면서도 내내 쉬지않던 대식의 젓가락질이 우뚝 멈추었다. 비록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일그러진 녀석의 눈빛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네놈이 뭐라고.


“일단 무림인이잖아. 만나다가 사이가 틀어지면 칼부림부터 하지 않을까?”



대식이 또 뭐라 뭐라 잔소리를 쏟아내려는 순간이었다.


재빨리 젓가락으로 전들을 집어 휘리릭 날려보내니, 커다랗게 벌려진 대식의 입에 주르륵 가서 박혔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웁웁대는 대식에게 눈을 부라리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눈치는 갖추었는지, 대식이 얌전히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나의 시선은 객잔에 우르르 들어선 무인들에게로 가 있었다.


검은 무복과 붉은 삼각 깃발.

백리연을 쫓던 그 무리들이다.


“마차가 이곳에 있다. 샅샅히 뒤져!”


굳이 이 객잔에 들어와 헤짚고 다니는 것을 보니, 바깥에 메어진 우리 마차를 발견하고 일부러 시비를 걸러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 혼자서라면 어떻게든 몸을 빼낼 수 있을테지만, 대식과 마차, 수레를 놓고 혼자 빠져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피하기는 어렵겠구나’


두리번거리던 흉터 사내가 금세 우리를 발견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서슬퍼런 무인들의 눈빛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한다. 눈이 마주친 김에 반갑게 손을 흔들어 인사해보였다.


“아이고, 나으리! 이 곳에서 또 뵙는군요!”


무인들이 성큼성큼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그들의 기세가 어찌나 흉흉한지, 우리 주변에 앉아있던 이들이 모두 후다닥 몸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넓은 객잔이 순식간에 텅텅 비워졌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찾으시던 분들을 아직 못 찾으셨나 보죠?”


살갑게 미소지어 보았지만 흉터사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온 그가 대식의 옆자리에 허락도 없이 턱 앉았다. 대식은 입에 가득 찬 전들을 씹지도 못하고 푹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의 팔다리가 어찌나 떨리는지 탁자까지 덜덜거렸다.


나와 대식, 흉터사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무인들이 팔짱을 낀 채 둥그렇게 감쌌다. 아무리 봐도 작정하고 온 것이 틀림없는 모양.


사방을 둘러보며 짐짓 겁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저희를 찾으시는 것은 아닐텐데 왜···”


흉터사내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루를 완전히 허비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따지기 위해 한참 동안 꼼꼼히 흔적을 되짚었지”


“저런, 식사는 챙겨 드셨습니까? 저희 음식이라도 좀 나누어서 드시는 것은 어떠신지···”


무인들 몇몇이 분명 침을 꼴깍 삼키는 것 같았지만, 흉터사내는 음식에 눈길 한번 주지않고 탁자를 쾅! 내리쳤다. 아까운 음식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사내는 나를 곧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모른 척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우리를 만나기 전에도 마차가 잠깐 길을 빗겨났던 흔적이 있더군. 여러 발자국과 말발굽이 엉켜있고 말이야”


대충 일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겁먹은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주변의 상황을 머리 속에 집어 넣었다.


녀석들의 머리 수, 객잔 탁자의 재질과 경도, 의자의 개수, 빠져나갈 수 있는 문, 대식과 녀석간의 거리···


“감히 이 몸을 속여놓고 한가로이 술이나 쳐먹고 있어? 이 요리들은 다 뭐야? 백리세가 놈들이 댓가를 두둑히 줬나보지?”


그의 말에 대식과 나는 눈을 번쩍 뜨며 마주보았다. 아무래도 그들이 정말 백리세가인들이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아, 후회막급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줄 것을!


“녀석들과 어디서 헤어졌나? 어느 쪽으로 갔지?”


대식의 목에 팔을 두른 흉터사내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눈 앞에서 허연 칼날이 위태롭게 노닐자, 새파랗게 질린 대식의 입에서 주르륵 전들이 흘러 내렸다.


“마음에 드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네 녀석들 몸에 시원하게 구멍이 날 줄 알아라”


희번덕거리는 흉터사내의 눈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백리세가 사람들과 어디서 헤어졌고, 어느 쪽으로 향했는지 알려주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눈이 뒤집혀버린 녀석에게 이제와서 솔직히 털어놔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마도 그는 절대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겁먹은 척 연기하던 것 따위는 그만두기로 했다. 뺨을 긁적이며 혼자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금자 한 두 냥은 더 받아낼 걸 그랬어”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지. 잠깐만 숨겨주면 되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흉터사내의 얼굴빛이 변했다. 갑작스레 달라진 나의 태도를 경계하는 듯, 단검을 서서히 내 앞에 들이밀며 날카로운 눈으로 내 몸을 흝었다.


“너, 뭐야?”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마침 탁자 위에 아직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었지?”


