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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인 말고 장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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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5.08 17:48
최근연재일 :
2024.06.30 22:00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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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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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8,562

작성
24.05.2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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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글자
12쪽

금자 열 냥 (1)

DUMMY


침을 튀기며 욕설을 내뱉는 이들의 얼굴을 쭉 훑어 보았다.


일행 중 임강이라고 했던 인상 좋은 청년만 함께 하지 않았을 뿐, 나머지는 아까 보았던 백리담의 친구들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밝고 유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자기보다 낮은 이를 깔아보는 경멸어린 눈빛만이 가득했다.


‘아까 전엔 백리담 앞이라서 그런 표정들이었던 것 뿐인가?’


물론 노상방뇨는 나의 잘못이긴 하지만, 누구를 상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상이 이렇게 확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일까. 그 중에서도 특히 백리연의 정혼자라는 조승지 녀석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후원 안에 실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후원? 네놈이 후원에서 나왔다고?”


청년 일당이 일제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맹 세력의 자제들이라고 하지만, 후원 만큼은 그들에게도 들어가본 적이 없는 지역인 듯 했다. 당황한 녀석들의 표정을 보며 살짝 우쭐함을 담아 대답했다.


“네. 안에서 차도 얻어 마시고, 과자도 먹고, 다 했죠”


청년들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더니, 조심스러운 자세로 나에게 질문했다.


“흠흠. 자네, 혹시 안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말해줄 수 있나? 백리담 형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말이야”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눈동자를 굴렸다. 사뭇 달라진 태도에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들이 재차 물었다.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백리담 형님의 막역한 지우들일세. 그런데 오늘은 형님이 바쁜 모양인지 이상할 정도로 말을 아끼더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되면 분명 무언가 도울만한 일이 있을 터인데 말이야”


아무리 동맹 무가라고는 하지만, 백리담이 여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외부인인 내가 백리세가의 일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글쎄요··· 딱히 제가 말씀드릴 만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함께 오면서는? 아무것도 보거나 들은 것이 없느냐?”


“그것도 말씀드리기는 조금 곤란할 것 같군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그들이 다시 민낯을 드러냈다. 혹시나 시비가 붙을까 싶어 얌전하게 머리를 조아렸지만 그들은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입을 불지 않겠다는 거지? 장사치 주제에 꽤나 무게를 잡는구나”


“흥, 며칠 같이 다녔다고 백리세가와 친구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오”


“아 참, 그러고보니 백리담 형님 말로는, 사흘거리를 태워주는데 금자 열 냥을 불렀다던데?”


“금자 열 냥?!?!”


누군가의 제보에 일제히 눈이 동그래진 일당들.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던 그들의 눈꼬리가 쭉 째져 올라갔다. 말을 그토록 아꼈다는 백리담이 앞 뒤 사연은 다 생략하고 금자 열 냥만 이 녀석들에게 제보한 모양이었다.


“은자 열 냥도 터무니 없는 금액인데, 금자 열 냥이라고?”


“이런 싸구려 포목을 싣고 다니는 녀석이 무슨 양심으로 그렇게 받아쳐먹어?”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사연을 녀석들에게 어찌 설명할 것인가. 이 당돌한 녀석들과 더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슬금슬금 걸음을 옮겨 다시 후원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시비거리를 찾으려 수레를 빙글빙글 돌던 조승지 녀석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크게 소리쳤다.


“이 녀석, 검이 있다!”


수레 구석에 쳐박아 두었던 검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가 내 허락도 없이 대뜸 검을 뽑아들자, 청년 무리들이 일제히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이런 허접한 검이 있다니!”


“자네 건가? 장사치 주제에 검을?”


그들에게서 벗어나려던 나는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비록 내가 강호의 밥을 먹는 이는 아니지만, 다른 이의 검을 허락도 없이 뽑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는 알았다.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가, 다시 한번 마음을 곱게 다스렸다.


‘애초에 수레에 쳐박아 놓은 검에 예의운운할 처지는 아니지!’


별 것도 아닌 일로 이런 놈들과 언성을 높여서 좋은 일이 없을 터였다. 얼굴 가득 영업용 미소를 띄우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 네, 그저 호신용으로 장만했던 겁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검 좀 쓰시나?”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흉내만 내는 수준이죠”


조승지가 피식 웃었다.


“검을 이렇게 마차에 내팽개쳐 놓을 정도면 말 다했지. 기본적인 마음가짐 자체가 글러먹었구나”


글러먹은 것은 안하무인인 녀석의 태도이다. 이제는 슬슬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검을 이리저리 쳐다보던 조가 녀석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어디 한번 검명(劒鳴) 좀 들어볼까?”


“검명?”


“혹시 알아? 겉모습만 이렇고, 대단한 명검일 수도 있지”


“그럴리가?”


