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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3,458
추천수 :
1,448
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8 07:14
조회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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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글자
12쪽

조가장 (4)

DUMMY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괴청년이 신중한 자세로 나를 노려보았다.


심후한 내공을 바탕으로 내뻗는 저 주먹의 공격력이 부담스럽긴 하다. 그러나 조금 전처럼 기습을 당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그를 상대할 방법은 수백 수천가지에 이른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쎈 주먹이라 하더라도 애초에 맞아주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봉두난발의 괴청년을 바라보며 가죽신의 복수를 다짐하는 순간, 저 멀찍이 수레에서 낭패한 행색을 한 호인청이 다급히 뛰어오며 사내에게 외쳤다.


“소단주님!!! 그 쪽이 아닙니다! 제 말을 다 듣고 가셔야죠!”


‘소단주?’


호인청이 소단주라 부르는 자라면, 아버지에게 제압당하고 수레 뒤쪽에 실려있다던 오금상단의 임강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 이상하게 괴청년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아, 백리담의 친구라던···.!’


거칠게 헝클어진 옷매무새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지만, 조승지와 함께 백리담 남매를 마중나왔던 친구 중의 한 명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분명 조승지와도 친분이 있을 터인데, 백리연이 하필 그런 임강이 소단주로 있는 오금상단에 나를 부탁했다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이쯤되면 백리연이 정말 나를 보호하려는 것은 맞는지 의심될 정도가 아닌가.


‘하긴, 정작 백리연 소저는 조승지 녀석과 약혼 관계였지. 백 소저가 직접 내 앞니를 뽑으려 들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여러모로 꼬여버린 백리세가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찰하는 사이, 헉헉거리며 달려온 호인청이 임강이 제압당해있는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그에게 설명했다. 경계를 풀지 않고 나를 노려보던 청년의 표정이 여러번 변하더니 황급히 주먹을 풀며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담 형님과 연 누이가 신세를 졌다는 바로 그 분이셨군요! 이것 참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결례고 뭐고, 하마터면 그대 주먹에 두 조각이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일단 몇 조각으로 갈라지고 나면 사과를 아무리 많이 하더라도 소용이 없는 일이오”


“정말 죄송합니다. 상단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만 듣고 마음이 급해 섣불리 움직였습니다. 부디 제 경솔함을 용서해 주시기를···”


“흐음···.”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사과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어투는 매우 정중하고 공손할 뿐 아니라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승지나 기난수 같은 녀석들에게 시달리던 나로서는 간만에 접하는 예의바른 인사였다. 그 모습에 내 모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휘휘 손을 내저으려다가, 아직 가죽신을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몸 뒤로 감추며 멋쩍게 웃었다.


“어우,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때마침 성질을 부리고 있던 터라,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기난수의 이빨을 부러뜨릴 생각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협박하고 있었으니, 황급히 달려온 임강의 시선에는 내가 악당처럼 보일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까칠하게 굴던 내가 너스레를 떨자 임강이 비로소 밝게 웃어보였다. 극양의 기운 탓에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차츰 원래의 색을 되찾자, 그는 내가 기억하는 앳된 미소년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같은 미남형이라도 선이 굵고 남자다운 백리담과 달리, 임강은 햇볕 한번 쐬지 않고 자라난 것 같은 귀공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조금 전까지 들불같이 거친 기세로 나를 몰아붙이던 이와 동일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마지막에 신발을 손에 쥐셨을 때 어떤 무공을 사용하려 하신 것인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제 몸에 한기가 드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임강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질문했다. 이 전도유망하고 예의바른 청년무림인에게 사실 그저 가죽신으로 뺨을 찰지게 두들길 생각이었다고 어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흠..흠··· 외인에게 함부로 밝힐 수 없는 비전무공이라고나 할까요···”


뒷짐을 지며 허풍을 치자 그는 얼굴 가득 부끄러운 빛을 띄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전 공중에서 제 주먹을 어떻게 받아내셨는지도 아직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금자 열 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엔 재미있는 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정말 출중한 무공 또한 갖추고 계시는군요”


그의 말에 나는 어후, 아닙니다- 아닙니다-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다. 누군가 내 무공을 칭찬하는 것에 한번도 기뻐한 적이 없건만, 그의 말은 여러모로 듣는 이를 기분좋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잘생긴 젊은이가 실력도, 겸손함도 함께 갖추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란 말인가!


“그나저나 조가장 이 친구들은 이 시국에 사사로운 복수에 정신이 팔려있다니 도대체 무슨 정신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백리세가 영역에서 이런 행패를 부리고, 우리 상단 무인들에게까지 손을 쓰다니···”


임강이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리자, 이미 무기를 잃고 쭈그러들어있던 조가장 무인들이 더 기가 죽어 몸을 움츠렸다. 호인청이 그에게 다가가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난수, 그 자가 자신들은 더이상 백리세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며 이상한 말을 했는데···”


“눈치를 보지 않는다···? 또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임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혔다. 호인청이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운 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답했다.


“백리세가의 시대가 이제 끝날 것이라고 하더군요”


임강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하얗게 돌아왔던 그의 얼굴이 또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후끈한 열기가 그의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것을 보고있자니 그의 머리카락이 남아날지 걱정될 정도였다.