생뚱맞은 질문에 눈살을 찌푸리는 녀석을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입 벌려. 닭다리 들어간다”


“이 무슨···웁!!”


먹다 남은 닭뼈다귀를 손가락으로 튕겨내니 흉터사내의 입에 그대로 보기좋게 쑤셔박혔다. 당황한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탁자에 콱 내리찍으니, 녀석이 들고있던 단검이 손잡이 부분까지 깊숙히 박혀버렸다.


닭다리를 입에 문 녀석이 재빨리 단검을 포기하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지만, 이번에는 젓가락으로 날려보낸 전들이 녀석의 두 눈에 찰싹 찰싹 달라붙었다.


“우웁···퉤! 제길, 앞이··· 앞이 안 보여!”


어리버리 서 있던 흑의무인들이 뒤늦게 함성을 지르며 검을 뽑아들었지만, 차례로 눈에 전을 붙이는 신세가 되고는 아우성을 쳐댔다. 뜨거운 국물이 사방에 뿌려지고, 만두가 날아가 녀석들의 입에 쳐박힌다.


난장판이 되어가는 와중에 대식을 자리에서 끌어내 엉덩이를 걷어차니 훨훨 날아가 구석에 쳐박혔다. 소중한 심복을 다소 거칠게 다뤄야만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녀석을 지켜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전을 떼어낸 흉터사내가 으아아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두 눈에 붙었던 전 때문인지 기름기로 얼굴이 번들번들했다.


“죽어라!”


흉터사내는 제대로 열이 받은 모양인지, 주변의 수하들을 신경쓰지 않고 장도를 흉흉하게 휘둘러댔다. 그 서슬퍼런 기세에 나보다도 수하들이 먼저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붕- 붕-


장도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과연 백리세가인들을 추격하던 놈들답게 녀석의 공격은 제법 매서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탁자 사이를 요리저리 휘저으며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젖히자, 그 어떤 것 하나 나에게 와닿는 것이 없었다.


“길을 막아!”


답답해진 녀석이 분통을 터뜨리자, 좁은 복도를 그의 수하들이 빽빽하게 메웠다.


흉터사내를 바라보고 뒷걸음질 치던 나에게 어떤 녀석이 냉큼 검을 찔러넣었지만, 나는 보지도 않고 옆구리 사이로 공격을 흘린 다음 빙글 돌아 녀석과 자리를 바꿨다.


때마침 흉터사내가 크게 휘두른 장도가 운나쁜 수하의 팔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촥!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크아악!!!”


순식간에 자리를 바꿔치기 당하고 팔도 베여버린 수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살이 베여나가고 피가 튀는 것을 보니 나 또한 흠칫 놀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소름이 돋은 살갗을 연신 문지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으···얼마나 아플까?! 그것도 믿고 따르던 자기 두목한테 배신당했으니···”


“이익, 배신은 무슨! 이간질 하지마라”


당황한 표정을 짓던 흉터사내가 수하들을 둘러보며 버럭 소리질렀다.


“다들 뭐해? 길만 제대로 막으란 말야!”


“하···하지만 이놈이 탁자 사이로 요리조리···”


“멍청한 놈들, 탁자 따위는 다 치워버리고 포위망을 펼쳐라!”


순식간에 탁자들이 치워지고 포위망이 완성됬다. 날카로운 스무개의 검이 나를 노리고 좁혀 들어온다. 흉터사내는 눈을 번뜩이며 장도를 휘휘 공중에 휘둘렀다.


“네 이놈,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미꾸라지처럼 제법 도망을 잘 치는구나. 어디 한번 또 수작을 부려보아라. 오래 버틸수록 더 고통스럽게 죽여주지”


“죽이겠다고? 우리가 무슨 원한을 졌다고?”


“닥쳐라! 감히 우리 적기방을 상대로 도발한 죄··· 네놈이 저지른 것의 그 열배로 갚아야 할 것이다”


상대방은 이미 이성을 잃은지 오래다. 호흡을 차분히 내뱉으며 흉터사내와 주변의 무인들을 둘러보았다. 제대로 손을 봐주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막상 붉은 피가 팍 튀는 광경을 보니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피 볼 일 없이 제압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녀석들은 기본기가 잘 다져진 진짜 무림인들이다. 생김새만 흉악하지 실력은 소꿉장난 수준이었던 산적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잠깐 고민에 빠져 주저하는 사이, 흉터사내가 득의양양하게 장도를 높게 치켜들더니 나에게로 돌격해 들어왔다.


“건방진 놈, 죽어라!!!”


무기를 들고 설쳐대는 놈 앞에서 사치스러운 고민을 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자칫 더 큰일로 이어질까 싶어 무공 펼치는 것을 저어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끝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


‘와장창?!’


깜짝 놀라 위를 바라보니,

객잔 천장이 무너져내리며 흰색 인영이 우리 위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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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7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9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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