일행들이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조승지와 나, 그리고 검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검명이라 함은 검이 뽑혀나오거나 맞부딪힐 때 나오는 소리. 질이 좋은 검일수록 더 깊고 은은한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난데없이 그런 소리를 들어보자고 하니 검의 주인인 나조차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조승지가 희고 긴 손가락을 구부려 검의 옆면을 겨냥했다.

좌중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그가 손가락을 퉁- 튕겨낸 순간,


쩡—!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대뜸 부러지고 말았다.


“푸하하하하하하하!”


잠시 멍하니 서있던 청년들이 이내 수레가 들썩일 정도로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똑 부러져 반쪽이 나버린 검이 뭐가 그리 웃긴지, 조승지는 허리를 반으로 접으면서까지 꺽꺽거렸다.


“이··· 이것도 검이라고···크큭”


다들 웃으니 나도 헤헤 웃었다. 숨 넘어갈 듯 웃다가 눈물까지 찔끔거리던 조승지가 마치 격려라도 하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구 미안하게 됬네. 설마 이 정도에 부러져버릴 줄은 몰랐지. 괜찮나?”


“괜찮습니다. 물어주시기만 한다면요”


“아, 그럼 물어줘야지. 저 검 가격이 얼마인가?”


“···열 냥이요”


“철전 열 냥? 허접한 검치고 비싸기도 하구만”


녀석은 궁시렁대면서도 흔쾌히 품 안에서 전낭을 꺼내들었다.


“아니, 금자 열 냥”


조승지의 손이 멈추었다.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승냥이 같은 녀석들.


나는 이빨을 드러내고 싱그럽게 웃어보이며 그들에게 다시 한번 똑똑히 말해주었다.


“금자 열 냥. 씨방아”



***



“너···너···”


당황한 조승지가 말을 더듬었다.


“너 방금 욕했지?”


“아닌데요”


“방금 뭐라고 했잖아? 씨..씨..”


“금자 열 냥에 씹 전이요. 뭐 잘못 들으신 것 아닙니까?”


“씹···씹 전, 십 전···”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그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희극이 따로 없었다. 조금 전 녀석들의 무례한 태도에 솔직히 잠깐 열받긴 했지만, 지금은 웃음을 꾹 참아내느라 힘들 지경이었다.


뒤에서 갸웃거리며 우리의 대화를 듣던 또다른 녀석이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아니 그나저나, 금자 열 냥이 왠 말이냐! 뭐 이렇게 비싸?”


“제 가문 대대로 물려내려오는 가보입니다”


“...아까는 호신용으로 장만했다고 했잖아?”


아차차, 그랬었지. 한량같이 생겨먹은 녀석들이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착각을 한 모양이네요. 아무튼 가보가 맞습니다. 비싼 검이구요”


진심을 담아 사과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성난 청년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성성이마냥 아우성을 쳤다.


“가보는 무슨 가보, 손가락 한번 퉁겼더니 똑 뿌러지는 검을?”


“그래! 고작 사흘 거리 마차 태워주면서 금자 열 냥을 받아쳐먹었다고 하더니, 이거 전문 사기꾼이로구나!”


“백리담 형님과 연 누이에게 이 녀석의 실체를 알려야합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입술을 꾹 깨문 조승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으르렁 거렸다.


“그래. 아까 마차에서 봤을 때부터 눈깔이 마음에 안들었어. 감히 누구를 상대하는지도 모르고 헛수작을 부리는구나. 네 잘못을 알렸다?!”


“아니, 다짜고짜 제 검을 가져가 부러뜨린 것도 그대이고, 물어준다고 하기에 가격을 말한 것 뿐인데 왜 그것이 내 잘못이 됩니까? 설마 금자 열 냥이 없소? 외상도 가능하오”


“네 이놈! 닥쳐라!”


더이상 참아내지 못한 조승지의 오른어깨가 움찔했다.


어깨에서 시작된 힘이 팔꿈치로, 손목으로, 쫙 펼쳐진 손바닥에 전달된다. 내 뺨을 노리고 날아오는 그의 손바닥을 흘깃 바라보았다.


‘느리다. 느려!’


백리세가의 가장 큰 동맹 가문이라면 무공도 대단할 줄 알았는데, 백리담이나 백리연의 발꿈치에도 못 미칠 법한 실력이었다. 이런 녀석은 가문의 힘만 믿고 또래들과 놀러다니며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부류일 가능성이 높다.


세삼스레 가문의 일을 나눠받아 이리저리 발로 뛰는 백리세가 남매가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한참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그제서야 녀석의 손바닥이 나의 뺨 근처에 와닿는 것이 느껴졌다.


‘헉, 딴 생각을 하다가 하마터면 맞아줄 뻔 했잖아!’


