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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20
추천수 :
1,447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2 23:30
조회
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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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
12쪽

금자 열 냥 (2)

DUMMY



이쯤이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야 옳다. 뒤쪽에 서 있던 청년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지만, 안타깝게도 조가 녀석은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이익···.!”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녀석이 급기야 챙- 하니 검까지 뽑아들었다. 조금 전 똑 부러져버린 내 싸구려 검과는 달리, 햇살을 번쩍번쩍 사방으로 반사시키는 고급스러운 검이었다. 검에서 쏟아져 나온 광채가 탐스러울 정도로 눈부셨다.


“자··· 자네!”


“조형! 안됩니다!”


패거리들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당황한 표정으로 만류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흥, 꼴에 한 수를 숨기고 있는 녀석이었군! 감히 우리를 모욕하고 능욕하다니!”


“저기,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 쪽이었는데”


“닥쳐라! 어서 네 검을 뽑아라!”


“...당신이 방금 전에 부러뜨렸소”


“이야아아아압!”


맨 손의 상대방에게 진심을 담은 일격이라니. 이러다가 내가 정말 무공을 몰라서 두 쪽이 나면 그 억울함은 누가 풀어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손바닥이 되었든, 검날이 되었든, 녀석의 공격이 나에게 닿는 일은 없을 테니까.


欲摸風無意義之事也 욕막풍무의의지사야. 바람을 만지려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앞으로, 옆으로. 발걸음을 한번씩 옮길 때마다 검날이 종이 한장 차이로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검이 헛되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녀석의 눈에 서린 당혹감과 분노가 커져만 갔다. 패거리들은 조승지 녀석을 만류하려던 것도 잊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한참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자신의 검에 절망한 조승지가 크아아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꽤나 잘나가는 집안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괜히 좋은 집안의 녀석과 원수지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셈이었다. 아까 전에는 주먹 한 대 정도 맞아주는 걸로 끝낼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멋대로 칼까지 휘두르는 판국 아닌가.


“너희들, 보고만 있을거야?!”


악에 받친 조가놈의 외침에 정신차린 패거리들이 엉거주춤 나를 포위했다. 차마 검을 뽑지 못한 채 애매모호한 태도였지만, 내 활동반경이 줄어드는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주변이 좁혀진 내가 움직임을 멈추자, 녀석은 내 몸에 곧 쇠꼬챙이를 꽂아넣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눈을 희번뜩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 역시 헛된 희망이었을 뿐이다. 피하는 것을 그치고 성큼 한 발자국 내딛으니 그 자리가 곧 녀석의 허점이었다. 단박에 녀석의 손목을 잡고 비틀자 철그렁 검이 땅에 떨어져 내린다. 끼어들 틈을 엿보던 패거리들이 채 검을 뽑기도 전이었다.


손목을 제압당해 추하게 몸을 비틀면서도 녀석의 주둥아리는 쉬지 않았다.


“뭐해?! 빨리 이 놈을 잡아!”


“하···하지만”


눈살을 찌푸린 채 패거리들을 쏘아보자 그들은 주춤거리며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당사자는 모르고 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그들은 실력의 차이를 명확히 알게 되었을 터였다. 동료가 제압당한 뒤 더욱 몸을 사리는 것을 보니 그들의 얄팍한 교우관계 또한 알만했다.


“이봐, 적당히 물러날 줄을 알아야지. 난 평화주의자일 뿐이지, 대놓고 시비를 거는데 마냥 당하거나 맞아줄 생각은 없다고”


“이 빌어먹을 사기꾼 녀석.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정체를 숨기고 백리세가에 접근한 음흉한 속내를 낱낱히 밝힐 것이다!”


이 어이없는 녀석 보소. 실력으로 안되자 갑자기 얼토당토않은 죄목을 덮어씌운다.


“너는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는 거냐?”


“네 이놈! 내 아버지가 누군지 아느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유치하고도 고전적인 발악이 있던가. 나이를 아무리 쳐먹도록 누군가의 아들로밖에 자신을 설명하지 못하는 슬픈 인간이 여기에도 있다.


“너, 내 아버지는 누군지 알아?!”


질문을 역으로 받은 조가놈이 움찔했다. 녀석은 몸이 이상하게 배배 꼬인 와중에도 내 복장을 위아래로 재빠르게 훑었다.


아버지를 물었는데 왜 내 옷차림을 보는 것인지는 몰라도, 나도 그를 따라 내 옷매무새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인 출신인 대식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누런 의복, 철전 석 냥이나 주고 구매하긴 했지만 딱히 멋은 안나는 가죽신···


녀석도 역시 별볼일 없다고 생각 됐는지 자신만만하게 소리질렀다.


“너같은 놈의 아비가 누군지 알게 뭐란 말이냐! 보나마나 천한 잡종···.”


퍽!!!!!


여태껏 잘 참았는데 결국 녀석의 한마디가 주먹을 부르고 말았다. 단 한방에 혼이 나가버린 녀석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한가지 중요한 조언을 해주지. 네 아비 자랑은 자유이지만, 남의 부모 험담은 댓가를 치뤄야하는 법이다”


그때였다.


조가놈이 눈을 까뒤집고 입을 헤벌리자, 땅으로 후드득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


아뿔싸.


녀석의 패드립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들어가 버린 걸까. 기절한 녀석의 앞니들이 송두리째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머리 속에 비로소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백리세가, 백리담, 머리카락, 조가장, 동맹, 백리연, 정혼자···


‘망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강냉이를 확인한 패거리들의 휘둥그레진 눈과 마주친 순간, 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움직여 녀석들의 혈도를 제압했다.