“터무니없는! 기 대협은 어디에 있소?”


그가 호랑이 눈으로 기난수를 찾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나에게 밀쳐져 날아갔던 기난수는 어디로 굴러 떨어졌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저기 있습니다!”


마차 안에 갇혀 비교적 주변 상황을 잘 주시하고 있던 대식이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과연 그 곳에서는 기난수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는데, 모두의 시선이 쏠린 순간 그가 재빠르게 옆에 있던 수하의 활을 낚아챘다.


“....!!!”


그가 기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 이들이 재빨리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그의 활시위가 향하는 곳은 높은 하늘 한복판이었다.


삐이이익—!


화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솟구쳤다. 일반적인 화살이 결코 낼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였다.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간 임강이 활을 낚아채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기난수 대협. 우리끼리 이게 무슨 짓이오”


양 뺨이 퉁퉁 불어오른 기난수가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소단주. 당신께서도 이곳에 남아계신 줄은 몰랐소. 그대가 있는 줄 알았다면 내가 그대의 마차를 멈춰 세우는 일은 없었겠지”


“이상한 변명을 하는군. 당신은 이곳에서 내뱉은 모든 말과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오”


서슬퍼런 임강의 기세에도 기난수는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불안하기도 했고 자신만만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미 일은 벌어진 것이오. 효시를 쏘아올렸으니 곧 모두들 이 곳으로 올 것 이외다. 그대도 목숨을 보전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빨리 도망치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대들은 그저 이진평 대협을 찾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 목숨이라니··· 조가장 당신들이 설마···?”


임강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기난수의 눈이 심상치 않게 빛났다.


“백리세가는 동맹 몇몇과 함께라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임강이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기난수의 멱살을 잡아 번쩍 치켜들었다. 그는 숨이 막혀 컥컥 대면서도 거북이처럼 목을 쭉 뻗으며 크게 외쳤다.


“이번 출정에서 너희들은 완전히 끝날 것이다!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어!!!”


기난수의 마지막 말은 발악 또는 절규에 가까웠다. 임강의 얼굴이 더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시뻘겋게 불타오르고,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무엇이든 산산조각 낼 수 있을 그 주먹이 기난수의 얼굴을 겨누었다.


모두가 숨죽인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쾅!!!!!


임강의 주먹이 다다른 곳에서 마치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 대상은 기난수가 아니었다. 그 대신 주먹을 받아낸 나무가 마치 폭격을 맞은듯이 우지끈 넘어가고, 잠깐 사이 황천길 맛을 본 기난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불타는 눈으로 기난수를 노려보던 임강이 서너차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대단한 참을성이군. 나 같았으면 벌써 이빨 몇개 뽑았다’


나는 얼핏 변노인에게 무공을 배우던 시절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본디 극양(劇陽)의 무공을 쓰는 이들은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힘의 근원으로 삼는다고 들었는데, 임강은 그런 류의 무공을 사용하는 이 치고는 참으로 대단한 인내심을 지녔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그대들은 유혹에 굴복해 오랜 신의을 배신하고 정의를 등지게 되었군. 안타까운 일이다”


임강이 손을 놓아버리자, 맥이 풀린 기난수가 스르륵 기절하며 땅바닥에 널부러졌다. 그에게서 고개를 휙 돌려버린 임강이 호인청에게 말했다.


“숙부님께서는 상단을 이끌고 어서 이 곳을 빠져나가주십시오. 본가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야만 합니다. 상황이 모두 정리되기 전까지는 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계시오”


호인청이 머뭇거리며 그에게 되물었다.


“소단주님께서는 함께 가시지 않는 것입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아버지에게로 갈 것입니다”


“하지만 소단주님! 단주님께서 절대 따라오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버님께서 혈도를 짚고 꽁꽁 묶어버리셨던 것도 모두 소단주님이 이렇게 나오실까봐 걱정이 되서–”


“호 숙부님- 아니, 호 총관”


임강이 그의 말을 끊었다.


“나는 지금 그대의 윗사람로서 명령하는 것이오”


호인청은 잠시 말을 잊은 채 그의 소단주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리와 의복은 거칠게 풀어헤쳐지고 온 몸에 밧줄자국이 가득했지만,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발로 우뚝 선 채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인청이 힘없이 말했다.


“혹여나 소단주님께서도 잘못되면 오금상단은 누가 이끈단 말입니까?”


“상단이야 그대가 이끌면 되지. 하지만 아버지의 곁에는 내가 있어야만 하오”


임강의 단호한 말투에 호인청은 더이상 그를 만류하지 못하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조가장 무인들이 몰려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옹기종기 모여있던 조가장 무인들이 썰물처럼 갈라지고, 기절해 널부러진 기난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임강이 갑작스레 나에게 외쳤다.


“이 대협께서는 저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기난수의 고급 가죽신을 열심히 벗겨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저요? 어디를?”


“백리세가와 동맹 무가들이 출정한 곳을 쫓아가고자 합니다”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그에게 되물었다.



“...제가 왜 거기를 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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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 조가장 (4) +1 24.05.28 1,308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60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7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7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16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70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30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60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6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2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6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2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1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8 39 12쪽
1 +3 24.05.08 3,634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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