돌팔이 스승 변노인에게 여러가지를 배우긴 했지만, 그 중 그나마 내가 제일 집중했던 것은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는 수법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손톱 하나 다치고 싶지 않은 나의 희망사항과 잘 맞아 떨어지는 무공이 아니던가.


조승지의 손이 다가오는 흐름을 따라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휭- 하니 녀석의 손바닥이 헛되이 허공을 가르고 난 뒤 고개를 다시 돌려 제자리로 돌아왔다.


짝- 내 뺨따귀를 시원하게 올려부칠 것으로 기대했던 조승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손바닥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깜짝이야! 금자가 없으면 없다고 하시지, 왜 저를 겁주시는 겁니까?”


깜짝 놀란 척 어깨를 움츠리고 항변하자, 뒤쪽에 서있던 청년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댔다.


“시끄럽다! 네 녀석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부르니까 벌어진 일이 아니냐?”


“한 대 쥐어터지더라도 할 말이 없을 터에 정신을 못차렸군!”


“조형, 왜 평소답지 않게 겁만 주시오? 이런 녀석은 따끔하게 맛을 봐야합니다!”


조승지는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명 내 뺨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손에는 아무 감촉이 없으니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녀석은 애송이들이 부추기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한 손을 치켜들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성큼 다가서며 손을 휘두르는 녀석.


“아이고! 무림고수가 선량한 장사꾼 잡는다!!”


겁먹은 척 몸을 잔뜩 웅크리고 녀석의 아래쪽으로 파고들었다. 한 손을 뻗어 녀석의 오금을 싸잡고 어깨로 녀석의 몸통을 툭 밀어내니, 균형을 잃은 조승지가 어어어- 비명을 지르다가 바닥에 덩그라니 나자빠졌다.


개구리같이 나자빠진 녀석을 내려다보며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라? 무림고수가 왜 갑자기 넘어지셨지? 하체가 부실하신가?”


“조형! 괜찮습니까? 갑자기 왜 이러시오!”


청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화들짝 달려가 조승지를 부축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조승지가 패거리들의 손길을 물리치고 몸을 일으키더니, 요란하게 양 손을 휘두르며 다시 한번 돌격해왔다.


뭔가 권법같은 것을 쓰는 모양인데, 저런 허접한 손놀림에 맞아줄 수는 없지 않은가.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허초가 구 할이니, 가만히 보고있다가 나에게 닿을 것 같은 공격만 살짝 살짝 피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흥분한 녀석의 동작이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맹렬히 휘둘러지는 팔을 슬쩍 밀어내니, 녀석이 팽이처럼 빙그르르 돌더니 또 한번 균형을 잃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다.


“!!!!!!”


너무나 멀쩡하고 평온한 나와, 처참하게 주저앉은 조승지의 대비되는 모습.


청년들 모두가 말을 잃고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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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노인 (2) +1 24.05.31 1,273 28 13쪽
25 노인 (1) +1 24.05.30 1,317 23 12쪽
24 조가장 (5) +1 24.05.29 1,325 27 13쪽
23 조가장 (4) +1 24.05.28 1,307 25 12쪽
22 조가장 (3) +1 24.05.27 1,317 29 12쪽
21 조가장 (2) +1 24.05.26 1,359 27 12쪽
20 조가장 (1) +1 24.05.25 1,456 24 11쪽
19 금자 열 냥 (4) +1 24.05.24 1,506 28 12쪽
18 금자 열 냥 (3) +1 24.05.23 1,465 30 12쪽
17 금자 열 냥 (2) +1 24.05.22 1,478 32 12쪽
» 금자 열 냥 (1) +1 24.05.21 1,504 29 12쪽
15 백리세가 (2) +1 24.05.20 1,569 29 13쪽
14 백리세가 (1) +3 24.05.19 1,629 31 13쪽
13 음모 +1 24.05.18 1,660 32 13쪽
12 암살 +2 24.05.17 1,658 30 12쪽
11 적기방 (2) +1 24.05.16 1,715 30 12쪽
10 적기방 (1) +1 24.05.15 1,781 33 12쪽
9 암습 +1 24.05.14 1,823 38 12쪽
8 바가지 +2 24.05.13 1,902 37 13쪽
7 백리연 +2 24.05.12 2,016 39 13쪽
6 와장창! +1 24.05.11 2,045 40 11쪽
5 첫 거래. +3 24.05.10 2,131 41 12쪽
4 인연은 그 앞날을 알 수 없다. +2 24.05.09 2,190 47 11쪽
3 사해가 동도. +3 24.05.08 2,390 50 11쪽
2 일대종사 (一代宗師) +2 24.05.08 2,877 39 12쪽
1 +3 24.05.08 3,632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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