***



“대식아. 대식아. 일어나보아라. 이 와중에 잠까지 자고 있으면 어쩌자는 것이냐”


“음냐음냐···도련님.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 그나저나 하도 늦게 오셔서 연과자를 제가 다 먹어버렸습니다. 백리세가 역시 최고네요”


“닥치고 조용히 짐을 챙겨라. 당장 이곳을 떠날 것이다”


“엇, 벌써요? 금자 열 냥은 받으셨습니까?”


“금자··· 금자? 아이씨, 모르겠고 일단 빨리 떠나야 한다니까?”


“어휴, 혹시 뭐 사고라도 치신 건 아니죠?”



“...제발 좀 닥쳐라”



***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율의 집무실.


그곳은 갑작스레 방문한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발 디딜 곳이 없었다. 한편에는 위아래 앞니가 숭숭 빠져 혼이 나가버린 조승지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잔뜩 화가 나 흉수를 찾아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조가장 사람들이 있었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율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혼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누군가 흥분하여 떠드는 소리에 쉽게 움직인다면 그것은 백리율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순서대로 차근히 따져묻자, 청년들이 머뭇대며 털어놓는 말들 사이에서 결국 사건의 시발점이 드러났다.


백리율의 미간이 깊게 패이며 하얀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허락도 받지않고 검을 뽑았다고? 그리고 검을 부러뜨렸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당황한 청년들이 입을 모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것은 실수일 뿐입니다! 조승지 이 친구가 분명히 변상하겠다 하였는데··· 다만 그 자가 금자 열 냥이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서!”


금자 열 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백리율의 뒤쪽에서 희미하게 킥-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백리율이 흘깃 뒤를 돌아보았으나, 그의 뒤에 서 있던 백리담과 백리연은 시치미를 뚝 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검을 부러뜨리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오. 애초에 그 자가 담벼락에 방뇨···크흠, 몹쓸 짓을 하여 시작된 일이 아닙니까. 빨리 그 놈을 잡아내서 족쳐야 합니다”


백리율의 표정이 쉽게 풀리지 않자, 조가장의 장주, 조호연이 앞으로 나서며 그의 결정을 독촉했다.


“어찌 감히 백리세가의 코 앞에서 이런 행패를 부릴 수 있단 말입니까? 승지가 누구입니까? 장차 백리세가의 사위가 될 아이가 아닙니까?”


백리율의 미간이 더욱 깊게 패였다. 조 장주의 말에도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마침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빗어넘긴 하얀 백발과 장대한 체구, 형형한 안광에서 절로 위엄이 흘러나왔다.


“...이 일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한번 뱉은 말은 좀처럼 되돌리지 않는 백리율이다.


그의 말에 실린 무게를 알면서도, 조호연 장주를 비롯한 조가장 사람들의 얼굴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백리율의 결정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꿈벅거리던 조호연 장주가 거세게 항의했다.


“대인! 승지의 얼굴이 이렇게 망가졌소이다. 정녕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을 생각이시오?!”


백리율이 고개를 저었다.


“조 대인, 승지는 나에게도 가족이나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대가 주장하는 바는 지나침이 있소이다. 고작 장사꾼 청년 한 명과 시비가 붙어 벌어진 일에 백리세가나 동맹 무가 전체가 달려들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이 일이 알려진다면 세간의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일개 장사꾼이 아닙니다. 승지를 농락하듯이 제압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수상한 세력의 간자일 수도 있소!”


백리연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허 총관이 그녀를 제지했다. 억지를 쓰던 조 장주는 백리율이 아무 대답없이 침묵하자 자신의 말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백리율 앞에서 절대 웃는 낯을 잃어버린 적 없던 평소와 달리 불손하고 도전적인 눈빛이었다.


“말로는 가족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세간 사람들의 이목만 신경쓰고 정의로운 것만 찾으시는군”


“···조 대인께서는 말을 신중하게 해주십시오”


허총관이 그의 말투를 지적했다. 선대 때부터 백리세가를 지탱해온 허총관의 말에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었지만, 조 장주는 그의 말조차 전혀 개의치 않은 채 빈정거리듯 말을 이었다.


“대인께서 여러 문파들을 갑작스레 불러모은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오? 하지만 그대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우리 조가장의 도움은 더이상 필요없는 모양이오.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소?”


조 장주가 뒤를 돌아보며 눈빛을 보내자, 그와 함께 백리율을 방문한 여러 문파의 수장들이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동조했다. 재력과 세력 면에서 그 존재감이 작지 않은 조가장이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세력을 볼모로 삼아 백리율의 생각을 바꾸어보려는 듯 했다.


집무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러나 백리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 장주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조 장주를 한참 바라보던 백리율이 마침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최근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백리율의 말에 조 장주가 흠칫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슨 의미요?”


“말 그대로요. 나는 지금껏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오“


“···그것은 최근 정세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짐작이 가능한 일이오”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싶소”


내내 날카롭게 따지고 들던 조 장주가 이번에는 아무 대답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백리율의 질문이 그를 흔들어 놓고 있음이 분명했다. 백리율이 차분한, 그러나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 대인, 부탁드리오.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을 우리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조 장주의 얼굴색이 짧은 시간동안 여러 번 변화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문파의 수장들은 백리율과 조호연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몰라 의아한 눈빛으로 그 둘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입술을 씰룩대던 조 장주는 뜻밖에도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랭하게 등을 돌렸다. 입을 굳게 다문 그가 집무실을 쌩하니 빠져나가자, 멍청히 서있던 조승지가 황급히 그를 따라 나섰다.


“아버지, 아버지···!”


그러자 나머지 조가장 사람들과 그들을 따라왔던 문파들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떠나간 집무실에 정적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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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59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6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6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3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69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8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5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1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0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2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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